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사랑하는가?”

루디 줄리아니(Rudy Giuliani)는 “미국의 시장”이란 칭호를 받을 만큼 뉴욕 시장으로서 명성을 높였습니다. 검사 출신인 줄리아니는 뉴욕 시장이 된 후 범죄를 소탕하고 세계 최대의 도시를 안정시키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특별히 9.11 사태가 발생해 미국이 경악해 있을 때 결연한 모습으로 위기를 수습해서 많은 미국인들의 존경을 받았고, 이러한 인기를 등에 엎고 대통령 선거전에 공화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줄리아니가 최근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발언으로 영향력있던 정치인 자리에서 변두리 정치인으로 밀려났습니다. 막말의 핵심은 오바마 대통령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발언이었습니다. 줄리아니는 현재 공화당 대통령 후보 물망자로 주목을 받고 있는 위스컨신 주지사 스캇 워커(Scott Walker)를 위한 모금 파티 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은 끔찍한 발언이지만, 저는 대통령이 미국을 사랑한다고 믿지를 않습니다. 그는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고, 저를 사랑하지 않습니다. 그는 여러분이나 제가 이 나라를 사랑하면서 성장해 온 방법으로 성장하질 않았습니다.”
스스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끔찍한 발언”이란 것을 알면서도 줄리아니는 선을 넘었습니다. 물론 이 자리가 보수 성향이 많은 뉴욕 맨하탄의 돈 많은 사업가들이 스캇 워커를 위한 비공개 모금 파티여서 줄리아니 언어에 절제의 고삐를 풀리게 했는지도 모릅니다. 줄리아니는 오바마의 애국심을 의심하기 위해서 민주당의 과거 대통령 이름까지 줄줄이 열거했습니다.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이고, 얼마나 예외적인 국가라고 말한 것을 “트루만, 클린턴, 카터”에게서는 들었지만 오바마에게서는 듣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발언에 비판이 쏟아지자 줄리아니는 물러서지 않고 반격의 날을 세웠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내 발언을 인종주의라고 말하는데 이런 생각은 조크입니다. 오바마는 백인 어머니, 백인 할아버지, 백인 학교에 다녔습니다. 이것은 인종주의가 아니고 사회주의, 어쩌면 반 식민주의에 관한 것입니다.” 이렇게 기세등등하던 줄리아니에게 공격의 포화가 퍼부어지자 결국 뒤로 물러서서, “오바마의 애국심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라”면서 오바마가 다른 미국의 대통령들 보다 미국을 더 많이 비판하고, 미국의 탁월한 예외주의를 의심하기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줄리아니는 오바마 대통령이 미국이 얼마나 위대한 나라라는 것을 여러차례 발언한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오바마가 상원의원이 되어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에서 그의 이야기가 미국의 이야기이며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도 이 이야기가 가능치 않다”고 말했던 연설을 비롯해 “내 존재의 모든 부분이 미국의 탁월한 예외주의”라고 말했던 것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줄리아니가 오바마의 이런 발언을 알고 있느냐 모르냐가 아니라, 줄리아니아가 바라보는 애국주의 시각입니다. “오바마는 당신이나 내가 미국을 사랑하면서 성장해 온 방법으로 성장하질 않았다”는 발언이야 말로 줄리아니에게 인종주의 눈초리를 보내게 하는 논리입니다. 이 말은 미국의 주인 역할을 해 온 백인들끼리 둘러 앉아 잡담하는 수준의 인종주의 발언입니다. 백인들 처럼 성장해 오지않은 이민자들이나 유색 인종들은 미국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민주당이지만 백인이기 때문에 트루만이나 클린턴, 카터까지도 자기 편으로 줄을 세우고 오바마의 비애국주의를 몰아 세웠던 줄리아니는 오바마가 백인 어머니, 백인 할아버지, 백인 학교에 다녔다는 말로 인종주의 공격을 막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의 인종주의 냄새를 더욱 짙게 해주고, 그를 더욱 궁색하게 했습니다. 오바마의 어머니가 백인이었고, 할아버지가 백인이었고, 백인 교육을 받았기 때문에 오바마는 백인으로 분류할 수 있다는 시각, 그래서 자기 비판이 인종주의가 아니라 그의 사상에 대한 비판이라는 주장, 이러한 인식이 바로 인종주의 인식입니다. 줄리아니가 오바마를 격렬하게 공격하는 것은 인종주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바마의 정책에 대한 실망이 감정으로 변질된 것이라고 믿고 싶지만, 그의 발언과 머리 구조에서 인종주의적 발상이 묻어나고 있습니다.

줄리아니를 이해하는 눈으로 본다면 줄리아니가 오바마를 감정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인종주의가 아니라 9.11 테러 수습과 복구를 현장에서 진두지휘한 줄리아니의 특별한 경험 때문으로 이해 할 수도 있습니다. 사고의 절제가 없으면 경험은 인간의 사고를 단정적으로 만들고 때로는 흑백논리의 이분법으로 몰아갑니다.
줄리아니는 오바마 대통령이ISIS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세력을 지칭할 때 이슬람이란 수식어를 삽입하는 것을 거부하고, ISIS에 지상군 파병을 단호하게 자르고, 시리아를 방치하고, 이란과 핵 협상을 추진하고, 오바마가 과거 미국의 잘못에 대해 사과하고 자기 성찰의 자세를 갖는 것을 비애국적이라고 격앙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 지상군을 보내지 않고 어떻게 ISIS 같은 악의 세력을 제거할 수 있겠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미국을 위대하게 한 것은 미국이 젊은 생명들을 잃어가면서 미국의 가치를 지켰기 때문이라면서, 오바마가 이것을 거부하는 것은 미국의 위대한 예외주의를 외면하는 것이라고 질타하고 있습니다.

많은 전쟁 주도자들이나 주창자들이 그러하듯 줄리아니 또한 자기 주장의 설득력에 헛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꽃다운 생명을 바치는 젊은이들은 딕 체니나 루디 줄리아니의 아들 딸이 아니라, 무력한 서민이나 애국적인 시민의 아들 딸들이란 것입니다. 물론 나라의 정책을 결정하는 지도자들이 이러한 사사로움에 얽매일 수는 없지만, 전쟁을 결정하는데 그만큼 신중하고 절제된 판단이 필수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미국은 잘못된 전쟁으로 수많은 생명을 잃었고, 미국 경제가 바닥까지 치닫게 했었습니다.

ISIS와 전쟁에 지상군 파병을 거부하고, ISIS를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로 부르지 않고, 이란과 핵협상으로 화해를 모색하고, 미국의 과거 잘못을 비판하고 성찰하는 것은 비애국적이 아니라, 미국을 위하는 철학이 다른 것입니다. 정책과 철학이 다르다고 해서 상대방의 의도와 본심을 매도하고, 애국주의까지 의심하는 것은 지도자의 기품을 상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줄리아니는 “예외주의”를 왜곡하고 있습니다. “예외주의(Exceptionalism)”는 미국의 무오류성과 유아독존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비판과 성찰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방법이 다른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꾸짖는 것은 자식을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식이 더 잘 되기를 바라는 사랑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의 과거 잘못을 비판하고 반성을 하는 것은 미국을 흠집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이 더 아름답고 존경받는 나라가 되기를 바라는 애국의 마음입니다. 미국은 세계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월등한 예외주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종과 종교 철학이 다른 다민족 다문화를 하나로 묶어서 통합된(united) 국가(states)를 만든 것은 놀라운 정치문명의 창작품입니다. 그것도 억압이나 독재로 국가를 단합시킨 것이 아니라, 자유와 평등, 정의라는 가치로 성조기의 깃발을 휘날릴 수 있게 한 것은 유례없는 문명의 진보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인디안을 학살하고 인종주의 식민주의의 과거사를 통해 깊은 상처와 오류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위대성과 예외주의는 부끄러운 과거사를 숨기거나 견강부회로 정당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반성하면서 미래를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노예제도라는 반문명의 죄악을 청산하기 위해 남북전쟁을 치루었고, 민권운동을 탄생시키고, 마침내 흑인 대통령을 만들게 했습니다. 여기에 미국의 탁월한 예외주의가 있습니다. 줄리아니나, 극우의 국수주의자들이 눈을 떠야 하는 것 또한 미국이 넘어야 할 편견과 오만의 언덕입니다.

줄리아니의 애국주의 논쟁은 우리 이민자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자기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미국을 사랑하는가?”하는 질문입니다. 한인 이민자들 가운데 상당한 사람들은 미국 시민권을 받은 것이 편리와 혜택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미국을 사랑하는 것에 인색합니다. 이런 생각과 태도는 스스로의 땅을 허무는 것입니다. 미국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미국의 시민으로 살고, 미국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미국을 비판하는 것은 스스로를 부끄럽게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사는 땅, 아들 딸들이 살아야 할 땅을 사랑하지 않고 욕하는 것은 자기 땅의 주인이 되기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을 사랑하지 않을 경우, 미국을 비판하지 않는 것이 최소한의 도리입니다. 애국심을 옮겨심은 이민자들은 미국을 사랑하는 사고와 감정의 자기 최면, 연습을 계속해야 합니다. 줄리아니의 막말은 우리들을 향한 성찰의 물음이기도 합니다. “나는 미국을 사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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