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정치가 이부영의 정계은퇴

이부영씨가 갑자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감옥을 제집처럼 드나들던 한국의 넬슨 만델라, 포악한 군부독재에 맞서 치열하게 싸운 정의의 투사, 지난 시대 정치개혁을 외치는 차세대 야권 주자, 합리적인 논리로 상대방을 설득하는 정치적 귀재, 함께 사는 모든 사람에게 화해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 정치 개혁가, 민주화, 민족과 통일의 선구자인 이부영씨가 “정치인 이부영이 그 멍에를 내려놓고 떠납니다”며 전격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이부영은 이미 보도된 대로 지난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원혜영의원, 진선미 의원과 함께 마이크 앞에 나와서서 기자회견을 통해 비장한 심정으로 정계은퇴 선언문을 낭독했다. 한국정치사에 끼친 영향이 심대하다고 생각해 여기 전문을 다시 수록한다.

“정치인 멍에 내려놓고” 떠나
“정치인 이부영이 그 멍에를 내려놓고 떠납니다. 좀 더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었으련만 능력과 식견이 모자라 여기서 그쳐야 하겠습니다.
그 동안 지지와 성원을 보내주셨던 서울 강동구 갑 유권자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또한 저의 정치인생에 여러모로 도움주시고 이끌어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고마운 뜻을 전합니다. 특히 언론인 여러분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아울러 저의 어리석음과 부족함 때문에 피해를 입었거나 마음의 상처를 입은 분들이 계시다면 이 자리를 빌어서 용서를 빕니다. 마지막으로 순탄치 못한 저의 인생살이 때문에 아내와 자식들을 힘들게 했던 것에 대해서도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2.8 전당대회를 성공리에 끝내고 단결과 도약을 위해 새롭게 전진하는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를 비롯한 당원 동지 여러분들에게도 행운과 승리가 함께 해주기를 온 정성을 다해 빌겠습니다.

정치를 떠나더라도 이 나라가 사람과 자연이 함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작은 힘이나마 보태면서 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격동의 시대 파란만장 인생
이부영 개인사의 비극은 1968년 가을 그가 당시 한국의 뉴욕타임스 동아일보에 수습기자가 되면서 시작됐다. 그의 멍에는 이른바 박정희 정권의 언론자유 탄압 투쟁에 뛰어들어 신문사에서 해직되고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2년 넘게 옥고를 치르면서 무거워진다. 79년 10-26 직후에 비상계엄 해제를 요구하다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다시 감옥에 갇혔다. 그 후로도 고난은 이어진다. 84년 민민협(민주민중운동협의회) 공동대표, 85년 민통련(민주통일 민중운동연합) 상임위원장 등 재야의 최고 지도자로 활동하던 80년대 이부영은 늘 독재정권의 요시찰 인물이었다. 86년 5월엔 직선제 개헌 투쟁으로 투옥돼 6-29 선언 이후에도 감옥에 갇혀 있다가 88년 노태우 대통령 취임특사로 풀려났다. 그해 6월엔 전두환 이순자 구속요구로 또 다시 감옥살이를 했다.

감옥살이 끝나 제도권 정치 입문
자유의 몸이 된 그는 87년 양김이 대결한 대선과정에서 ‘김대중에 대한 비판적 지지자’와 ‘김영삼과 후보 단일화파’로 나뉘어진 재야 세력을 통합, 전국 민족민주연합 상임의장을 맡아 능력을 발휘한 후, 90년 3월 재야인사로 부터 제도권 정치에 들어갔다.

“밉든 곱든 정치가 나라 앞길을 좌우한다. 누군가는 정치의 세계에 뛰어들어 낙후된 정치를 바로잡고, 민주화의 소망을 이루어야 한다. 그렇다면 미력한 나의 힘을 그 길에 바치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이것이 정치권 입문을 결심했던 나의 생각이다. 우리는 이 역사적 과정을 지고나갈 새로운 전망과 각오를 지닌 정치주체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부영이 험난한 정계에 투신하면서 한 말이다.

민연추(민주연합 추진위원회) 집행위원장으로 재야의 정치세력화를 꾀하던 이부영은 91년 1월 ‘새 정치와 개혁을 위한 민주연합’ 의장에 취임했고, 한달 후 이기택이 이끌던 구 민주당에 입당, 부총재가됐다. 이부영은 당시 신민당 총재 김대중과 민주당 총재 이기택에게 “법적 대표를 따로 둔 공동대표제’라는 절묘한 절충안을 제시, 야권을 통합시켰다. 그리고 통합민주당의 최고위원에 당선됨으로써 차세대 주자로서의 바탕을 마련했다.

92년 이부영은 14대 총선에 강동 갑구에서 출마해 내리 3선 국회의원이 돼었다.
그 후 통합민주당은 김대중이 호남을 중심으로한 자기 지지세력을 이끌고 나와 새정치국민회의라는 명분 없는 파벌당을 만드는 바람에 이부영은 합류를 거부, 이기택과 비록 ‘꼬마 민주당’ 이지만 민주당을 지켰다. 97년 이부영은 지금 새누리당의 전신인 신한국당과, 조순 서울시장을 영입한 민주당의 합당으로 출범한 한나라당에 합류했다. 이번에 이부영은 정계은퇴 선언 후 가진 별도의 기자회견에서, 97년 왜 김대중이 아닌 이회창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대해서 “김대중-김종필의 DJP 연합보다 이회창-조순(민주당 총재)의 조합이 더 깨끗해보이더라”고 말했다. 또 한나라당에서 이회창 총재한테 실력과 능력을 인정 받아 원내 총무(대표) 까지 지낸 신분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하고 열린우리당으로 옮긴 이유에 대해서, “2000년 남북 6-15 공동선언에 찬성했더니, 한나라당에서 당을 떠나라고 하더라, 그래서 ‘떠나주마’ 라고 결심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2003년 김부겸, 김영춘 의원 등 4명과 한나라당을 탈당해 열린 우리당에 합세했다. 정가에서는 이들을 ‘독수리 5형제’로불렸다. 따라서 이부영이 철새 처럼 이당 저당을 전전했다는 비판은 사실이 아니다. 자신의 이념과 지조를 지키다 보니까 타의에 의해서 소속 정당이 바뀌었을 뿐이다.

‘정치는 로칼’ 4선 실패의 비운
옛날 미국의 국회의장을 역임한 민주당의 팁 오닐 하원의원은 “정치는 로칼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가는 지역구에서 낙선하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심하게 말하자면 별 볼일없는
‘건달’ 신세가 된다는 것이다.

이부영 의원은 지난 17대 총선에서 그가 강동구청장으로 키운 후배인 김충환 후보에게 고배를 마셨다. 탄핵 역풍으로 여론조사는 20% 이상 차이로 이부영의 일방적 당선을 확신했고, 김 후보는 스스로도 질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결과는 5,000표 차이로 정치의리를 배신한 김충환이 의외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이부영의 실패는 ‘거물’이라는 방심과,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김 후보의 철저한 네가티브 전략이 먹혀들었기 때문이다. 즉 이 후보는 당을 많이 옮긴 ‘철새 정치인’이라는 점과 “차떼기한 돈을 누가 먹었는가? 라는 구호로 한나라당의 부패를 이부영의 책임으로 돌리는데 주력하면서, 또 큰 교회의 유권자 표심을 끌어들였다는 것이 정치평론가의 해석이다.

이부영이 비록 원외에서 우리당 대표가 되고,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국가보안법 개정을 논의(우리당 강경파 때문에 좌절) 하는 등 활발한 정치활동을 했으나, 국가보안법 개정 좌절은 그의 정치 인생에서 가장 깊은 좌절과 아쉬움을 남겼다. 그는 17, 18, 19대 내리 3번을 강동에서 낙선했다. 그동안 그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시민단체에서 활동해 왔다.
개인적인 이야기라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나는 이부영과 자타가 공인하는 절친한 사이다. 내년은 20대 총선이 있는 해이다. 나는 그가 7전8기 또 도전해서 재기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부영은 “차기 총선 불출마는 2012년 낙선 때 이미 결심한 것이다. 노욕이나 노추라는 소리를 듣지 않고 물러 나는게 행운이 아닐까”라고 말했다. 나는 그의 비장한 정계은퇴 선언을 듣고 또 부끄러워졌다

민주화 시대적 사명 신명바쳐
옛날 군부독재시절, 서울에서 잠시 출소한 이부영과 만나면 소주잔을 기우리며 “이제 그만 감옥소에 가지마라, 왜 너만 도맡아서 역사의 스케이프 고트(희생양)가 되어야 하느냐?고 눈물의 호소를 했다. 그 때 이부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친구지만 순교자의 길을 걷고있는 봉황의 뜻을 참새가 어찌 알겠는가? 나는 그 때 바보 같은 질문을 많이 후회했다. 그 뒤에도 그는 또 감옥 속에 들어가 영하 5-6도의 냉장고 같은 옥사에서 내복, 스웨터, 모자, 장갑, 버선 등으로 중무장하고 한 시간이 아깝다고 책을 열심히 읽었다. 40 생일을 맞은 부인에게 “이것이 어찌 당신과 나만의 개인사 겠소, 미친 기운이 휩쓸고 간 자리에 남겨진 상처요, 파편들이겠지. 당신의 잔주름으로 얼룩진 얼굴을 쓸어 주고 싶구려, 흰 터럭 더 많아진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고 싶구려. 마치 우리시대의 미친 광기의 상처와 파편을 다시 주워 담아 새로운 천을 깁고 꿰매듯이 말이오”라는 편지를 보냈다. 연극인 김금지씨는 늘 밝은 웃음을 지닌 동안의 로맨티스트 이부영을 가르켜
‘이 시대의 맑은 시냇물’에 비유하기도 했고, “이 분이 처복도 있으시네”라고 쓴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사람과 자연이 함께하는 사회
나는 가끔 노무현 자리가 이부영의 자리인데, 반기문 자리가 이부영 자리인데, 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되돌아보니 정치가는 시대를 잘 타야하며, 정치적 욕심은 망상이요 남가일몽이라는 느낌을 요즈음 자주 갖는다.

이부영은 나의 대학동창, 같은 막사의 군대 전우, 어두운 시절 언론계 민주화 동지, 죽마고우 같은, 형제 같은, 만나면 다정한 나의 친구, 내년에 다시 출마해서 또 멍에를 지라는 나의 바람도 이제 완전히 접겠다. 내 친구가 오래오래 건강해서 지금도 13평 짜리 아파트에 살면서 고생밖에 시켜준 것이 없는 아내 손수향을 위해 헌신하기 바란다. 시카고에 이부영 후원회인 한길모임 친구들과 보타닉 가든도 관광하면서 살자. 이 생명 다바쳐 사랑한 우리 조국 대한민국이 당신 말대로 사람과 자연이 함께사는 좋은 사회가 되도록 함께 매진하자. ‘민주화’라는 거대한 시대적 사명 앞에 당신은 최선을 다 했으며, 진정한 정치가였다.

본보 주필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