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그 아픔과 분노

타이타닉호 선장의 교훈

때는 1912년 4월14일 밤11시 40분, 자정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북대서양의 뉴파운드랜드 근해, 3백50마일 지점. 영국의 화이트 스타 회사 소속 4만5천톤급 길이 270미터의 거대한 초호화 여객선인 타이타닉호가 처녀 항해에 나섰다가 좌초가 되었다.

당시 ‘바다의 궁전’이라고 불렸으며, 대영제국의 국력을 자랑하는 ‘불침선’은 승객 2224명을 태우고 영국에서 뉴욕으로 가던 중 빙산에 부딪치는 참사를 당한 것이다. 흥분과 졸리움 속에 여행을 즐기고 있던 승객들은 배가 가라앉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나만 살겠다고 너도 나도 구명보트에 몰리면 힘이 약한 아녀자는 물론, 모두가 떼죽음을 당할 판이었다. 타이타닉호가 침몰하는 순간 아우성과 아비규환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상상했으나, 선장의 강력한 리더쉽 아래 죽음에 직면한 배 안은 차분하고 질서정연했다. 실로 ‘기적’과도 같은 일이 일어났다.

타이타닉에 탑승하고 있었던 승객 중에는 백만장자, 귀족, 명사들, 이민 가는 부인, 아이들, 선장과 선원, 기관사, 악사들도 있었다. 배가 바다 속으로 침몰해 들어가는 기막힌 순간, 믿어지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선장은 배를 장악하고 모든 지휘를 맡았다. 37명의 기관사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7명의 악사들이 침착하게 찬송가를 연주하는 가운데, 힘센 남자들은 어린이와 여자들을 구조선 카르파티아로 안내했다.

심야의 사투는 하루를 넘겨 15일 새벽 4시10분, 동트기 전 타이타닉호의 거대한 선체가 모습을 완전히 감추자 차가운 새벽바다에 아녀자를 태운 보트만 두둥실 떠 있었다. 구조된 사람은 711명, 1513명의 건장한 남자들은 물 속으로 배와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장엄한 죽음이다. 죽음도 삶처럼 귀하다는 것을 보여준 미담의 역사다.

우리는 미워하고 싸우고, 경쟁해서 이겨야하는 삶에는 익숙해 왔으나, 사랑하고 희생하고 어떻게 죽어야하는지에 대한 준비는 너무 소홀히 해왔다. 중요한 것은 어떤 정신으로 이를 준비하고 받아들이느냐 하는 점이다.타이타닉호와 세월호를 비교해 보면서 갖는 생각이다.

약자부터 구하라’배의 불문율

여자와 아이들을 구해야 한다는 불문율은 버큰헤이드 호에서 비롯되었다. 영국 군함 버큰 헤이드가 1852년 638명의 해군과 가족을 태우고 남아프리카로 가던 중 암초에 부딪혀 난파하자 함장 시드니 세튼 대령은 3대뿐인 구명정에 여자와 어린이를 먼저 타게하고, 수병들을 갑판에 차렷 자세로 집합시켜 놓고 구명정이 배를 떠날때까지 끝내 모함과 운명을 같이했다. 생존자는 193명. 위대한 자기희생의 유산을 인류사에 남긴 영웅적 스토리다. 듣기만해도 감동스럽다.

약한 사람을 먼저 돕는 사랑과 용기의 정신, 타이타닉 승무원들이 보여준 가장 높고 깨끗한 인간정신의 승리는 버큰헤이드 정신에서 본받은 것이다. 그것은 기적이 아니었다.위기가 닥칠 때 더 높은 질서와 명예의식은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서구의 오랜 기독교 문화가 심어준 진정한 사랑의 결실이다.

어른들 잘못으로 대량 참사

인천에서 제주를 가던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했다. 승객의 대부분은 16살의 안산 단원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었다. 수학여행 간다고 밤잠도 설치고 흥분속에 기다리던 신나는 날이 아닌가? 잘 다녀오라고, 잘 놀고 오겠다고 떠난 길이, 생의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불가항력의 천재지변도 아니고, 어른들의 잘못에 의한 인재로 인해서 수백 명의 학생들이 깊숙한 바다및 물속 선실에 갖쳐 불귀의 객이 되었으니아아! 불쌍하고 안타깝다. 젊은 생명이여! 한없이 원망하고 싶은 한심한 나라 내 조국이여! ‘3류국가’라는 말이 회자되니 부끄럽다.

제일 아쉬운 점은 선장이 자기 자리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다. 목적지를 불과 2시간 남겨놓고 항해하기 제일 힘든 지점을 통과 하면서 선장은 자기 자리에 없었다. 500명의 생명이 달린 배를 취직한 지 몇달 안 된 올챙이 항해사에게 배를 운전하게 했으니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치자. 배에 이상 징후가 이미 왔고 기울기 시작 할 때 서둘러 구조를 요청했으면, 다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기회는 또 있었다. 선장은 배의 대통령이다.

타이타닉이나 버켄헤이드 선장 처럼, 선장의 리더십 아래 승객들을 질서정연하게 갑판에 오르게 한 후 탈출을 시도했어야 했다. 태평양 한가운데도 아니고 주위에는 어선이 많이 떠있어 충분히 구조의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선장은 제일 먼저 민간 복장을 하고 동료 선원들과 함께 구명뗏목은 묵어둔 체 유유히 탈출에 ‘성공’했다. 수백명의 젊은이들이 바다 밑에서 얼어죽어 가고 있는 시각에, 인생을 살만큼 산 69세의 노인이 육지에서 한 일이라고는 5만원 짜리 젖은 돈을 말리는 일이었다니,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이준석 선장과 같은 인물의 건재가 바로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이 선장과 같이 자기 권리는 악착같이 지키면서 해야할 의무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이 각계각층에 득실거리고 있다.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 대표에 대한 이야기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구원파 신도이며, 전두환 측과 밀착했다는 사진도 보도됐다. 승객안전 교육에는 1년 예산이54만원 밖에 안 될 만큼 돈을 아껴도, 접대비는 억대 돈을 쓰고, 치부에 눈이 어두어, 수천억의 재산을 갖고 명화 구입에 물쓰듯 돈을 뿌리고, 세계 각지에 호화 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것이다. 더 끔찍한 것은 오대양 집단자살 사건과도 관련이 되있으며 사기죄로 복역까지한 사람이다. 이런자들이 ‘성공’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법이 실종됐고 감독이 허술하다.

정부가 앞장 선 총체적 부실

이러니 국민들은 정치를 불신하게 된다. 이번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정부가 보여준 점수는 낙제수준이다. 한 마디로 속수무책에 우왕좌왕 이다. 사망자 수자조차 제개로 파악을 못했다. 해양수산부는 ‘해’자도 모르는 부서라고 비아냥을 당하고 있다. 부정확한 면책성 발표나 일삼아 침몰 직전까지 “선박은 뒤집히지 않는다”고 장담했다. 무사안일에 복지부동이다.

안전에 문외한인 관료들은 제 밥그릇 챙기기에 분주했다. 이 판에 기념사진 찍자는 고위 공무원도 있었다. 해운조합의 출항 전 점검도 부실했다. 화물 과다 적재 여부도 바쁠 때는 사무실에서 망원경으로 슬쩍 보기만 한다고 선사 관계자는 실토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에 직접 내려가 유가족을 만났는데, 청와대까지 가겠다고 다리위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도 사려 깊지 못했다. 교육부 장관이 빈소를 찾았다. 수행원이 “장관님 오십니다” 했더니, 유족이 “어쩌란 말이냐”라고 소리쳤다는 것이다. 줄줄이 내려온 국회의원들도 유족들에게 쫓겨났다.

서로가 불통이고 불신이다. 대한민국이 서글프다. 하긴, 정치가 국민 신뢰를 받을 만큼 떳떳한 일을 해왔는지 되돌아볼 일이다. 댓글사건, 간첩조작 등 정부가 앞장서 불법을 자행하니 말이다. 한승헌 변호사의 쓴 소리가 떠오른다.

“국가권력의 불법을 처벌 못하는 정권은 법치가 아니다” ‘법’이 위기에 처한 총체적 난맥상이다. 한국은 이번 참사를 계기로 거듭나야 된다. 그릇된 관행, 거짓말, 무책임, 비양심을 척결하자. 대통령 독주의 국가경영 형태, 전반적인 안전시스템 등등을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계 한민족 하나로 아픔 나눠

실종자 수는 줄고 사망자 수는 늘고있는 가운데, 어린 생명을 저승으로 보내는 영결식이 속속 진행되고 있다. 24일 현재 사망 159명, 실종 143명, 구조 174명으로 엄청난 인명 피해를 냈다. 시카고를 비롯한 세계의 한민족 공동체는 분향소를 차려놓고 미쳐 피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난 희생자의 명복을 빌고 있다. 우리 민족은 항상 위기에 강했다. 우리 해외 동포들은 대한민국이 이번 일로 분열되지 말고 하나가 되어 앞으로 전진하도록 힘껏 도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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