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한과 폭설 속에 맞은 새해


‘철마’처럼 밤새도록 달려온 히터 소리에 잠을 깬다. 엄청나게 많이 쏟아진 눈과 한파가 무섭다. 이럴 때, 전기가 나가면 히터가 꺼질 터인데, 그 추위를 어떻게 감당하지? 하는 기우에서 겁이 난다는 뜻이다. 실제로 10년 전 현재 사는 집으로 이사온 후, 동네 전체가 폭설로 인한 정전 때문에 히터가 나가버려, 2번 이나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한 번은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아예 호텔로 피신을 했고, 또 한 번은 세 식구가 담요를 뒤집어 쓰고 화이어 플레이스 곁에서 이튿날 저녁 전기가 들어 올 때까지 버틴 적이 있다. 드디어 전기가 들어오고, 이어서 히터가 있는 지하실에서 ‘피식 피식’ 하는 소리와 함께 히터가 자동적으로 켜졌다. 아 아, 불과 몇 년 전 그때의 해방감과 기쁨이라니, 우리는 서로 껴안고 ‘만세’를 불렀다.

평생에 한두번 겪는 추위

그때 추위는 이번 추위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이번 정초 우리 동네에 3일간 내린 눈은 약 20인치, 수은주는 4반 세기 만에 기록을 깼다. 패밀리 룸 집 밖에 온도계가 걸려 있는데, 6일 새벽 화씨 -20도(섭씨 약 -3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중강진은 저리 가라, 다.

이쯤 되면 평생에 한 두번 겪는 경험이다. 시장과 주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가능한 한 밖에 나가지 말고 집에 머물라고 요청했다. 학교는 이틀간 휴교에 들어갔다. 하루 6천 대의 비행기가 취소되었으며 시카고 오헤어 공항에만 1,600대의 비행기가 뜨지 못했다. 기차도 버스도 제대로 운행되지 않았다. 교통 대란을 빚은 것이다.

1979년 1월 13일 시카고에 20.3인치의 기록적인 폭설이 쏟아졌다. 당시 마이클 빌랜딕(Michael Bilandic) 시장이 제설작업을 잘 못해, 길거리가 파킹장이 되고, 10일간 쓰레기를 치지 않는 등 시민들이 큰 불편을 겪었다. 그리고 한달 뒤 시장선거가 있었다. 시민들은 빌랜딕을 심판하고, 무명의 제인 번(Jane Byrne) 이라는 시카고 사상 최초의 여성 시장을 뽑았다.

이번에 임마누엘 시카고 시장은 기자회견을 하면서, 동계 비상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8월부터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폭설에 얽힌 시카고 정치의 두 단면이 너무 대조적이다.

정월 초하루 날, 한인회 주최로 미시간 호수에서 해맞이 행사가 있었다. 이를 취재하기 위해 새벽 길 레익 쿡 로드를 달리는데, 눈길을 제대로 치우지 않아 운전하기가 무척 힘들었다. 눈은 계속 쏟아지는데 진퇴양난이었다. 나온 것을 후회했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인데, 참석자 중 한 사람은 꼭두새벽 어두운데 미시간 호수에 나간다니까, 부인이 미쳤느냐고 못 나가게 싸움까지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드라이브를 하면서 가만히 생각하니까, 해돋이 행사를 할 날씨가 아니다. 위험하지만 차를 길가에 세워 놓고 서정일 한인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행사가 취소되었겠지, 하는 심정으로, 행사를 강행하는 겁니까? 물었더니, 빨리 오세요.

우리는 5시 30분 부터 모였습니다. 하는 것이 아닌 가.

94하이웨이에 들어서니 길을 잘 치워놓았다. 포스터와 레익쇼어를 가기 위해 시내로 들어섰더니, 눈을 너무 잘 치워 놓아 깜짝 놀랐다. 행사장에서 신나는 풍물놀이와 자원봉사자들이 끓인 어묵국을 먹고 추위를 달랜 후, 나는 한인회장을 비롯해 동료 기자들과 사진도 찍고 추위를 즐겼다(!). 사진의 의미는 역사적인 것이다. 훗날 칼바람 불던 ‘미시간 호반의 해 없는 해맞이 행사’는 잊지 못할 값진 추억이 될 것이다. 코와 폐 깊숙이 스며드는 찬바람이 숨쉬기 조차 힘든 순간에, 우리 모두의 염원이 담긴 ‘통일의 노래’ 합창은, 미시간을 넘어 태평양을 건너 봄이 와도 풀리지 않는 동토의 북녁 땅에 자유와 해방을 불어넣은 온기로 역사의 한 조각이 되리라.

기록적인 폭설과 혹한 속에 용감하고 서로 격려하는 사람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행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인들에게 일년 중 제일 우울한 날은 1월 6일이라고 한다. 새해 첫 달 두 주째가 되면,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 쇼핑, 신나는 파티와 함께 들떴던 마음도 식어 버리고 대망을 안고 맞이한 새해 결심도 대부분 일찌감치 포기한 상태다. 펄펄 날리는 눈도 일상에 큰 불편을 안겨주기 때문에 낭만이 아니라 악마가 되었다. 어찌 우울하지 않겠는가?

시카고 트리뷴 일요판은, 정초 불어 닥친 폭설과 한파와 관련, ‘겨울 고통의 미덕’ [The virtue of (Winter) suffering] 이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내가 왜 여기에 살지? 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당신이 여기 사는 이유는 바로 이런 변화무쌍한 기후때문이다.” Why do I live here? Good question, and the answer is : This kind of weather is why you live here.]라고 갈파했다.

적극적인 겨울의 미학을

우리에겐 이와같은 적극적인 사고가 필요하다. 이럴 때 일수록 스키도 타러 가고, 심포니도 들으러 가고, 좋은 영화도 보러 나가고, 친구들과 저녁도 하고…등 등, 겨울의 미학을 익히자고 제안하는 바이다.

아침에 개를 끌고 나와 산보하는 앞집 잭 아저씨에게 “Very Cold!” 라고 했더니, 웃지도 않고 “Beautiful Day!”라고 응수한다.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남은 겨울을 맞이해야겠다. 시인은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읊었는데, 다음 달 4일이 입춘이다. 6일 개막되는 러시아 소치의 동계올림픽을 즐기다 보면 이번 겨울은 훌쩍 지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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