임영조(시인/작고)

그가 넌짓 말을 던진다
나도 조심조심 말을 섞는다
절대로 틈을 보이지 말자!
해도, 어느새 벌어지는 틈
그 틈을 비집고 그가 쳐들어온다
간질간질 눙치듯 쉬슬어놓고
내 속을 갉아먹고 어디론가 날아가
역한 소문만 퍼뜨리는 쉬파리!

그를 보려는 내 눈과
그를 들으려는 내 귀와
그를 맡으려는 내 코와
그를 삼키려는 내 입이 곧
그가 비집고 쳐들어올 구멍이라니!
그게 바로 내 생의 틈이었다니!

진도 앞 큰 바다도 절로 갈라져
틈을 보일 때가 있다지? 감춰든
속내를 드러내고 사람들을 끈다지?
금간 보도 블록 사이로 촉을 내민
풀씨가 더 눈물겹고 환하듯
틈으로 엿본 생은 얼마나 인간적인가?

말의 틈은 흠이라지만
사람의 흠은 그의 생을 정독할
자상한 각주 같은 것이니
더러는 틈을 보이며 살 일이다
밖으로 나가려면 문을 열듯이
안으로 들이려면 틈을 내줄 일이다.


 

사랑의 편지

오봉완 박사(역사학자)

55년 전 편지를
당신이 떠난 지 4년 만에 찾았어요

약혼과 결혼 사이 일년간
뉴욕과 워싱톤에 떨어져 있었을 때
당신은 90통의 편지를 보내 주었어요
과오도 없이 타이프로 친 영문 편지였어요
새삼스레 놀랐어요
그다지도 다정하고,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했었는지

기억해요
송구스러웠었고, 부끄러웠던 것…
멋지고 위엄있는 대학원 학생인 당신이
철없는 학부 3학년인 나를 좋아하다니?
반세기 전의 편지에서
순수한 열정이 흘러 나왔어요

기억해요
황당했었지만 감사했던 것
그런 사랑의 고백 받아 본 일 없었고
그토록 깊이 생각하고 아끼며
표현해 주어서

사랑 깊은 50여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고마워하며 나는 버텨 나가요
반세기 넘은 당신의 편지를 읽고 또 읽으면서….


 

그날이 오면

황 마리아

언젠가
그날이 오면 알 수 있으리
왜 그렇게
가슴 찢기는 아픔 겪어야 했는지
왜 그렇게
통곡하며 울어야 했는지
그 날이 오면
모든 것 알 수 있으리
왜 그랬어야 했는지도
그리고
보고 싶은 사람들
사랑하는 사람들
반갑게 다시 만날 수 있으리
언젠가
그날이 되면 ….
그날이 오면 ….


 

딸에게

정희자(화가/문인)

새벽5시, 온 밤을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니 일찍부터 무엇을 할까?

다시 침대에 딩굴며 ‘무엇이고 생각가는대로 자신을 내버려두자’는 심정이면서도 읽다가 끝을 잘 이해 못한 책 토마스 머튼의 자전적 에세이인 ‘칠층산 ‘이란 책을 다시 살핀다. 그랬더니 너무도 재미있었다. 얼마나 나 자신이 어린 아이같은 생각이나 행동으로 무모했었던가 부끄럽기 까지 했다. 홀로 사는 엄마에게 도움을 주려고 자주 네가 사준 새로운 책은 왠지모르게 선뜻 읽을 마음이 안 났었다. 처음으로 종교에 관한 책인 ‘칠층산’ 을 알고도 끝까지 깊히 이해를 못했다. 그러나 오늘 아침 우연히 다시 든 그 책속에서 흥분과 기쁨을 받아 안았다.

고독이 얼마나 심엄하고 대단한 것인가를 알 수 있는 깨달음을 하나님에게서 받았다. 지금 이 기쁨을 너에게 알리고 싶어서 글을 쓴다.

길도 모른 채 성당에 가기 시작했다. 세 번이나 길을 헤매이면서, 이것이 어려운 길을 스스로 택할 때 생기는 두려움이구나,하고 느끼면서 가던 생각이 나는구나.

누가 권하거나 설명도 듣지 못했던 그 길을 왜 택했나? 하고 이제 와 생각하니, 자식들에게 조금이라도 어려움을 덜어 주는 방법이 천주교회서는 신자들의 장례식을 잘 해준다 는 그 말이 외로운 우리 가족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었다.

아무 지식도 없는 처지에 성당을 가서 입구에 크게 그려 붙인 그림을 보았다. 함께 기도하는 옛 성도들의 모습이 성스러우면서, 나도 저런 그림을 그려보고싶다,고 생각을 했다

참으로 놀라고 실망한 것은 아무도 반겨주거나 아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데다 더욱이 놀란 것은 영세를 받으려면 6개월 간 준비 공부를 해야 하며, 그것도 이미 진행 중이라 그곳마저도 못 들어가고 세례 준비반으로 가라 했다.난처하기도 하고 이상도해라,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간에 개신교에서 지난 생각때문이었었다

아직도 오락가락하는 심정이면서도 미사 참례를 매주 해온 것은 그저 발걸음이 따라 간 때문이었다. 오늘 아침 칠층산 책을 다시 읽으며 감동하고 있다. 이 길이 늦게나마 나의 택할 길임을 믿으며 이 또한 하나님의 지시로 알고 이 기쁨을 바로 나의 사랑하는 딸에게 전하며 감사한다

어려서 네 손 잡고 길을 인도해온 것이 어느 새 네가 내 손을 이끌며 인도 해주니 어찌 잘못된 길일 수가 있겠는가. 새로운 삶에 벅차오르는 이 기쁨을 너에게 전하면서 …

어느 일요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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