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에 시심을 뿌리고 간 고은 시인

나는 연단에 선 고은 시인의 첫 마디가 무엇일까 궁금했다.
“우리는 이 아름다운 방에 앉아 있다.” 이런 시 한편이라도 쓰고 싶다. 프랑스, 폴란드의 어느 유서 깊은 극장처럼 가슴 넉넉하고 역사적인 방 많지 않다. 우리는 이 시 낭송회가 끝나면 나가고 싶지 않아도 이 방을 나가야 한다.그래서 미리부터 슬퍼진다”고 말했다.

이 방은 시카고 도서관 안의 신디 프리츠커 강연장을 말한다. 다운타운 스테이트 길에 위치한 헤럴드 워싱턴 도서관의 이 방에서 300여 명 쯤이 모인 가운데 고은 시 낭송회가 열렸다. 참가자 대부분은 미국인이었다.

워싱턴 도서관은 대리석 건물이 육중하다. 강연장은 장중함과 고색창연한 느낌을 준다. 가을에 시카고를 찾아온 고은 시인의 인사말은 계속된다.
“동양에서는 친밀한 벗이라면 소리를 안다. 친구는 소리 잘 아는 것, 우정은 과거가 없다. 우정은 미래를 꿈꾼다. 내일의 우정을 위해 내 소리를 내겠다. 한 줄 짜리 시도 있고, 긴 서사시가 있다. 유라시아 몽고에서 하룻밤 잤다. 밤 내내 서사시 쓰고 새벽에 끝나는 시도 있었다. 긴 시 끝나고 술마신다.”

'만인보'는 한국사 인물 대사전

시인 고은 선생이 부인 이상화 교수와 함께 시카고 시 재단(Poetry Foundation)의 초청을 받아 일반 시민을 상대로 시낭송과 강연을 하기위해 시카고를 방문했다. 4번째 왔다고 한다.

시인 고은 이라고 하면 연상되는 이미지 첫번째가 바로 술이다. 그는 두주불사의 애주가다. 노 시인은 술에 얽힌 사연이 많은 사람이다. 2001년 ‘양철북’의 저자 퀸터 그라스가 독일 문화원 강연을 위해 한국에 왔을 때, 고은 시인은 그를 환영하는 의미로 물 처럼 술을 마셨다고 한다.

그는6.25 때 스님이 됐다가 4.19때 환속한다. 70년대 들어 큰 변화를 보인다. 허무주의에서 민중을 향해 방향전환을 한다. 술과 자학, 방랑으로부터 사회 모순과 분단 극복을 위한 치열한 운동가로 변신한다. 자유와 정의를 위한 민주화운동이 국가보안법에 걸려 1977년, 79년, 80년, 89년 등 모두4번이나 감옥에 갖혔다. 보안사, 정보부, 검찰, 경찰에 끌려다녔다. 79년 조사 도중 매를 맞아 고막이 터졌다. 감옥서 받은 수술이 채 아물기도 전에 80년 또 구타를 당해 지금도 왼쪽 귀는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반 귀머거리로 만든자들을 미워하지 않는다. 시인은 증오에 무력하다며 내겐 "취할 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역시 술 예찬이다.

어네스트 해밍웨이는 ‘바다와 노인’이라는 짧은 소설로 노벨문학상을 탔다. 고은 시인은 1980년 광주학살이 있던 해 여름 남한산성 육군 교도소 제7호 특별 감방에서 대하 연작시 ‘만인보’를 구상한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만인보’는 “내가 이 세상에 와서 알게 된 사람들에 대한 노래의 집결이다. ‘머슴 대길이’로 부터 노무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만남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공적인 것이며, 하잘것 없는 만남 하나에도 거기에는 역사의 불가결성이 있다"고 말한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 하나 만으로도 노벨상 수상 자격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만인보는 시로 쓴 한국사 인물대사전이다. 30년간 5600명을 30권에 실어 2010년에 완간 했다. 완간 심정은 “술에 취했다 깬 것 같다”고 했다.

머슴 대길이
새터 관전이네
머슴 대길이는
상머슴으로
누룩 도야지 한 마리 번쩍들어
도야지 우리에
넘겼지요(중략)
노무현
모든 것을 혼자 시작했다
처음에는 공장 다니다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을 검정고시로 마친 뒤
그는 항상 수집어하며 가난한 사람
편이었다
그는 항상 쓸쓸하고 어려운사람
편이 었다 (중략)

남북정상회담 자리서 시낭송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에 민간인으로 김대중 대통령을 따라 평양에 갔다. 여기서도 그는 술에 얽힌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서울을 떠나기 전 조선일보가 평양에서 돌아오면 시 한편을 써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시가 나오면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평양에서 첫날밤, 잠은 오지 않고 호텔에 진열해 놓은 술을 이병 저병에서 한잔씩 따라 마셨다. 취기가 돌았다. 드디어 시가 가슴에서 쏟아졌다. 써놓은 시를 만약에 대비해 주머니 깊숙히 넣었다. 동행자인 역사학자 강만길 교수가 한잠도 못자고 일어났으니 대동강변이나 산책하자고 연락이 왔다. 친구지간인 둘은 함께 시를 읽어 보았다. 강 교수는 만찬장에서 읽자고 이 시를 박재규 통일원 장관에게 주었다. 조선일보에 가야할 시가 장관에게 간 것이다. 박 장관도 강 교수 의견에 동의하고 김대중 대통령에게 고은 시인의 시를 낭송하자고 제의했다. 김 대통령은 반대하지는 않지만, 상대방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박 장관이 저쪽 카운터 파트와 상의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허락을 받았다. 박 장관이 연단에 올라가 고은을 소개했다. 그래서 그는 술마시다 갑자기 불려나가, 그의 기념비적인 작품 <대동강 앞에서>를 외교 의전을 무시하고 한바탕 읊었다.

'대동강 앞에서'

무엇하러 여기왔는가
잠 못 이룬밤 지 새우고
아침 대동강 강물은
어제였고
오늘이고 또 내일의 푸른 물결이어라
때가 이렇게 오고 있다.
변화의 때가 그 누구도 가로 막을 수 없는 길로 오고 있다.
변화야 말로 진리이다.
무엇하러 여기 강물 앞에 와 있는가
울음같이 떨리는 몸 하나로 서서
저 건너 동평양 문수리벌을 바라본다
그래야한다
갈라진 두 민족이
하나의 민족이 되면
뼛속까지 하나의 삶이 되면
나는 더 이상 민족을 이야기하지 않으리라.(중략)

‘여름은 소설, 가을은 시’ 라고 시인은 말했다. 이 가을은 노벨상 발표의 달이다. 고은 시인은 노벨상 수상자로 남아도 더 없이 좋다.
하지만 암울한 군부독재 시절, 그가 있어 우리들의 답답함과 큰 슬픔이 위로 받았듯이 우리민족 최고 노래대장으로, 만년 청년시인으로 배달겨레의 앞날을 예언하는 예레미아로 남아 있어도 좋다. 2014년 가을,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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