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는 박 대통령 실책이다

한국 문교부는 중고교 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한다고 12일 발표했다. 많은 국민과 학자들, 뜻있는 양심세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박 대통령의 고집대로 검인정 교과서를 철폐하고 국정화를 끝내 강행한 것이다.

박 대통령의 국정교과서에 대한 집요한 의지는 2013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6월17일 그는 “교육 현장에서 진실이나 역사를 왜곡하는 것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바로 잡아야한다”고 발언한 후, 작년 2월13일 교육부 업무보고 중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역사교육을 통해 올바른 국가관과 균형잡힌 역사의식을 길러주는 게 중요한데, 정부 검정을 통과한 교과서에 사실오류와 이념편향 논란이 있어서는 안 될것이다”라며 교육부는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균형잡힌 역사교과서 개발 등 제도개선책을 마련해 주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그러다 임기 중반을 넘긴 박근혜 정권은 문교부와 우익세력인 국사편찬위원회를 앞세워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나섰다. 여론을 의식한 청와대는 슬쩍 빠졌다. 올 들어 9월10일 국정감사에서 황우여 문교부 부총리는 현행 검정제를 강화하거나 국정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모두 검토하는 중 이라고 말 했으나, 결국 국정으로 갈 방침을 정해놓고 여론을 의식하고 연막을 친 것이다.

국가 검정을 ‘좌파교과서’ 라니
현행 검인정 교과서는 현 정부와 같은 당인 이명박 정부 때 만든 것이다, 그 때 정부는 사실에 입각한 균형잡힌 교과서라고 하더니, 이제와서 돌변해 ‘북한 교과서’ 같다느니 ‘전교조 교과서’ 라니 색갈론을 들고 나와 이를 180도 부정하는 것은 자가당착이며 국민을 우롱하는 무책임한 처사다. ‘찌라시’ 발언으로 유명한 여당 대표는 “좌파 와의 역사전쟁을 승리로 종식시켜 나가야한다”는 놀랍고 섬뜻한 발언을 했다. 이는 ‘개헌논의 봇물 터질 것’이라고 한 마디 했다가 대통령에게 사죄하고, 유승민 원내대표 사퇴파동, 국민공천제에 정치생명 걸겠다더니 박대통령에게 번번이 참패한 김무성 대표가 국정교과서를 빌미로 보수층을 결집시켜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겠다는 꼼수가 아니겠는가? 라는 생각이 든다. 새누리당 당사에는 “아이들이 주체사상을 배우고 있다”라는 거짓 현수막을 부쳤다가 떼는 해프닝도 있었다. 그러지 않아도 이화여자대학 일부 학생들은 7일 이 학교에 특강을 나온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렸다.

국정교과서 강행은 박 대통령 작품
박근혜 대통령은 13일 미국방문 직전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올바른 역사교육을 강조하면서 국정교과서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 사실상 교과서 논쟁에 정면으로 대응했다. 이는 정치권의 이념논쟁이 가열돼 국론이 분열되는 것을 막기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지금 한국은 ‘세월호’ ‘ 마르스’의 빈 자리를 ‘국정교과서’가 차지하면서 평지풍파를 일으켜 극도의 분열상을 보이고 있다. 할일 많은 나라에 왜 이때 교과서 문제로 난리를 펴야하는지 안타깝다. 야당은 황우여 문교부 장관의 해임안을 제출했고,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국정교과서 반대 거리투쟁에 나서 대국민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특히 야당은 “좋은 대통령은 역사를 바꾸고, 나쁜 대통령은 역사책을 바꾼다’는 구호를 통해 박 대통령을 공격하고 나섰다. 지난 날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하자고 하니까, 박근혜 당시 당대표가 노 대통령을 향해 ‘나쁜 사람’이라고한 말을 벤치마켓한 것 같은 뉴앙스를 주는 대목이다. 일부 여당 국회의원 중에는 이 모든 것이 좌파교과서를 만든 노무현 전 대통령 때문이라고 죽은 대통령을 또다시 부관참시하는 것 같아 이 사람들 이야말로 ‘참 나쁜 사람들’이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후폭풍 어떻게 감당하려고 평지풍파
현재 국민여론은 물론 찬반으로 갈렸다. 여와 야, 보수대 진보, 독립운동가 후손과 친일파, 민주와 반민주 세력, 영남과 호남, 시민연대와 뉴라이트, 20-30대와 50-60대 등등으로 조각조각 갈라섰다. 역사학자 97%가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는 국정에 반대한다. 이러니 학교 교육 현장에서 어떤 교육적 효과를 거둘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초중고생 학부모는 10명 중 6명 정도(56.1%)가 국정을 선호한다. 한 여론조사(리얼미터)는 일반인 중 찬성 47.6% 반대 44.7%로 찬성이 오차범위내로 많다. 그래서 정부여당이 내년 총선서 학부모 표심잡기를 믿고 몰아부친다는 해석도 나온다. 대학가도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고려대 총학생회는 국정화에 앞장선 국사편찬 위원장 김정배 전 총장에게 “민족 고대의 이름에 먹칠하지 말라. 역사 앞에 부끄럽게 행동하지말라”고 성명서를 발표했다. 고대는 이미160명의 교수가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냈다. 장준하와 함께 광복군 출신으로 고려대 총장을 역임한 김준엽 교수는 제자들에게 “현실에 살지말고 역사에 살아라”라고 가르쳤다. 또 “긴 역사를 통해 볼 때 진리와 정의와 선은 반드시 승리한다”고 일깨웠다. 독립운동가 후손들과 독립운동관련 단체대표들은 지난 주 국회정론관에서 국정화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독립운동 정신 훼손을 우려하며 국정화를 규탄했다. 재외동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미국과 시카고, 독일 등 유헙, 아시아 지역등 전세계 14개국 단체들이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내놓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모임인 ‘수요회’는 1,200회 집회에서 “역사를 왜곡하는 박 대통령은 아베 총리를 비판할 자격이 없다”고 성토했다. 정부는 김복동 할머니의 절규를 귀담아 경청해야할 것이다. 한국의 보수언론 마저도 국정화는 무리라며 “국정이라고 해서 정권 기호에 맞는 교과서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외국언론도 가만있지 않았다. 13일자 뉴욕타임스는 ‘정치인들과 교과서’(Politician and Textbook) 라는 제목의 사설을 통해 아베 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들과 관련된 부끄러운 과거사를 감추고자 교과서에 압력을 넣었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친일파와 독재정권 시절을 언급하는 것을 꺼린다며, 이 사설은 아베의 조부가 2차대전 전범사실과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가 식민지 시절 일본군 장교였으며, 독재자였다는 것을 언급하며 두 나라가 모두 교과서를 고치려는 우매한 시도는, 역사가 주는 교훈을 부인하려는 위협이라고 경고했다.

이승만 대통령 ‘한글 간소화’ 취소
이승만 대통령은 1953년 10월9일 한자를 폐지하고 어렵고 복잡한 한글 맞춤법을 이조말까지 써오던 언문으로 바꾸라고 훈시했다. 당시 김법린 문교부 장관은 부당하다고 사임했다. 연희대 최현배, 김윤경 교수를 비롯한 학계와 언론계, 문화계, 국회 등 저항이 거세지자 이 대통령은 55년 가을 이를 철회했다. 박 대통령도 이 전례를 따랐으면 한다. 독재와 친일 비판은 좌편향이 아니다. 친일, 자유당 부정선거, 쿠데타, 유신, 광주학살은 규탄 받아야할 ‘사실’이지 다른 사건과 균형을 맞추어서 역사에 기록하자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국정화의 본질은 소모적 이념분쟁, 망국적 국론분열, 심각한 민주주의 후퇴가 초래할 후유증이다. 국내외 유권자들은 내년 총선에서 준엄한 심판이 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이번에 일파만파의 큰 악수를 두었다.


본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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