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나라 쿠바, 다시 가까운 이웃으로

“냉전의 찌꺼기 묻어 버리자” 연설

오바마 대통령이 쿠바에 도착하자 쿠바국민에게 트위터를 통해 제일 먼저 한 말은 ‘케 볼라 쿠바’(Que bola Cuba-쿠바 잘 지냈습니까)였다.

쿠바에 있는 미 대사관 직원들에게는 “1928년 제6차 미주회의에 참석차 캘빈 쿨리지 대통령이 군함을 타고 이곳에 오는데 3일이나 걸렸다. 나는 3시간 밖에 안 걸렸다” 88년 만에 쿠바 땅을 밟은 미국 대통령이 한 말은 멀고도 가까운 두 나라 사이를 상징적으로 잘 표현했다고 생각한다.

오바마 대통령이 21일부터 2박3일 동안 쿠바를 방문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정상회담을 갖고, 쿠바 국영TV 방송을 통해 아바나 국립극장에서 생중계로 직접 쿠바 국민을 상대로 역사적인 감동의 연설을 했다.
이제 두 나라는 새날을 맞았다며 “아메리카 대륙에 마지막 남은 냉전의 찌꺼기를 묻어버리자” (Burying the last remnant of the cold war in the Americas”라고 당당하게 말했다.

두 나라의 문이 열리는 데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중재도 한 몫했다. 오바마와 카스트로는 3년 전인 2013년 만델라 추도식서 악수를 한 후 서로 마음문을 열고 소통한 것이 큰 역사 창조의 첫 발이었다. 카스트로는 오바마를 정직한 사람으로 믿었고 오바마는 라울 카스트로를 형인 피델 카스트로가 갖지 않은 개방의 의지를 읽었기 때문에 성사된 것이다.

국제정치에 뛰어난 감각을 지닌 닉슨 대통령은 재임 중 미중 국교정상화라는 대업을 이루었으나 제대말년(임기말) 워터게이트 사건에 밀려 불행하게도 탄핵을 받고 퇴역을 했다. 여기에 비해 오바마 대통령은 어떠한 ‘게이트’도 없이 깨끗하고 ‘레임덕’(임기말 권력누수현상)도 겪지 않고 자신이 계획한 대로 마지막 해의 임기를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가 계획한 것은 세계에서 가장 고립한 이란, 쿠바,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위한 정상회담이였는데, 이라크는 핵포기를 선언했고, 쿠바와는 국교정상화를 이룩했다. 역사의 평가를 받을 만한 오바마 대통령의 큰 정치적 유산이다. 이제 남은 숙제는 북한 뿐이다.
닉슨 중국 방문과 비교되는 대사건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닉슨과 모택동의 역사적인 ‘핑퐁외교’를 되돌아 가 보자. 미중 국교정상화 회담은 스포츠가 외교적 다리를 놔주어서 시작됐다. 1971년 3월 28일 일본 나고야에서 세계 탁구선수권대회가 열렸다. 여기서 만난 중국팀이 미국팀을 초청했다. 미국팀 15명이 곧바로 4월10일 북경에 도착했다. 이들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수립한 이후 중국 대륙을 공식 방문한 최초의 미국인들 이었다.

훗날 ‘핑퐁외교’로 기록되는 이 사건은 이와 같이 우연히 갑작스럽게 이루어진 것이다. 물꼬를 튼 양국은 본격적인 대화에 나섰다. 석 달 뒤 키신저 특별보좌관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 주은래 수상과 만났다. 7월 15일 닉슨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갖고 이 사실을 발표했다. 10월에는 중국이 오랜 숙원인 유엔에 가입한다. 닉슨 대통령은 7개월 후인 1972년 2월 21일 역사적인 중국을 방문했다.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는 중국으로 하여금 개방으로 나가게 하는 모멘트를 제공했다.

‘세상에서 가장 흉포한 적’이라고할 정도의 적대관계였던 미국과 중국의 관계정상화는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공동 목표가 이유였다면, 미국과 쿠바의 국교정상화는 오바마의 포용외교와 카스트로의 실용주의의 결과물이다. 영원한 원수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국제관계의 냉엄한 현실을 북한이 공부 좀 했으면 좋겠다. ‘상전벽해’로 변한 중국과 엄청난 변혁이 일어날 쿠바는 우물안 개구리로 고립되어 살아온 북한에 대한 큰 경종일 뿐만 아니라 교과서가 되어야할 것이다

작년 8월 아바나에 대사관 재개설

2014년 12월 미국과 쿠바가 국교정상화를 선언한 이후, 양국의 실무진은 후속사업을 점검하고 관계 진전에 걸림돌이 되는 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해 왔다. 작년 8월에는 서로 대사관을 재 개설하고 공식 외교관계를 복원했다. 백악관 인근에 쿠바기가 휘날리게 된 것이다. 양국이 외교관계를 단절한 것은, 철저한 마르크스- 레닌주의자였던 피델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가 1959년 미국이 지원하던 부패한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Fulgencio Batista) 정권을 전복 하면서부터 발단이 되었다. 카스트로와 케바라는 쿠바공산정권을 수립한 후 미국 기업을 국유화 했다. 그래서 2년 후(1961년 1월) 미국은 쿠바와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55년 전의 일이다. 그동안 미국과 쿠바는 전쟁 일보 전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케네디 대통령 당시 소련이 쿠바에 미사일 기지를 건설하려 하자 미국이 강력제지, 소련의 함대가 철수한 사건이다.

혁명가 체 게바라 그는 누구인가

쿠바혁명을 이야기 하려면 남미의 혁명아 체 게바라를 설명해야할 것 같다. 체 게바라는 쿠바혁명의 영웅이다. 아르헨티나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의과대학을 나온 의사다. 형형한 눈빛에 올리브색 군복을 입고 큰 별이 박힌 베레모를 쓴 그는 제국주의 타파를 위해 쿠바혁명에 뛰어들었다. 게릴라전의 귀재로 피델 카스트로에 이어 쿠바의 제 2인자로 떠올랐다. 후에 콩고혁명을 지원하러 쿠바를 떠났다. 남미혁명을 위해 볼리비아로 갔다가 1967년 볼리비아 산중에서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그의 시체는 두 손이 잘린채 30년이 지난 1996년 발견됐다. CIA의 소행이라는 것이 공공연한 비밀로 전해오고 있다. 나는10여 년 전 멕시코 시티 여행을 갔다가 유일하게 사온 선물이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T셔츠 였다. 이것을 우리 딸이 즐겨 입는다. 남미에서 체 게바라의 위상은 불세출의 ‘영웅’이다. 우상이며 신화이기도 하다.

CNN 방송은 쿠바 고위 관리의 말을 인용, 만약 체 게바라가 살아 있었다면 오바마 대통령의 쿠바 방문을 환영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실질적 정상화는 금수조치 해제돼야

미국과 쿠바가 반세기 만에 관계 복원으로 다방면에서 교류가 봇물 터지듯 무섭게 진행될 것이다. 이미 미국은 무역, 금융거래 완화, 관광 확대, 송금한도 증액을 허용했고, 쿠바는 12개 분야의 여행 자유화 조치, 건축자재, 농기구 등의 수입도 자유로워졌다. 하지만 실질적인 자유화는 금수조치가 해제되어야 한다. 쿠바의 민주화와 인권개선 문제는 시간이 가야 변화의 물결을 탈것 이다. 콴타나모 미 해군기지 반환도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다.

특파원들의 보도에 의하면 쿠바의 한인 후손은 약 1,000여 명이 살고 있으며, 광복절에는 애국가와 아리랑을 부르며 기념행사도 갖는다는 눈물겨운 소식도 들려오고 있다. 세계한인 무역인협회(OKTA)를 비롯한 경제인들도 쿠바시장 개척에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왔다. 한국과 미주 동포 사회에도 쿠바와의 교류가 증폭되리라고 예상된다. 특히 여행과 관련, 현재는 가족방문, 공무상 방문, 언론인 취재, 민간 베이스 연구, 인도적 사업, 교육, 종교등 12개 분야에 한해서만 자유화 조치가 적용되고 있고 크레딧카드도 쓸 수 없다. 현재 10만 명 선의 미국인 쿠바 여행이 직항선이 개설되고 100만 명 선으로 늘어날 경우, 마음만 먹으면 우리도 쿠바여행을 갈 수 있는 날이 곧 다가올 것이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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