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0대 대통령 레이건과 퍼스트레디 낸시

에트닉 언론사 간부 백악관 초청
1983년은 반세기 나의 기자생활 중에 가장 분주하고 극적인 한 해였다. 연 전 ‘자의반 타의반’으로 한국일보사를 사퇴하고, 잠시 스코키 다운타운에서 비타민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전두환 정권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후 풀려난 김대중 선생이 6월 25일 시카고를 방문, 시내 레인택 하이스쿨에서 ‘한국민주주의의 전망과 교포들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강연회를 개최했다. 그 때 나는 신문사 밖에 있는 입장이어서 동지들과 김대중선생 시국강연회 준비위원으로 적극 활동을 했다. 나는 신문 광고와 벽보 문안의 격문을 쓰고 이것을 식당이나 그로서리에 붙이고 다니는 일을 맡았다. 정보부의 감시가 심한 때라 한국의 가족들이 피해를 입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으나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뛰었다. 시국강연회는 대성공을 거두어 청중 3,000명이 운집한 시카고 이민사의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
그해 가을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시카고 중앙일보 김석성 편집인이 발행인으로 승진하는 바람에 그 빈자리에 내가 편집인 겸 편집국장으로 스카우트되어 내 가게는 종업원에게 맡기고 다시 신문사로 돌아갔다. 데스크에 앉자마자 9월1일 대한항공 007기가 소련에서 격추되어 269명이 숨진 엄청난 사건이 일어났다. 10월 9일에는 버마에서 한국 각료 등 17명이 사망한 아웅산 사건이 터져 눈코
뜰새 없이 바빴다.

레이건과 오찬, 기자회견서 특종
10월 18일, 레이건 대통령이 전국의 소수민족 신문사의 발행인과 편집인 약 40명을 ‘스테이트 다이닝 룸’(국가 원수 등 VIP 파티장)으로 초청해서 식사를 함께 한 후 기자회견을 했다.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을 위한 일종의 사전선거 포석인 셈이다. 그 때 나도 일어나서 질문을 했다. 그 내용이 AP 통신을 통해 전 세계에 타전됐다. 1983년 10월 20일(목)자 시카고 중앙일보는 백악관에서 내가 송고한 기사를 1면 톱기사로 대서특필했다. ‘레이건, 한국방문 재확인’ 이라는 메인 타이틀에 ‘육길원 국장 질의에 레이건 대통령 답변’ 이라는 부제와 함께 대문짝 만하게 편집을 했다. 당시 레이건 대통령의 한국 방문 여부는 세계적인 뉴스였다. 독재자 마르코스가 군림하는 필리핀 방문은 취소 했으나, 독재자 전두환이 지배하는 한국은 예정대로 11월에 방문을 강행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는 형편성에도 어긋날 뿐만 아니라 자유를 앞세운‘레이건 독트린’에도 타당하지 않다고 나는 생각했다. 백악관에 갔다오자 마자 11월에는 청와대에서 전두환 대통령을 만났다. LA와 뉴욕 등 미주사회 목회자와 언론사 간부 10여명이 초청을 받았다.정통성이 약한 전 정권이 해외 여론과 언론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사각 테이블에 둘러 앉아 30분 예정의 간담회가 1시간이 지나서야 끝났다. 나는 전 대통령을 보는 순간 강렬한 인상을 받았다. “아! 이 독재정권 오래 가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석두’라고 선입견을 갖고 만났는데, 역시 지휘관 출신이라서인지 달변에 해박하기까지 했다. 아웅산 사건이 터지고 레이건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할 때라서 이야기의 톤이 강하고 격앙돼 있었다. 그러고보니 그해 나는 현직 대통령 두 분, 미래 대통령 한 분 등 세분 대통령과 만난 행운을 가졌다.

배우 출신 답게 멋진‘정치연기’
지난 주 캘리포니아 벨-에어(Bel-Air)에서 94세에 노환으로 사망한 레이건 전 대통령의 부인 낸시 레이건의 부음을 접하고, 레이건 전 대통령과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떠올라 이 칼럼을 쓰고 있다. 백악관이라는 곳이 기자라고 해서 아무나 아무 때나 가는 곳이 아닌데, 어느 날 나는 백악관으로부터 초대장을 받았다. 누구의 추천으로 선택되었는지 알지 못하고, 신원조회를 받았다. 나는 회견 하루 전날 일을 끝낸 후 카메라를 목에 걸고 워싱턴으로 날아갔다. 라이드는 조선일보 선배인 이남규 워싱턴 특파원이 주었다. 다음날 호텔에서 백악관까지 데려다 주는 것도 이 특파원이 맡았다. “육형, 정치는 ‘로컬’입니다. 나는 한국의 최고 신문의 특파원을 몇년하는 동안 레이건 대통령 근처에도 못 갔는데 직접 만나 식사하고 회견까지 한다니 좋습니다” 차를 몰고 가면서 이 특파원이 몹시 부러운듯 말했다. 중앙일보사 사회부장 출신인 김석성 발행인은 백악관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떤지, 실내악단은 무슨 곡을 연주하는지, 음식 맛은 어떤지? 고주알 메주알 다 적어 오라고 취재 지시를 했다. 나는 열심히 취재를 하고 와, 신문에 2회에 걸처 백악관 방문기를 보도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나,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 것들을 소개하면, 헝거리 출신 언론인은 최고급 차인 롤스로이드를 몰고와 우리 일행을 놀라게 했다. 식당 내프킨은 목욕 타월만큼 컸고 ,금테 두른 큼직한 접시에 메뉴는 양고기 였는데 무척 맛이 있었다. 레드 와인을 서브했다. 75세 고령의 레이건 대통령은 이것을 기분 좋게 다 마셨다. 꼿꼿한 키, 딱 벌어진 어깨, 당당한 걸음걸이, 부인 낸시의 손을 꼭 잡고 가는 그의 모습은, ‘서부의 사나이’ 존 웨인 처럼 미국의 우상이었고 많은 미국인의 스타였다.

항상 웃는 모습의 낙관주의자
그는 늘 미소를 잃지 않고 청산유수처럼 생동감 넘치는 스피치를 했다. 레이건 대통령은 워터게이트, 월남전 패배, 경제불황 등으로 실의에 빠진 미국에 희망과 자신감을 심어주었고 낙관주의와 애국심을 고취했다. 2016년 공화당 대선 출마자들이 자주하는 이야기가 바로 레이건 같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이다. 레이건의 확신과 용기, 소통과 실천의 리더십은 민주당에서도 롤모델로 존경하고 따르려고 한다. 국내 뿐만 아니라 유럽에서도, 특히 동유럽 국가들은 레이건이 역사에 남긴 업적을 다투어 기리고 있다. 소련의 글라스노스트(개방)와 페레스트로이카 (개혁)를 압박해 동유럽의 민주화를 이룩하고 자유의 신세계를 만들게 했기 때문이다.

2011년 레이건 탄생 100주년을 맞아 폴란드 민주화의 성지인 크라코프 성당에선 레이건을 기리는 미사도 열었다.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엔 레이건 동상이 세워졌다. 프라하에는 그의 이름을 딴 길거리가 있다.

레이건의 영원한 동반자 낸시
2004년 10년 간 치매환자였던 레이건이 사망한 후 조용한 말년을 보내던 낸시 레이건 여사가 지난 6일 캘리포니아에서 향년 94세로 사망했다.

잉꼬부부였던 그녀가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한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큰 감동을 주었다. “It is sad to see somebody you love and married so long, you cannot share memory.” (오랜 세월 사랑하고 결혼했던 사람과 더 이상 추억을 나눌 수 없다는 것은 참으로 슬픈 일이다). 이들 부부는 진정한 미국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냈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그녀는 캘리포니아 주지사를 거쳐 대통령이 된 남편의 숨은 조언자였다. 남편을 위한 길이라면 미신도 믿고, 값비싼 옷, 식기, 실내장식을 사들이고, 치마바람이 드세어 백악관 비서실장 도널드 리건을 해임시킬만큼 권력을 휘둘러 ‘퀸 낸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마약퇴치운동에 전념했으며, 남편을 위한 헌신이 국가를 위한 헌신으로 인정받으면서 ‘가장 영향력 있는 영부인’으로 국민들의 사랑과 신임을 받았다.

뉴욕 플러싱에서 태어나 명문 스미스 칼리지를 졸업했다. 1952년 레이건과 결혼하기 전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첫 작품 류트 송(lute Song)에선 율브리너와 연기하기도 했으나 C급 수준이었다. 낸시와 레이건과의 만남은 우연이 아닌 운명적인 것이었다. 1949년 메카시즘 선풍이 불던 당시 영화배우 직능협회 회장이던 레이건에게 자신이 공산주의자라는 오해(동명이인)를 풀기위해 도움을 요청하면서 만나기 시작한 것이 결혼으로 꼴인했으니 말이다.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을 받은 레이건의 첫번째 부인 제인 와이맨(Jane Wyman)은 최고의 명예와 권력 그리고 ‘들어온 복’을 차버린 비운의 여배우로 끝났다. 사람 팔자 누가 알겠는가? 낸시 레이건은 11일 캘리포니아 시미밸리 레이건 대통령기념관에서 가족장을 거행한 후, 제40대 미국대통령인 남편 곁에 묻혔다.

2016년 미국 대선이 한참 열기를 뿜고 있다.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민주 공화 다 마땅한 인물이 없다. ‘레이건’ 대신 차선을 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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