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신 김광정 박사

시카고의 멕시칸 커뮤니티와
Operation Wetback 이야기



좌충우돌, 조변석개(아침에 바꾼 것을 저녁에 또 바꾸는 변덕스러움)하는 것같은 트럼프정부의 이민 정책 중에 한 가지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이민에 관한 한 멕시코를 ‘동네 북’으로 만들어 두들겨 패는 것. 미국과 멕시코 전 국경에 어느 누구도 넘을 수 없는 높고 견고한 장벽을 세울 텐데 그 비용을 멕시코정부가 전담하게 한다는 캠페인 기간의 아이디어를 계속 고집하는 가 하면, 몇 주 전에는 미국/멕시코 국경초소에서 불법이민자 대대적인 추방 정책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 폭스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이 불법이민자 추방정책이 1950년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정책과 같은 것이라 하였다. 그 정책의 이름은 무엇? 묻는 리포터에게 ‘Do you like Ike (아이젠하워의 별명)?’ ‘Everybody likes Ike.’라고만 답하였다. 한 마디로 모른다는 이야기이겠지? 저절로 한숨이 푸 욱 푹~나왔다.

왜? 첫 째로, 불법이민자는 온통 국경을 몰래 건너오는 멕시칸이라는 인식때문에. 실제로, 불법이민자의 절대다수는 visa overstayer-비자를 가지고 입국한 후, 비자 만기 후에도 비자갱신없이 남아있는 이들-이다, 둘 째로, 역사상 가장 성공적 불법이민 추방정책이라 추겨 세우면서도 거명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그 정책 시행이 가져 온 아주 많은 문제점도 모르겠구나 싶어서. 그래서 오늘은, Operation Wetback과 함께 시카고의 멕시칸 커뮤니티를 살펴보겠다.

우선 짚고 넘어갈 것은, 멕시칸은 2010년 센서스의 Latino(라티노)에 속하는 22개 그룹 중에 가장 큰 그룹이라는 점이다. 라티노는 센서스에서 중/남미 출신을 망라하는 호칭으로, 일반적으로 히스패닉 (Hispanics) 으로 불리기도 한다.

두 번째로 큰 그룹은 푸에르토리칸 (Puerto Rican). 그러고 나면, 쿠바와 과테말라 외에는 백만 명이 넘는 그룹이 없다. 푸에르토리칸은 이민이 아닌데 이민, 그것도 불법이민 취급을 받기도 한다. 멕시칸도 절대 다수가 합법 이민인데, 흔히 ‘불법이민?’ 하면, ‘멕시칸!’ 할 정도의 취급을 받는다.

도대체, 멕시칸들의 미국이민은 언제부터일까? 그 첫 번째의 기폭제는 1848년 2월에 끝난 미국-멕시코 전쟁이다. 이 전쟁 승리로, 미국은 1821년 스페인 지배를 벗어나 독립국가가 된 멕시코에게서 텍사스, 뉴 멕시코(애리조나를 포함)와 캘리포니아를 얻게 된다. 이 지역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약 십만 내지는 300,000의 멕시칸들에게 미국정부는 멕시코로 돌아가던 지, 아님 미국시민이 되어 살라고 하였다.

조약은 그리 명시했지만, 어디 그리 될까? 과연 많은 멕시칸들은 시민 대우를 받기는 커녕 소유하던 농토를 빼앗기고 농촌노동자로 전락했다. 1849년 북가주에서 금이 발견되어 백인 이민자가 급증한 캘리포니아에서의 차별은 아주 심했다.

멕시칸 불법이민이 언급될 때면 멕시칸 커뮤니티 리더들이 ‘국경이 우리를 넘어갔지, 우리가 국경을 넘은 것 아니다 (We did not crossed the national boundary, but the national boundary crossed over our ancestors)’ 라고 말하는 배경이 여기에 있다. 그래도, 1900년 까지 미국과 멕시코 왕래는 자유로웠고, 이민을 목적으로 하는 멕시칸들의 미국 유입은 거의 없었다.

두 번째의 기폭제는 1910년 시작된 멕시코 혁명과 1차 세계대전 (1914-18)이다. 특히, 1차 대전은 극심한 노동자 부족을 가져와 많은 기업주/농장주들이 미 정부에게 멕시코 노동자를 불러 오라는 압력을 넣어, 1차 대전 중에 약 7만 명의 멕시칸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이민 왔다. 시카고의 멕시칸 커뮤니티 시작도 이 시기이다. 1916년 철도회사들이 206명을 데려오고, 곧 이어 시카고의 철공장/가축 도살장들이 합세하여, 1920년 1,200명, 1930년 20,000명으로 늘어난다.

그렇다고, 멕시칸들에 대한 대우가 달라진 것은 물론 아니다. 특히 루즈벨트의 뉴딜 정책이 시작되면서 “멕시칸이 너무 많아!” 라는 노골적인 불평이 백인들 사이에 만연하게 되었고, 미 정부는 경제대공황 시기인 1930년대에 890,000명 (어떤 기록에 백만 명는)을 강제 추방하였는 데, 이중 60%가 미국 시민이었다고 한다.

시카고의 멕시칸 이민은 젊은 남성 위주이고, 시민권 신청비율도 적어 이 강제추방에서 많은 피해를 보아 1940년 시카고의 멕시칸은 16,000명으로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카고의 멕시칸 커뮤니티는 1940년에 이미 Mexicans American인식을 가진 미국태생 자녀의 숫자가 이민세대를 능가하였다.

세 번째의 기폭제는 2차세계대전이다. 1942년 8월 멕시코와 미국정부가 Bracero Program이라 불리는 노동계약 (공식 명칭은 미국-멕시코 농장 노동 프로그램 US Mexican Farm Labor Program 이고, Bracero의 의미는 건장한 일꾼) 을 체결한 것이다. 1920-30년대의 멕시코 혁명과 강제 추방 역사로 견원지간(개와 원숭이의 사이)같던 두 나라가 이 계약을 체결하게 된 뒷 이야기가 있지만, 나중 기회로 미룬다.

미안! 여하튼, 이 프로그램은 2차대전으로 야기된 노동인구의 감소 해소를 위한 것으로, 스탁턴, 캘리포니아 (Stockton, CA)의 사탕 무(sugar beet) 농장에 몇 백명의 멕시칸 노동자들을 불러 오면서 시작되어, 곧 농장에서, 철도로, 미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 프로그램으로 인한 멕시칸들의 시카고 유입은 1943년 5월 1일 철도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들로 시작되는데, 1943.5.1.-9.30까지의 전 미국의135,350명 멕시칸 bracero의 11%인 15,344명이 시카고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이때부터 시카고는 멕시칸 이민의 최종 목적지/중심지(destination/hub) 로 등장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사족 하나: 이중 국적을 허용하는 멕시코 상원에는 미주 멕시칸을 위한 쿼터가 1명 있는 데, 지금까지도 이 자리는 시카고의 멕시칸 아메리칸 독무대이다. ]

이 고용 프로그램은 전국적으로는 1964년까지, 시카고에서는 1945년 공식 종결된다. 1945년 이후, 시카고의 철도회사들은 Bracero와는 관련 없는(과연 그럴까?) 텍사스의 멕시칸들을 다시 고용하기 시작하면서, 시카고의 멕시칸 커뮤니티는 합법 이민도 쑥 쑥 늘어나고, 아뿔사! 쑤~욱 늘어나는 불법이민으로 고속성장을 이어간다.

Operation Wetback이라 부르는1950년대의 멕시칸 불법이민 강제추방 정책은 아이젠하워 행정부 2년차인 1954년 5월부터 시행되었다. 1848년부터 시작된 멕시칸 이민 역사의 관점에서 보면, ‘또 같은 일 반복이네! (déjà vu!)’ 필요할 땐 불러오고, 필요 없으면 추방하는 미국의 이민 정책- 이지만, Operation Wetback은 심각한 노동자 품귀 해소를 위한 멕시코정부의 요청에 의해, 멕시코정부와 미 이민국 (INS) 국장 스윙(Joseph Swing)씨가 1954년 초에 고안한 것이었다.

1954년 5월 17일 법무장관 (Attorney General) 브라우넬 (Herbert Brownell)의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멕시칸의 불법이민을 막겠다’는 공식발표로 정책 시행이 시작되었는 데, ‘불법’ 이민자는 범법자이니 총칼을 사용한 무차별 체포가 문제가 되지 않는 다는 브라우넬의 담화처럼 미 전국에서 “묻지마 체포”와 체포된 자는 시민권 유무를 조사하지 않고 무조건 강제 이송이 계속되었다. 시카고는 이때에도 중심역할을 한다.

시카고 트리뷴 보도에 의하면, 1954년 말이 되면 미드웨이 비행장에서 하루에 3번씩 멕시칸을 가득 실은 비행기가 이륙하였다고 한다. 또 연방정부는 '시카고는 wetback airlift의 본거지’ 라 추켜 세우기도 했다. 이렇게 강제 이송된 멕시칸들은 멕시코 내륙에서 살인적인 더위로 죽은 숫자가 적지 않아 Operation Wetback은 지금까지도 악명(?)이 높은 강제추방 정책의 대명사로 자리매김한다.

이때에 강제 추방된 멕시칸은 얼마나 될까? 정부기록에는 최고 130만 명이라고 하는데, Bracero 프로그램이 계속되는 상황이어서, 미국에 재입국한 숫자도 만만치 않고, 미국 시민권자도 많아서, 실제 영구 추방된 숫자는 아무도 모른다. 최대 30만 이라는 기록을 얼핏 보기는 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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