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불붙는 통일 논의

지난 주말 ‘통일대박’의 저자이며 ‘전도사’인 신창민 박사가 미주 순방 강연 길에 시카고에 들러 강연회를 갖었다. 300여 명에 가까운 청중이 모여, 강연회가 대박을 쳤다. 주최 측인 이북오도민회의 넷트워크와 조직적인 활동, 대대적인 홍보와 사전 기자회견까지 하는 열성적인 준비로, 많은 인원을 동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만 일까 ?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영향이 컸다. 잘 알다시피, 취임 일 년만에 올해 정초에 청와대서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대박론’을 제기, 통일이 희망이며 행복이라는 통일 의지의 메시지를 남북한 주민은 물론, 세계를 향해 널리 알리는 계기를 마련했다. 시카고에도 바로 그 바람이 불었다고 생각한다. 이 기회에 그동안 우리는 통일을 위해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한번 되돌아보기로하자.

72년 최초 합의문서 '7.4 남북 공동성명'

1948년 건국 후 이승만 정부는 대한민국이 유일한 합법정부이며, 북한도 대한민국에 합류해야 한다고 주장. 1950년대 괴뢰 집단인 북한에 대한 반공 멸공 북진통일이 통일 방법이었다. 1960년 4.19 혁명으로 출범한 장면정부는 ‘UN 감시하의 남북 자유총선거’를 통일정책의 기조로 제시, 기본적으로 이승만 정책을 계승했다.

박정희 정권, 1970년 8월12일, 분단 26년만에 처음으로 남북대화의 통로인 적십자회담 개최. 이어서 1972년 7월4일 최초의 남북당국간 합의문서라고 할 수 있는 ‘7.4남북공동성명’ 채택 발표, 10월 남북조절위원회를 개최했다.

1980년대 후반에 소련과 동구권 국가의 개혁과 개방이 진전되면서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남북관계도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다.

1988년7월7일 노태우 대통령은 북한을 동반자로 인정하는 ‘7.7선언’발표. 이를 바탕으로 1990년 제1차 남북고위급회담 서울에서 개최. 1992년 평양서 개최된 6차회담에서 남북기본합의서(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1994년 8월15일 김영삼 정부, ‘민족공동체통일방안’(화해 협력단계, 남북연합단계, 통일국가 완성단계 등 통일3단계)를 발표했다.

19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의 ‘국민의 정부’는 북한을 화해협력의 대상으로 인정하고 ‘햇볕정책’을 추진. 2000년 6월 최초로 역사적인 남북 정상회담을 개최하고. ‘6.15 남북 공동선언’을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화해의 성과를 계승하고 확대시킨 ‘평화번영정책’을 추진했다. 2007년,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10.4 선언’을 발표했다.

'북핵 개방 3000' 정책 남북관계 교착 상태

이명박정부, ‘북핵 개방 3000’을 통일정책으로 내걸었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혁과 개방을 한다면 북한의 국민 소득이 10년 내로 3000달러가 되도독 돕겠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고,개혁과 개방에 나서지 않으면 남북관계의 정상화가 어렵고, 대규모 경협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는 남북 상호주의 전략인데, 조건이 붙은 대북 포용정책의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있다. 햇볕정책이 북한 스스로 개혁개방을 할 수있도록 환경과 조건을 만들어 유인하는 것에 방점을 두었다면, ‘북핵 개방 3000’은 채찍과 당근으로 개혁 개방을 유도하겠다는데 무개 중심을 둔 것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북핵 개방 3000’은 북한의 자존심을 건드려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지게했으며, 북한의 핵실험과 각종 도발을 불러왔다.

이점이 D J의 햇볕정책 방법론과 차이가 난다. 이명박 대통령은 햇볕정책에 대해서 부정적이었다. 그 이유는 북한의 핵에 대해서 DJ는 속수무책으로 핵을 억제하지 못했다. 너무 유화적인 대북정책이었다. 남남갈등을 증폭시켰다. 한미동맹을 이완시켰다. 북한인권을 외면했다는 등등의 원인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은 믿을수 없는 북한을 상대로 신뢰할 수 있는 남북관계를 조성하자는 것인데,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통해 일정부분 북의 태도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 동의한다. 소통 정치의 부재와 서민경제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60% 지지부분은 다분히 외교와 대북정책에 기인한다고 해석된다. 여기에다 종래에 볼수 없었던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인 통일대박론으로 큰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

박 대통령 '통일대박론' 새시대 통일준비

박 대통령은 취임 1주년을 맞아 발표한 대국민 담화문에서 “내년이면 한반도가 분단된 지 70년이 됩니다. 이제 한반도의 진정한 평화와 대한민국의 대도약을 이루기 위해서는 새로운 한반도 시대를 여는 통일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대통령 직속으로 ‘통일준비위원회’를 발족시켜 체계적이고 건설적인 통일의 방향을 모색해나가고자 합니다”라고 밝혔다.

또 최근 독일 방문 중 독일 통일의 상징인 베를린과 구 동독 지역인 드레스덴을 들러, 인도적 문제해결, 민생 인프라 구축, 동질성회복 조치 라는 ‘드레스덴 구상’을 통해 한반도 통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돌아왔다.

그동안의 통일정책이 공론을 거치지 않고 정략적이거나 정권안보 차원에서 이용되기도하고, 수구꼴통과 종북좌파라는 남남갈등을 부추기기도 했으나, 통일 지향의 민족적 대세는 ‘7.4 남북 공동선언’으로부터 두 정상의 남북회담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이어져왔다는 점이다. 일부의 부정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신뢰프로세스’와 ‘통일 대박론’ 그리고 ‘통일준비위원회’ 발족에 기대를 거는 까닭이다.

무인기가 한국상공을 제집 드나들듯 하고, 박 대통령은 방공망이 뚫렸다고 질타하는 마당에 가장 유념할 것은, 북한을 제외한 ‘통일대박’은 ‘통일쪽박’이 될 것이며, 우리 내부적으로 거짓과 도덕성의 타락,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현실에서, 하나가 되어 통일로 건너 뛸 수 있겠는지, 성찰과 심각한 고민, 논의와 컨센서스가 절실한 시점이다.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

Content on this page requires a newer version of Adobe Flash Player.

Get Adobe Flash play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