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가 만사다

오늘의 한국정치를 논하자면, 그것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을 이야기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의 인기가 80%로 치솟든지 30%로 바닥을 치든지 박 대통령이 누리고 있는 권력은 막강하고 그의 리더십은 무척 권위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박 대통령도 요즈음 심기가 편한 것 같지가 않다. 최근 통일준비위원회 협의를 마친 뒤 참석자들과 오찬을 하면서 “성경에도 있듯이 사람에게는 항상 고난이 많다. 세상 마치는 날이 고민 끝나는 날이다”라고 말했다. 참석자들은 이 말을 전하면서 정윤회 문건 등으로 어지러운 대통령의 심경이 녹아있는 발언 같다고 전했다.

권력과 언론의 치열한 싸움

김영삼 전 대통령이 한 말 중에 늘 상기되는 것이 2가지가 있다. “인사는 만사다” 라는 것과, “모든 자유를 자유케하는 것이 언론자유다”라는 것이다.

한국 정치사의 유행어가 되어버린 ‘찌라시’ 파동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극우파 논객인 조갑제는 ‘국정 농단’이 아닌 ‘언론 농단’이라고 진단했다.

문건사건과 비선라인의 권력암투가 국정농단 이든 언론농단이든 간에 그 밑바닥에는 박 대통령의 폐쇄적이며 편파적인 인사문제가 깔려 있다는 것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밀실 총리와 장관후보들, 윤창중과 문창극으로 상징되는 인사 실패가 결국은 오늘의 정치현실을 초래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 한국 정가에 소용돌이 치고 있는 ‘정윤회 문건’ 사건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금년 들어 3월에 주간지 시사저널이 보도하면서 추측이 난무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문서 유출 사실을 이미 4월에 알았다. 그럴 때마다 청와대는 이를 잘 덮었다. 지난 6월 박지만 쪽 사람인 조응천 전 청와대 비서관이 유출 문건을 ‘문고리 3인방’ 중 한 명에게 전달했다. 7월에도 알았다. 그때도 청와대는 유야무야로 처리했다. 기무사등 군 요직과 국가정보원 국장급 인사문제에 비선 라인이 개입했다는 설은 작년부터 소문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세계일보가 터뜨린 ‘정윤회 문건’은 처음부터 심상치 않았다. 지난 8개월 동안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박 대통령과 김기춘 비서실장은 무엇을 했는지 답답하다. 세계일보가 문건을 보도한 후, 고작 나온 반응은 “찌라시에 나온 풍문을 모은 글이다” “강력한 법정 대응을 취하겠다”는 안이한 처방이 고작이었으니 말이다. 청와대는 그 동안 내부감찰로 권력암투 논란을 초래했고, 비서들끼리 편을 갈라 진흙탕 싸움에 빠지게 했다. 위기 탈출을 위한 대처과정은 의문투성이였고, 한심하게도 VIP 눈치만 보며 바른말 하는 사람 하나 보지 못했다. 회의 때마다 참모들은 열심히 노트에 받아 적기만 하면 된다.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다. 요즈음 진보신문보다도 보수언론이 현 정부를 더 거세게 흔들고 있다. 평소 박 대통령 지지층 조차 서서히 등을 돌리고 있다. 그를 지지하는 여론이 사상 최초로 40%대 이하로 떨어졌다.

박 대통령과 조현아 부사장

일부 언론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과 비슷하다고 비꼬았다. 불경스럽게도 일개 기업 부사장과 한 나라의 ‘국가 원수’를 동렬에 올려놓고 비하하는 글을 실었다. 제목은 “조현아 박근혜 비슷하지 않다”라고 하면서, 내용은 유사점이 없지 않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즉 “절대 권력, 절대 복종 강요, 윗사람 보호에 급급, 과거로 후진, 아버지의 후광, ‘은총’ 독점하려는 패들끼리 드잡이, 주인까지 뛰어들어 진흙탕 싸움, 사후 뒷수습 엉망”을 꼬집었고, “비선 세력이 발호하기 좋은 토양을 마련해 줘 권력을 스스로 희화하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바라기는 대한민국이나 대한항공은 ‘오너’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제왕적 의사 결정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국민과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주력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도 동생 만나고 살아야

과거 박근혜 의원시절 비서실장으로, 대통령 비선라인의 측근인 정윤회가 검찰에 출두했다. 대통령과 가까이 한지 오래됐다는 정윤회에 이어 동생이기 때문에 청와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는 ‘비운의 황태자’ 박지만도 검찰에 출두했다. 두 사람의 대질 신문은 없었으나, 대통령 동생의 검찰 출두는 솔직히 볼썽 사납다. 이것은 나만의 느낌이 아닌 국민 일반의 감정이었을 것이다. 친인척 관리를 철저히 하기 위해 동생을 청와대 근처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는 박 대통령의 태도만해도 그렇다.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얼씬도 못하게 했더니, 세상이 그를 가만두었던가?”

인간사에서 우리는 자주 수단과 방법의 독단으로 말미암아 혼란을 겪는다. 나는 감히 정치는 수단이고 가족은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일찍이 부모 두 분을 비명횡사로 잃고 홀홀 단신의 여성 대통령이, 한시적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남동생마저 만나지 않고 독하게 산다는 것은 국민이 원하는 바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이 결벽하고 그의 애국심은 믿어 의심치 않지만, ‘아시아적 가치’라는 철학적인 견지에서도 이는 정상적이거나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이 땅에 다시는 나와 같은 불행한 군인이 없도록 합시다” 일찍이 박정희 대통령이 군을 퇴역하면서 지포리에서 한 연설이다. 그는 평소 “성경을 읽기 위해 양 촛대를 훔치는 일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도 갈파했다. 목적과 수단의 정당성을 강조한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청와대는 집안 일을 검찰에 떠넘기지 말고 스스로 정리했어야 하는데, 이제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사태를 가래로도 막기 힘든 지경으로 빠뜨렸다. 비선 국정 논란이 감찰문건 논란으로 번지더니 의문의 경찰 자살로 비화되고 있다. 우려스럽게도 사건이 자꾸만 커져간다. 순진하고 마음 약한 말단 직원이 엄청난 회오리 바람에 휩싸여 억울하게 스캐이프 고트(희생양)가 된 것 같아 마음 아프다.

문건은 찌라시.유출은 국기문란?

이번에 청와대 유출문건 수사와 관련, 검찰은 곧 결과를 발표할 것이라고 한다. 문건은 찌라시라면서 유출은 국기문란으로 엄중히 다루겠다는 앞뒤가 맞지 않는 대통령의 말이 어쩌면 검찰 수사의 가이드라인일지도 모른다. 국민은 문건의 진위여부나 누가 유출했느냐? 에는 큰 관심이 없다. 이 사건의 본질인 정윤회와 박지만의 권력 암투 내역, 비선조직의 인사개입과 국정농단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것이 만약 검찰 수사에 의해서 밝혀지지 않으면 특검 절차를 거쳐서라도 반드시 규명해야 한다.

본보 주필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