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 값 하락

새해 벽두에 외출했던 아내가 들어 오면서 무슨 큰 일이라도 생긴듯이 다소 들뜬 억양으로 “기름값이 2달러 아래로 떨어졌어요”하고 말했습니다. 갤런 당 1달러 92센트라고 했습니다. 시민들에게 기름값 하락은 반가운 소식이고 빠듯한 가계부 일수록 봉급이 오른 것 같은 여유있는 기분을 주게 마련입니다.

개스값이 한창 치솟았을 때는 자동차 개스가 갤런 당 4달러 50센트를 넘었으니 몇달 사이에 절반 이하로 뚝 떨어진 것입니다. 작년 여름에 배럴 당 115달러 하던 원유 가격이 가을부터 급강하하기 시작해 1월 6일 현재 52달러로 하락했습니다.

시장 경제의 가장 초보적인 것이 수요와 공급의 법칙이듯 기름값 하락도 수요와 공급에서 비롯된 것이고 여기에 국제 정치의 이해 관계가 얽혀있습니다. 기름값이 치솟았을 당시는 수요와 공급 법칙에도 해당되지 않고, 특별히 오를 이유가 없는데 상승한다면서 기름 회사의 폭리와 음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었으나, 기름값이 추락하는 지금 음모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다만 기름값 하락으로 치명타를 입고 있는 러시아의 푸틴만이 미국과 서방의 음모론으로 러시아 국민들을 달래고 있습니다.

석유값 하락을 촉발시킨 가장 큰 요인으로는 “fracking”을 꼽고 있습니다. fracking(프랙킹)은 바위 틈에 있는 석유를 채취하는 방법입니다. 프랙킹으로 바위 사이에 묻혀있는 “쉐일 오일(shale oil)”이라는 혈암유가 두각을 나타내면서 “크루드 오일(crude oil)”- 원유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기름 시장의 판도에 변화가 왔습니다.
쉐일 오일은 이미 중세기 때부터 사용된 오랜 역사를 가졌으나 채유 비용이 높아 원유에 밀려 있다가 프랙킹 기술이 발전되고 기름값이 치솟으면서 석유회사들이 육칠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바위 틈에 있는 기름에 특수 화학처리가 된 액체를 투입해서 채유하는 프랙킹은 기름을 끌어내는 과정에서 화학 액체가 바위 지반을 흔들기 때문에 강이나 호수가 오염되는 환경 문제를 야기시켜 뉴욕주에서는 프랙킹 채유를 중단시키기도 했습니다.

현재 프랙킹 기름의 가장 큰 도전은 채유 비용입니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배럴당 60달러를 손익분기점으로 보고있습니다. 이미 60달러 이하로 내려 50달러 선을 허물려는 시점에 와 있습니다. 현재 배럴 당 50달러 선에 있는 기름값이 얼마나 더 내려 갈것이냐 하는 문제는 각 나라의 복잡한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습니다. 기름값을 놓고 미국과 중동 산유국들이 기싸움을 하고, 기름값 하락으로 산유국들이 재정 압박을 받고 있는 가운데 가장 급소를 맞은 나라가 러시아입니다.
크라이미아 반도를 삼키고, 유크라인 분할을 획책하면서 러시아 제국의 부활을 꿈꾸는 푸틴의 신 냉전정책이 기름값 하락으로 제동이 걸렸습니다. 러시아는 세계 최대 산유국으로 예산의 50%를 기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석유값이 절반 이하로 하락하면서 국가 수입이 반으로 줄고, 루불화가 추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촉발되고, 경제 파탄이 목전에 어른거리고 있습니다. 러시아 민족주의 광풍을 일으켜 국민적 영웅으로 칭송받던 푸틴이 기름값 하락으로 휘청대면서 서방에 타협 카드를 내밀지 아니면 더 큰 침략의 도박을 할지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많은 전문가들은 기름값 하락이 배럴당 60달러 선에서 끝날 것으로 예상했었습니다. 이러한 예측이 빗나간 것은 산유국들의 독점 카르텔인 OPEC(Organization of the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 석유수출국 기구)의 균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지난 추수감사절 때 회동했던 산유국들이 석유 가격의 하락을 방지하기 위해 생산량 감소 결정을 할 것으로 예측했었으나 OPEC의 주축 국가인 사우디 아라비아가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기름값 하락으로 다른 산유국들과 마찬가지로 사우디가 재정적인 타격을 받으면서도 석유 생산 감축을 바라는 이란이나 다른 산유국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은 것은 시장 점유율 때문이었습니다. 과거에 그런 경험이 있기도 했지만 석유 생산 감축으로 시장을 일시적으로 빼앗길 경우, 가격이 다시 상승했을 때 잃었던 시장을 되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우디는 그동안 기름값 폭리로 번 7천억 달러에 이르는 막대한 외환 보유고가 있어서 재정 손실을 느긋하게 보완할 수 있습니다.

기름값이 하락해서 산유국들이 재정적인 적자를 본다고 하지만 이들 국가는 아직도 큰 이익을 보고 있습니다. 다만 과대한 기름값에 의존해서 책정됐던 국가 예산에 차질이 올 뿐입니다. 석유값이 절반 이상 하락해서 수입이 줄었으나 아직까지도 막대한 이익을 보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그동안 산유국들이 얼마나 떼 돈을 벌었는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OPEC 산유국들이 일단 6개월을 관망키로 한 것은 지금 당장은 손해를 보더라도 앞으로 더 큰 돈을 벌기위한 일시 후퇴입니다. 그동안 비축 외환으로 견디면서 미국의 쉐일 오일 회사들이 항복하기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석유값이 더 하락하면 프랙킹 채유 회사들이 적자를 견디지 못해 손을 들 것이고, 그 때 가서 이들이 가졌던 석유 시장을 확보하고 가격을 다시 올릴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이미 일부 미국의 프랙킹 회사들이 생산 규모를 줄이고 종업원을 일시 해고 시키고, 쉐일 오일로 호경기를 맞았던 노스 다코다, 오클라호마, 텍사스의 붐 타운들이 위축되기 시작하고 있어 사우디의 예상이 어느 정도 적중하고 있으나, 프랙킹 회사들은 규모를 감소시키기는 해도 결코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프랙킹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해 생산 비용을 줄일 계획이어서 미국과 사우디의 대결이 만만치 않게 전개되고 있습니다.

기름값 하락으로 가장 피해를 보는 국가들이 공교롭게도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에 있는 러시아를 비롯해서 이란과 베네주엘라입니다. 유크라인 사태로 러시아에 경제 제재 조치를 취했을 때 푸틴의 조소와 코웃음으로 자존심을 몹시 상했던 미국은 러시아가 기름값으로 비틀거리는 것을 보면서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막바지 핵 협상을 하고 있는 이란이 석유값으로 경제적 압박이 가중되면서 핵 협상에 어떤 변화를 보일지도 주목되고 있습니다. 남미에서 미국의 가시가 되고 있는 베네주엘라가 국가 부도 일보직전에 있는 것도 미국에게 회심의 미소를 짓게하고, 베네주엘라와 가장 가까운 나라 가운데 하나인 큐바와 미국이 외교 정상화 결정을 하면서 미국은 남미 정치에 여유를 되찾고 있습니다.

기름값이 10% 변화하면 지구촌GDP가 0.2% 변동한다는 IMF 전문가의 견해로 미루어 보면 기름값 하락으로 시민들 호주머니에 여유가 생기고 세계의 경제가 그만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생활 필수품 가운데 으뜸을 차지하는 자동차 개스값이 하락한 것은 소비자들에게 금전적인 숫자 이익 이상으로 심리적인 여유를 가져다 주고, 구매 심리를 자극해 경제를 활성화 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산유국이나 석유 회사들의 횡포나 폭리에 아무런 힘을 쓸 수 없는 무력한 시민들은 모처럼 만에 기름값 하락으로 여유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으나, 이렇게 느긋한 시간이 언제 반전될지 모릅니다. 그동안 기름값에 주눅이 들어 자동차 규모를 줄이고 불필요한 운전을 줄였던 시민들 가운데는 큰 차로 바꾸는 성급한 결정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기름값이 결국은 다시 상승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 전망입니다.
중국이나 유럽의 경기 침체로 기름 수요가 감소되었지만, 경기가 활성화되면 다시 수요가 증가할 것이고 인도나 다른 개발국가들의 경제 규모가 확대되면서 석유 수요는 불가피하게 늘어날 것입니다. 그리고 리비아나 이락 이란 등 산유국의 정치 상황이 악화되어 석유 공급이 감소될 수도 있고, 사우디 아라비아가 마음을 바꾸어 먹고 다른 산유국들과 함께 생산량을 감축할 가능성도 항상 있습니다.

그러나 기름값이 다시 오른다고 해도 프랙킹 채유 기술이 배럴 당 60달러는 수익을 낼 수 있고, 세계 최대 쉐일 오일 매장량을 가지고 있는 중국도 프랙킹 채유 기술을 발전시켜 생산량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에 기름값이 올라도 과거처럼 치솟지는 않을 것이라는 낙관론을 펴고 싶은 것이 국민들 마음입니다. 기름값 하락으로 산유국들의 오만이 잠시 겸손해진 것은 기분 좋은 일이지만, 이들의 기름 독재를 영구적으로 축출하기 위해서는 대체 에너지 개발이 가장 절실한 세계적 요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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