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병기 칼럼

버지니아 동포들 역사적인 큰 일 했다

미국 수도 워싱턴의 인접 주로 50개 주 가운데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버지니아주 의회는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한일간의 마찰을 빚고 있는 동해병기 볍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안은 지난달 상원에 이어 이달 6일 하원에서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주지사가 서명을 하면 빠르면 2015에, 늦어도 2017학년부터 주 교육위원회가 승인하는 모든 교과서에 일본해 (Sea of Japan)와 함께 동해(East Sea)도 같이 써야 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일본이 ‘일본해’를 고집하는 이유는 독도에 대한 야욕 때문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한국은 ‘한국해’라고 요구하지 않았다. ‘동해’로 고치자고 하지도 않았다.

북한처럼 동해를 '한국동해(East Sea of Korea)' 로 하자고 주장하지 않았다. 일본해와 동해를 병기하자고 주장했을 뿐이다. 이런 합리적인 요구를 묵살하는 일본은 침략전쟁의 잘못과 위안부 사건 등 역사의 진실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손바닥으로 해를 막으려 하지 말고 독일처럼 잘못을 시인한 후 사과하고, 그리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국제사회에서 해협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 가운데, 어느 특정국가의 이름을 붙인 경우는 일본 밖에 없다. 예를 들면 영국과 동쪽의 네덜란드 사이의 바다 이름은 영국 해도 노르웨이해도 아닌 그냥 북해(North Sea)일 뿐이다. 덴마크와 노르웨이 사이의 바다 이름은 덴마크 쪽에는 덴마크해로, 노르웨이 쪽은 노르웨이해로 각각 표기하고 있다.

‘동해’ 역사적 사실 세계에 확인

이번에 동해병기법안 통과가 갖는 의미는 각별하다. 수 천년 지켜온 ‘동해’를 일제 강점 후 ‘일본해’로 적어온 잘못을 시정하여 동해의 역사적 사실을 세계만방에 확인했다는 점이 큰 성과다.

역사적으로 동해 표기가 시작된 것은 기원 전부터다. ‘삼국사기’ ‘삼국사절요’ 기록과 ‘광개토왕 비문’까지 멀리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한국의 동해포럼 회장 김신 박사의 유럽 고지도 분석 연구에 의하면, 객관적인 서양지도에 이 해역이 최초로 동해라고 표기된 것은 1440년 카르피니의 빈랜드 지도(Vlnland Map)라고 한다.

하버드대학에 소장된 1612년 중국인이 발행한 ‘4해화이총도’ 문헌에도 한자로 동해가 표기되어 있다. 포르투갈의 아시아 지도에 1615년 Mar Coria로 표기되어 있다. 또 다른 역사자료에 의하면 1721년 아시아 지도, 1737년 프랑스 지도, 1744년 마르코폴로 여행지도, 1785년 영국의 딜리(Dilley)와 로빈슨(Robinson)이 제작한 지도 등 등에 한국해로 표기되어 있다. 이렇게 18세기까지 동해나 한국해로 표기된 것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19세기 중반 이후 한국의 쇄국정책으로 일본해가 더 많이 표기되기 시작했다. 동해를 일본해로만 적은 관행은 한반도 일제 강점기인 1929년부터 시작됐다.

일본의 전방위 로비와 협박 실패

독도를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은 2011년 8월 해상 강국인 미국과 영국, 국제수로기구(International Hydrographic Organization, IHO)로부터 일본해로 단독 표기해야 한다는 공식지지를 받았다. 여기에 자극을 받은 미주동포들이 동해병기 청원운동 등 시민운동을 전개했다.

김종갑 전 시카고 한인회장은 수 천명의 서명을 받아 IHO 국제수로기구에 발송했고, 이근무(보타닉 가든 클럽 회장)씨와 함께 모나코 총회에 참석, 동해병기 관철 운동을 하고 왔다. 3년 동안 동해병기법안 운동을 주도해온 ‘미주한인의 목소리’ 관계자들이 처음 미정치인들을 만났을 때는 병기는 고사하고 동해 자체를 몰랐으며 사안의 중대성에 대해서는 더더구나 관심 밖 이었다고 한다.

또한 미국 연방정부의 ‘단일지명’원칙과 주미 일본대사를 앞세우고 협박도 마다 않는 전방위적 로비에도 불구하고, 버지니아법안’이 성공 할 수 있었던 것은, 주의원들에게 역사적 정당성을 설득시킨 한인사회의 보팅 파워를 지닌 풀뿌리 시민운동의 끈질긴 노력의 힘이다.

또 버지니아는 남부의 6개 주와 교과서 협력관계를 맺고 있어 다른 주로 파급이 예상 된다. 이미 뉴욕과 뉴저지주의 동포들도 버지니아에 자극을 받아 행동에 나섰다. 캘리포니아주도 동참의사를 밝혔다. 일본의 우경화와 아베 총리의 망발이 연이은 가운데 발생한 이번 일은 미주동포사회의 결속은 물론 본국 정부의 교민정책에도 변화를 가져올 것이며, 주류 사회의 정치력 신장에도 크게 기여하리라고 믿는다.

미주 한인이민 100년사에 새장

동해병기운동을 주도해온 ‘미주한인의 목소리’ 피터 김 회장이 말한 “미주 한인 이민사 111년 역사의 새장을 열었다”고 한말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다만 결과만을 너무 과대 평가해서 자만에 빠지거나 자체 분란이나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최근 뉴욕동포사회는 추진위 구성을 둘러싸고 단체간 주도권 싸움을 벌이고 있다. 버지니아의 경우, 50여개 단체가 하나로 뭉쳤다. 몇 시간 걸리는 의사당까지 차를 몰고가 의사당을 가득 매웠다,

버지니아 한인동포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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