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과 한국정치 향방

 



국회 천신만고 끝에 탄핵 가결

지난 9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국내외 여론은 “촛불 민심에 의한 국민의 승리다”라고 평가했다. 국회는 재적의원 300명 중 200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소추안이 가결되는데, 이날 투표 결과는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예측했던 것보다 압도적으로 통과되었다.

기타 기권은 2표, 무효는 7표였으며 친박계인 최경환 의원은 출석은 했으나 투표권을 행사하지 않고 퇴장했다. 새누리당은 찬반이 반반으로 갈렸다.

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 등 야3당은 172명의 의석을 갖고 있다. 야측에서 1명의 배신자도 없다는 전제 하에 탄핵을 가결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8표가 더 필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일이나 5일에 투표를 강행하려고 했으나, 야당 편이면서 탄핵안 통과에 열쇠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비박계 의원들의 태도가 유동적이어서, 투표를 9일로 미루었던 것이다.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과 유승민 의원은, 우선 야당과 협의를 하고 협상이 실패하더라도 탄핵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확약했다.(약 40명 정도). 그런데 돌출 변수가 생겼다. 원로모임에서 제안한 박대통령의 ‘4월 퇴진, 6월 대선’을 새누리당 의원총회에서도 만장일치 당론으로 정했다. 비박도 박대통령의 대답을 기다려 보겠다는 태도로 바뀌었다.

비박의 주장은 박 대통령 스스로가 처음으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마당에 ‘질서있는 퇴진’을 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런데, 굳이 탄핵까지 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과 원내총무 정진석을 청와대로 불러, 물러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차라리 탄핵을 받더라도 헌재의 결정을 기다리겠다고 선언했다. 만약 박 대통령이 4월에 하야하겠다고 약속했다면 탄핵이 불가능했을지도 모르는 아슬아슬한 순간이었다.

해외서 밤 새우며 실황중계 시청

해외동포들도 이번 사태에 관심을 갖고 밤 새워가며 투표 실황중계를 시청했다. 한국시간 5시쯤이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시카고 시간으로 새벽 2시다. 나는 일찍 자고 새벽에 일어날까? 생각도 했으나, 국회 안팍의 움직임과 투표과정을 보고 싶어서 아예 밤을 새우기로 작정했다.

시카고 컵스가 108년 만에 클리블랜드를 꺾고 우승한 월드시리즈 이상의 흥미를 갖고, 한국국회의 역사적인 탄핵 실황중계를 손에 땀을 쥐어가며 시청했다. 더우기 신문기자로서 4.19 학생혁명, 6.29 민중혁명, 5.18광주사태에 버금가는 역사적 취재 현장에 가 있지는 못했어도, TV를 통한 간접경험을 꼭 하고 싶었다. 폭풍전야, 수백 만의 촛불이 이끈 하늘의 심판, ‘명예혁명’을 증언하고 싶었다. 국회 탄핵안 처리는 약 70분 동안 조용하게 진행됐다. 예상보다 빠른 시카고 시간 새벽 1시쯤, 정상균 국회의장의 탄핵 소추안 가결이 선포됐다. 의사당 안에 어디에서도 환호나 박수가 없었다. 방청석의 세월호 유족들이 환호와 박수를 치기는 했으나, 본회의장의 분위기는 차분했다. 야당은 사전에 통과되더라도 박수나 환호를 하지 말라고 인지시켰다.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평화적인 시위를 벌이던 1만여 명의 시민들은 일제히 환성을 지르며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나누었다. 덩싱덩실 춤을 추는 사람도 있었고 더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깃발을 휘날리는 사람도 보였다. 세월호 3년 상을 치르는 유가족들도 다같이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다. 사필귀정이다. 나는 앉았던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나도 모르게 박수를 치면서 소리를 쳤다.

시카고 컵스의 승리는 게임에 불과하지만, 촛불의 승리는 가슴으로부터 불과 같은 뜨거움이 솟구친다. 광장의 형제자매와 찬성표를 던진 여야 의원들이 고맙다. 사랑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이는 인간역사에 장엄한 파노라마다. 앙시앵 레짐(구체제)을 끝내라는 엄숙한 명령이다. 새나라 건설에 앞장 서라는 진군의 나팔소리다.

권력의 사병화, 부정부패와 온갖 편법을 개혁하고, 국민 우롱과 국정농단을 심판하기 위한 첫 걸음이다. 앞으로 진행될 개헌 논의, 특검과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눈 부릅뜨고 예의주시해야할 것이다. 더 이상 ‘나라같지 않은 나라’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굳은 다짐을 맹서하는 순간이다.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가

지금까지 헌정사에서 대통령 권한이 중단된 상황은 4.19 혁명, 5.16 군사쿠데타, 12-12사태, 노무현 대통령 탄핵에 이어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이 5번 째다. 그리고 국회의 탄핵안이 헌재로 넘어간 사태는 노무현 대통령에 이어 이번이 2 번째가 된다. 2004년 노 대통령 탄핵은 민의와는 동떨어진 다분히 정략적이고 감정적인 것이었다. 1

7대 총선을 앞두고 노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라고 말한 것과 “개헌 저지선까지 무너지면 그 뒤에 어떤 일이 생길지는 나도 모른다” 는 발언이 문제의 발단이다.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했다며, 새천년민주당, 자유민주연합과 작당해 노대통령을 탄핵했다.(195명 투표 193표 찬성). 헌법재판소는 2004년 5월14일 “노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을 일부 위반을 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 않다고 판단, 기각을 시켰다. 당시 광화문 민심은 70%가 탄핵을 반대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은 그의 무능과 허위, 최순실과의 국정농단, 국가기밀 누설, 세월호 7시간 의혹, 직무유기, 제3자 뇌물혐의라는 구체적 범죄 혐의로 국회에서 탄핵을 받았기 때문에 노 대통령의 탄핵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또 이번 헌재 재판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박 대통령이 국정농단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고 식물 대통령이 된 점, 혁명적인 민심을 고려해야 할 부담, 또 재판관 개인 의견서를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보수 일색의 헌재라도 기각을 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법학 전문가 대부분은 탄핵이 불가피하다고 내다보고 있다. 생각조차 하기도 싫지만, 만약 탄핵이 기각된다면 이후 불어닥칠 엄청난 ‘후폭풍’을 어떻게 감당할지 큰 우려를 자아낸다.

박근혜 '피눈물의 의미' 터득

박근혜는 3차 국민담화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여러 문제는 국가를 위한 공적 사업이라고 믿고 추진했던 일이다. 이 과정에서 어떠한 개인적 이득도 취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어떤 방송인은 박근혜는 ‘바보’이거나 ‘거짓말쟁이’라고 설명했다.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이 잘못한 점은 하나도 없고 ‘애국자’ 임을 강변한다. 국민 96%가 믿지 않는 소리다.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대통령은 국무위원 간담회에서 “피눈물이 난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 어떤 말인지 알겠다”며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봐라, 제주 4.3사건, 간첩으로 몰려 죽은 수 많은 양민들, 고문으로 숨진 민주인사들, 인혁당 사형수들, 세월호에 수장된 학생들과 유족에 일말의 연민을 가졌는가? 개인적인 욕심이 없고 애국자라니 묻는 말이다. 생때같은 어린 생명 수백 명이 바다에 빠진 선체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칠 때, 대통령은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분초를 다투는 위기상황에 대통령은 맨발로라도 뛰쳐나가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으로서...비록 떳떳한 일이 아닐지라도, 이 판에 솔직히 그 시간에 무엇을 했는지 고백하는 것이 대통령의 도리라고 생각한다.

황 권한대행 국회와 대화하도록

새누리당은 현재 난파 직전이다. 군대에서 쓰는 속어로 ‘개판 1분 전’이다. 대통령 권한 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행이 아니라 대통령 행세를 하려고 한다. 매사 국회와 일언반구 협의도 없이, ‘완장’ 믿고 권력을 휘두른다. 다 박근혜가 뿌린 씨다. 민주당은 탄핵에 주력하느라고 이번에 많은 것을 양보했다. 당초 대통령이 2선으로 물러나면(직무정지), 국회에서 존경받는 거국 중립내각을 구성해서 난국을 수습하기로 했다. 황 총리는 법무장관때부터 김기춘과 코드가 맞는 극우파로 종종 비난을 받아왔다.

이번과 같은 혁명적 시기에 맞는 인물은 절대 아니다. 박근혜 게이트의 부역자다. 이번 주말 촛불 시위는 ‘황교안 물러가라’가 주제라고 한다. 세상 바뀐 것을 모르는 ‘가짜 보수들’의 집요함과 억지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진행되고 있는 국정조사, 특검, 헌재의 움직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하늘이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개헌 논의,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탄핵은 부끄러운 일이지만, 썩어 악취 풍기는 구악을 일소하고 새 역사 창조를 위해 하늘이 준 기회이다. 내년 봄이나 가을 전에 우리는 새 대통령을 뽑는 희망을 갖고 있다.

오늘 신문은 전 총리를 역임한 정운찬이 대선 출마의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현재 대한민국은 대통령 후보자가 차고 넘친다.

이번이야 말로 정직하고 연민을 지닌 국민의 진정한 친구, 실력있고 성실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 민주주의 역사인식에 투철한 민주 공화국의 정치가를 우리의 새 대통령으로 선출하자. ‘못난 대통령’ 잘못 뽑아 국정이 마비되고, 촛불로 지고 새는 시대를 마감하자.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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