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샤를리가 아닙니다

프랑스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가 테러리스트에 의해 살륙으로 얼룩진 뒤 테러를 규탄하는 분노의 목소리가 미국 곳곳에 메아리쳤습니다. 보수 진보가 모처럼 하나의 목소리가 되어 테러를 규탄했습니다. 사무엘 헌팅톤이 말했던 “문명이 충돌”하는 그림자가 어른 거리는 것 같은 환각을 줄 만큼 언론은 연일 이슬람 과격 테러리스트를 조명했습니다.

이슬람을 매도하는 분위기가 팽배하는 가운데 오바마 대통령이 프랑스에서 있었던 파리 대행진에 참가하지 않은 것에 대해 보수 진보 양 진영 모두가 백악관을 향해 무차별 공격을 했습니다. 이러한 공격에 백악관은 무릎을 꿇고, 대변인을 통해 미국의 고위 인사가 이 행진에 참가하는 것이 바람직했었다는 일종의 사과성 해명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파는 오바마 대통령이 고의적으로 행진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라고 주장하고, 파리 행진이 있었던 일요일에 오바마가 무슨 일을 했는지 밝히라는 공격까지 했습니다.

오바마 정부에 대한 비판은 파리 행진 불참에 그치지 않고, 테러리스트 표현 문제로도 갔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샤를리 테러나 ISIS를 지칭할 때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extreme Islamic terrorist)”라 표현하지 않고, “극단주의 테러리스트(extreme terrorist)”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보수 언론은 물론 대부분의 진보 언론도 오바마 대통령이 이들 테러 세력을 말할 때 “이슬람”이란 말을 빼고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로 표현하는 것에 비판적입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은 이러한 비판을 일축하고 미국을 방문한 영국 수상과의 공동 기자 회견 때도 카메론 영국 수상은 계속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라고 말했으나 오바마 대통령은 시종일관 “이슬람” 표현을 쓰지 않았습니다. 백악관은 대변인을 통해 이들 테러리스트를 말할 때 이슬람을 넣는 것은 정확한 개념 정의가 아니라고 말하고, “테러리스트들은 특정한 종교의 옷을 입은 개인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들은 과격파 테러리스트들이지 ’이슬람’ 과격파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다수의 여론을 거스르면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로 부르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바른 판단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들 테러리스트들은 자신들의 권력과 목적을 위해 이슬람을 사칭하는 사이비 이슬람 컬트(cult)입니다. 수많은 사람을 도륙했던 Peoples Temple의 학살과 Branch Davidians 의 WACO 학살을 우리는 극단주의 기독교인의 만행이라고 부르지 않고, 낙태를 반대하기 위해 보건소에 총격을 가한 과격 운동가들을 근본주의 기독교 테러리스트라고 부르질 않습니다.
많은 미국인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슬람이란 말을 빼는 것은 테러세력이 두려워 항복한 것이고 “겁쟁이” 태도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오바마의 선택은 이슬람 테러에 대한 감정을 절제하고 이슬람과의 공존을 위한 이성의 관용으로 볼 수가 있습니다. 이슬람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기 시작하면 감정과 마음의 틀이 이슬람에 대해 편견과 차별로 고정관념화 할 수 있습니다.
보수 진보가 모두 서구 문명의 대열에 집결하면서 이슬람과 대칭 구도를 만드는 것 같은 와중에 우파와 좌파의 시각에 미미하지만 작은 차이가 있기도 합니다. 사건의 본질에 대해 보수는 이슬람 과격 세력으로 표출된 이슬람 종교와 문화의 폭력성과 폐쇄성을 강조하면서 침묵하는 이슬람들이 총궐기해 이슬람 과격 세력을 규탄하는 대열에 앞장서야 한다고 말하고, 이슬람 과격 세력과의 강력한 전쟁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의 미국 이민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진보는 이슬람 극단 테러 세력은 소수에 불과하고 대다수 이슬람은 평화적이며 이슬람을 적대시 하는 것을 경계하고 이들을 포용하고 공존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샤를리 에브도 신문사 테러는 미국 여론을 더욱 반 이슬람으로 만들었고, 극우 세력의 목소리를 확대시키는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미국의 우파들이 반 이슬람 분위기를 노골적으로 부추키는 것은 미국의 장래를 위해 불행의 씨가 될 수 있습니다. 이슬람 극단 세력의 테러를 서구 문명과 이슬람 문명의 대결로 끌고 가려는 생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입니다. 이런 태도는 테러리스트와 대칭이 되는 또 다른 극단 세력이 되어 불행을 가속화 시킬 수 있습니다. 지금 유럽이나 미국의 극우 세력이 이러한 비극의 망령을 불러내려 하고 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에는 복잡한 내부 사정과 서구 문명과 강대국의 이해관계가 복합되어 있습니다. 이슬람 집안 싸움으로 테러리스트들이 자기 동족, 자기 종교의 신도들을 죽이는 숫자가 비 이슬람권 사람들을 죽이는 것보다 5배 이상이라고 합니다. 종교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집안 싸움에 이슬람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한 것이 식민지 통치와 강대국들의 침략이었습니다. 빈 라덴이 알 케이다를 만든 계기가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략이었고, ISIS 조직의 발판을 만들어 준 것이 미국의 이락 침공이었습니다. 여기에 미국 중동 정책이 무조건적으로 이스라엘 편을 들면서 아랍권 반미를 확산시키는 기폭제가 되었고, 이것을 극단주의 테러리스트들이 교묘하게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람권을 흑백 논리로 보려는 사람들은 테러의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이고, 미국의 정책과 문화가 아랍권에서 어떻게 투영되는지에 대한 논의를 금기시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깊은 오만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서구의 눈으로 보면 이슬람 문명권은 수준이 뒤지고 문명을 등지고 있습니다. 여자를 차별 학대하고, 다른 종교를 박해하고, 배교자를 죽이기까지 하고, 공격적이고 독선적입니다. 아직도 전제적인 왕조가 시대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권력의 핵심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를 서구가 강요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충돌이 생깁니다. 반인륜적인 학살과 만행을 자행하지 않는 한 군사적 개입을 억제하고 서구 제도의 강요와 서구 문화의 전파를 자중해야 합니다.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테러를 악마들의 악행으로만 접근할 것이라 아니라, 여기에 서구의 오만과 편견이 있다는 자기 성찰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프랑스는 그동안 테러리스트들이 빌미로 잡을 수 있는 테러의 토양을 방치해 왔습니다. 프랑스 인구 5%에서 10%에 이른다는 5백만 - 6백만 프랑스 이슬람들이 주류에 편입하지 못하고 변두리 시민으로 차별받고 소외되어 왔습니다. 테러의 씨앗은 낙오되고 차별받는 프랑스 이슬람 이민자들의 분노와 좌절의 소외 지대에서 자랐습니다.
이러한 화약고에 기름을 부은 것이 샤를리 에브도의 풍자 만화입니다. 테러의 구실을 제공했습니다. 여기에도 프랑스 문화, 서구 문화의 오만이 있습니다. “언론의 자유”라는 서구 문명 최고의 가치를 남용한 것입니다. 미국의 모든 언론이 하나같이 언론의 자유는 절대적이고 양보할 수 없는 신성 불가침으로 말하고 있으나 이것 또한 서구 언론인들의 오만, 미국의 오만입니다. 지나치게 미국과 서구적 가치와 문화로 재단하는 것입니다.

언론의 자유가 절대적일 수 없습니다. 더욱이 그 자유가 다른 종교를 조롱하고, 다른 문명을 희롱하고, 다른 인종을 비하할 때 그 자유는 무서운 분노와 증오를 잉태 시킵니다. 그것을 무시하고 언론의 자유를 구가하려는 오만은 자살 폭탄을 안고 테러를 하는 테러리스트의 무지와 일맥상통할 수 있습니다. 오만은 테러의 야만을 불러 옵니다. 그리고 테러의 야만성과 잔인성 때문에 침묵하는 다수를 심정적으로 야만자들 편에 서게 합니다. 야만자들이 대신해서 자신들의 모멸감과 분노를 배설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나는 샤를리”라는 일치단결된 서구인의 선언은 서구인의 오만입니다. “나는 샤를리다”라는 구호가 반드시 샤를리의 풍자 내용을 지지하는 것이 아니라 언론 자유 그 자체를 지지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 말이 그 말입니다. 결국은 샤를리 풍자 내용까지 지지하는 것이 됩니다. 자신들이 신성시하는 것이 모멸 당하고 조롱거리가 될 때 인간은 광포해질 수 있습니다. 왜 그런 풍자를 포용하지 못하느냐고 나무라는 것 또한 포용을 강조하는 사람의 오만입니다.

우리는 망자 앞에서 숙연히 옷깃을 여미어야 하고, 더우기 그 고인이 테러라는 야만으로 희생 되었을 때 결코 망자에게 누가 될 수 있는 말을 할 수가 없지만 문명 전체가 오만으로 들끓을 때 우리는 그 오만 앞에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만은 더 큰 오만을 낳고, 문명의 오만은 다른 문명의 야만을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오만과 야만이 충돌할 때 문명은 공멸의 비극을 가져 올 수 있습니다.

저는 언론의 자유를 신봉하지만, 다른 종교와 문명과 인종을 폄하하고 희롱하는 언론의 자유를 믿지 않습니다. 절제와 금도가 없는 언론의 자유는 세상과 문명을 대립적이고 파괴적으로 몰아 갑니다. 우리는 테러와 단호히 싸워야 하지만 테러 집단이 속한 문화와 종교를 집단적으로 매도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샤를리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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