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난민…세기적 딜레마

생사의 기로서 떠도는 피난민
전쟁이나 정변, 침략 등 국난을 당하면 피난민이 발생한다. 우리도 경험한 비극이다. 이조시대는 왕도 굴욕적인 피난을 갔다. 14대 선조, 15대 광해군, 16대 인조 대왕이 그들이다. 선조는 임진왜란 때 개성으로 피난 갔다 나중에 평양과 의주까지 줄행랑을 놓았다. 광해군은 강화도와 제주도로 유배됐으며, 인조는 ‘이괄의 난’ 때 공주로, 병자호란 때는 남한산성으로 또 피난을 했을 정도로 치욕의 역사를 썼다. 일제 36년 동안 나라를 잃은 우리민족은 만주로 중국으로, 연해주로 남부여대하여 고국을 등졌다. 연해주 난민들은 스탈린에 의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해 초근목피로 연명하면서 황무지를 옥토로 만드는 고역을 치르기도 했다. 1950년 북한 김일성의 남침으로 수많은 피난민이 생겼다. 그 비참함을 경험한 우리들은 최근 시리아 난민의 처지에 동병상련의 아픔을 공유하게 된다.

난민이라고 하면, 1975년 월남 패망 전 후인 1973년부터 1988년 사이 1백6만 여명의 월남인들이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망망대해의 땟목에 가족의 운명을 맡기고 국제미아로 떠있던 ‘보트 피플’을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망명지인 미국과 캐나다, 호주를 향해 주로 월남의 ‘다낭’항에서 많이 떠났는데, 도중에 50만 명이 바다에 빠져 숨졌다. 한국의 젊은이들이 30만 명이나 참전했고 5천 명이 전사한 베트남 전쟁의 부산물인 ‘보트 피플’도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당시 인도차이나 난민(망명)은 미국에 82만 명, 호주 10만 7천 명, 프랑스 9만6천 명, 독일 4만 명, 캐나다 3만 명, 영국 2만 명, 일본 1만 명이 분산되어 정착했다. 한국의 피난민은 세상이 좋아지면, 고향으로 다시 돌아 가겠다는 희망을 가졌으나, 보트 피플이나 시리아 난민은 환난을 피해 타국 땅에서 영주하기 위한 탈출이기에 더 절실하고 처절했다.

시리아 난민은 ‘아랍의 봄’이 화근
유럽이 지금 물밀듯이 몰려오는 시리아 난민 때문에 큰 몸살을 앓고 있다. 시리아는 5년째 계속되고 있는 내전에다 아사드의 장기 폭정이 나라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이번 시리아 민족의 대이동이 있기 이전, 800만이 삶의 터전을 잃고 기아와 압박 속에서 국내 피난생활을 하고 있었다. 또 400만 명이 이웃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라크, 이집트 등 5개국에
이미 난민으로 들어가 있다. 그런데 자기들도 먹고 살기 힘든 나라에 얹혀 살기도 마땅치 않아, 이들은 결국 목선을 타고 에게 해를 건너 육로로 걸어서 북으로 북으로 유럽행 죽음의 행군을 강행하고 있다. 냉동용 트럭을 타고 가다 70여 명이 죽기도 했다. 3살짜리 에이란 쿠르디라는 꼬마가 터키 해변에서 모래에 얼굴을 파묻은 채 시신으로 발견된 사진 한 장이 인류의 양심을 일깨웠다. 그 동안 시리아 내전으로 인구의 절반인 1,200만 명이 정든 땅 고향을 버리고 탈출, 난민으로 곳곳을 떠돌고 있다. 암울한 미래에 희망이 없는 유랑민들은 풍찬노숙하며 유엔 난민구호기구나 자원봉사자들 도움으로 하루하루를 연명하며 지낸다. 일부 난민들은 최후 수단으로 구걸, 매춘, 아동노동 등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다. 러시아와 이란이 아사드를 지원하고 미국과 프랑스가 ‘자유 시리아’ 쪽을 지원하는 시리아 내전은 종식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가까운 장래에 난민이 집으로 귀환할 가능성은 더 더욱 희박한 실정이다. 아사드의 장기집권도 이스람국가(IS)의 출현도 결국은 거미줄처럼 얽힌 열강의 이해관계가 빚은 추악한 산물이다.

2011년 아프리카와 중동에 몰아 닥친 민주화 열풍은 튀니지, 에멘, 리비아, 이집트 등지에서 장기 독재를 몰아냈다. 시리아에서도 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리비아의 가다피는 피살되고 이집트 무바라크는 축출됐다. 그러나 북한과 더불어 반세기 동안 부자세습의 포악한 시리아의 아사드 정권은 무너지기는 커녕 오히려 더 견고해져 잔인하게 인권을 억압하고 시위자들을 구속하고 고문했다. 2013년 아사드 정권은 민간인을 상대로 화학무기를 사용한 것이 확인되었으나,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말로만 응대하고 행동으로 아사드를 제재하지 않았다. 그 때 만약 미국이 시리아를 폭격했다면 오늘의 역사는 달라졌을 것이다. 따라서 시리아 난민의 진상은 내전에다 아사드 독재에 신음하던 백성들이 저항 대신 자유를 찾아 탈출하는 망명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오바마의 실책이 제2차 세계대전 이래 최악의 엄청난 난민사태를 초래할 줄은 아무도 내다보지 못했다.

메르켈 독일총리의 선제적 리더십
동독출신 여걸로 2005년부터 현재까지 독일 총리를 맡고있는 메르켈은, 독일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비스마르크, 2차대전 후 1949년 독일연방공화국 기초를 다지고 프랑스의 드골과 함께 쌍두마차로 활약한 콘라드 아데나워,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한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동방정책’으로 동서독을 통일 시킨 빌리 브란트 이래 독일의 뛰어난 총리로 평가 받고 있다.

그리스 사태로 빚어진 유럽의 금융위기를 극복한 그는, 이번엔 시리아 난민 문제 처리에 있어 선제적인 리더십을 보여 다시 한번 세상을 놀라게 하고 감동을 안겨 주었다. 그는 유럽연합을 뿌리째 흔드는 시리아 난민 위기를 맞아 동유럽 과는 달리, 난민수용에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밀려드는 난민 때문에 유럽이 비상사태에 직면하자, 지난 월말 그는 기자회견을 갖고 자신의 정치철학과 향후 난민 대처방안에 대해 소신을 밝혔다. “난민문제 실패하면 유럽은 더는 없다. 도착하는 국가와 상관 없이 독일에 체류하기를 원하는 경우 모든 난민을 수용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이는 유럽연합(EU) 국가로 들어오려는 모든 난민은 처음 발을 들여놓은 국가에서 망명신청을 해야 한다는 ‘더블린 규약’을 깨는 파격적인 발언이다. 그리고 “유럽은 역사적으로 도전을 맞이했다. 난민의 적절한 분배를 위해 모든 회원국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주말 독일 뮌헨에는 1만 1천명의 난민이 도착했다. 독일 사람들은 먹을거리와 장난감, 휴대전화 심(SIM) 카드 등을 들고나와 난민을 반겼다. 독일 입국에 성공한 난민 가운데는 마치 개선장군처럼 손을 들어 환호하는 사람도 눈에 띄었다. 나는 메르켈의 통큰 정치에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난민은 기본적으로 인도주의 차원
EU의 부자 나라는 난민을 분산 수용하자는데 찬성하고, 동유럽의 어려운 나라들은 난민 유입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헝가리 국경에서는 철조망을 설치하고 경찰이 난민들과 충돌해 최루가스와 물대포를 쏘는 등 긴장이 고조 되고 있다. 이와 같이 유럽 국가들이 난민수용 방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는 가운데, 22일에는 EU 각료회의, 23일에는 EU 정상회의가 잇따라 열렸다. 그 동안 유럽연합 국가들간에는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셴겐 조약’ 이 체결되어있기 때문에 국경통제는 또 다른 논란을 초래하고 있다.

슬로바키아는 일부 기독교인들만 받아들이겠다는 태도다.
나는 난민사태는 국경, 종교, 인종, 신분을 초월해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메르켈 독일 수상이 한 말 “난민사태는 인간이 인간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차원에서 해법을 찾아야 할 기본적 인도주의 문제다”라는 생각에 공감한다. 남미 베네수엘라가 난민 2만 명을 받겠다고 한다. 미국도 2만 명을 받겠다고 약속했다. 현재 미국을 방문 중인 프란치스코 교황도 유럽 내 5만 개 교구에서 난민을 수용하라고 호소했다. 인류의 공동선은 70년 80년 당시 월남의 ‘보트 피플’을 건져낸 전례가 있다.

시리아 문제는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의 공동 과제다. 우선 미국을 비롯한 선진 자유국가들은 시리아 난민사태의 원흉인 독재자 아사드와 IS를 상대로 결연히 싸워야 한다. 이들을 돕는 러시아는 비겁한 역사의 배신자다. 우리 한민족도 한 때, 전쟁과 폭정을 치렀고 난민으로서 고통을 겪은 경험을 했다. 인류의 양심과 뜨거운 가슴을 지닌 수많은 ‘메르켈’이, 오늘도 기아와 절망 속에서 버림받고 정처없이 유럽 땅을 헤매는 불쌍한 사람들에게 안식과 희망을 주리라고 나는 확신한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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