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 최초의 미국시민 서재필 박사

송재 서재필 박사( Dr. Philip jaiSohn)는 미주 한인들의 이민 대선배로 해외에서 독립운동에 앞장 선 분이다. 보통 1903년 하와이 사탕수수 농노이민을 한인 이민사의 효시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1885년 미국에 망명 온 서재필이 5년 후인 1890년 시민권을 받고 귀향하기 위해 1895년 11월 7일 처음으로 미국 여권을 신청 했으니, 한인 시민권자 1호인 서 박사야말로 우리 이민의 시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혁명은 3일 천하로 실패하고, 일본을 거쳐 미국에 이주한 후 의사로서 미국사회에 의술로 봉사하는 한편, 전 미주동포 대표들을 필라델피아로 모이게 하여 한인 자유대회를 개최하는 등 조국 광복에 헌신했다. 한때 인쇄소와 문구점 사업에 성공해서 번 돈은 상해 임시정부의 독립자금으로 모두 보냈다.

독립신문 창간 민중계몽

1895년 귀국한 서 박사는 서대문에 독립문을 세우고 독립협회를 조직했으며, 1897년 한국 최초의 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했다. 독립신문은 사회발전과 민중계몽에 큰 역할을 했으며, 창간 기념일인 4월7일을 ‘신문의 날’로 정해 이를 해마다 기념하고 있다. 서재필 박사는 외세배격과 자주독립, 개혁사상을 유포하다 정부의 미움을 사게돼 기우는 국운을 당할 수 없어 더 큰 꿈을 실현하지 못하고 조선정부로 부터 추방을 받고 2년 반 만에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가 남긴 씨는 열매를 맺어 1919년 3월1일 만세사건의 밑거름이 되었고 삽시간에 전국으로 번졌다. 서 박사는 충청남도 논산 출신인 서광언씨의 둘째 아들로 1866년 전라남도 보성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과거에 급제, 이듬해 김옥균과 운명적으로 만나게 된다. 이들은 일본의 근대화에 자극을 받아 개화운동에 앞장섰다.

그는 1882년 고종황제의 도움을 받고 유학생단을 이끌고 일본으로 건너가 ‘도야마’ 군관학교에서 무예를 익히고 고종이 보는 궁궐 안에서 총검술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이것은 어느날 올 ‘거사’의 준비였다. 서재필은 약관 19세에 김옥균과 함께 우정국 건물 준공 축하연을 ‘D데이’로 잡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혁명은 3일천하로 끝나고 가족은 참살당하고 두 살 짜리 아들은 돌 볼 사람이 없어 굶어 죽었을 만큼 풍비박산이 되었다.

그의 탄생 150주년을 맞아 서재필 박사의 생애와 업적을 다시 조명해 보는 것은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동부의 필라델피아는 한때 미국의 수도였던 역사적인 도시다. 독립기념관과 자유의 종이 있는 곳이다. 필라델피아는 한민족의 위대한 선각자 서재필 박사의 제2의 고향이다. 이곳은 우리 이민자와 똑같이 서 박사가 평생동안 터를 닦고 뿌리내리고 살던 곳이다. 곳곳에 서박사의 흔적이 남아있다. 우리 민족의 지도자로 하와이에 이승만, 서부LA에 도산 안창호, 중국 상해에 김구 선생, 하얼빈에 안중근이 있다면 동부 필라델피아에는 서재필이 있다.

서재필 기념관

역사교육 현장 서재필 기념관


나는2003년 한인 미주이민 100주년의 해를 앞두고 필라시에서 30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 미디아(Media)의 서재필 기념관을 방문했다. 이곳은 그가 1925년-1951년까지 26년간 살던 집이다. 서 박사가 여기를 근거지로 독립운동을 벌인 곳으로 미국 내 항일 유적지로 꼽히고 있는 역사적인 곳이다. 나는 당시 서 박사가 거닐던 뜰에 서서 의롭고 외로운 생을 살다간 한 위대한 거인의 체취를 느끼며 숙연함과 함께 자연히 머리가 숙여졌다. 후세들에게 민족 교육장으로 견학을 당부하고 싶다. 한국에서 지금 정파의 이익을 위한 망국적인 이념논쟁의 산물인 ‘역사 교과서'논쟁이 한창이지만, 역사교육의 장소로 이런 곳에 한번 쯤 들러보면, 민족이 무엇이고, 역사가 무엇인지, 참된 애국이 어떤 것인지 헤아리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내가 작년 서울을 방문했을 때는 서대문에 위치한 독립문과 서재필 동상을 둘러보고 사진도 찍고 왔다. 동상이 너무 작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의 동상은 2008년 5월6일 당시 이태식 주미대사의 노력으로 워싱턴 한국 총영사관 앞에 세워졌다. 미국에는 마하트마 간디 등 150여개의 외국인 동상이 세워져 있는데, 한국인으로는 서재필 박사 동상이 유일하다.

필라서 탄신 150주년 기념

서재필 박사는 해방을 맞아 79세의 노구를 끌고 일시 귀국했다가 곧 미국으로 돌아와 1951년 86세를 일기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친다. 서 박사의 유해는 1994년 환국하여 전명운 의사와 함께 동작동 국립묘지에 안장되었다.

올해 정초 유난히 한파와 폭설이 미주 땅을 강타하고 있다. 그런데 하얼빈에서 안중근 의사의 기념관이 개관됐다는 뉴스와, 서재필 박사 탄신 150주년을 맞아 필라델피아를 비롯해 뉴욕과 뉴저지의 동포들이 한민족의 미래를 위한 다양한 기념행사를 펼치고 있다는 소식은 추위로 얼어붙은 우리 마음을 훈훈하게 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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