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인회 정치는 종을 칠 때입니다

우연히 마주친 어느 분이 한인회 이야기를 꺼내면서 개탄을 했습니다. 한인회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다며 왜, 이런 문제를 칼럼으로 쓰지 않느냐고 물었습니다. 딱히 대답할 말도 없고 구구히 설명하기도 뭐해서 그냥 웃어 버렸습니다. 사실 저는 한인회 돌아가는 것을 잘 모릅니다. 이런 태도에 대해, 그래도 과거에 한인사회나 한인회에 관심을 가지고 글을 썼던 사람이 그렇게 부정적이고 무심할 수 있느냐고 힐난하는 분이 있을 것이고, 그런 지적 또한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런데도 한인회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전혀 생기질 않습니다.

그동안 한인회를 수십년 지켜보면서, 거기에 기대와 희망을 걸기도 했고, 시시비비를 논하는 열정으로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마음 속에 얻어진 결론은 “한인회는 기대할 것이 없다”였습니다. 한인회는 서서히 소멸의 늪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한인회의 문제점은 시카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 전체에 산재해 있고, 한인회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기능 보다는 소모적이고 부정적인 부작용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곳곳에 싸움과 분쟁과 분열을 만들고 있습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장래에 진정한 애정과 열정이 있는 사람이면 이 진흙탕 싸움에서 온전할 수 없고, 거기에 계속 발을 담그고 있을 수가 없습니다.
시카고 한인회가 창립된 것이 1962년이니 50년이 넘었습니다. 코리안 아메리칸 이민이 시작되기 전에 발족 된 한인회는 유학생들 중심의 친목 단체였고, 만남과 문화 활동의 구심점이었고, 차별과 외로움 속에서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는 한인들의 대표적 단체였습니다.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한인회는 한인들을 하나로 묶고, 권익을 보호하고, 주류사회나 타인종 커뮤니티와 교류하는 교량역을 하고, 한국 문화를 선양하면서, 2세들 교육과 코리안 아메리칸의 장래를 모색하는데 기여를 했습니다. 서로 경쟁하고 다투고 대립하면서도 한인사회를 함께 건설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었습니다. 한인 인구가 급격히 팽창하고 한인 커뮤니티가 발전하면서 한인회의 역할과 기대는 커졌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의 시점에서 한인회는 시대적 변화를 주도적이고 창조적으로 이끌 수 있는 비전이나 역량이 없었고, 한인회 사람들은 이것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과 리더십이 없었습니다.
1960년대 유학생 단체였던 한인회를 새 시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개혁하고 진화시키는 노력이나 안목이 없었고, 한인회 사람들은 과거의 습관에 따라 아무런 비전 없이 옛 체제에 안주했습니다. 새로운 시대를 주도하거나 준비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따라가지도 못했습니다. 한인 커뮤니티가 발전하면서 각종 기능 단체와 직능 조직이 생겨나고, 이들이 더욱 능률적이고 능동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한인회가 독점했던 각종 사업이나 행사가 분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커뮤니티가 성장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럽고 바람직한 현상이었습니다.
초창기 시절에는 한인회가 라디오 방송까지 운영할 정도였고, 각종 봉사 활동, 한인 야유회, 운동경기, 연말 파티, 문화 행사에 이르기까지 한인회가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복지, 봉사 전문 단체가 생기고, 문화 활동을 이끌어가는 단체가 전문화 하고, 체육회가 각종 경기를 주관하고, 교회, 동창회, 향우회 등이 친목 활동의 중심이 되면서 한인회는 상징적인 단체로 변모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인회가 구체적인 사업을 하는 단체가 아니라 상징적이고 구심점 역할을 하는 우산 꼭대기 단체가 되는 과정에서 한인회는 방향을 잃고 정체성을 상실하기 시작했습니다. 한인회의 영향력과 정체성이 쇠잔해 가면서 역설적으로 한인회는 “대표성”에 더욱 치중하기 시작하고, 봉사 정신이나 커뮤니티 건설에 대한 관심 보다는 정치성과 감투성에 한 눈을 팔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사업이나 구체적인 역할이 줄어들면서, 한인회는 한인들을 대표하는 단체라는 생각에 더욱 집착하고, 한인회장은 한인들을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과대한 착각에 빠져들었습니다. 이러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봉사나 헌신 보다는 한인회장이라는 거창한 명함을 가지고 한국에 드나들면서 정치인이나 영향력있는 사람들을 만나는데 열중하기 마련입니다. 1년에 열번 이상 한국을 드나든 한인 회장도 있었습니다.

한국 정치에 기웃거리거나 궁색한 이권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에게 한인회장 명함만큼 그럴듯하고 매력있는 감투도 없습니다. 이런 감투를 쓰기위해서는 서로 파당을 짓고 껄끄러운 경쟁자가 나타나면 무슨 구실을 걸어서 출마를 못하게 발목을 잡습니다.
시카고에서는 10년전에 한인 회비를 연속적으로 3년 간 소급해서 낸 사람만이 한인회장 자격이 있다는 억지 회칙을 동원해 상대 후보를 결격시키고, 이번에 뉴욕에서는 상대 후보가 사전 선거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자격 정지를 시켜 한인회가 둘로 갈라지고, 한인회관에서 몸싸움을 벌이고, 경찰이 동원되고, 법정으로 가고, 한 쪽 취임식은 길거리에서, 다른 쪽은 건물 안에서 열리는 촌극이 연출되어 뉴욕 타임스까지 크게 보도를 했습니다. 또 며칠 전에는 시카고에서 “미주 총연합회”가 열리고 회장을 선출해 미주 총연도 반쪽이 났습니다.

한인회가 분열과 부패 문화를 조성하는데 앞장을 서면서 필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다”는 그레샴 현상(Gresham’s Law)입니다. 통화 유통시장에서 화폐 가치가 있는 양화와 소재 가치가 없는 껍데기 악화를 동시에 유통시키면 양화는 숨어들고 악화가 지배한다는 그레샴의 법칙이 한인 커뮤니티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술수와 억지에 능한 뻔뻔한 사람들이 판을 치면 헌신과 양식있는 사람들은 뒷전으로 물러나게 됩니다.
미국 동포들이 한국의 패거리 정치를 탄식하지만, 동포 사회도 이와 비슷한 작당을 해서 골목 정치를 하고 있습니다. 미국 시민으로 미국의 좋은 점을 배우고, 코리안의 아름다운 문화를 미국 사회에 유산으로 남길 생각보다는 한국의 가장 뒤떨어진 정치 악습을 여기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런 폐단은 이들을 미주 한인사회 지도자로 받아주고 대접까지 해 주는 한국에 큰 책임이 있고, 이들을 무슨 지도자인것처럼 대서특필해 주는 동포 언론의 분별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시카고 한인사회는 더 이상 한인 인구가 증가하지 않고 늙어가고,이민 초창기의 열정이나 열망도 메말라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한인회 회칙을 놓고 대립과 분열을 계속하고, 아직도 한인회장 선거를 놓고 논란이 분분합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을 따지기도 구차하고 식상한 한인회 정치는 이제 종을 칠 때가 됐습니다.

한인회는 더 이상 코리안 아메리칸을 대표하는 단체가 될 수 없습니다. 함량이 미달되고 탐심에 급급하는 사람들에게 우리를 대표하는 지도자라는 허명을 더 이상 줄 수가 없고, 그들이 더 이상 한인회를 이용해 한국에서 허욕 정치를 하는 것을 방관할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제 1세 이민 세대는 저물고 2세 시대입니다. 2세들을 포용할 수 없는 한인회는 아무리 후하게 생각해도 코리안 아메리칸을 대표할 수도 대변할 수도 없습니다.
한인회를 어떻게 개혁할지는 각계의 자문을 들으면서 심층 토론을 거쳐 방향을 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인회장이 코리안 아메리칸을 대표한다는 허구를 벗겨내는 것이 개혁의 핵심입니다. 한인회가 한인들을 대표하는 단체가 아니라 각 단체가 상호 협력할 수 있는 관리자, 조정자 기능을 하거나 아니면 한인회 문을 닫고 각 단체 연합체를 통해 협력 관계를 모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단체나 사람이 코리안 아메리칸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단체의 기능과 역할, 공헌도, 역량에 따라 영향력을 발휘하고, 필요한 사안에 따라 미국이나 한국 사회와 협조하고 리더십을 발휘하고, 대표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인회가 대표성의 간판을 내리고 한인회장이란 허명을 없애면, 한인회장 명함을 이용해서 한국에 정치하려는 사람들의 욕심을 어느 정도 절제시키고, 패 싸움을 다소 완화 시킬 가능성이 있습니다. 공명에 허기지고 열등의식이 깊은 사람들의 골목 정치와 추한 싸움, 썩은 관행에 더 이상 코리안 아메리칸이 들러리를 설 수가 없습니다. 좋은 게 좋다는 생각으로 계속 아량을 베푸는 것은 우리들의 약점을 심화시키고, 코리안 아메리칸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는 것입니다.

한 때 이민자의 열정을 잉태시켰던 한인회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결단을 해야 합니다. 껍데기 한인회장을 “코리안 아메리칸 지도자”라고 착각하면서 “우리들 지도자”를 뽑는 한인회장 선거를 하는 것은 늙은 무당의 굿판을 보는 것 같은 어색함과 무모함이 있습니다. 한인회가 발전적 해체를 하거나 혁명적 수술을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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