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사할린으로”

 



나라 잃은 백성의 노예의 땅

블라디보스토크와 우수리스크, 하바로프스크 일대를 중심으로한 이른바 연해주는 사할린 섬과 함께 구한 말 일제 강점기에 국권을 상실하고 나라를 잃은 백성으로 노예처럼 유랑의 삶을 누려야했던 우리 민족의 비극의 땅이다. ‘자작나무 섬’ ‘검은 강으로 들어가는 바위’란 별명을 가진 러시아의 사할린을 다녀왔다. 지난 5월 7일 시카고를 떠나, 역사적인 새 대통령을 뽑은 한국을 방문하고 러시아의 사할린, 모스크바, 세인피터스버그를 들른 후 24일 돌아왔다. 강행군이었다. 미국에서 사할린으로, 극동에서 유럽으로, 유럽에서 한국으로, 한국에서 다시 미국으로, 좀 과장하자면 지구를 2바퀴 돌고왔다.

세계한민족여성재단(KOWINNER; Korean Women’s International Foundation)은 지난 5월 11일 부터 13일까지 ‘가라후토’라 불리던 ‘유즈노 사할린스크’( (Yuzhno-sakhalinsk City ; 남 사할린시)의 가가린(GAGARIN) 호텔과 사할린한인문화회관에서 “융합, 도전 그리고 더 크고 아름다운 세상으로”라는 주제와 “가자! 사할린으로”라는 케치프레이즈를 걸고 사할린 시장과 국회의장 등 현지 고위 인사들과 세계12개 국 100여 명의 한인 여성리더들이 참석한 가운데 제 6회 러시아 국제 컨벤션을 개최했다.

이들은 모두 한결같이 “과거의 아픔이 미래의 꿈이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올해 창립 10주년을 맞는 세계적인 네트워킹을 지닌 이 재단은 그동안 2009년 제1회 호주 시드니, 2011년 제2회 홍콩, 2012년 제3회 루마니아 부크레스트, 2013년 제4회 오스트리아 비엔나, 제5회 2015년 미국 워싱턴 DC에서 국제컨벤션을 성황리에 개최했다. 필자는 3회 루마니아, 5회 워싱턴, 6회 사할린대회에 참석했다.

주최측인 러시아를 비롯, 대회 주관국 호주와 다음 개최지인 브라질을 비롯, 한국, 미국, 중국, 필리핀, 홍콩, 인도, 싱가포르, 독일, 스위스와 후원국 아르헨티나(이윤희)등 지구촌 곳곳에서 활약하고 있는 여성지도자 1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번 컨벤션은 특별한 의미를 지녔다. 이곳 시장은 “자신만만한 여성, 예쁘고 위대한 한국 여성들이 러시아의 이 작은 도시까지 찾아 온 것 감사드린다 이곳 한인회는 한국문화를 소개하고 러시아를 위해 큰 역할을 하고있다”라고 환영사를 했다.

세계한민족여성재단의 창설 주역이며 10년 역사의 초석을 세운 이경희 이사장은 개회식에서 환영사를 통해 “이름만 들어도 가슴이 애잔해오는 사할린, 아픈 과거, 어두웠던 고통의 역사가 있던 곳,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이제 과거가 되고, 오로지 강인함과 성실함으로 러시아 내의 모범 민족으로 성장하고 러시아 주류사회의 우수한 지도자를 대거 배출하고 있는 이때,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민족 여성 지도자들이 이곳에 모여 국제 컨벤션을 개최해 더 큰 의미와 기쁨을 갖게된다. 이 성공신화의 밑바탕에는 강인한 한인여성들의 ‘우먼파워’가 있었기 때문이다. 글로벌 네트워크 시대에 함께 융합하고 도전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앞장서 나가자 ”라고 강조했다.

10주년을 맞은 여성재단은 올해 10년만에 새 이사장을 선임했다. 이경희씨 후임으로 척추신경과 원장인 시카고의 서진화씨가 중책을 맡았다. 서 차기 이사장은 취임사에서 이경희 초대 이사장의 평소 지론인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을 서두로 “환경 재능 개성이 다양한 우리 회원들이 큰 뜻을 품고 조국을 돕고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려면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중요하다. 한민족 여성들의 다양성 속에 긍정의 에너지가 융합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세워주고 섬김으로 하나되어 큰 일을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인향만리’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간다. 좋은 사람들과의 깊은 인연은 그만큼 소중하고 오래 간다. 우리가 받은 축복과 자원을 다음 세대 여성리더로 키우는데 한원시키자”라고 말했다.

연극 배우이며 전 환경부 장관을 역임한 손숙씨는 ‘한국여성’이라는 제목의 기조연설을 통해 우리의 역사는 넓게는 국가가 어렵고 좁게는 가정이 위기에 처했을 때 여성들의 슬기와 지혜를 통해 이를 극복하고 나라의 발전과 가정의 평화를 지켜왔음을 상기 시키며, “사할린이라 오고 싶었다. 나라 잃은 선조들의 고난의 역사가 부끄럽고 속상했다. ‘귀향’이란 영화보고, 여성으로서 너무 죄송했다. 이곳에 와서 국가란 무엇인가? 에 대해서 생각했다. 위안부 생각도 많이 났다. 위안부는 ‘전쟁’이 아니라 ‘여성’의 이야기다.

100억 갖고 ‘한일합의’ 잘 했다는 대한민국 정부에 너무 부끄럽고 화났다. 20만 정신대 할머니들이 원하는 것은 ‘사과’다. 독일은 잘못 인정했으나, 일본은 아직도 사과 안했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자. 우리 모두 여성인권 지키는데 노력하자. 농사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에 이민와서 실의와 외로움 속에 행상으로 부를 이룩한 브라질의 한국 이민, 밤새워 지렁이 잡던 캐나다의 초기 이민 생각하면 강인한 ‘한국 어머니상’이 떠오른다.

친정이 잘 살아야하지만,그러나 너무 목빼고 대한민국만 바라보지 말자. 젊은이들 잘하고 있다. 천 만명 모여 사고 하나 없었다. ‘촛불'보고 열린 마음과 희망을 읽었다. 어느 나라 어느 곳에 살던지 긍정적으로 열심히 살자. 화평과 조화를 이룰 때 아름다운 세상이 될 것이다”라고 감격적인 연설을 했다.

일본에 의해 강제 징용당해

임시정부가 있었던 상해, 독립자금을 지원했던 하와이, 독립전쟁이 가장 치열했던 연해주 등 세 지역은 한민족의 정기와 민족혼이 깊이 서린 유서 깊은 곳이다. 연해주에는 1869년 고려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그 해 함경도 지방에 흉년이 들었다. 그 춥던 겨울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4,500명의 함경도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자의로 한만국경을 넘어섰다. 따라서 우리민족이 타국으로 흘러나간 ‘디아스포라’(이주)는1860년대 이후이며 역경을 딛고 성공한 사례다. 특별히1910년 경술국치로 조선왕조가 망하자, 빼았긴 나라를 되찾고자 연해주로 독립운동가들이 모여들었다.

이상설, 안중근, 신채호, 홍범도 등 민족의 지도자들이 조선과 연해주가 맞닿는 두만강과 일송정 일대를 독립전쟁의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만들었다. 당시 한인 유랑 이민의 주류는 만주에 2백만, 러시아에 40만, 일본에 2백만이 된다. 만주 수전 水田 의 90%가 우리 이민의 피땀으로 개발되었다. 스탈린에 의해 연해주로 부터 카자크스탄, 우즈베기스탄 등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된 한인들은 황무지를 옥토화 시겼다. 심지어 멕시코의 유카단 반도에서도 농업노동에 성공했다.

(형규환의 한국유이민사 참조) 그러나 사할린은 다른 이야기다. 자의에 의한 디아스포라가 아니라 일본 제국주의의 강권에 의한 타의의 이주 였다는 점이다. 이곳은 강제징용자들의 민족집단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진율리아 역사학자는 컨벤션에서 ‘사할린 한인 디아스포라와 러시아 사회로의 통합’ 이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역사적으로 사할린 한인의 이주현상을 3가지로 분류했다.

첫째; 1910년부터 1945년, 일본 영토였던 가라후토(사할린)에 최대 한인 이주가 이루어졌다. 1945년 해방되고 소련이 전승국이되자 가라후토는 사할린스키로 이름이 바뀌고 소련 영토가 된다. 당시 그 섬에 거주하던 일본인과 전쟁포로 약 30만 명은 귀국했으나, 23,500명의 한인 거주자들은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비극에 직면한다.

둘째, 1946년 1949년 사이 소련은 노동력 부족으로 북한 노동자를 고용했다. 이 중 약 8,500명만 귀국했고, 1962년 당시 그곳서 출생한 2세를 포함, 북한 노농자는 3, 500명으로 알려졌다.

셋째; 이 부류는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이주되었던 ‘고려인’이다. 약 2,000명의 우즈베키스탄과 카자크스탄의 한인들이 통역이나 공무원, 교사, 감독관으로 일하기 위해 사할린으로 왔다.

넷째; 1990부터 2000년대 초반, 소련연방이 망하고 러시아가 경제난을 겪을 때 때마침 북방정책에 성공한 노태우 정부가 한러국교 정상화를 이룩하자, 사할린을 떠나 모국에 귀향하려는 영주귀국 바람이 불었다. 그러나 양쪽 사회의 사회적 적응 가능성을 모두 경험한 이들은 한국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사할린으로 돌아와 정착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다만 1세대 중 일부는 1997년 부터 한국정부가 마련한 서울과 인천에 주거용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1999년 일본정부는 인천 사할린 복지관과 안산 고향마을 설립에32억 엔을 지원했다. 이곳으로 2000년부터 2007년까지 약 1,000명을 비롯, 4,000명의 사할린 한인들이 영주귀국했다.

정체성 지니고 러시아 삶 적응

오늘날 720만 명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사는 한국 유이민사에서 사할린의 한국인 만큼 나라를 잃은 백성의 처절한 삶을 누린 곳은 없을 것이다. 강제징용으로 끌려와 추위와 배고품을 견디며 노예와 같은 혹사를 당하면서 죽지 못해 살아왔기 때문이다. 초근목피로 살면서도 학교를 다녔다는 사할린 1세대인 장차분 할머니와 강제징용에 끌려와 아직 생존 중인 김윤덕 할아버지의 회고담은 회의 참석자들의 눈물을 자아냈다. 마지막 날 우리 일행은 코르사코프 해변가 망향의 언덕에 세워진 사할린희생 동포위령탑을 방문했다. 고향을 그리면서 숨진 수 많은 동포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숙연해졌다. 국적이 4번 바뀌고 언어가 3번 바뀌는 동안 변하지 않는 1가지는 ‘차별’이었다.

군국주의 일본의 ‘영광’을 위해 광산에서 공장에서 벌목장에서 어장에서 수 많은 백의민족이 굶주림과 체벌로 혹사 당하며 인권을 유린당한 채 죽어갔다. 소련정부도 러시아정부도 이들을 애물단지로 취급했다. 모국 한국도 이들에게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1945년 해방의 기쁨도 이들에게는 남의 이야기였을 뿐이다. 물태우정부라고 비양을 받던 노태우정부의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척박했던 동토의 땅에 드디어 봄이 왔다. 한국과 러시아의 수교와, 소련 멸망 후 고르바초프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 힘입어 뒤늦게 나마 러시아 정부로부터 동등한 법적 신분을 부여받아 ‘사람대접’을 받게 된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이곳의 한인 3-4세 들은 각계 분야에서 성공적인 모범시민으로 뿌리내리며 한민족의 자부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사할린에는 25,000명의 한인들이 살고있다. 국회의원과 암센터 원장을 배출했다. 사할린주 한인협회가 활동하고, 한국정부에서는 주 블라디보스토크 대한민국총영사관 유즈노사할린스크 출장소장(황명희)을 파견하고 있다. 한인문화회관에는 교육부에서 파견한 교육관이 근무하고 있다. 문화회관에 세들어 있다는 김주환 사할린 한국교육원 원장을 만나 몇마디 나누었다. 한국문화회관은 특이하게도 일본정부가 지원해서 세웠다며,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와 하바로스크에도 문화센터에 교육관이 나와있다고 전했다.

우리말 방송국이 2008년부터 TV방송을 시작했다. 주로 인물 시리즈와 3-4세 성공사례를 보도한다. 푸틴 대통령 메달 수상자인 김춘자 러시아 국제컨벤션 공동위원장이 국장으로 수고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공항까지 나와 나에게 아나톨리 쿠진교수의 저서 ‘사할린 한인사’를 선물한 김 국장에게 감사를 드린다.

또 공동위원장의 한 명인 권행자 재단이사는, 푸틴 대통령이 사할린에 오면 머무는 같은 지역의 동급호텔인 가가린호텔 대표로 성공한 사업가다. 사할린과 한국과의 교류도 활발해 졌다. ‘지구촌 동포연대’라는 단체는 해마다 사할린을 방문, 음력달력을 선물하고 온다. 한인이 가장 많이 살고 있는 마카로프시는 시장과 향토박물관 고영순 회장이 제주도를 친선방문하고, 제주도와 문화교류를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제주의 ‘두루나눔’이라는 단체는 2015년 광복70주년 및 러시아 승전 70주년 문화축제에 특별 초청되어 공연을 하고 왔다.

사할린은 지하자원과 산림자원이 풍부하고 무엇보다 오일 개스가 무한정 생산되는 러시아의 금싸라기 땅이다. 우리 일행은 여행 중 사방에서 공사가 진행중인 모습을 대할 수 있었다. (공해단지가 아니라 주택건설) 인심도 친절한 청정지역으로 연어 등 수자원이 풍부하다. 앞으로 한국의 산업, 경제, 무역, 문화, 예술 등 다방면의 진출이 바람직 하다고 생각한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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