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참과 거짓 싸울 때 어느 편 설건 가

“어느 민족 누구에게나 결단할 때 있나니, 참과 거짓 싸울 때에 어느 편에 설건 가…” 비겁한 사람은 힘센 편을 택하지만 역사는 진리편으로 흐른다는 찬송가 521장의 첫 구절이다. 비신자였던 내가 처음 이 노래를 부른 때는 1974년 어느 날 시카고 제일 연합감리교회(당시 차현회 목사 3246W George St., Chicago)에서였다.

박정희의 유신독재 시절인 1974년 12월14일 인혁당 사건을 폭로해 한국서 추방당한 조지 오글(오명걸) 목사가 시카고에서 조국의 민주화를 염원하는 한국동포들을 상대로 강연회를 가졌다. 그때 떨리는 마음으로 감격해서 부른 노래가 바로 이 찬송가 521장 이다. 혹독했던 유신과 맞서 한국인들도 선뜻 용기를 내지 못했던 그 암울했던 때에 불의에 맞서 투쟁했던 또 한 명의 성직자가 있었으니, 제임스 시노트 신부가 바로 그 사람이다.

신부님은 정부의 광고 탄압으로 ‘동아사태’가 일어난 75년 3월 17일 동아일보 3층에서 기자들(모두 해직됨)과 언론자유를 위해 싸우다 잡혀갔다. 그도 오글 목사처럼 인혁당의 진실을 밝히다 강제로 추방되었다. 외국인이지만 선과 악이 싸울 때, 선의 편에 서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에 공헌한 두 분께 우리는 빚을 갚지 못했다.

광화문 촛불 시위에 맞서 대한문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연 극우 보수파들을 보면서, 나는 43년 전 “주가 주신 새 목표가 우리 앞에 보이니 빛과 어둠 사이에서 선택하며 살리라” 작시자 제임스 럿셀 로웰(Lowell)이 미 국민의 정의감을 불러 일으킨 이 위대한 찬송가를 나는 요즈음 집에서 자주 부른다. 로웰은 미국의 부당한 멕시코와의 전쟁을 거부했고, 아브라함 링컨과 함께 노예제도를 반대한 시를 무기로 삼고 싸운 하버드 대학의 교수 출신이다.

파면 후 드디어 검찰 앞에 서다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국정농단이 터진 지 6개월, 대통령 직에서 파면 당한지 11일 만인 3월21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변호인 측에서 청사에 들어가기 전에 대국민 메시지가 있을 것이라고 예고했기 때문에 국민들은 그가 반성이나 사과의 뜻을 전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피의자 박씨는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성실하게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29자, 딱 두 마디 말을 8초 동안에 했다. 다른 피의자들이 상투적으로 하는 말과 똑같은 단어이며, 얼마나 진정성이 담겨있는지도 의문이다. ‘완전히 엮었다’ ‘거짓의 산’ ‘누군가가 기획한 것’ 이라는 말로 결백을 강변하던 박 전 대통령은 이번 검찰 조사에서도 삼성으로부터 뇌물수수, 직권남용, 블렉리스트 작성 등 13가지 혐의에 대해 ‘모른다’ ‘아니다’로 모두 전면 부인했다고 한다.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라고 말했다. 대통령직 파면이 인용된 후, 56시간만에 나온 메세지도 단지 4마디였다. “제게 주어졌던 대통령으로서의 사명을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해 죄송하게 생각한다. 저를 믿고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이 모든 결과에 대해서는 제가 안고 가겠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고 믿고 있다.” 고 ’진실’을 팔았다.

이번에 검찰에 출두하러 자택을 떠날 때와, 14시간의 조사와 6시간의 조서 열람을 마치고 귀가할 때 박씨는 박사모 등 응원나온 수 백명을 향해 미소를 지었을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태국기 집회 참가자들은 “결국 우리가 이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라고 외쳤다. 박씨의 진실과 응원자들의 진실은 과연 누가 밝혀줄 것인가? 그래서 피레네 산맥 동쪽의 진실과 서쪽의 진실이 다르다고 했던 가.

일제 36년간 부역한 친일파와 독립투사의 진실은 다르다. 평화통일을 부르짖다 사형을 당한 조봉암의 진실과 이승만의 진실은 다르다.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 전두환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은 김대중의 진실과 가해자의 진실은 다르다. 참과 거짓이 싸울 때 어느 편에 설 것인가? ‘촛불’이나 ‘태극기’의 진실도 다르다고 생각한다. ‘진짜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고 굳게 믿는다. 관용론이나 양비론으로 양측 모두가 애국심의 발로이니 잘잘못을 따지지 말자는 제의에 동의할 수 없다.

촛불은 반세기 적폐의 조종(弔鐘)

1977년부터 22년 간 서울대교구에서 김수환 추기경을 보좌했고, 2002년부터 현재까지 제주교구장을 맡고 있는 강우일 주교는 말한다. “갈등을 봉합한다고 뒤죽박죽 섞어 ‘통합’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 ‘촛불’은 반세기 이상 한국사회를 지배해온 정신적 체제와 세계관이 막을 내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겪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무엇이 진정 옳고 그른지 분별할 수 있고 올바름을 추구하는 가치관을 가진 지도층이 형성되어야 의미있는 통합이 완성되는 것이다.” 주교님의 명쾌한 진단에 전적으로 찬성한다. 칼럼리스트인 서울대학의 어느 교수는 준엄한 역사의 법정에, 누구도 승리하지 않았다는 글을 썼다. 아니다. 말은 바른대로 하자. 촛불이 이겼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말을 빌리겠다. 시가 관리하는 땅에 촛불 천막은 허용하고, 태극기 천막은 불허하자, 태극기 측에서 항의를 했다.

이에 대해 박 시장은 촛불은 진실을 왜곡한 불의에 항거하여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집회라 정당한 명분이 있으나, 태극기는 이에 대항하는 집회라 불허했다고 분명하게 대답했다. 박 시장은 촛불은 ‘민심’으로 보고 태극기는 ‘관제’로 해석한 것 같다. 굳이 승패를 따지자면 4.19나 6월항쟁처럼 ‘民’이 ‘官’을 이긴 것이다.

박근혜 구속 여부 금명간 결론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검찰, 특검, 청문회를 통해 최순실과 국정농단 사태로 빚어진 모든 범죄의 중심에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대통령의 하수인이나 부역자 30여 명이 이미 기소된 상태이다. 국민 80%, 국회의원 300명 중 234명이 박근혜를 버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헌재는 명판결을 했다.

이정미 헌재 소장대행은 얼마나 바쁘고 긴장되었으면, 머리에 2개의 분홍색 헤어롤을 빼지도 못한 채 출근했다. 가슴이 뭉클했던 이 아름다운 ‘실수’를 국민들은 오래 동안 기억할 것이다. 이 헌재 소장대행은 선고문을 낭랑한 목소리로 침착하고 평온하게 읽어 나갔다. “결국 피청구인의 위헌 위법행위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것으로 헌법수호의 관점에서 용납될 수 없는 중대한 법 위배행위라고 보아야 합니다. 피청구인의 법 위배행위가 헌법질서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과 파급효과가 중대하므로, 피청구인을 파면함으로써 얻는 헌법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고 할 것입니다.

이에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주문을 선고합니다.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라고 감정에 흔들림 없이 선언했다. 그리고 끝으로 “이 탄핵심판은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헌법질서를 수호하는 문제로 정치적 폐습을 청산하기 위하여 파면결정을 할 수 밖에 없다는 재판관 안창호의 보충의견이 있습니다”라고 헌재 결정문 낭독을 마무리 지었다. 그 권위와 유종의 미에 압도되면서 가슴에 벅차 오르는 감동을 받았다. 우리 생에 영원히 잊지 못할 위대한 체험이었다.

탄핵은 정치 선진화의 전화위복

황교안 대행의 특검연장 거부로, 탄핵 후 11일 만에 일반검찰이 수사를 넘겨 받아 박씨를 조사했다. 범죄 공모자 최순실, 이재용, 안종범 등이 구속된 상태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구속도 시간 문제인 것 같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구속 여부와 상관 없이 ‘탄핵열차’는 5월 9일 탄생할 ‘제7공화국’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다. 비젼을 갖고 시대정신에 투철하고 역사에 큰 기여를 할 수 있는 정직한 새 지도자를 선출한다면, 박근혜의 퇴출은 한국의 민주주의 선진화에 역설적이지만 큰 기여를 한 셈이다. 이 과정에서 다수의 한국인이 보여준 정치적 건강성에 찬사를 보낸다. 이번이야말로 정치공학에 찌든 정상배를 솎아내고 국리민복을 위해 높은 도덕성을 지닌 지도자를 대통령으로 뽑는데 흔들림이 없어야 할 것이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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