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아픔, 그 통한의 1 주년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다음 달이면 벌써 1년이 된다. 다시 기억조차 하고 싶지않은 악몽 같은 일이다. 4월16일, 그 날은 한많은 한민족에게 또 하나의 한을 안겨준 엄청난 역사적 비극이다. 이 배는 수학여행을 가는 안산 단원고 2학년 학생324명이 승객 중제일 많이 탑승했고, 그 중 259명이 사망 했다. 인천에서 출발해 제주로 가던 유병언 소유 청해진 해운의 여객선이다. 배가 목적지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전라남도 진도군 병풍도 앞 인근 해상에서 아직까지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이유로 침몰했다. 학생들을 포함해서 탑승객 476명 가운데 172 명만이 구조됐고, 304 명이 사망 실종한 대형 해난 사고다. 그러나, 인명을 구조하는 초동 작전은 물론, 사고를 대처하고 수습하는 과정에서 국민과 정부가 보여준 한심한 작태는 수치스럽다. 경제대국이라는 대한민국의 위상은 선진국 수준과 비교해 너무나 거리가 먼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것이다. 일본의 경우 해난사고는 90%이상을 구조한다고 한다. 미국에 911이 일어났을 때 불타는 무역센터 건물은 아비규환이었다. 고층 건물 안의 사람들은 모두가 살기 위해 아래로 내려오고 있는 판에 뉴욕 시장의 진두지휘 하에 소방관들은 인명 구조를 위해 위로 위로 올라갔다. 이렇게 해서 장엄하게 희생된 소방관이 500명이나 된다. 선진국 미국의 위대함은 바로 이런데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도 후손들에게 교과서처럼 가르쳐야 할 덕목이다.

인명존중 보다 금전만능 주의

현재 세월호 유가족들의 생각은 진실규명과 아직도 4명이 갇혀있는 세월호 인양을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 정부 여당은 차일피일 시간을 끌면서 성의를 내지 않고 있다. 인양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 때문인 것 같다.

세월호 1주년에 즈음하여 지금도 안타까운 점은 인간의 생명보다 치부에 눈이 먼 선주의 금전만능주의다. 청해진 항만회사는 일본으로 부터 고물 배를 사들여 개조했다. 거기에 화물을 초과해서 선적했기 때문에 화를 자초했다. 또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어떻게 선장이라는 작자가 배를 통제하고 구조작업을 하지 않고, 승객들에게는 가만히 자리를 지키고 있으라고 해놓고, 자기는 유니폼도 안 입고 팬티 바람에 혼자만 유유히 도망을 친단 말인가? 해경은 그를 구조할 것이 아니라, 다시 배로 돌려보내 구조활동을 하게 했어야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구조활동은 배가 침몰된 지 3일부터 본격화 됐는데, 충분이 구조할 수 있는 골든타임 9시간 동안 있어야 할 관게자들은 어디에 가 있었는지? 해경을 비롯해 정부는 무엇을 했는지 묻고 싶다. 이런 판에 경기도 교육청은 사고 직후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는 틀린 공지로 공분을 샀다. 더구나 해경은 어선이나 해군의 도움을 거절했다. 또 박 대통령이 애들을 죽였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에게는 할 말이 없으나, 콘트롤 타워도 없이 우왕좌왕 하던 당국의 무능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안개가 심하게 끼어서 다른 선박들은 취항을 안 했다. 올챙이 대리 항해사의 선박 진행방향 급선회, 엉뚱한 교신 등도 침몰의 이유로 꼽는다. 하지만, 이제 와서 후회하고 원망해야 죽은 사람들이 살아 돌아올 수도 없지만, 사고 이전부터 있어온 총체적 부실과 구조적 병폐를 치유하고 국민이 안전하게 살수 있는 토양 조성이 앞으로 해야 할 급선무라 하겠다.

해외서 유가족과 만남의 시간

나는 작년 이 맘때 ‘세월호 참사 그 아픔과 분노’라는 칼럼을 쓰면서 “우리 민족은 항상 위기에 강했다. 우리 해외동포들은 대한민국이 이 일로 인해 분열되지 말고 하나가 되어 앞으로 전진하도록 힘껏 돕자”라고 호소했다. 우려하던 점이 사실로 드러나 무척 슬픈 생각이 든다. 유가족들이 국가도 아닌 정부를 비난했다고 색깔을 씌워 노골적으로 미워하는 것이 눈에 보인다. 서럽고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하기 위해 세월호 유족 대표들이 일본을 비롯, 미주 순방 팀 중 재욱이 어머니 홍명미 씨, 윤민이 어머니 박혜영씨가 시카고를 방문했다. ‘세월호를 잊지 않는 시카고 사람들의 모임’이 주최한 ‘만남’의 시간에는 눈물의 동포애로 서로 하나가 되어 사랑을 실천했다. 일부 우파단체의 돌출행위가 경찰 출두로 분위기를 흐리게 하기는 했지만, 수준 높고 절절한 단원고 어머니들의 호소는 분위기를 숙연하게 했다. 강연이 끝난 후 우뢰와 같은 기립박수와 가족과의 위로의 포옹을 하기 위한 긴 행렬은 감동적이었다. 어떤 신문은 떳떳지 못하다. 설마 권력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겠지만, 종북좌파 강연도 아닌 민족의 쓰라림을 위로하는 모임의 뉴스밸류를 동창회 단신 수준 정도로 축소 보도하다니 이것이 ‘정론’인가?

세월호 비극을 반전의 계기로

팽목항, 돌아오지 않는 ‘금요일’을 기다리며 ‘엄마의 바다’를 지키던 가냘픈 유가족 주부들은 왜? 이역만리 미국까지 와서 강연회를 열었는가? 세월호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피해보상 이나 배상금 문제 등 아직은 그 쪽에 신경도 쓰지 못하고 온 가족이 ‘미친 사람’처럼 세월호에 매달려 사는데, 일부 언론을 비롯해 유가족을 음해하는 거짓이 횡행, 이를 바르게 해명하고도 싶었다. 그들은 철저한 진상규명과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노력에 해외동포들도 힘을 모아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 미국에 왔을 뿐이다.

존경하는 어느 신부님은 “세월호는 우리 역사에서 무엇으로 남게 될까”에 대해 말했다. “이것은 점으로 보면 비극이지만 선으로 보면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사회와 역사의 흐름을 바꾸는 ‘터닝 포인트’ 말이다.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사소한 일을 시작하자”고 말했다. 바로 그것이다. 작은 일이란 양심과 역사의식을 갖자. 거짓을 미워하고 진실을 따르자. 사랑하는 이웃과 연민의 정(Compassion)을 나누자,는 것이다. 이 메시지가 세월호 1주기를 앞두고 미국을 찾아온 ‘어머니’를 가슴으로 껴 안으며 내가 느낀 생각이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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