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병들게 할 자유가 있는가?

미국은 지금 홍역(measles) 논쟁이 한창입니다. 1960년대에 홍역 백신이 개발된 후 미국에서 홍역은 완전 퇴치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홍역 발생이 급증하면서 아직 심각한 정도는 아니지만 우려할 만한 수준이 되었습니다.

홍역 백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불안을 가져오게 했던 주요 계기는 1990년대 말 영국 의사가 홍역 백신이 자폐증(autism)을 유발시킬 수 있다는 발표를 한 뒤였습니다. 그 후 많은 의학자들이 이 문제에 연구를 한 결과 이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 판명되었고, 방역 당국에서도 공식적으로 자폐증과 연관이 없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자폐증 파동은 큰 파장을 일으켰고, 이러한 주장이 허위라는 것이 밝혀졌으나 상당수 사람들은 자폐증 의구심을 떨쳐 버리지 못했습니다.
자폐증 소동이 나기 전부터 전통적으로 홍역 백신을 불신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대부분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주의 신념으로 백신을 거부했습니다. 종교적, 철학적 신념으로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대단히 보수성향을 가진 층으로 이들은 자녀를 일반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공부시키는 홈 스쿨(home school)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상이 물질과 타락의 공해로 오염되는 것에 좌절하고 자녀들이 오염되지 않기 위해 무공해 삶을 가르치는 이른바 오게닉 라이프(organic life)를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예방 접종 거부는 이들 우파 종교적 그룹과는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좌파 지식인 그룹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들은 전문직 종사자가 많고, 높은 교육을 받고 생활 수준이 풍족한 부유층에 속합니다. 이들은 일반적인 상식이나 관념을 불신하는 경향이 강하고,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이론과 지식에 집착성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상식의 눈으로 보면 다소 유별난 사람들입니다. 유별나게 철저하고, 따지고, 의심이 많고, 유별나게 자유주의 성향과 자존심이 강하고, 유별나게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고, 음모론을 잘 믿고, 공권력을 크게 신뢰하지 않는 사람들이 지배적입니다. 정부에서 홍역 백신에 위험성이 없고 안전하다고 말해도 믿질 않고, 독자적으로 조사를 해서 자기 가설과 대체 이론을 세우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터넷 문화가 급속히 팽창하고 구글 지식이 압도하면서 이들의 조사와 이론은 더욱 탄탄해지고, 여기에 동조하는 숫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검증되지 않은 인터넷 지식에 집착하고, 때로는 허무맹랑한 소문과 허위 사실을 믿는 경우가 있습니다. 인간의 사고와 의식은 한번 편향된 시각으로 보게 되면 자기 균형을 상실하고 계속해서 자기가 원하는 지식, 믿고 싶은 내용만 선택하게 됩니다. 유별난 신앙관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이런 경향이 강합니다.
상대적으로 순수성이 강한 이들 좌파 지식인과 우파 종교인들이 자기 나름대로의 철저한 삶을 사는 것은 나쁠 것이 없고, 오히려 무공해 삶을 통해 건강하고 건실한 인생을 살면서 오염된 세상에 경종과 교훈을 주는 값진 본보기 삶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백신 거부가 자기 자신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부모의 선택이 자녀의 인생을 다르게 만드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절감하게 됩니다. 부모의 양육 방법과 가치관이 자녀의 삶을 그르치고 행복한 삶을 저해할 수 있습니다. 부모들 가운데는 종교적 신념으로 자녀에게 고등 교육을 거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홍역을 비롯해 디프테리아, 백일해, 등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은 부모의 선택과 자유 가운데 최악이 될 수가 있습니다. 자녀의 건강과 생명에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백신을 접종하지 않아도 병을 피해갈 수가 있지만, 만약 홍역에 걸릴 경우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수가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과 약도 사람에 따라 앨러지가 있는 것처럼 홍역 백신도 부작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나 그런 경우는 지극히 희박하고, 부작용의 정도도 심각하지 않다는 것이 의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홍역 백신을 거부하는 것은 자기 자녀들을 불행하게 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홍역은 빠른 전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어린이들에게 병을 옮기게 합니다. 백신 접종은 개개인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집단의 안전과 건강을 보호하는 방패막이 역할을 합니다. 백신 접종 거부는 이 방패막을 파괴하는 이기적인 행동이 됩니다.
종교적인 이유나 가치관의 선택으로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증가하면서 홍역 전염이 위험 수위가 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위험 수위로 가는 방패막이 수준이 90퍼센트라고 합니다. 백신 예방 접종을 받은 어린이 숫자가 90% 이하로 내려갈 때 집단 면역의 방파제가 도전을 받는다고 합니다. 현재 미국의 접종률은 90%에서 85% 사이를 오르내린다고 합니다.

백신을 거부하는 숫자가 증가하면서 백신 접종을 강제화 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습니다. 현재 몇 개 주에서는 백신 접종을 의무화 시켰으나 대부분의 주는 부모의 선택에 맡기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을 강제 해야 한다는 주장은 부모의 권리와 자유와 관계된 문제로 예민한 쟁점이 되고 있습니다.

백신 접종을 의무화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부가 부모의 자녀 양육권을 간섭할 권리가 없고, 공권력이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고 삶을 규제할 권리가 없다고 반발하고 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부모는 자녀를 대신해서 삶의 철학을 선택할 권리가 있지만 자녀의 건강과 생명을 위험하게 할 권리가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병을 옮겨 집단 건강을 해칠 권리가 없다고 맞서고 있습니다.

모든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듯이 자녀에게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것도 자녀들을 위해서입니다. 백신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을 때 발생하는 위험 부담보다 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판단은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인 선택으로 자녀를 불행하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때로 상식을 뛰어넘는 결단을 해야 할 때가 있지만 인간의 행복은 상식을 존중하는 땅에서 꽃을 피웁니다. 그리고 출중한 사람들이 연구하고 헌신해서 진화시키는 과학과 의학을 믿어야 합니다. 의학과 과학을 불신하고 거부하면 우리 사회는 불안과 공포 속에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일수록 과학과 의학을 더욱 철저하게 신봉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른다는 역설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매달리는 과학과 의학은 미신적이고 신비적이기 때문에 과학과 의학을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자유주의 신념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자유는 민주주의와 선진적인 삶의 핵심 가치입니다. 그러나 자유는 책임과 상식을 수반해야 합니다. 극장에서 “불이야!”를 외치는 것이 자유가 될 수 없고, 노상에서 동물처럼 행동하는 것이 자유가 될 수 없습니다. 공공의 안위와 다수의 평화와 상식을 해치기 때문입니다.

교통 사고가 났을 때 자기 차를 고치는 콜리전(collision) 보험은 없어도 되지만, 다른 사람의 차를 고쳐주는 라이어비리티(liability) 보험을 강제화 시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것을 막기 위해서 입니다. 성년이 되어 백신 접종을 거부해서 병에 걸릴 자유는 있지만, 이 병을 다른 사람에게 전염시킬 자유는 없습니다.
어른들이 병에 걸릴 자유, 죽을 자유는 있을 수 있지만, 자녀를 병들게 하거나 자녀와 동반 자살할 자유는 없습니다. 동반 자살은 범죄이고 자녀를 병들게 하는 것은 부모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부모가 자녀의 선택을 위임 받았지만, 백신 접종을 거부해서 자녀를 병들게 하는 것은 위임받은 권리를 유기하는 것으로 도덕적 범죄에 속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존중하고 지켜야 하지만 상식과 과학에서 벗어나 자녀의 건강과 생명, 공동체의 생명과 건강을 해치는 자유를 절제하고 규제해야 합니다. 어린이들에게 백신 접종을 의무화 시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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