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의 추락

브라이언 윌리암스(Brian Williams)는 미국 방송계에서 첫 손가락에 뽑히는 앵커입니다. 잘 생긴 얼굴과 진지하면서도 친근감을 주는 분위기에 묵직하면서도 경쾌한 바리톤 음성으로 시청자들의 신뢰와 사랑을 받으면서 미국 뉴스계에서 최고 시청률을 자랑했던 윌리암스가 하루아침에 내리막길에서 추락했습니다.

문제의 화근은 13년 전에 있었던 이락 전쟁 취재였습니다. 이락전에 종군했던 윌리암스는 당시 헬리콥터에 함께 탔던 군인이 23년 간의 군대 생활을 끝내고 중사로 제대하는 것을 축하해 주기 위해 아이스 하키 경기장에 이 병사를 특별 초청했습니다. 경기장 아나운서가 이 군인을 소개하면서 브라이언 윌리암스의 생명을 구해 주었다고 하자 관중들이 뜨거운 기립 박수를 보냈고, 윌리암스와 군인은 감격의 포옹을 했습니다.

그 다음 날 윌리암스는 이 장면을 보도하면서 이락전 취재 당시 자신이 타고 있던 헬리콥터가 반군이 발사한 로켓 포격에 맞아 기체가 파손되어 불시착했다고 말하고, 그 때 자기 생명을 보호해 준 군인에게 감사를 표시했습니다. 이러한 내용이 보도된 후 당시 헬리콥터를 조정했던 엔지니어가 윌리암스는 포격 당한 헬리콥터에 타고 있지 않았다고 페이스북에 올린 후 군인 신문인 성조지(Stars and Stripes)가 이 사실을 보도했습니다.

윌리암스는 며칠 뒤 방송을 통해 자신의 13년 전 기억에 착오가 있었다고 사과했으나 윌리암스의 사과 내용이 부실하다는 비판과 공격이 커졌습니다. 문제가 시끄러워지자 윌리암스는 자신에 대한 논쟁이 가라앉도록 하기 위해 며칠간 앵커 자리를 비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이 때만해도 윌리암스는 사태를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며칠 지나면 잠잠해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심각성은 윌리암스가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더 크게 확대되면서 NBC는 치솟는 불을 끄기 위해 6개월간 봉급을 주지 않는 정직 처분을 내렸습니다. 윌리암스가 정직 처분을 받으면서 일단 불길은 진화되었으나 과연 윌리암스가 6개월 뒤에 다시 앵커 자리로 돌아 있을 수 있을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윌리암스가 시청자의 인기를 끈 것 가운데 하나가 그의 감성적 보도입니다. 그는 딱딱하고 무미건조한 뉴스에 뛰어들어 거기에 본인의 감정과 경험을 가미시키는 방법으로 주목을 끌었습니다. 자신을 뉴스 현장에 부각시키고, 자신의 감정을 이입시켜 뉴스를 드라마틱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보도 태도는 시청자들의 감성을 자극해서 뉴스를 인간적이고 극적으로 만드는 강점이 있지만 사실 보도가 스토리텔링으로 흐를 수 있는 함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논평이나 칼럼이 아닌 뉴스에서 보도자의 주견과 감정이 들어가거나 뉴스를 해설하고 의미를 부여하면 사실이 왜곡되거나 과장될 위험성이 커집니다.

이락 전쟁 취재 내용에 허구가 나타나면서 그 동안 윌리암스의 보도 태도가 도마 위에 오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2005년 루이지아나를 물바다로 만들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Hurricane Katrina) 취재입니다. 당시 윌리암스는 폭풍 현장에서 넓적다리까지 올라오는 높은 장화를 신고 뉴스팀을 지휘하면서 자신이 묶고 있는 리즈 칼턴 최고급 호텔이 갱들에게 습격 당하고, 물에 시체가 둥둥 떠다니고, 마실 물과 음식이 없어서 절박한 사태이고, 이질이 발생했다고 생생한 보도를 해 최고 언론상인 피바디 어워드(Peabody Award)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호텔 측과 경찰 측은 사실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동료 언론인들 까지도 이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는 반론을 내놓고 있습니다.

과장과 허위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역사의 현장 브란데버그 게이트(Brandenburg Gate)에 있었다는 주장이나, 존 폴 교황 2세가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캐톨릭대학 학생이었던 윌리암스가 교황과 악수를 했다는 주장이나, 학생 시절 소방서 인턴을 했을 때 강아지를 구제해 주었다는 말이 정말 사실이었나 하는 케케묵은 먼지까지 털려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과거의 발언이 주목을 받는 것은 윌리암스를 추락시킨 이락 헬리콥터 허위 보도가 단독 거짓말인지, 아니면 그에게 과장이나 허구의 습관이 있는지를 가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락 헬리콥터 거짓말 하나에 그친다면 6개월 뒤 용서를 받고 재기의 기회를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에게 이야기를 각색하고 과장하는 습관성이 있다면 그의 언론인 생명을 거기서 끝날 수 밖에 없습니다.
정상에 앉아있는 윌리암스를 실추시킨 또 다른 이유는 정상을 지켜야 하는 시청률 스트레스입니다. 정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이미지를 계속 매력적이고 멋있게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을 홍보해야 한다고 생각한 윌리암스는 유난히 각종 연예 토크 쇼에 많이 출연했습니다. 스토리텔러로 탁월성이 있다는 평을 받은 윌리암스는 연예인 기질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일년에 수십 차례 출연해서 토크쇼 호스트가 “당신이 나보다 더 연예인 자질이 있다”고 농담할 만큼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했습니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하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과장과 윤색의 함정에 걸릴 수 있습니다. 언론인이 시사문제를 다루는 딱딱한 토크쇼가 아니라 풍자와 코메디가 주류를 이루는 심야의 “Late Night Show”에 초대 손님으로 자주 출연하고 여기에 흥미를 느끼게 되면 더 많은 웃음과 박수를 받기 위해 내용을 과장하거나 미화 시키는 함정에 빠지고 심해지면 자기도 모르게 허위사실을 가미시키거나 허풍을 떠는 덫에 걸리게 됩니다. 이야기꾼으로 능력을 인정받은 윌리암스는 주류 방송 앵커로서는 처음으로 “Saturday Night Live” 심야 연예 쇼를 주재하기도 했습니다.

기자가 글을 재미있게 잘 쓰고 문재가 뛰어나면 소설가로 전업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언론인이 말을 재미있게 잘하거나 얼굴이 잘 생기고 연기력이 출중하면 연예계나 정치계로 진출하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만큼, 글과 말은 사실을 전달하는데 필수적인 도구이면서도 사실을 부풀리고 윤색시키는 양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정확성과 공정성과 싸워야 하는 언론인에게 스토리텔링은 스스로를 추락시키는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윌리암스가 심야 코메디 쇼에 자주 출연해서 재기와 재담을 발휘하면서 그의 인기는 올라갔지만, 언론인으로서 그의 버팀목은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취재 뒷얘기를 하다 보면 자기 도취가 커지고, 무용담과 허풍의 도수가 높아지고,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에 균열이 생기고, 착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윌리암스를 추락시킨 헬리콥터 무용담도 처음부터 쓴 소설은 아니었습니다. 오래 전 토크 쇼에서는 헬리콥터 밑으로 로켓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가 최근 보도에서 자기가 탔던 헬리콥터가 포격에 맞았다고 했습니다.

집안이 가난해 2년제 초급대학을 나와 3개 대학으로 전전했던 윌리암스가 아주 작은 시골 촌 방송국에서 7백달러의 월급을 받는 방송 기자로 출발해서 연봉 1천만 달러를 받는 미국 최고의 앵커로 도약한 신화가 하루아침에 허물어지는 모습은 언론 종사자들에게 안타까움과 함께 모골을 송연케하는 전율의 교훈을 줍니다.
브라이언 윌리암스의 실수는 기자의 언어가 얼마나 정확하고 냉철해야 하는지, 언론인이 가져야 할 신뢰와 판단력의 자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천착케하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전쟁터에서 만난 군인과 지속적인 우정을 유지하고 그의 제대를 축하해 주기 위해 아이스하키 경기에 초청한 것을 보면 윌리암스는 참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언론인입니다. 주위 사람들도 그의 겸손과 사람에 대한 배려와 인간적인 따뜻함을 높게 평가하면서 그가 재기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인간은 누구에게나 특별히 유명 인사가 되었을 때, 멋있어 보이고 자신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고 싶은 유혹이 있고, 세월 속에서 기억이 혼동을 가져 올 수 있고, 때로는 허구를 진실처럼 믿는 정직한 거짓말의 함정에 빠질 수 있습니다. 윌리암스가 언론인이 아니었거나, 언론인이라고 해도 보통 기자였다면 용서 받기가 한결 쉽겠지만, 쉽게 용서 받기에는 윌리암스의 명성과 위치가 너무 크고 중요했습니다.
신뢰와 판단력이 생명이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비판하는 역할을 하는 언론의 지휘자인 보도국장이 허위 보도를 했을 경우 그가 설 땅은 좁습니다. 인간적으로 그를 용서해 주고 싶지만 스스로가 물러가는 것이 자기 자신을 지키는 길입니다. 브라이언 윌리암스는 신뢰의 권위를 잃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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