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잃어버린 10년’ 다시 찾자

문재인 대통령이 탄생했다. 나는 2012년부터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기를 바랐던 사람으로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12년 대선에서 문재인이 박근혜에게 패하자, 우리 내외는 가까웠던 친인척이 세상을 떠난 것처럼 허전하고 슬펐다.

이번에 재수한 문 후보가 또 낙선되고 다른 후보가 당선되었다면 절망하고 지금도 우울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다. 그 이유는 국정농단과 부정부패, 헌법정신의 능멸, 보수의 횡포, 권력의 시녀로 변한 일부 언론과 검찰, 사악한 재벌과 대형교회, 기득권 사수에 혈안이 되어 있는 관료, 법조, 사학계의 비리가 참을 수 없을 만큼 한계에 이르러, 그만큼 ‘정권교체’의 열망과 ‘촛불’의 정당성 부여가 절실 했기 때문이다. 2007년에는 앙시앙레짐(구체제)을 청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야당후보가 너무 약했다.

중동의 현대건설 신화와 청계천 복원의 주인공 이명박에 비해, 인기 아나운서 출신 정동영과의 대선 싸움은 시작부터 끝난 것이었다. 기대했던 MB는 임기 초부터 소통부재의 쇠고기 협상 실패로 광우병 촛불시위를 불러왔고, 개발독재의 사고 틀에서 못 벗어나 내용보다 쇼업 정치에 여념이 없었다. 무지하고 무능한데다 역사의식 마저 없으니 그나마 진보정권 10년이 이룩해 놓은 민주주의를 한참 후퇴시켜 놓았다.

4대강사업과 자원외교 실패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야 할 것이다. 노무자를 채찍해 일군 경제 실적보다, ‘종합 예술’ 정치가 얼마나 힘든 일 인지 MB는 잘 보여주었다. 한국정치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고 교훈도 반성도 없었다. 박근혜의 탄핵과 구속으로 ‘이명박근혜’로 이어진 정치는 ‘잃어버린 10년’이 딱 맞는 말이다. 나라꼴은 ‘헬조선’ ‘이게 나라냐?’라는 말이 유행어가 될 정도로 추락했다.

출구조사로 결판난 선거

사할린에서 열린 컨퍼런스에 가려면 한국을 경유해야 한다. 시카고서 자정에 떠나는 아시아나 항공에는 한국 유학생이 많이 탔다. 인디애나 퍼듀대학에 다닌다는 한 여학생은 시카고에서 조기선거를 하지 못해, 방학을 맞아 한국 가서 투표를 하기 위해 서둘렀다며, 9일 인천공항서 집에 도착하자 마자 투표하러 나가겠다고 기자에게 귀띰해 주었다. 젊은이들의 선거열기를 읽을 수 있는 대목이었으며, 기호 1번 문 후보에게 유리한 징조임을 알 수 있었다.

나는 그 동안 서울에 갈 때면 일산에 있는 동생집이나 강남의 호텔에 묵었으나, 이번엔 광화문 광장에 나가기 위해 인근 코리아나 호텔에 묵었다. TV에서 투표는 새벽 6시부터 저녁 8시까지 진행, 2시간이 길어졌다고 보도 하면서 이번 선거의 특징은 예년처럼 단일화나 정당연합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후보자 5명 모두가 완주한 다자구도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선거는 유권자 4,247만 명 중 3280만 명이 투표했다. 첫 대통령 보궐선거로 국민적 관심이 높아 20년만에 투표율 80%대를 넘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하지만 YS 때 82%, DJ 때 81%에 약간 못 미치는 77.2%에 머물렀다. 투표율은 80%에 못 미쳤으나 투표자 수는 사상 최다를 기록했다. 오후에 비가 오기는 했으나, 찍을 후보가 마땅치 않다고 기권을 한 부동층이 많았던 것 같다. 투표는 순조롭게 진행되고 자정 이후라야 당락이 결정될 것이라는 예보는 빗나갔다.

투표 끝나자 마자 30분 후인 8시35분에 나온 KBS, MBC, SBS TV 방송 3사의 출구조사 결과는 문 후보의 압승을 전했다. 일찌감치 초저녁에 결판이 나는 시시한 게임이 되었다. 19대 대선 후보별 득표율은 문재인 41.1%, 홍준표 24%, 안철수21.4%, 유승민 6.8%, 심상정 6.2%로 문재인 ‘대세론’이 끝까지 유지됐다.

문재인과 함께 광화문 광장에서

우리 둘이는 저녁을 든 후, 광화문 광장의 분위기를 살피러 나갔다. 기자로서 역사의 현장에 서있다는 사실에 감동과 흥분이 일었다. 개표실황을 중계 방송하는 JTBC의 손석희 앵커의 모습이 야외 화면에 크게 나타났다. 10시 30분쯤 TV화면에는 ‘문재인 당선 확실’이라는 제목이 떴다. 세종대왕 동상을 지나 정부종합청사 쪽으로 올라갔다. 촛불시위 때만큼은 아니지만, 사방에서 수 만명의 젊은 인파가 몰려들었다.

임시로 가설된 무대 단상에서는 음악과 연설이 흘러 나왔다. 시인 도예종이 ‘문재인’ 시를 읽자 장내는 한때 숙연해졌고, 여기 저기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도 보였다. 무대 단하에서는 ‘문재인’을 외치는 함성이 지축을 흔들었다. 우리 둘도 분위기에 휩싸여 목이 터져라 ‘문재인’을 함께 연호했다. 그리고 마침 내가 서있는 곳이 VIP 통로라서 인파에 밀리면서도 문재인 대통령이 입장할 때와 퇴장할 때 2번이나 손쉽게 악수를 하는 행운을 가졌다.

‘간절함’이 일군 자랑스러운 승리

기다리던 문재인 대통령이 자정이 다 되가는 밤 늦은 시간에 단상에 올랐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첫 대국민 당선인사 연설이다. 운집한 시민들은 등장한 문 당선인을 열광적인 박수와 환호로 맞이했다. 이날을 바라던 국민과 참으로 하나가 되어 뭉친 감격의 순간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첫 마디는 ’간절함의 승리’라고 밝혔다. 그리고 함께 경쟁했던 후보들에게도 감사와 위로를 전하며, 그들과 함께 손잡고 미래를 위해 같이 전진하겠다고 제안했다. 화합의 정치를 외치는 그에게 시민들은 열렬한 지지를 보냈다.

무엇이 그리 간절했는지? 그는 민주당 개표 상황실을 방문했을 때 자세히 설명했다. “정권교체를 염원했던 우리 국민의 간절함과 그 국민의 간절함을 실현해 내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서 뛰었던 우리의 간절함, 그것이 오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또 “제 3기 민주정부의 성공을 위해서 국민이 염원하는 개혁과 통합, 그 두가지 과제를 모두 이루겠다고 강조했다. 정의로운 나라,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나라인 위대한 대한민국, 당당한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대통령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무대에는 당 경선에 나왔던 안희정, 이재명, 최성을 비롯 향후 대통령 잠룡인 박원순, 김부겸, 추미애 등이 함께했다. 특히 강적이었던 안희정 충남지사는 문재인의 볼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문 후보를 문대통령이라 부를 수 있게 돼 기쁘다. 광화문 인근 호프집의 맥주가 동이 나도록 이 밤을 즐기자. 요금은 문재인 대통령 이름으로 달아놓아라”라는 덕담으로 승리의 기쁨을 만끽했다. 나는 현장에서 사람 사는 세상의 온기를 느끼며 민중의 열망과 기원이 무엇인지 체감할 수 있었다.

위대한 대통령 한 번 가져보자

19대 대통령 선거가 끝난지 겨우 한달 지났다. 뒤돌아보면 격변의 시기였다. 촛불혁명, 국회 탄핵 가결, 특검재판, 헌재 박근혜 파면, 법원 구속, 김기춘, 이재용 구속 등 은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한 수순이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일련의 사태는 약속된 땅으로 행렬 지어져 가는 성경 처럼 산문적인 데가 있다. 따지고 보면 문재인 당선의 일등공신은 촛불이 몰고 온 박근혜의 몰락에 있다. 흥남 철수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운동권 학생이 되고, 공수부대원이 되고, 노무현을 만나고, 인권변호사가 되고, 비서실장이 되고, 민주정부 제3기 대통령이 된 것은 어찌 보면 하느님이 점지한 ‘운명’인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짧은 기간동안 초인적인 업적을 이루어 나가고 있다. 그의 지지율은 한 때 90%까지 치솟았다. 문 대통령에게 투표하지 않은 사람까지 그의 지지자로 바뀌었다. 그 힘은 문 대통령의 정직성과 겸손함에서 생긴 것이다. 인사 문제에 있어서 야당과의 갈등으로 지지도가 약간 하락하기는 했으나, 이달 한미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끝내고 오면 문 대통령의 인기는 다시 뛰어오를 것이다. 취임 첫날부터 참신하고 파격적인 행보로 국민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지만, 거기에 연연할 필요는 없다. 인기란 구름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평화와 희망을 안겨주고, 정직하고 공익에 앞장서는 메시지를 주면서 열심히 달려나가는 새 대통령을 헐뜯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 하다고 생각한다.

서울 떠나기 전 두 원로와 해후

서울을 방문할 때면 꼭 만나는 두 사람이 있다. 국회원내총무와 당대표를 역임한 이부영씨는 스스럼 없이 아무 때나 만나 소주 한 잔 나누는 막역한 사이다. 이번에는 그의 사무실 근처 소박한 식당에서 비빔밥에 내가 러시아 세관에서 선물로 사온 보드카 한잔을 나누면서 정권교체를 자축하는 축배를 들었다. 그리고 그날이 마침 노무현 전대통령 8주기 기일 전야제가 광화문에서 열려, 함께 현장에 들러 조문도 하고 사진도 찍고 왔다. 감사원장을 하신 한승헌 변호사는 연세도 많으시고 인격이 고매한 분이라 대면이 좀 어려운 편이다. 최근 몸도 불편하시고 해서 자주 뵙지는 못했다.

하지만 2017년 5월 서울의 하늘은 특별한 의미가 있다. 법원 인근 아직도 존재하는 우리 스타일의 지하실 ‘다방’에서 만났다. 간디처럼 더 마르셨다. 시대의 양심이며 겨레의 진정한 어른이신 이 두 분은 세월이 가고 시대가 변해도 함께 공유한 가치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친구’라고 생각한다. 현재 정계를 은퇴하고 동북아 평화문제 연구소의 대표로 일하고 있는 이부영씨는 촛불집회에 개근을 했다고 한다. 한승헌 변호사는 문재인의 통합정부 자문위원단장을 맡아 그의 당선에 공헌을 했다. 우리는 새 대통령이 역사에 남는 훌륭한 대통령이 되도록 함께 노력하자고 다짐하면서, 내년에도 꼭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면서 기쁘게 헤어졌다.

촛불정신 평양에도 흘러가도록

한국은 이제 ‘탄핵’과 ‘대선’이라는 2개의 긴 터널을 나와, 미지의 더 길고 더 어두운 제3의 ‘개혁’ 터널을 향해 돌진하게 되었다.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다. 촛불혁명이 반혁명에 의해, 4.19나 5.18, 6.29처럼 멈추거나 후퇴를 못하게 국민이 깨어 있어야 할 것이다. 잃어버린 10년을 마감하고 유신이래 수 십년 지속된 적폐와 후유증을 말끔히 정리할 수 있도록 새 역사 창조에 매진하는 새 대통령에 힘을 실어주자.

끝으로 바라기는 아스팔트에 피흘리지 않고 1700만명이 모인 불멸의 거대한 촛불 발자취가 평양에도 영향을 주어, 개방 개혁의 기류가 그곳 동포들의 인권과 삶에 변화를 가져오기를 간절히 염원한다. 우리 생에 가능한 일일까?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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