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민주당의 나아갈 길

이곳은 오늘도 눈이 오네요. 올 겨울 우리의 화두는 눈과 추위다. 대동강이 풀린다는 우수 경칩이 다 지났는대도, 이번 겨울 (3월 12일 현재) 벌써 46번째 눈이다. 시카고 일원의 적설량은 지금까지 약 80인치를 기록했다. 77년78년, 80인치 이상 내린 해에 근접한 사상 3번째로 많은 눈이 내렸다.

이와같은 폭설과 혹한은 예년에 비해 많은 동사자를 냈다. 기지개를 펴고 있던 경제성장에 발목을 잡아 비록 일시적이나마 고용과 소비시장의 둔화를 초래했다. 올 겨울은 자연재해가 인류에게 큰 불행을 안겨준 해로 기억될 것이다.

국정원이 정치 무대 주역으로

지난 1년 동안 한국의 화두는 국정원의 정치개입이다. 허울좋은 서민경제, 국민행복, 복지국가, 비정상화의 정상화는 말뿐이고, 정치의 주역은 단연 국정원이라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국민의 마음을 불편하게 하고 있다. 불법적인 정치활동, 댓글사건, NLL 논란, 공개해서는 안 되는 정상회담 대화록 공개, 채동욱 전 검찰총장 뒷조사, 간첩 증거 조작사건 등 등 실종된 정치공백의 한복판에서 공안 정국을 유도, 국정원이 악역을 도맡아서 ‘맹 활약을’ 했으니 말이다.

간첩증거 조작 사건만해도 그렇다. 어떻게 국가 공권력이 국민을 상대로 거짓 말을 밥 먹듯 하고, 한 인간의 인권을 무참히 짓밟을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소시민들은 어떻게 정부를 믿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최근 한국을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쩌다 나라가 그 지경이 되었는지, 해도 너무해서 한숨이 나오고 분개를 느낀다고 했다. 직접 한국을 방문한 사람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이곳서 접하는 한국정치 뉴스는 시계바늘을 수 십년 뒤로 돌린 것 같은 착각을 갖게 한다. 지금은 경제개발과 근대화의 깃발을 들고 나만 따라 오라던 개발독재 시대가 아니다. 국민소득 4만달러를 외치는 때에 정치는 한심한 후진성을 보이고 있다. 정부의 불통정치가 사회갈등의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공기업을 향한 철권은 철도노조의 파업 등 근로자들과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고, 소통에 인색한 리더십은 의료대란을 불러왔다. 과정의 정당성 보다는 결과만을 중시하고, 이기기 위해서는 수당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한 번 물면 살점이 떨어져 나갈 때까지 놓지 않는다는 ‘진돗개 정신’이 ‘미덕’으로 찬양되는 오늘이 과연 행복한 시대인가?

지난 대선 결과를 들출 필요도 없이, 한국 사회는 친정부와 반정부가 반반으로 갈려있다. 언제부터인가 한국사회는 친정부는 우파이고, 반정부는 좌파로 통칭된다. 우파는 보수이고 좌파는 종북으로 몰린다. 해외동포사회도 마찬가지다. 가슴아픈 일제 식민지와 분단의 산물이기는 하지만, 게임에서 승리한 친정부, 우파와 보수가 기득권을 누리게 되고, 패배한 반정부는 좌파와 종북의 낙인이 찍혀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가령 어느 해외동포가 조국을 사랑하는 마음을 안고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자, 어느 이민자가 독재에 맞서 민주화운동을 했다고 하자, 어느 지식인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해 현정부를 비난했다고 치자, 시대에 따라 이 부류의 사람들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정권의 안보와 기득권의 확보를 위해 전횡을 일삼는 거대한 체제에 눌리고 억압받는다면, 그 사회는 불행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불의와 편향된 이념이 횡행하는 사회는 한심한 사회이다. 침묵하는 다수를 무시하거나 더 나아가 억압하는 사회는 반듯이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는다고 믿는다.

6월 지방선거를 앞둔 한국 정가가 싸움박질로 난리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모두가 제 정신이 아니다. 오래전 대통령에 출마했다가 마지막 순간에 ‘비겁하게’ 하차한 사람이 서울 시장이 되겠다고 요란하다. 당 대표에 가만히 있어도 국회의장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지방선거에 출마하라고 등을 떠밀고 있다. 오직 승리만을 위해서다. 공천제 폐지다. 상향식 공천이다. 떠들면서 굴러온 돌이 박혀있던 토박이 터주대감을 밀어내고 여기저기 나서고 있다. 이는 지방자치 정신의 위배다.

합당선언 한국정치사의 빅뱅

이 판에, 안철수와 민주당이 합당선언을 했다. 두 사람이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한다기에 지방선거 공천제 폐지 발표 정도로 생각했다. 회견장에 임했던 기자들 조차 전격적인 합당선언에 놀라 ‘어’ ‘어’ 소리를 냈다는 거다.

제일 놀란 측은 여당인 새누리당과 집권세력이다. 삼파전으로 지방선거에 어부지리를 보려던 여당은 일제히 안철수 깎아 내리기에 집중포화를 가했다. 선거 철새처럼 야합을 했다는 것이며, 안철수는 더 이상 새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켜 그의 이미지를 깎아 내렸다. 보수언론도 가세했다. 안철수가 만들려고 했던 제3당 내의 자중지난을 확대해서 보도했다. 지난번 대선에서 문재인과의 기 싸움과 결과적으로 야권의 실패를 가져온 안철수 후보의 처신을 눈 여겨 지켜본 필자도,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의 합당 기자회견 내용을 듣는 순간 깜짝 놀라 ‘어’ ‘어’ 소리가 저절로 났다.

밤잠이 오지 않았다. 90년 1월 서울 아카데미 하우스에서 김영삼 민주당 총재와의 인터뷰 생각이 떠올랐다. 주섬주섬 일어나 당시 스크랩을 찾아 보았다.

필자 질문; “‘대도무문’의 김영삼총재 스타일로 보아 합당을 한다면 평민당(김대중)하고 해야 하는 것이 순리지, 노태우 민정당과 ‘유신본당’이라는 공화당의 김종필과의 합당은 순리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계개편에 대해서 설명해 주십시요”

YS대답; “(중략) 김대중씨와는 절대 안되게 되어 있습니다. 유신본당 이야기가 나왔는데, 유신 때 제일 많이 박해를 받은 사람은 나입니다. 김종필씨가 다시 정치를 시작해서 국민과 나에게 잘못했다고 시인했습니다. 심지어 국회서 나를 제명 할 때 자기는 반대했다고 까지 말하지 않았습니까?

그런 사람 놓고 이것 저것 따지면 정치하지 말아야 합니다. 절에 들어가거나 고사리 캐먹고 살아야 합니다. 정치는 현실과 이상의 조화입니다. 온건 민주 세력이 한데 뭉쳐 ‘큰정치’하자는 것입니다.... (중략)

‘안철수 현상’ 확산되기를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일부에서는 ‘야합’이라고 비하하는 당시 3당합당을 ‘5.16’이후 최대의 정변이라고 이야기 했다. 해공 신익희, 조병옥, 장면, 양김씨, 노무현, 이기택, 이부영의 전통을 이어온 민주당과, 정직하고 참신한 새정치의 표방인 ‘안철수 현상’의 합당은 어쩌면 소위 ‘잃어버린 10년” 또 잃어버릴 지도 모르는 10년을 합쳐 20년 한국 정치사에 최대의 빅뱅이며 정변이다.

YS가 즐겨 쓰던 말,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듯 이 봄은 폭설과 한파의 인고를 딛고 개선장군처럼 우리 앞에 와 서있다.

양측의 합당이 당장 지방선거의 승리나, 한국정치의 고질인 계파의 이익에서 벗어나 ‘안철수 현상’의 확산을 위한 통 큰 정치를 할 때, 민심과 역사는 어두운 시절 따듯한 봄을 기다리며 개혁에 몸부림 친 그들의 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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