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비극

가끔씩 말 실수가 많아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하지만, 조 바이든 부통령은 따뜻하고 인간적인 정치인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늘 웃음을 잃지않고 유머가 많은 바이든 부통령은 정치적 견해를 떠나 많은 사람들에게 인간적인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이렇게 밝은 웃음을 가진 바이든 부통령은 그러나 가슴 밑 바닥에 다른 사람이 들여다 보기 어려운 깊은 비극과 고통의 심연이 있습니다. 40년도 더 전에 그의 인생을 흔들었던 이 비극은 세월이 지나서 아물어졌지만, 이 비극은 그의 감정과 의식 세계, 인생관을 바꾸었고, 이것은 그의 삶과 정치에서 짙은 색깔로 나타났습니다.
43년이 지나서, 그 때의 악몽이 다시, 그를 찾아 왔습니다. 그의 분신처럼 살아왔고, 그가 남길 정신적 정치적 유산의 상속자였던 그의 아들 보 바이든(Beau Biden)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바이든 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델라웨어주 검찰총장인 보 바이든은 주지사 출마를 준비하던 중 뇌암으로 47세의 삶을 끝냈습니다. 비극은 보 바이든을 피해갔지만, 43년 뒤 다시 찾아와 그를 데려갔습니다. 비극은 참으로 잔인했습니다.

43년 전 비극은 바이든 부통령이 30세 때, 아들 보 바이든이 4살때 찾아 왔습니다. 바이든이 30세 나이로 최연소 연방 상원의원에 당선되어 떠 오르는 정치적 스타의 조명을 받은지 막 한 달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바이든의 부인이 두 아들과 딸을 데리고 크리스마스 샤핑을 갔다가 사거리에서 트럭과 충돌해 부인과 딸은 사망하고, 두 아들은 중상을 입었습니다. 이 두 아들은 이번에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보 바이든과 그의 동생 헌터 바이든입니다.

어린 두 아들을 돌 보기 위해 바이든은 상원의원직을 포기할 뜻을 비쳤습니다. 상원의원은 다른 사람으로 대체할 수 있지만, 아이들의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습니다. 선배 정치인들의 만류로 마음을 바꾼 바이든은 아들 둘이 누워있는 병원에서 상원의원 선서식을 가졌습니다. 상원의원이 된 후 바이든은 어린 두 아들을 돌보기 위해 워싱턴에서 거주하지 않고, 기차로 매일 출퇴근을 했습니다. 상원의원이 저녁 시간에 워싱턴에 머물지 않는 것은 정치적 야심이나 의무를 타협하는 것이라는 언론의 비판이 있었지만 바이든은 개념치 않았습니다. 왕복 3시간이 걸리는 암트랙 기차 통근으로 바이든은 “암 트랙 조(Amtrak Joe)”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두 아들 가운데 큰 아들 보 바이든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고, 아버지가 다녔던 법과 대학을 졸업하고, 아버지가 걸은 정치의 길을 택했습니다. 인간적인 면모를 많이 가졌던 보 바이든은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헌신이 많았고, 같이 살아 남은 동생에게 끔찍했고, 새 어머니와 새 동생을 남다르게 보살폈습니다. 어린 나이에 비극의 교통사고로 어머니와 누이 동생을 잃은 뒤에 쉽게 생길 수 있는 정신과 마음의 병, 성격 장애의 흔적이 보이질 않고, 긍정적이고, 낙관적이었습니다.

그의 삶의 모습을 오바마 대통령은 장례식에서 감동적으로 전했습니다. 대통령이 공적인 죽음이 아닌 장례식에서 조사를 하는 것은 아주 드문 일입니다. 30분 간에 걸친 오바마 대통령의 조사는 오바마 대통령과 바이든 부통령이 얼마나 각별하게 인간적 관계이고, 보 바이든을 떠나 보내는 마음이 얼마나 절절하고 슬픈지를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보 바이든이 고등학교 때 친구들을 태우고 자동차 운전을 하다가 과속으로 경찰에 적발된 이야기를 했습니다. 교통 경찰은 운전 면허증에서 바이든 이름을 보고 그가 바이든 상원의원의 아들인 줄 알고 티켓을 발부하지 않으려고 하자, 자신은 특별 배려를 원치 않는다면서 원칙대로 티겟을 주도록 자청했다고 했습니다.

보 바이든은 9.11 사태가 난 후 주 방위군에 자원해서 이락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부통령은 아버지로서 아들이 전쟁터에 가는 것을 원치않지만 아들이 나라를 위해 선택한 길을 존중했다고 말했습니다. 아버지가 부통령이 된 후 공석이 된 상원의원직을 승계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나, 아버지의 후광이 아니라 자기 힘으로 경쟁하겠다고 사양했습니다. 델라웨어주 검찰총장이 된 보 바이든은 늘 뒷 주머니에 노트북을 넣고 다녔고, 주민들의 건의나 애로 사항을 들으면 메모를 했고, 문제점을 시정하고 어려운 것을 해결해 주었습니다.
그가 공직 생활에서 우선을 둔 것은 고통받는 사람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었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사람을 엄격하게 징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가족이었습니다. 내 가족의 이익과 성공만을 챙기는 가족 이기주의가 아니라, 가족이 필요할 때 언제나 인간의 모습으로 있어주는 인간적인 가족관이었습니다. 아버지가 상원의원으로서의 야심보다 아버지로서의 역할과 도리에 더 역점을 두었던 것처럼, 보 바이든은 정치인보다 좋은 아버지가 되는 것에 최우선을 두었습니다.

아버지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렸을 때, 보 바이든은 아버지를 소개하는 화려한 조명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전당대회장에서 민주당의 막강한 정치인들이나 지지자들과 어울리는 대신 아들과 함께 전당대회장 에스카레이터를 계속 오르내리는 장난을 했습니다. 함께 놀아 주기를 바라는 어린 아들과 이 역사적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정치인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인식했습니다.

우리는 비극을 당한 이웃들에게는 늘 깊은 아픔과 고통을 느낍니다. 비극을 당한 사람이 비극을 극복하고 아름답게 일어설 때 그 삶이 귀하게 느껴지고 거기서 감동과 용기를 얻습니다. 그러나 그 감동의 삶이 다시 비극의 상처로 얼룩질 때 슬픔과 아픔이 말할 수 없이 깊어집니다. 그리고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잔인하고 가혹한 비극 앞에 무력감과 허탈감을 느낍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조사에서 보 바이든이 “큰 가슴(mighty heart)”을 가졌고, “좋은 사람(good man)” “진짜 사람(original man)”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영악스럽고 야비해지는 세태, 가짜와 가식이 범람해가는 시대 조류에 좋은 사람, 진짜 사람을 만날 때 우리는 싱싱한 희망과 은은한 기쁨을 느낍니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은 남을 배려하고 진실하게 사는 것이고, 진짜 사람이 되는 것은 인간과 사회에 필요한 사람, 오늘 보다 내일이 더 좋은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보 바이든 장례식이 있던 주말 일요일, 저는 뒤뜰 꽃밭에 과꽃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흙밭에 어린 모종들을 심은 뒤 조심스럽게 물을 주는데도 잎이 기운을 잃고 늘어지고 흙 물이 과꽃 잎에 튀겼습니다. 물에 튀겨 흙감탱이가 된 어린 과꽃 잎을 일으켜 세워 물로 흙을 씻어 주었습니다. 과꽃 잎과 함께 손톱에 낀 까만 흙때가 눈에 들어 왔습니다. 조 바이든 부통령이 아들을 떠나 보내기 얼마전 예일대학교 졸업식장에서 했던 말이 스쳐갔습니다. - “돌이켜보면 내가 매일 밤 워싱턴에서 집으로 돌아 간 것은 아이들이 나를 필요해서 보다는 내가 아이들이 더 필요해서 였던것 같습니다”
과꽃 모종을 심으면서 손톱 밑에 흙때를 묻히고, 모종의 꽃잎에 묻은 흙을 물로 씻어주는 것은 과꽃을 위해서 보다 나를 위해서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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