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양곡

2016년의 두 함성, 두 나라, 그리고 두 지도자

2016년은 시카고의 해다. 108년 만에 컵스가 월드시리즈 우승컵을 시민들에게 안겨준 해다. 결승 7번기 마지막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홈팀 클리블런드 인디언스를 8대 7로 물리쳤다. 정말 손에 땀을 쥐게 했던 스릴러였다. 경기를 보다 혹시 심장마비를 일으킨 사람이 있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그런 보도는 듣지 못했다. 20 년전 시카고 불스 농구팀이 챔피온이 됐을 때 경기를 보다가 심장마비를 일으켜 사망한 친구 의사가 생각나서다.

시카고가 뜨거웠던 때는 어느 집 소외양간에서 생긴 불꽃이 바람에 날려 시카고 대화재를 일으킨 1871년 10월 이었다. 그런데 2016년 11월 컵스의 우승은 시민들의 열기로 다시 시카고를 뜨겁게 달구었다. 승리의 퍼레이드가 11월 4일 시카고 다운타운에서 열렸다. 너무나 기다렸던 승리, 한이 맺힌 월드시리즈 우승이었기에 시민의 한 사람인 나도 퍼레이드에 참석하러 집 근처의 메트로 역으로 나갔다. 승객들이 만원인지 몇 대의 기차가 역에 정지도 않고 그냥 지나갔다.

가까스로 시카고 다운타운 유니온 역에 도착하여 행사가 열리는 레이크 소어의 그랜드 팍 쪽으로 가는 길에는 수 많은 인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생전에 이렇게 많은 인파를 본적이 없었다. 미디어에 의하면 500만명 이상의 군중이 모였고, 유사이래 3번째로 많이 모인 관중 수였다고 한다. 그랜드 팍 안에는 이미 사람들로 꽉 차서 들어갈 수도 없었다.

도심지 거리에는 군중들의 함성과 노래 소리가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 같았다. 승리 깃발을 든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 나팔과 북소리의 행렬이 끊임없이 줄을 이었다. 남녀노소 막론하고 기쁨에 들뜬 군중들은 “Go, Cubs, Go, Chicago!!.” 노래를 목소리가 터지도록 불렀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내 옆에 서있던 어느 노인은 노래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500만 기쁨의 함성과 노래 소리는 컵스의 우승을 보지 못한 채 지구촌을 떠나간 사람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듯 미시간 호수 건너 저 멀리 디트로이드까지 훨 훨 날아가고 있었다.

한국의 2016년 11월은 촛불의 달인 듯 싶다. 많게는 100만의 국민들이 손에 손에 촛불을 들고 대통령의 국정혼란 책임을 묻는 분노의 함성을 외쳤다. 자신들이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 절망, 좌절, 무기력, 분노가 따르기 마련이다. 중요한 국정을, 더구나 북쪽의 핵 위험에 직면한 시기의 국정을 마치 집안의 일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나라를 다스린 지도자에 대한 분노의 함성이 청와대까지 들렸다. 나를 낳아주고 키워준 조국이 걱정스럽다. 한국민들의 분노의 함성이 시카고 컵스의 승리의 함성과 지구촌 어느 공간에서 만나 서로를 위로하고 서로를 기뻐해 주리라 믿고 싶다. 또한 광화문 광장의 함성이 언젠가는 시카고의 기쁨의 함성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30년 한국생활 후 40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고 있다. 몇 해 동안은 서울과 시카고를 넘나드는 철새같은 생활도 해보았다. 그래서그런지 한국과 미국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는 자부심도 든다. 250년 밖에 안 된 역사를 가진 미국은 지금 세계 최강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돌아보면 미국의 영광은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이 뿌린 피와 아프리카 흑인노예들이 흘린 땀으로 이룩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대륙에 들어온 서유럽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에 대한 말살정책을 폈고, 빼앗은 원주민들의 광활한 땅을 개간하기 위해 서유럽국가들로부터 노예를 사들였던 것이다.

2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이 된 미국은 어느 나라보다 더 인권과 인류애를 부르짖었다. 심리적으로 자신들이 저지른 원죄에 대한 용서를 신과 사람들로부터 받아보려는 소망인 것 같다. 건국 200년이 넘어서는 노예 흑인 출신을 대통령으로 뽑는 성숙한 국민의 여유도 보여 주었다.

그러다 2016년 11월 미국은 인종 차별자, 성 차별자,이민 차별자, 세금 사기자를 대통령으로 선출했다. 일자리 창출과 미국 우선주의의 외침이 엘리트들에 적개심을 품은 저소득층,저교육층 백인들과 기득권과 부의 불균형, 불공정 정책에 실망한 백인 중류층-민주당 버나드 샌더스 지지자들에게 먹혀 들어갔던 것이다.

남북통일에 중점을 둔 진보정권의 국가정책이 오히려 북한의 핵발전을 도와주었다는 비판으로 한국민들은 정권을 다시 보수로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부패했고, 더 무능했다. 전 정권의 현대산업 감각에 뒤떨어진 4대강 사업, 현정권의 이해할 수 없는 세월호 사건, 급기야는 비정상적인 국정운영 방식으로 지금 위기에 놓여 있다. 나는 조국을 믿는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단기간 내에 성취한 나라다. 이를 이루기 위해 수많은 민초들의 희생과 군사독재 같은 부조리도 있었지만 한강의 기적을 이루어 오랜동안의 배고픔에서 해방되고, 끊질긴 투쟁으로 자유를 찾고,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원조를 주는 나라가 되었다.

이번 촛불집회를 보더라도 질서정연한 평화적 시위는 성숙한 국민의식을 보여주었다. 100만명이 모였는데도 예전의 시위에서 항상 보았던 돌팔매, 화염병, 폭력행위는 볼 수 없었다. 주요 외신들도 입을 모아 한국민의 높은 의식을 칭찬했다. 시카고가 대화재 2년 후 세계의 건축도시로 탈바꿈 했듯이 지금 조국의 위기가 더 좋은 나라로 태어나는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

미국 또한 그렇게 염려할 나라는 아니다. 풍부한 국가자원과 인적자원이 세계 어느 나라 보다 많고, 인종차별도 가장 적고, 이민자들을 감싸주고, 자유와 평등이 보장된 나라다. 비록 과거에 나쁜 짓을 했지만 가장 강하게 인권과 인류애를 부르짖는 나라다. 거기다 노불레즈 오불리제를 실천하는 엘리뜨들이 점점 불어나고 있어 최강국 자리를 그리 쉽게 내어줄 것 같지 않다. 대통령이 바꿔졌다고 미국사회가 금방 어떻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도날드 트럼프는 예상을 뒤덮고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더니 힐러리 클린튼을 이기고 대통령이 되었다. 인간의 성격구조는 대개 5살 미만에 기초공사가 끝난다. 어렸을 때의 트럼프를 모르기 때문에 그의 확실한 성격형성은 모르나 보도된 트럼프의 언행을 살펴보면 그는 자애성 성격 특징을 많이 보여주고 있다. 자신이 이룬 일에 대한 과시성이 강하고, 항상 자기 위주의 자기중심적이고, 타인으로 부터 칭찬과 인정을 받으려는 노력을 기울인다.

한편 남의 감정에 대해서는 무관심, 무감각, 배려심이 결핍되어 인정머리 없는 자로 보인다. 남의 비판에 매우 민감하여 좌절과 분노, 우울감에 쉽게 휩싸일 수도 있다. 역대 세계의 많은 혁명가, 지도자, 발명가, 문학자, 예술가 등이 자기애적 성격 소유자들이었다. 그들은 내면의 공격성과 과시성을 조절하거나 교묘히 감추고 대중을 선동하며 일에 집착했기에 성공했다. 자애성 성격자들의 말년이 좋지 않았던 사실은 그들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성취했는데도 이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보다 큰 욕망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박근혜씨의 경우도 어린 시절을 잘 모르기에 확실한 성격구조에 대한 언급이 조심스럽다. 사회심리학자 에릭 에릭슨은 3살 전 후의 어린아이 시절에 기본적 믿음체계가 형성된다고 주장했다. 그 나이 때 아이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서는 어머니나 어머니 대리자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자기를 제때에 먹여 주고, 배설시켜 주고, 따스한 체온과 다정한 눈길을 받으면 마음이 편해지고 사람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 과정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성격에 문제를 보이는 성인으로 성장한다고 한다.

소녀시절엔 대통령의 딸로서 항상 누군가의 보호를 받아야 했고, 젊은 나이에 두 부모를 총상으로 잃었기에 일반인들은 박근혜씨가 자신에 대한 신뢰와 독립성이 부족한 의존적 성격자라 생각한다. 부분적으로 맞는 말이지만 전문가의 눈으로는 박근혜 씨는 매우 강한 강박적 성격의 소유자 같다. 남을 믿지 못해 자신이 직접 세세한 부분까지 챙겨아 한다.

자신까지도 믿기 어려워 매사에 완벽함을 추구하고, 정돈과 규칙, 도덕과 윤리에 엄격하다. 외면상으로는 침착하고 성실한 사람같이 보인다. 그러나 내면에 깔려있는 타인에 대한 불신감에 타협과 융통성 능력이 부족하다, 자신의 의견과 다른 사람들을 친구와 적인 이분법적 태도를 보인다. 조심성이 많아 무슨 일을 결정하기가 어렵지만 한 번 마음을 정하면 고집을 꺾기가 힘들다. 이런 게 강박성격의 특징이다.

한국이나 미국이나 “이게 나라냐?”하는 유행어가 생겼다. 정권은 짧지만 국민은 오래간다. 더구나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다. 하루하루를 의미있게 보내며 인내심을 가지고 지켜보자. “오늘은 어제 죽은 자가 그렇게 바라던 내일”이다,란 사상가 에머슨 말이 생각나서일까?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