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와 동편제 여행의 감동

수술 뒤끝에다 주위에 가까웠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세상을 떠난 힘겨운 봄을 보내고, 고국의 정취와 흙냄새를 맡으며 기분전환을 위해 지난 달 한국을 다녀왔다. 나는 자신을 찾고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여행을 게을리하지 않는 편이다.

팔순 형님을 모시고 제주도 3일, 부산, 경주, 구미의 박정희 생가와 금오산, 양반 고을 안동 하회마을, 201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 강원도 평창, 젊은날 대청봉까지 올라갔던 설악산의 신흥사 등 4일간, 소위 ‘동편제’ 여행을 하고 왔다. 2년 전에는 목포, 강진, 순천, 나주, 해남 등 ‘서편제’를 돌았다. 그 때도 ‘형제는 용감하게’ 강산을 함께 누볐다. 어디를 봐도 많이 깨끗해졌다. 볼 것도 많지만 음식 맛이 가는 곳마다 일품이다. 서편제에는 계백의 정기가 맑다. 거기엔 성리학의 대가 다산 정약용이 있고, 김대중이 있다. 동편제에는 신라의 유산이 찬연하다. 불국사와 석굴암이 있다. 임진왜란 때 국난 극복의 공신인 뛰어난 명상 서애 유성룡이 있고, 거산 김영삼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 생가 구미 방문

이번 여행의 인상적인 곳 중의 하나는 경북 구미시 박정희 대통령 생가와 금오산의 수려함이다. 처음 가본 금오산은 참 아름답다. 그 산의 정기를 받아 박정희 대통령이 탄생한 것 같다. 인물의 크기에 비해 기념관 규모나 위상이 너무 초라했다. 나는 방명록에 “3선까지만 하시지, ‘유신’으로 이룩한 공을 화로 부르신 어른이시여, 나라와 가난을 구한 대통령의 생가에 들르니 감회가 깊으며 삼가명복을 빕니다” 라고 썼다. 구미시는 2013년 착공한 새마을운동 태마공원 준공식을 박 대통령 탄생 100주년이 되는 내년 11월14일 준공할 예정이다. 생가 주변 대형 새마을기 게양대, 뮤지컬, 기념우표 등 막대한 에산을 들여 대대적인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한편 시민단체들은 박정희 독재미화와 우상화라는 이유를 들어 논란을 빚고 있다.

서쪽이든 동쪽이든 어디를 가나 전쟁과 분단의 아픔, 민족의 한이 서려있기는 마찬가지다. 서편제에는 여수 순천 반란과, 남부군, 지리산의 공비들이 떠오르고, 동편제에는 낙동강을 비롯해 38선, 태백의 철의 삼각지, 백마고지 등 6.25 전쟁의 상흔이 아직도 동족상잔의 아픔을 상기시키고, 곳곳에 크고 작은 전승비가 외롭게 여행객을 맞이했다. 젊은날 사병으로 유격훈련을 받던 강원도 산골은 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꼭 한번 찾아 가리라. 동편제의 대미는 설악산 울산바위와 신흥사에서 장식했다.

제주도는 1961년 대학교 2학년 때, 목포에서 배를 타고 제주시에 도착,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에서 야영을 한 것을 시작으로, 1971년 처음 비행기를 타 본 신혼여행, 그 후 몇 번의 결혼기념일, 세미나 참석을 위한 수많은 단체여행, 그리고 올해 3일간 자유여행 등등 10여 차례 이상을 다녀왔다. 탐라라 불리우는 이 고장은 기후가 좋아 풍광이 아름답다. 청정바다도 좋지만 어머니 품같이 안온함을 주는 한라산도 만날 때 마다 푸근하다. 그래서 천혜의 제주도는 대한민국 관광 1번지다.

결코 하와이에 뒤지지 않으며, 홍콩이나 싱가포르에 비해 상당히 문화적이라는 장점을 갖고 있다. 또 세계적인 여행 전문가들은 제주도를 포루투갈의 ‘마데이라’에 비유하기도 한다.

중국 관광객들
한국 ‘점령’

요즈음은 제주도에 중국 관광객이 대거 몰려오고있다. 마침 한국 방문 중 황금연휴를 맞은 유커(중국 관광객) 14만 명이 서울을 ‘점령’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대서특필되었다. ‘중마이그룹’ 모범사원 4천 명이 한강공원에서 삼계탕 파티를 즐겼다는 뉴스다. 이들은 일본 관광객 보다 3배나 돈을 많이 써, 500억 원의 경제효과를 보았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 일정액 이상을 투자하면 영구 거주할 수 있는 혜택을 주기 때문에 제주도의 부동산 가격이 한 해 25%가 뛸 만큼 폭등했다. 원희룡 도지사는 제주의 미래비전에 대해 “청정과 공존이다” 라고 확신한다. 인구 급증과 건축 붐, 산업화로 인한 환경 오염이 우려되는 점이라는 것이다. 특별히 “이주민과 정착민과의 융화문제와 갈등을 민간 주도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큰 과제다” 라고 원 시장은 최근 지역신문과 인터뷰에서 강조했다.

제주도는 ‘4.3 사건’이라는 엄청난 비극을 겪은 섬이기 때문에, ‘평화의 섬’으로서의 공존은 인간존중 사상으로 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도민들의 생각을 그는 전했다. 이번에 나는 아는 분의 차를 타고 호텔이 위치한 제주시에서 왼쪽으로 곽지, 애월, 한림, 모슬포항, 대정을 거쳐 가파도와 마라도로 가는 항구를 지나 중문관광단지를 들르고 서귀포 쪽으로 해서 한바퀴 돌았다. 나는 50여 년전 한라산 등반대의 일원으제주도에 처음 갔다. 그때 곽지와 애월의 해변은 모래사장이 넓고 물이 맑아 해수욕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이 코스에서 찾아간 ‘김대건신부 기념관’과 표류한 ‘하벨상선 기념관’은 천주교 신자로서 감동을 받은 곳이다.

서귀포서 살다간 천재화가

서귀포에서는 가난했던 천재화가 ‘이중섭 뮤지엄’ 방문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근대 한국 화가로 박수근, 김환기와 함께 최고의 사랑을 받고, 일본서도 천재 화가로 잘 알려진 이중섭의 유산을 서귀포에서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에겐 큰 기쁨이었다. 원산이 고향인 그가 6.25 전쟁 때 서귀포에 잠시 피난 내려와 3평짜리 집에서 일본인 부인( 이남덕-야마모도 마사꼬)과 두 아이 등 4식구가 궁핍한 생활을 하던 흔적이 이곳에 남아있다. 부뚜막에 얹어놓은 2개의 작은 솥뚜껑이 소꼽장난 처럼 애잔하다. 고향 원산서는 일본에 유학을 가고 프랑스 유학을 꿈꿀 정도로 부유하게 살았다. 둘이서는 1945년 5월 해방되기 석달 전 원산서 전통혼례식을 갖고 1950년 6.25전쟁이 나기 전 까지는 풍요롭고 행복한 삶을 누렸다. 시부모의 권유로 월남해 서귀포에 잠시 살다가 한참 전쟁 중인 1952년, 부인 혼자 5살과 3살 짜리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이중섭 화가 부부의 영원한 이별이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이들은 1956년 이중섭이 타계할 때 까지 현해탄을 넘나드는 200여 통의 비련의 편지와 엽서로 그리움을 달랬다. 그의 대표작인 ‘황소’는 절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이중섭의 자화상이다. 이들의 애절한 순애보는 기념관에 보전돼 있다. 도화지 살 돈이 없어 대작을 그리지 못한 비운의 화가를 생각하면 내 마음도 저려온다.
유흥준 교수는 “소월의 시는 가져보지 못한 것에대한 그리움, 중섭의 그림은 잃어버린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라고 표현했다. 생전에 다시 가보고싶은 애틋한 곳이다. 다음날은 제주시에서 ‘4.3 평화공원’을 방문하고 오른쪽으로 돌아 우도와 성산포로 가는 도중에 해녀박물관을 들렀다. 제주도, 라고 하면 한라산, 해녀, 바람과 돌이 아이콘인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이번 제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이중섭 뮤지엄, 4.3 평화공원, 그리고 해녀박물관을 꼽을 수 있겠다. 역사적 사건으로 4.3사건을 공부하고 관심을 갖게된 것은 나에게 큰 수확이었다.

4.3사건 때 5만 내지 3만 명 피살

제주 4.3사건은 해방공간인 미 군정기에서 부터 대한민국 건국이후 7년 7개월 동안 국가의 공권력과 민간집단이 충돌, 5만 내지 3만 명의 주민들이 희생된, 6.25전쟁 다음으로 인명 피해가 가장 극심했던 사건이다. 미군정은 유해진 제주지사와 협력해 서북청년단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테러와 고문을 일삼았다. 1947년 경찰 발포로 6명이 숨졌다. 1948년 4월3일, 남로당 제주도당이 중심이되어 무장봉기를 일으켰다. 이것이 4.3사건이다.

‘4.3평화 기념관’은 불의에 맞서 싸웠던 제주도민의 저항정신과 동족 간의 자행된 처참한 살육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이다. 또 오랜 세월 동안 폭도로 몰려 억울하게 학살당한 원혼을 달래주고 기억하며 화해와 상생의 미래를 열어가기 위한 평화와 인권기념공원이다. 1980년대 말 6월 민주항쟁과 6.29선언 이후, 제주 민간사회단체는 4.3진상규명과 위령사업을 끈질기게 요구해 왔다. 4.3 평화공원사업은 이들의 공동체적 보상의 하나로 이루어진 것이다. 1995년 제주도는 공원조성계획을 발표했다. 그 후 1999년 김대중 대통령은 제주를 방문, 특별교부금지원을 약속했다. 이듬 해, 특별법을 공포하고 부지를 매입했다. 이 사업은 2002년3월에 시작되어 2008년 2월에 완료하고 곧 개관했다.

역사는 승자의 것이다. 영웅만을 기념하던 인류는 20세기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민중의 역사를 기념하기 시작했다. 4.3사건이 그렇다. 제주 4.3사건에 대한 헌법적 정의는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라고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제 2조는 명기하고 있다. 위치는 제주시 봉개동 한라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219,031 제곱미터의 광활한 부지를 지니고 있다. 시설 내용은 모녀상(비설), 평화기념관 전시실, 위령탑, 상징조형물(귀천), 각명비, 1,400여 명 위패봉안소, 추모승화광장, 행방불명인의 표석(진혼), 유해봉안관, 관리사무실, 주차장 등을 갖추고 있다.

나는 이 곳에 3시간 반 동안 머물었다. 취재를 겸한 여행이라고 하니까, 안내양 고은경씨는 보통 30분 하는 해설을 내겐 1시간 반을 할애해 주면서 많은 질문도 받아주었다. 위패봉안소에 들러 수 많은 ‘고’씨와 ‘강’씨 위패 앞에 분향하고 물에 젖은 제단앞에 엎드려 산자의 죄를 빌고 동족에 대한 연민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신영복의 여행기 ‘더불어 숲’

나는 얼마전 고인이 된, 전 성공회대학교 교수인 신영복씨의 책 여러 권을 섭렵했다. ‘강의’ ‘담론’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처음처럼’ ‘더불어 숲’ ‘변방을 찾아서’를 모두 읽었다. 나에겐 역시 160여 개국을 여행하고 중앙일보에 연재한 신영복의 세계여행기인 ‘더불어 숲’과,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국내 여행기인 ‘변방을 찾아서’가 가장 큰 감동을 주었다. 스패인의 우엘라 항구에서 시작해서, 중국의 태산에서 마지막 글을 띄우는 것으로 책을 끝내면서, 신 교수가 가장 감동과 충격을 받은 곳은 ‘드네프르’강 언덕의 ‘여인상’이었다. 그의 말대로 독서는 독자가 재구성한 것이라고 하지만, 작가의 진의를 가감없이 전하기 위해 본문을 그대로 인용하겠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에프의 드네프르 강 언덕에는 전승 기념탑이 서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수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독일의 침략을 물리친 전승을 기념하는 탑입니다. 나는 그것이 전승기념탑인 줄도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언덕에 서 있는 여인상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생각하는 전승기념탑과는 너무나 다른 모양이었기 때문이지요. 의아해하는 나에게 들려준 안내자의 설명은 참으로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습니다.

전승이란 전쟁에 나간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이 가장 잘 보이는 언덕에 어머니가 서서 기다리는 것, 그것만큼 전승의 의미를 감동적으로 나타내는 것이있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전승기념탑이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워싱턴에 있는 전승기념탑이었습니다. 해병병사들이 역동적인 동작으로 성조기를 고지에 세우고 있는 형상이었습니다. 전승은 적군을 공격하여 진지를 탈환하거나 점령하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나 자신의 생각이 부끄러웠던 것이지요” 생각을 깊이해 보면, 키에프의 여인동상이나 제주 4.3기념관의 위령탑이나 일맥상통하는 그 상징적 일체성은 인류의 염원인 ‘평화’와 ‘사랑’의 지향이 아니겠는가?

여행은 사람과 역사의 만남

여행은 가슴설레는 떠남이고, 새로운 사람과 역사와의 만남이다. 나는 이번 고국 방문을 단순한 관광이 아닌 순례자의 여행을 하고 왔다고 생각한다. 오스트리아의 여행 칼럼니스트인 카트린 지타(Katrin Zita)는 순례여행은 “개개인을 성장하게 만들고, 타인과 좋은 관계를 맺도록 돕고 영혼의 상처를 치유해 주어 결국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했다. 과거의 여행은 종교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으나, 현재는 자아를 찾고 정신적 성숙을 위해 여행을 떠난다. 인류는 작게 보면 모두 개개인으로 존재할 뿐이지만, 크게 보면 지구라는 한 배를 탄 동료이기도 하다고 설파했다. 이번 여행이 나에게 순례자의 깊이를 더해 줬다면, 나는 일상에서도 여행자 처럼 자유롭게 살려고 한다. 수구초심의 노스탈지어와 쓰라린 역사에 대한 연민을 함께 나누기 위해, 건강이 허락하는한 또 고국을 찾을 것이다. 이민자의 고향 방문은 언제나 ‘커밍 홈’ 이며 ‘귀천’ 이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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