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시장

“눈보라가 휘날리는 바람찬 흥남부두에/ 목을 놓아 불러 보았다 찾아를 보았다/ 금순아 어디로 가고 길을 잃고 헤매었더냐/ 피눈물을 흘리면서 일사 이후 나 홀로 왔다. 일가친척 없는 몸이 지금은 무엇을 하나/ 이내 몸은 국제시장 장사치기다/ 금순아 보고 싶구나 고향 꿈도 그리워진다/ 영도다리 난간 위에 초생달만 외로이 떴다. 철의 장막 모진 설움 받고서 살아들 간들/ 천지간에 너와 난데 변함 있으랴/ 금순아 굳세어다오 남북통일 그날이 오면/ 손을 잡고 울어보자 얼싸안고 춤도 추어보자.”

노래는 처량하면서도 비장하고 격동적이면서도 서글프다. 영화 ‘국제시장’ 거의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 덕수의 손녀가 깜찍하게 부른 단장의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의 가사이다.
고통과 비극은 흥남부두에서 시작되었고, 행복과 사랑은 국제시장에서 성취했다.

비극과 고통의 시작 흥남부두
지난주 나는 요즈음 화두인 ‘국제시장’을 보고왔다. 영화의 첫 장면은 1950년 크리스마스 날 눈보라 휘날리는 흥남부두에서 시작된다. 부두는 아수라장이었다. 수 만명의 피난민들이 자유를 찾아 미 군함을 타기위해 밧줄에 매달려 필사의 승선을 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그 아비규환의 엑소더스는 박진감에 실감이 나고 스케일이 커서 나는 영화 장면 속으로 금방 빠져들어갔다. 울다가 웃다가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면서 옆에 앉은 집사람 손을 잡았다 놓았다 하면서 영화를 감상했다.

덕수는 막내 여동생 막순이를 업고 메러디스 빅토리아호에 내려진 그물 사다리로 갑판을 향해 아버지의 뒤를 따라 기어오르다가 동생을 바다 속으로 떨어뜨린다. 12살 소년 덕수의 손에는 빨간 꽃망울과 나비 한 마리를 수놓은 동생의 소매 끝 찢어진 조각이 잡혔을 뿐이다. 이 천 조각은 훗날 이산가족 상봉의 단서가 된다. 갑판에서 아버지는 추락한 딸을 찾기위해 어린 큰아들에게 어머니와 동생들을 비장한 마음으로 맡기고 다시 하선한다. 떠나면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덕수에게 유언과도 같은 말을 남긴다. “아바이가 없으면 장남인 덕수 니가 가장이지 에이요?” “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가족이 먼저라하지 않았음매!” 라고.

눈물겨운 현봉학 고문의 애걸
아버지는 덕수를 꼭 껴안았다. 그리고 몸을 돌려 그물 사다리를 잡았다. 올라오는 사람들을 헤치며 아래로 내려갔다.
미군 철수 총책임자인 ‘패장’ 에드워드 알몬드 10군단장은 메러디스 빅토리아 갑판 위에서 흥남부두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말이 없기는 그 옆의 레너드라루 선장도 마찬가지였다. 그들 옆에는 장군의 부관 알렉산더 중위와 10군단 민간고문 현봉학이 서 있었다. 현봉학은 장군에게 계속 애걸했다. “여기서 우리가 그냥 떠나면 저 사람들은 중공군 공격에 몰살당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 불쌍한 국민들을 살려주십시요”

고달픈 삶의 터전 국제시장
덕수 가족을 남북 이산가족으로 만든 빅토리아호는 1만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사흘 후 거제도에 도착했다. 그리고 두 식구를 잃고 남하한 덕수네 식구는 고모(윤꼭분)가 먼저 내려와 장사를 하고 있는 부산 국제시장에 고달픈 삶의 터전을 마련하게된다. 당시 국제시장은 이북에서 피난민들이 대거 몰려와 흥남부두 못지 않았다. 혼란스러웠고 복잡했고 옹색했다. 미국의 구호품과 군용품이 유통되면서 국제시장은 부산뿐만 아니라 전국 상업기능의 중추 역할을 했다.

영화 국제시장은 가족이 생이별한 흥남부두, 피난 내려와 정착한 국제시장을 무대로 배고픔을 견디며, 악착같이 일하면서 가족을 위해 서라면 파독 광부나 베트남 군속 등 삶의 현장을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주인공 덕수를 통해 그려낸 명화다. 1950년 6.25 전쟁으로부터 1980년대 이산가족 찾기 등 한국현대사의 큰 사건을 개인사적으로 정교하게 다룬 작품이다. 한국 못지 않게 미국에서도 사상 초유의 흥행을 거둔 것으로 봐서 1,000만을 훨씬 넘는 관객을 동원할 것이 틀림 없다. 10만도 아니고 100만도 아니다, 1,000만이다. 국제시장의 윤제균 감독은 ‘해운대’에 이어 이번에 2번 째이며, 한국은 벌써 이런 규모의 영화를 11개나 만든 나라다. 자랑스럽고 대단한 저력이다.

‘포레스트 검프’와 비교하기도
국제시장은 시사회 때만 하더라도 냉전시대 굵직 굵직한 미국의 역사와 인물을 대하고 지나간 지적장애인 톰 행크스(Tom Hanks) 주연의 ‘포레스트 검프(Forest Gump) 영화와 비교됐다. 하지만 두 작품의 차이라면 톰 행크스가 부족하게 태어났으나 역사의 세파와 상관없이 한 개인으로서 존엄과 행복을 지켜낸 인간승리의 이야기라면, 국제시장은 격동의 역사 속에 시달리고 치어 살아온 덕수의 삶을 미화했다는 점이다. 특별히 가족을 위한 개인의 희생이 아름답고 당연하게 묘사돤 것이 덕수의 일생이다. 뉴욕타임스는 국제시장을 “역사적 사실에 감정적 요소를 가미한 한국의 대서사시”라고 평했다.

“모든 게 다 일어나지 않았으면 참 좋았을 낀데, 너희 세대가 겪지 않고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 아이가?”라는 덕수의 독백이 내 가슴에 뜨겁게 와 닿았다. 그리고 나는 생전에 고생 많이 하시다 돌아가신 우리 7남매의 아버지와 어머니, 덕수의 삶을 빼닮은 나의 형님이 떠오르면서 부끄럽게 많아 울었다.

겸손하고 참신한 윤제균 감독
나는 훌륭한 영화를 제작해 우리에게 자극과 반성의 계기를 제공하고, 무엇보다 가정의 가치를 일깨워주고 기쁨을 안겨준 젊은 감독 윤제균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낀다. 나는 한국의 영화감독 이라면 신상옥과 홍성기, 더 나아가서 임택권, 이장호 정도를 손꼽는 구시대 사람이지만, 우선 윤제균 감독은 46세의 젊은 영화 감독이다. 젊은 패기와 함께 참신한 인상을 받았다. 만드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해서 대박을 쳤지만 사람이 겸손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평소 윤제균 감독의 존재 조차 모를 만큼 이 방면에 무식한 내가 보기에도 그는 천재 같다. 하지만 그의 대답은 “1,000만 관객은 천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심’이 통해야 가능한 것이다”라고 단호하다. ‘흥행’보다 ‘가치’에 더 중점을 두겠다는 그의 신념이 믿음직스럽다. 장래가 보이고 인간적으로 매력이 가는 감독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대작에 이즘과 정치성을 배제한 점에도 나는 동의한다. 일부 비평가는 부마항쟁, 유신체제,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한 언급이 없다고 “우파선전 영화다. 산업화 세대에 대한 미화다”라고 깎아내리기도 한다. 이런 반론에 대해 내가 반론을 제기한다면 “서독을 방문해 ‘광부아닌 광부들’과 파독 간호사를 직접 찾아가 그들을 껴안고 함께 통곡하면서 외로운 이국 땅에서 고생하는 대한의 아들 딸을 진심으로 위로한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모습이 왜? 빠졌느냐고 나는 묻고 싶다. 요즈음의 ‘미생세대’도 국제시장 세대 못지않게 고달프다는 행복한 고민에도 찬성할 수 없다. 비교할 것을 비교해야지, GDP 80달러 시대와 3만 달러시대의 아픔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느냐 말이다. 윤 감독은 말한다. “나는 옳고 당신은 틀렸다는 생각을 이제는 버려야한다” 그것이 우리가 지향해야할 민주주의이며 통일을 대비한 자세라고 나는 생각한다.

아버지세대 치열한 삶을 헌사
평소 민주사회의 소통을 강조한 윤제균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치열한 삶을 산 아버지 세대에 대한 헌사였다”고 결론을 지었다.
그래서 영화의 영어명은 ‘Ode to my father’다. 즉, ‘아버지에 대한 송사’라는 의미다. 윤제균 감독의 건승과 다음 작품을 기대한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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