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관광에 징발된 3총사

“시사주간지 시카고 타임스가 주최하는 애독자 사은행사 및 1일 관광, 언론인 시인과 함께”라는 큰 타이틀과 “시카고 타임스 주필 육길원님, 칼럼니스트 조광동님, 시인 배미순님이 함께 하십니다”라는 선전문구가 담긴 광고가 지난 몇 주간 본지에 나갔다.

말하자면 이 세 사람이 광고에 징발된 셈이다. 서시를 쓴 애국 시인 윤동주 이래 한글세대에 들어와서 연세대학이 낳은 훌륭한 시인을 들자면 나는 감히 마종기, 강은교, 배미순 세 시인을 손꼽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순수하고 진솔한 삶에 대한 천재적 언어의 실천가들 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시카고가 배미순 시인을 지녔다는 것은 우리들의 축복이다. 요즈음 나와 함께 주간지 시카고 타임스에서 일하고 있는 배미순 편집장은 90년대 내가 편집국장으로 있던 한국일보사의 편집부국장으로 팀웍을 짰던 동료다. 성실하고 정직하다. 남 얘기를 안 한다. 열심히 기사를 잘 쓴다. 이번 여행에 어려운 시간을 내어 동참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3편의 시를 낭랑한 목소리로 낭송했다.
칼럼니스트라고 호칭이된 조광동씨, 나이는 내가 선배지만 시카고 한국일보의 기자 출발은 그가 선배다. 70년대 후반 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와 나는 한 신문사에서 혹은 다른 언론사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세파에 흽쓸리어 때론 멀어졌다 때론 가까워 졌다 하면서 여기까지왔다. 그러나 개인적인 애증을 떠나 분명한 것은 수 많은 독자들이 미주 이민사의 언론인으로서 두 사람을 한데 묶어 아껴 주었다는 사실이다.

나는 이것을 긍지로 간직하고 감사를 드리며 겸손을 다짐하곤 했다. 우리는 결코 적이 아니었다. 우리는 전우였다. 우리는 결코 경쟁자가 아니었다. 우리는 친구다. 가까운 친구들은 그를 조박사(조박)라고 부른다. 나도 편하게 그렇게 부른다. 한국 근세사에 조병옥을 비롯한 ‘조’씨들의 이루지 못한 큰 꿈을 생각하면서 말이다. 최근 그가 쓴 ‘가나안의 인연’을 읽었다. “상처는 깊지만 치유해야할 숙제”로 남았다고 썼다. 이제 그도 내일 모래면 7순이 된다. 세월의 흐름 속에 ‘이 또한 지나리라’는 7가지 순종의 미덕을 익힌 것인가?
조광동씨는 이번 1일 관광에 개인 사정으로 불참했다. 다음에는 셋이 다 함께 갈 것을 기약한다. 우리들의 팬인 독자와 함께 신문을 이야기하고, 교회를 이야기하고, 이민생활을 이야기하고, 떠나온 고향을 이야기하고, 이별과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다.
기온이 90도까지 올라가는 무더운 날씨에 소나기까지 온다는 일기예보로 걱정을 했지만, 언제 보아도 경의롭고 아름다운 시카고 다운타운, 밀레니엄 팍의 오전 기온은 구름에 가려 무덥지 않았다. 인디애나 듄스에 도착한 오후에는 햇볕이 났지만 숲속이라 시원했다. 일행 중 나와함께 걷던 분은 한 3일 쯤 쉬었다 가고 싶다고 내게 말했다. '듄스’(Dunes)는 인디애나 주가 자랑하는 국립공원의 일부이다.

미시간 호수 남단의 항구로 1780년에는 미국과 영국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한 유적지이기도 하다. 나는 미국에 40년 살면서 이곳은 이번에 처음 갔다. 당국의 예산 부족으로 패인트도 못해 위용을 자랑하던 2층 짜리 커다란 벽돌집은 폐허가 되었다. 1층은 자물쇄로 닫았고, 2층은 초라한 핫도그 집으로 변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숲속에 시원하고 편한 공원 셸터 벤치에서 먹은 점심은 정성이 담겨 맛이 더 있었다. 유부초밥과 김밥, 여러가지 과일을 담은 도시락이 일품이었다. 음료수도 대형 아이스박스에 부족함이 없이 잘 준비됐다. 신문사 사업부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다. 주중인데도 수영을 하는 사람과 호숫가 모래사장에는 많은 인파가 선텐을 즐기고 있었다.

나도 호수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맨발로 모래사장을 걷기도 했다. 예쁜 조갑지 10개를 주워 사랑하는 사람한테 주려고 방파제 위에다 말린다고 놓아두고 아쉽게도 그냥 왔다. 기사 아저씨를 잘 만났다. 무엇보다 침착하고 친절했다. 90번과 94번 하이웨이가 공사 중이라 정체를 걱정했는데, 갈 때나 올 때나 우회 도로를 이용해 예정시간에 차질 없이 맞추어 돌아왔다.

덕분에 우리는 브라질 월드컵 러시아와의 리그 1차전을 우래옥 식당에서 볼 수가 있었다. 우래옥의 배려에 감사를 드린다. 전반전이 15분 쯤 지나서 보기 시작 했는데, 태극전사들의 패스웍이 정확해 골 찬스가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 까? 박주영과 교체된 육군 병장 이근호가 일을 저질렀다. 중거리 슛이 러시아 골키퍼의 두 손을 맞고 슬그머니 골대 안으로 넘어갔다.

순간 우리 일행은 손벽을 치고 환호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두 손을 높이 들고, 야! 소리를 길게 외쳤다.
낮에 여행을 하고 저녁에 축구까지 구경했으니, 참 즐거운 하루였다. 세월호 참사와 한국 정치의 불안으로 우울하던 ‘대한민국’이 이근호의 ‘한방’으로 가슴을 시원하게 쓸어 담았다.

일행은 50대로부터 94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좋은 날씨에 아무 사고 없이 관광 잘 하고 돌아왔다. 25년 동안 개스 스테이션에 얽메어 시카고 다운타운에는 처음 나왔다는 허인수씨, 무릎이 아파 힘들게 걸었다. 효자 아드님이 모시고 온 94세의 이휘자 할머니, 노인대학에서 내 강의를 잘 들었다며 만나자 마자 반가워했던 권사님들이 인상적이다. 1일 관광은이른 아침부터 자손들이 잘 다녀오라고 라이드를 드린 아름다운 효도 여행이다. 신문사가 심혈을 기울인 문화여행이기도 하다. 30년 경험의 중부관광 대표 조윤행씨의 안내도 우리 여행의 품격을 높여 주었다.

여행을 끝내고 김영훈 신문사 대표는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이 있으면 알려달라고 다음을 기약했다. 나도 인사말로 “가족처럼 친구처럼 함께 여행을 즐겼다. 늘 건강해서 다음에도 같이 여행을 가자”고 제의했다. 지금 밀레니엄 팍에는 스페인에서 보낸 대형 흰색 얼굴 동상이 전시중이다. 6월의 태양아래 바다같은 광활한 호수가 주는 시원함, 장장 15마일에 이르는 모래사장, 듄스 공원의 모래산, 우래옥에서 함께 외친 ‘대한민국’ 모두가 즐거운 추억의 한 장이 되었으리라고 생각한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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