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우크라이나.크리미아

냉전시대 미소 강대국은 세계 3대 핵보유 국가였던 우크라이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구사해 그들로 하여금 핵을 포기하게 했다. 지금 우크라이나 국경에는 러시아의 10만 병력이 주둔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리고 러시아 주변 구소련 연방에 도미노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싸고 미국과 러시아는 현재 최악의 관계에 직면해 있다.

이제 러시아와 서방국가는 신 냉전시대에 직면한 것인가? 아니면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길이 있는가? 러시아와 서방의 대립이 주는 세계경제의 파장은 어느 정도일까? 올 상반기 러시아는 국제질서를 무너뜨리고 세계지도를 다시 그리는 엄청난 모험을 자행했다.

나이팅게일 크림전쟁 영웅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우선 지명 표기에 대한 혼란에 대해 약간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우크라이나를 미국은 유크레인(Ukraine)이라고 부른다. 크리미아(Crimea)에 대해 미국은 크라이미아 라고 부른다. 한국에서는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이다. 크리미아는 크림이다.

내가 다니는 헬스 클럽에는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러시아 사람 몇 명을 붙들고 물어 보았다. 유크레인이 맞느냐고. 자기네들은 ‘우크라이나’라고 부른단다. 크라이미아는? 러시아는 크림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한국은 본토발음을 따른다. (중국의 상해는 상하이 처럼). 따라서 러시아와 한국은 지명 발음이 같다.

그러고 보니 시카고 타임스 본지는,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발음으로, 크리미아는 미국과 비슷하게 발음한다. 미국 발음을 따르면서도 크라이미아 라고 하지않은 이유는,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나이팅게일 때문이다. 역사상 유명한 영국인 간호사 나이팅게일이 전쟁터에서 우군이나 아군을 가리지 않고 치료를 해준 곳, 그 전쟁을 크리미아 전쟁이라고 불렀기 때문에 관례에 따라 크리미아라고 부르고 있다.

모름지기 한글신문 표기는 한국에서의 표기에 맞추어 통일해야겠지만, 우리가 미국에 살고 있으므로 미국식 발음도 틀린 것은 아니니까, 러시아나 한국식으로 우크라이나- 크림으로 하든가, 미국식으로 유크레인-크라이미아로 하든가 기호에 맡기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 문제는 한번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마음먹었기 때문에 쓰다보니 장황해졌다.

푸틴, 냉전시대로 회귀

본론으로 돌아가 러시아 대통령 푸틴이 왜? 크리미아를 집어 삼켰는지 되돌아 보자.

우크라이나의 집권자 야누코비치가 국가의 외교정책을 친 서방으로 부터 친 러시아 쪽으로 선회했다. 이에 불만을 품고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 연일 데모가 이어졌고 1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런 후에야, 야누코비치는 권좌에서 물러나 해외로 망명했다. 의회에서는 그를 탄핵했다. 우크라이나는 새 대통령을 선출할 때까지 임시로 과도정부의 수반을 뽑았다. 그리고 이들은 러시아를 향해 노골적으로 서방(EU)과 가까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차르’의 꿈을 지니고 강력한 러시아 국가의 영광을 위해 총리 2번 대통령 4번의 장기 집권을 해온 푸틴이 볼 때, 우크라이나 국민들의 처사가 굉장히 못마땅했다. 막대한 재정을 투입해 소치올림픽을 성공시키고 메달 33개로 우승을 차지해 슬라브 민족의 우수성과 국위를 과시한 푸틴은 우크라이나의 영토인 크리미아 반도를 하루 아침에 정복해 버렸다. 푸틴의 명분은 그곳의 자국민인 러시아 민족을 보호하기 위한 자구책이지 침략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크라이나-러시아는 형제국

1917년 10월 볼셰비키 혁명과 1918년 소비에트 사회주의 연방공화국(U.S.S.R.=Union of Soviet Socialist Republic) 탄생후 1922년 스탈린 시대 러시아,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자카프카지 4개국이 U.S.S.R.을 세웠다. 이렇게 공화국 초창기부터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형제 처럼 가까웠다.

포악한 독재자 스탈린 사망 후, 모로도프와 말렌코프를 물리치고 등장한 우크라이나 출신 서기장 흐루시초프, 이어서 브레즈네프, 안드로포프와 체르넨코 서기장을 거친 소련은 1985년 고르바초프에 이르러 대 변혁을 가져온다. 페레스트로이카(개혁)와 그라스노스트(개방)의 기수 고르바초프가 초래한 3대 변혁이라면 1. 1989년 베를린장벽 붕궤와 독일통일, 2. 동구권 소련 영향력 벗어남, 소비에트 15개 공화국 독립 시작. 발틱 3국인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가 제일 먼저 탈퇴한 후 U.N.에 가입. 3. 1991년 옐친과 푸틴시대가 개막하면서 소비에트 연방이 해체됐다. 그러나 러시아 연방과 우크라이나 그리고 벨로루시는 의리있게도 셋이서 새 독립국가(C.I.S.)를 건설한다. 그만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친근했던 것이다.

크림반도 원래 러시아 땅

아름다운 휴양지이며 군사 요충지인 흑해연안의 크리미아 반도는 한국의 운명을 바꾼(한국 분단) 얄타회담이 열린 곳이다. 얄타회담은 루즈벨트, 처칠, 스탈린이 전후 처리를 위해서 만난 회담이다. 한반도의 10분의 1정도 크기의 원래 러시아 영토였으나, 우크라이나가 고향인 흐루시초프 서기장에 의해 친선의 표시로 1954년 우크라이나에 포함시켜 주었다. 1991년 자치령으로 독립시켜 우크라이나의 부속영토로 다스려 왔으나 인종 분포로는 60%가 러시아인 이다.

푸틴은 이번에 우크라이나를 압박하기 위해 ‘일단’ 크리미아를 장악한 것이다. 2014년 세계의 이목은 푸틴과 우크라이나에 집중돼 있다. 오바마와 푸틴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평화적 해결에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전쟁도 아무리 나쁜 평화 보다 못하다는 말이 있다. 전쟁은 안된다.

미국과 러시아 대통령이 전화로만 시비를 걸지 말고, 얼굴을 맞대고 만나, 줄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키신저 해법’이라도 논의했으면 좋겠다. 크리미아에서 라도 회동하라. 세계 평화와 경제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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