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의 유산

20여년 전 북한을 방문했을 때 대외경제사업부 김정우 부부장을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싱가포르를 북한의 발전 모델로 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습니다. 당시에는 김일성 주석이 생존해 있을 때였습니다. 김정우 부부장의 대답은 “우리식 사회주의를 옹호 고수하는데 가장 합리적인 경제 관리 형식과 방법이 있는 만큼 이 제도를 계승 발전시킬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다른 관리들을 만나서 비슷한 질문을 했으나 대답은 비슷했고, 그럴 가능성의 여백이나 여운이 조금도 보이질 않았습니다.
저는 그 당시 북한이 리콴유의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으면 도약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제 눈에 비쳐진 북한의 모습은 싱가포르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었습니다. 리콴유가 엄격한 규제를 통해 국민들의 의식을 개조한 것처럼 주체사상을 통해 인간 개조를 외치고 있었고, 리콴유가 개인의 자유보다 다수의 행복에 역점을 두는 것처럼 북한은 사회적 동물을 강조하면서 전체를 위해 개인이 희생하는 것을 영웅화시켰고, 체제유지를 위해 두려움을 강조하는 리콴유의 통치철학과도 유사점이 있었습니다.
북한은 공동체 의식과 리콴유가 강조하는 “아시아적 가치”에서 효도만을 빼고 -가족, 근면, 교육, 권위에 대한 복종 -등 모두를 가지고 있었고, 인력의 질이나 능력에 있어서도 싱가포르 보다 훨씬 우수했습니다. 청결함도 몸에 베어있었고, 동포들은 소박했습니다.
자원이라고는 작은 고무 산업 밖에 없고, 먹을 물도 자급자족할 수 없는 척박한 싱가포르에 비하면 북한은 풍부한 천연자원이 있었고, 제조업이 거의 없는 싱가포르와 달리 북한은 70년대에 탱크를 만들 정도의 두뇌와 기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격렬한 노조 파업이 없는 것도 그렇고, 갈등과 분열, 극렬성이 없는 것도 싱가포르 보다 뛰어났습니다. 북한이 싱가포르를 모델로 삼으면, 단시일에 비약적인 발전을 할 수 있고, 경제적으로도 남한과 경쟁관계를 넘어서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뒤의 북한은 기근과 굶주림 속에서 국가로서의 기본 기능과 체통을 상실했습니다.
저는 리콴유 수상의 별세 소식을 들으면서 북한을 떠 올렸고, 지도자의 철학과 리더십, 그리고 거기에 사는 국민을 생각했습니다. 리콴유를 생각하면 백성과 지도자의 관계는 무엇이고 백성이 추구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하는 가장 초보적인 질문을 계속 떠오르게 합니다. 그만큼 리콴유는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지도자였습니다.
영국 식민지에서 해방된 싱가포르 초대 수상이 된 리콴유는 싱가포르를 말레시아 연방에 가입토록 했으나 2년 뒤인 1965년 싱가포르는 말레시아 연방에서 축출되었습니다. 그 때 싱가포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살길이 막막한 지독한 가난뿐이었습니다.
리콴유를 더욱 암울하게 했던 것은 남한의 140분의 1밖에 안 되는 작은 섬나라 국가에 국가로서 정체성이나 철학이 없다는 것이었고,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이민자 집단이었고, 더욱이 이 이민자 집단이 중국, 말레지아, 인도(타밀족)라는 종교도 다르고, 말도 다른, 이질적이고, 개성이 강한 민족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갈등과 분쟁을 일으키는 최악의 모자이크 조합이라고 불리울 정도였습니다. 마약 중독과 게으른 사람이 많았고, 오랜 영국 식민지 지배와 일본의 잔인한 식민지 통치에서 인성이 망가지고 법과 질서가 파괴된 싱가포르는 국가로서 융성할 수 있는 조건을 제대로 갖춘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말레지아 연방에서 쫓겨나 고립무원이 된 싱가포르의 젊은 30대 총리 리콴유는 싱가포르의 살길을 “빵”에서 찾았습니다. 생존을 위해서는, 잘살기 위해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있다는 마키아벨리즘(machiavellism)을 택했습니다. 자기 나라를 떠난 이민자들에게 공통적인 특성은 마키아벨리적 “생존” 의식입니다. 자신도 이민자의 아들인 리콴유는 빵을 국가가 지향하는 가치로 택하고, 이민자의 생존 의식에 불을 질렀고, 여기에 따라 오지 않는 사람은 철저하게 교육시키고, 낙오시키고, 탄압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은 보상하고, 격려했습니다. 그는 철권을 휘두르고 공포를 주는 가혹한 독재자의 모습과, 동기를 부여하고 고무시키면서 감동성을 주는 격려자의 모습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과정에서는 리콴유는 철저하게 자기관리, 인격 관리를 했습니다. 독재자의 가장 큰 함정인 부패를 철저히 씻어내고, 아무리 가까운 측근이라도 부패에 관련되면 가차없이 냉혹하게 징벌했습니다. 그는 동양문화의 가장 큰 약점인 부패를 도려내고 여기에 자신이 솔선수범했습니다. 절대 권력을 휘둘렀던 리콴유는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민주 주창자들의 주장을 무색케했습니다. 리콴유는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 治國平天下)”를 철저히 믿고 실행한 지도자입니다. 인격과 소양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으면 공직을 맡을 수 없고 나라를 이끌어갈 자질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양문화의 또다른 약점인 정실, 적당, 파벌, 공론, 관념주의를 배격하고, 나라를 운영하는데 철저하게 능력주의, 실용주의를 적용했습니다. 아무나 대학을 갈 수 없는 것은 물론, 고등학교도 모든 사람이 갈 수 없도록 했습니다. 자기 능력에 따라 분수껏 교육 받고, 분수껏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능력이 있으면 인종 종교를 가리지 않고 발탁했고, 과감하게 문호를 개방했습니다.
다수의 공동 행복을 위해 소수는 자기 몫을 봉사해야 하고, 다수의 행복을 저해하는 요소를 단호하게 제거하는 것이 리콴유 정치 철학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리콴유는 공동체 운명을 중요시했습니다. 중국, 말레지아, 인도 사람으로 구성된 이질적인 집단을 공동 운명체로 만들기위해 가장 철저하게 배격한 것이 종교 인종 사상성이 강한 극단주의 과격주의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영장없이도 체포할 수 있게했고 철저한 탄압을 했습니다.
리콴유의 출중한 리더십은 자기에게 맞는 옷이 무엇인가를 헤아렸고, 그것을 몸에 맞도록 계속 고쳐갔고, 옷을 입은 사람의 의식과 몸을 계속 혁신하고 개혁해 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전과 열망,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가지고 비난과 저항을 제압할 수 있는 순수와 의지와 인격이 있었습니다. 그는 서구식 민주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맞는 “one size fits all” 옷이 아니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밀고 나갔습니다.
리콴유는 철학이 없는 이민 국가 사람들에게 자기 능력에 따라 분수대로 행복하게 사는 “싱가포르 드림”을 제시했고, 교육 수준이 낮고 공중도덕이나 시민의식이 없는 국민들을 선진화시키기 위해 법으로 강제적인 교육과 계몽을 했습니다. 변기에 물을 내리지 않거나, 거리에 침을 뱉으면 벌금을 물게하는 것도 시민의식과 국격을 높이는 방법이었습니다.
리콴유는 “Culture is Destiny” (문화는 숙명이다) 라고 믿었습니다. 각 민족이나 국가의 정신과 의식, 문화적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는 민주주의가 가능치 않다는 것입니다. 리콴유는 낮은 수준에 있는 국민들에게 서구식 민주주의 옷을 입힐 수가 없었습니다. 이들의 숙명을 바꾸기 위해 문화의 품격을 초지일관 부단하게 끌어 올리는 노력을 한 것이 혜안을 빛나게 한리더십이었습니다.
리콴유는 시대의 변화를 민감하게 읽어내고 그것을 과감하게 밀고 나가는 탄력성을 보였습니다. 리콴유가 영국 변호사가 되어 싱가포르에 돌아 왔을 때 그의 이름은 “Lee Kuan Yew”가 아니라 “Harry Lee”였고, 중국의 주은래가 리콴유를 “바나나(banana)”라고 조롱했을 정도로 “겉은 동양인이고 속은 백인”이었습니다.
리콴유는 정치 생존을 위해 이름을 바꾸고, 나라의 생존을 위해 “바나나”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찾는 변신을 했습니다. 그리고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맞는 싱가포르식 민주주의를 창안했습니다. 언론인 톰 플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현재의 시스템이 최고라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던 리콴유는 싱가포르 민주주의의 다음 단계의 개혁을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싱가포르 제도를 사이비 민주주의라고 냉소하고, 리콴유를 독재자라고 비판하는 것은 인간 삶의 본질과 민주주의를 이기적이고 관념적, 도식적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는 동양과 서양, 개혁과 실용, 보수와 진보를 조화시키면서, 국민의 인격, 국가의 품격을 선진화시켜 나갔습니다. 리콴유는 권력을 즐기고 탐닉하는 독재자가 아니라, 국가를 융성시키기 위해 앞을 내다보고 시대를 통찰하면서 권력과 권위를 효율적이고 지혜롭게 사용한 경세가, 시대적 정치가였습니다.
리콴유는 국가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는 마키아벨리즘을 택했으나 권력 유지에는 마키아벨리즘을 택하지 않고, 지도자 자신을 포함한 모든 국민들에게는 인격성을 선택했습니다. 독재를 했으나 부패하지 않고, 권위주의적으로 권력을 사용했으나 독재자가 안 된 것은 개인과 국가에 인격성을 연단시켰기 때문입니다. 리콴유의 탁월성입니다.
북한이 싱가포르가 될 수 있는 바탕이 있으면서도 싱가포르가 될 수 없는 것은 개인 우상화와 이념의 맹목성, 체제의 경직성, 폐쇄성, 부패입니다. 그리고 리콴유의 지혜와, 통찰력과 파격성을 가진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무엇보다도 권력에 인격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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