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문턱에서 추석잔치

올 추석 달은 유난히 컸다. “서편의 달이 호숫가에 질 때에 저 건너 산에 동이 트누나” 가곡 가사가 가슴에서 떠오른다. 동편에서 떠오른 쟁반 같은 둥근달을 보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나 보니 서편에 둥근 달이 아직도 환하게 떠 있었다. 과학의 발달로 인간이 달을 갔다온 후 달의 신비는 많이 없어졌으나, 아직도 달은 정복의 대상이라기 보다는 감상의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달과 이렇게 친숙하게 지낼 수 있는 것은 다분히 환경 탓이기도 하겠지만 어쩌면 나이 와도 관계가 있는 것 같아 한편 서글픈 심정도 갖게 된다.

9월에 접어들면서 매미들의 합창과 함께 이름 모를 벌레들의 오케스트라가 서늘한 계절의 변화를 알리고 있다.
보타닉 가든의 녹음방초와 백화제방의 꽃들도 한여름의 위세를 접고 서서이 변색을 하고 있다. 하지만 9월의 보타닉 가든은 40대 미녀의 원숙함 같은 고상함을 은은하게 뽐낸다.
지난 주말, 가을의 상징인 추석을 맞아 한인사회 여러 곳에서 풍성한 잔치가 열렸다. 양로원과 복지시설을 중심으로 노약자들을 위한 위로와 감사의 잔치, 여흥과 노래자랑 등 등 즐거움을 제공했다.

나는 강원도민회가 주최한 평창 동계올림픽 후원을 위한 콘서트에 갔다. 일요일에는 한인회와 원불교가 합동으로 개최한 추석민속잔치도 취재했다.

평창을 위한 가을 음악회
김병선 강원도민회 회장이 부인과 함께 신문사를 찾아왔다. 2018년 평창에서 열리는 동계올림픽의 성공을 기원하기 위한 콘서트 홍보를 위해서다. 올림픽 까지는 시간이 많이 남은 것 같지만, 해외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차근차근 챙기려면 시간이 그리 많지도 않다고 말하며, 국격을 높이고 고향의 명예를 진작 시킬 올림픽을 앞두고 주최지가 고향인 강원도민의 한 사람으로서 중서부 도민회장으로서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나섰다고 말했다. 마침 절기가 추석이라 음악회를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2018년 까지 연속적으로 각종 행사를 펼치겠다는 뜻도 밝혔다.
성실하고 진지하며 이름 내지 않고 뒤에서 열심히 일하는 분이라는 것을 한눈에 읽을 수 있었다. 나는 음악회 표를 2장 샀다.

음악회는 김 회장의 말대로 격조높은 다양한 음악무대를 올려 참 좋았다. 양정은의 가야금 산조는 우리를 아름다운 전통음악의 세계로 이끌었다. 소프라노 김연주의 ‘꽃구름 속에’와 바리톤 민충기의 ‘청산에 살리라’ 독창은 가을의 정취를 흠뻑 느끼게 했다. 바이올린 김경원, 첼로 조현진, 피아노 이유미의 3중주도 멋 있었다. 그레이스 홍이 오보에(Oboe)로 영화 ‘미션’의 주제곡을 불러 우리를 황홀의 경지로 이끌었다. JUMP합창단은 아리랑 등 3곡을 열심히 불러 많은 박수를 받았다. 반주는 Eugenia Jeong, 정지숙이 맡았다. 마지막으로 무대의 출연진과 객석이 하나가 되어 평창 올림픽의 성공과 한가위를 맞이한 동포사회의 행복과 평안을 기원 하면서 우리들의 애창 가곡인 ‘보리밭’을 힘차게 불렀다. 노래를 사랑하는 민족의 얼마나 아름다은 정경인가?
장래가 촉망되는 시카고 젊은 음악인들의 희생적인 콘서트 출연에 감사하는 마음과 함께, 무한한 긍지를 느끼기도 했다. 마음만 먹으면 우리는 음악회 하나 쯤은 언제고 거뜬이 열 수 있는 우수하고 재능이 있는 민족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그런데, 한가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좋은 기회에 꽉 차야할 자리가 너무 많이 비었기 때문이다. 한인회는 연락을 못 받았다며 회장은 고사하고 아무도 안 나왔다. 주최측의 인사가 기자들을 불러 국가적인 명분이 있는 행사에 총영사관에서도 한 사람도 안 참석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박 대통령이 지적한 ‘관피아’라는 말이 떠올랐다. 무사안일, 복지부동, 일부 층과 관민유착 말이다. 격려를 받아야할 동포들의 조국 사랑이 공관으로부터 외면을 당해 실망를 줘서야 되겠는가? ‘높은 양반들’ 은 한국이나 시카고나 ‘소통’에 문제가 있는 것만은 확실한것 같다. 길게 이야기하고싶지 않은 대목이다. 앞으로 두고볼 일이다.

한국전통 민속놀이 큰 잔치
추석을 맞아 한국전통 민속놀이 큰 잔치는 이곳 원불교가 지난 17년 동안 꾸준히 해오던 행사다. 그런데 작년부터 31대 한인회 서정일 회장이 야유회를 시작하면서 올해부터는 따로따로 하지말고 서로 협조와 보완을 하면서 두 단체가 힘을 합쳐 주류사회에 우리 문화를 보여주자는 취지로 함깨 같이 하게 되었다. 벙커힐 파크에서 열렸다.
원불교의 주산 안수근 큰 잔치 대회장은 개회사에서 “오곡이 무르익은 한해의 결실을 조상님 전에 감사 올리는 보은의 명절, 추석을 맞아 선조의 지혜가 담긴 전통민속놀이의 재현을 통해 고향의 향수를 달래며 서로의 마음을 함께 모아보는 소중한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주최측은 이날 600여 명이 나왔다고 하는데, 점심 식사 후 집으로 많이 돌아갔는지 오후에는 좀 한산해 보였다. 기독교인들의 불참도 바람직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김수환 추기경이나 법정스님의 열린 마움을 배웠으면 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추석만 같아라”라는 옛말이 있듯이 명절은 우선 사람이 많이 북적거리고 먹거리가 풍성해야 하는데, 이점이 역시 아쉬웠다. 추석은 감사의 절기다. 전통 결혼 예식은 훌륭했는데, 정작 차례상이 안 보여 허전했다. 뉴욕에는 1만 명이나 모인다고 한다. 서정일 한인회장은 시카고도 해를 거듭할 수록 자리매김이 되어 간다며, 앞으로는 1천여명이 모이는 행사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1천 명 가운데는 독거노인, 휠체어 탄 사람들, 갈 곳 없어 홀로 쓸쓸한 명절을 맞는 외로운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번 추석 민속놀이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놀이마당 이었다고 생각한다. 투호, 널뛰기, 제기차기, 줄넘기, 굴렁쇠 굴리기 등 한국에서 우리들이 어려서 놀던 모습을 보면서 고향의 향수를 많이 느꼈다.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잘 마무리 지은 한인회와 원불교 측에 깊은 감사를 보내며 내년을 기약한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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