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이민사의 선구자 변효현 박사

큰일 많이 하고 88세로 별세
시카고 한인 이민사의 선구자적 큰 어른이며 증인이었던 호정 변효현 박사가 1월 23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지난 60년 동안 한인 동포 사회를 위해 헌신과 봉사로 훌륭한 일을 많이 한 변 박사가 오랜 병고 끝에 우리 88세를 일기로 우리 곁을 떠났다. 인간은 관 뚜껑을 덮은 후에 진정한 평가를 받는다고 했듯이, 그가 이룩한 업적을 재조명해 볼 때, 그것이 참으로 범상치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그는 1929년 서울시 종로구 내수동에서 태어났다. 나는 변 박사가 우리 동포사회에 이룩한 많은 업적은 역사적 평가를 받고 후세에 기려야 되고, 또 나와 생전에 맺은 인연을 귀히 간직하면서 26일 에일러 장의사(Oehler)에서 열린 장례미사와 고별식에 참석했다. 그리고 같은 천주교 신자로 그냥 보내기가 못내 아쉬워 27일 묘지에 가서 ‘묘지예절’까지 바치고 오찬에 참석해 막걸리 한 잔을 하고 왔다. 장례식 준비와 절차 및 내용은 큰 어르신과 마지막 이별을 하는 행사답게 크고 엄숙했다. 최초의 한인회 주최 ‘한인회장’인 만큼 지역 신문광고도 큼직했고, 역대 한인회장을 비롯한 장례위원의 규모도 컸다. 식장의 조화도 가득했다. 멀리 한국과 타주에서도 애도의 꽃이 배달되었다. 오후 4시부터 문상을 받았는데, 조문객도 많이 왔다. 한인회관에도 분향소가 설치되었다. 묘지도 큼직했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 하려는 점은 그런 외형적인 것이 아니라, 평소 그 어느 장례식장에서도 느껴보지 못했던 엄숙함과 감동을 전하려는 기자적인 사명감이다.

죄의 용서와 자비를 비는 자리
어머님과 누님을 비롯, 독실한 불교 가정에서 자란 변 박사는 미국에서 뒤늦게 천주교에 귀의, 만년의 병고로 시달리면서 정신적인 평화를 얻었다. 이날 시카고 성당의 주례사제인 김두진 바오로 신부는 마테오 25장 31절-40절의 복음을 강론(설교)하면서, 변효현 ‘루가’ 형제에게 세상에서 지은 죄와 잘못을 용서하고 영원한 평화와 행복을 누려달라고 기원했다.
신부님은 시카고에 부임한 지 2년쯤되는데, 평소 평범한 신자였던 ‘루가’형제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도, 함께 식사를 한 적도 없다고 한다. 부인 ‘세실리아’의 긴급한 연락을 받고 병원에 달려가 임종을 하면서 신부님이 전한 두 부부의 마지막 대화는 내 심금을 울렸다. 부인의 손을 잡고 “여보, 무서워 함께 갑시다.”라는 ‘루가’의 힘 없는 요구에, ‘세실리아’는 “여보, 미안해.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라고 비통한 대답을 했다는 것이다. 2003년 수술 이후 건강이 악화된 후, 그동안 애틋한 연민과 정성으로 고비 고비 잘도 넘겼는데, 이번에는 불가항력이었다고 세실리아는 말했다. 그녀의 헌신적 내조가 없었다면 변 박사는 벌써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사랑의 의미를 실천한 부인 세실리아는 복음적이라고 신부님은 설명했다.

“변효현 모르면 간첩” 딸의 추모사
장녀인 변혜경씨의 추모사가 인상적이었다. “ ‘변’짜, ‘효’짜, ‘현’짜 ‘변효현’이 저의 아버지 입니다. 제가 어렸을 때 사람들이 ‘시카고에서 변효현을 모르면 간첩(스파이)이다’ 라는 말을 했을 적에 저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를 몰랐습니다. 그러다 차츰 자라면서 그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쩌면 딸인 저 보다도 이 자리에 앉아계신 여러분들이 우리 아버지를 더 자주 만나고 더 잘 알지도 모릅니다. 이것도 어려서는 불만이었으나, 커서 아버지는 가족에 매이지 않고 사회에서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섬기는 자세를 가졌다는 것을 알면서 원망을 후회하고 아버지를 더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아버님은 말씀이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성격이 꼼꼼하고 자상한 분인데, 마음의 표현을 못하신 분입니다. 아마 일제 식민지와 6.25 전쟁을 겪은 모든 아버지 세대들이 다 그렇지 않은가 생각합니다. 생전에 아버지께서 무뚝뚝하고 냉정하게 말해 상처받은 분이 계시면 오늘 제가 대신 사과를 드리겠습니다.”하고 말했다. 그 아버지에 그 딸이구나, 변 박사는 참 똑똑한 딸을 두었다고 나는 생각했다.

2005년 5월2일 발간된 ‘호정 변효현 박사 희수 기념집’ 제일 앞장 1페이지에서 2페이지에 걸쳐 한지 위에 큰 글자로 쓴 글은 변 박사를 가장 잘 설명하고 있다. “우리는 그의 뛰어난 능력과 성취한 많은 일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미미한 평가를 하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을 금할 수 없지만 겸손하고 허장성세를 싫어하는 그의 인품에 존경심을 갖게 됩니다. 때로는 직설적으로 바른 소리를 잘해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의 정직과 성실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미루어 볼 때 김정숙 세실리아의 마음이 담긴 글이라고 본다.
약 200페이지에 달하는 이 책은 기획에서부터 방대한 사진 자료 수집과 정리, 편집과 교정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부인 김정숙 여사의 손길이 닿아 제작한 변 박사의 자서전 성격의 책이다. 김 여사는 나 자신과 한국일보 이형준 기자의 도움을 받아서 변 박사가 77세가 되던 해인 2005년 희수 기념으로 이 책자를 발간했다. 나는 11년 전 이 책을 만들기 위해 셋이서 함께 머리를 맞대고 일하던 때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600명 한복입고 단체 시민권 선서
변 박사의 약력을 다 소개하려면 36페이지나 될 정도로 그는 다양한 분야에서 쉴새없이 많은 활동을 했다. 그 중에서 변 박사는 초기 이민자들의 길잡이인 봉사회의 이사장(1976-1977년)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데 앞장섰다. 76년 시카고 한국일보 기자로 처음 입사한 나는 첫 날 취재 대상이 변효현 이사장이었고, 변 박사에게는 이사장 취임 첫 기자회견이었다. 이태영 기자(전 이든스은행 부행장)와 동행했다. 사무실은 한국일보사에서 도보 거리인 클락과 셰필드가 만나는 이층 건물이었고, 신현정 목사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벌써 40년 전 일이다.

그는 한인사회 대표기관인 한인회장, 민족의 평화적인 통일과업을 위한 평통의 회장으로 희생적인 봉사를 했다. 특별히 그는 상록회 회장으로 보팅파워(투표권 행사)의 선견지명을 갖고 한인들의 권익신장을 위해 시민권 받기 운동을 전개했다. 100문제를 15문제로 줄여서 시험을 봤기 때문에, 싸인을 할 줄 모르는 90세 노인과 시험관에게 고맙다고 20달러짜리를 책상 밑으로 준 두 분을 제외하고 다 합격했다. 그래서 598명의 한인 연장자들이 1994년에 대거 시민권을 받게 되었다. 시카고 다운타운 네이비피어에서 이들이 한복을 입고 시민권 선서를 한 후 미시간 호변에서 크루스를 탄 장면은 시카고 이민사에 한 획을 긋는 장거였으며, 그가 평생에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사업이다. 고인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한인회 정관개정 사업에 열중했다. 몇 년 더 생존하셔서 조카인 진안순 한인회장을 도와주셨으면 좋았으련만 아쉬운 생각이 든다.

두 내외분께 받은 사랑에 감사
우리 두 내외는 이 분들 한테 많은 사랑을 받았다. 내가 책을 낼 때마다(3권의 저서) 물심양면으로 후원해 주셨다. 변 박사는 나의 2번 째 책 ‘한민족은 어디에 사나 한민족’ 출판 기념회에 참석하시어 축사까지 해주었다. 모교 연세 동문회를 사랑했던 고인은 연로하여 드라이브가 불편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대소 행사에 참석하고 우리 집 사람처럼 책임을 맡은 사람들을 적극 후원했다. 11년 전 대장암으로 고생하던 나에게 잘 먹어야 병을 이긴다고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면서 우리 집까지 찾아와 암을 이기는 방법을 설명한 책과 사골을 끓여 가지고 온 세실리아 자매를 생각하면 지금도 고마운 사랑을 잊을 수 없다.

그 동안 자주 입원을 했다는데, 문병 한 번 못했지만, 해마다 크리스마스 카드는 꼭 보냈다. 지난해는 카드 안에 변 회장이 라우너 일리노이 주지사와 찍은 사진과 한국일보 창간 20주년 기념식에 축하객으로 오셔서 당시 편집국장이었던 나와 함께 악수하는 모습이 담긴 사진을 함께 동봉했다. 지난번 한인회장 선거때는 시카고 타임스 기자로 개표소 안에 들어간 나는 창문을 통해 변 회장에게 중간 결과를 알려드려 궁금증을 풀어드렸다. 이것이 고인과의 마지막 교류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끝으로 고인이 좋아하시어 희수 기념집에 수록했던 시인 천상병의 ‘귀천’을 조사에 대신하련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 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시카고 타임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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