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결투 "불체자 행정 명령"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 명령을 통해 5백만 명에 달하는 불법체류자들의 추방을 잠정적으로 중단시킨 뒤 미국은 환호와 분노의 극단적인 두 얼굴로 엇갈리고 있습니다. 마음 조리며 음지에서 살던 불법 체류자들과 불법체류자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히스패닉은 오바마를 구세주처럼 극찬하고 불법체류자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가졌거나 오바마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헌법 파괴자라고 극렬하게 공격하고 있습니다. 극우 성향의 인터넷 미디어에 들어가면 수천 개에 달하는 격렬한 어조의 댓글이 막말 수준입니다. 미국 정치에서 이렇게 격앙되고 증오에 찬 댓글을 많이 본 것은 처음입니다.

이민법 문제는 미국 정치에서 가장 민감한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불법 체류자 입장과 인간적인 면에서 보면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더 잘 살기위해 미국에 온 사람들을 추방하는 것은 미국 정신에 배치되는 비미국적인 처사입니다. 그러나 미국 국민과 국가 중심의 눈으로 보면 더 이상 무한정으로 불법 입국자나 체류자를 받아들일 수 없고, 이대로 가면 미국의 성격과 문화가 달라지고 미국이 비미국화의 현상을 가져 올 수 있을 것입니다.

또 하나 논쟁의 핵심은 미국을 유지시키는 가장 큰 제도의 힘 가운데 하나인 법치주의가 도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미 1986년 레이건 행정부 당시 3백만 명에 대한 불법 체류자를 사면했던 미국이 30년 뒤에 다시 1천2백만 명의 불법체류자를 사면시키는 것은 법을 어기더라도 시간이 지나고 법을 어긴 사람 숫자가 많아지면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관례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이것은 법치주의 근간을 흔든다는 주장입니다.

실리적이고 경제적인 문제에서는 불법체류자들이 큰 공헌을 하고 있다는 의견이 강합니다. 저임금 막노동으로 미국의 경제의 주요한 버팀목이 되고, 이들을 양성화시킬 경우 수조 달러의 국부가 창출될 수 있고, 역동적인 새 인력이 미국 경제에 활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평가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지금 당장은 불법 체류자들이 저임금 막노동을 하고 있지만 이들이 합법화가 되면 임금 수준도 높아지고, 시간이 갈수록 주류의 일자리로 옮겨와 미국인의 일자리를 빼앗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이들이 각종 사회 복지혜택과 교육비 의료비 수혜자가 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막대한 국민 세금이 소요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우려하는 것은 불법체류자들이 미국의 문화지도, 인종 판도와 성격을 바꾼다는 것입니다. 인종적인 문제로 비화할 수 있기 때문에 보수 세력이나 백인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미국의 질이 떨어진다”는 심리가 내면에 깔려있습니다. 이 점이 보수 백인들의 불안과 분노의 핵심입니다. 이러한 불안과 분노의 가장 극단적이고 극렬한 표출이 미국의 일부 주를 독립시키자는 분리주의자들의 좌절입니다. 1천2백만 명이라는 국가 규모 불법체류자들의 합법화가 가져올 인종적, 정치적, 문화적 영향과 파장은 엄청날 것입니다.

미국의 딜레마는 불법체류자가 너무 많아졌기 때문에 1천2백만을 현실적으로 모두 추방시킬 수 없다는 점입니다. 불법체류자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이점을 시인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요구하는 선결 요건은 더 이상 불법체류자들이 계속 들어 올 수 없도록 국경 방위 장치를 강구하라는 것입니다. 밀입국자를 막을 수 있는 국경 안보를 확립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체자를 합법화시키는 것은 몇 십 년 뒤에 똑 같은 현상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이런 주장은 설득력과 타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민법 개혁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고 1년반 전에 이민법 초안을 상원에서 공화 민주 양당의 초당적인 협조로 법안을 통과시켰으나 하원에서 처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다수당인 하원은 상원에서 통과된 법안을 상정조차 하지 않고 1년 반을 끌어 왔습니다. 이점이 오바마 대통령의 참을성을 바닥나게 했고, 결국 의회와 정면 대결하는 극한 카드를 꺼내도록 만들었습니다. 히스패닉들로 부터 강력한 항의와 압력을 받고 있는 오바마 대통령은 임기를 2년 앞둔 상태에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중간선거가 공화당의 상원 하원 장악으로 끝난 뒤 오바마 대통령은 여소야대가 된 현실에서 의회 지도자들을 백악관으로 초치해 만찬을 가지고 초당적인 협조와 국정 운영을 약속했으나, 곧바로 불체자 추방을 중단시키는 행정 명령을 발표했습니다. 초당적인 국정운영을 기대했던 공화당과 보수진영은 오바마 대통령의 일격에 망연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은 오바마 대통령이 정치적 상식과 국민 여론을 배신하고 위헌적인 행정 명령을 내린 것을 용서할 수 없다고 격앙하고 있으나 별 뾰족한 대응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부 기능을 폐쇄시키거나 대통령 탄핵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으나 실현성이 많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이 정부를 폐쇄시키거나 탄핵을 해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보이고 있습니다. 오바마로서는 잃을 것이 없고, 오히려 정치적 입지를 강화시킨다는 계산을 하고 있습니다. 공화당이 이런 카드를 사용하기 힘든 것은 자칫하면 히스패닉과 아시안 지지표를 잃고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이민 문제 대신에 오바마 케어를 고소하고 다른 보복 조치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오바마 행정 명령의 핵심은 미국에 5년 이상 거주한 사람과 시민권자의 부모에 대해서는 3년 동안 추방을 보류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해당하는 5백만 명은 불체자 그늘에서 나와 신고를 하고 합법적으로 일을 하면서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공을 의회에 넘겼습니다. 불법체류자의 추방을 3년간 유예시켰으니 당신들은 이들에게 합법적인 신분을 제공하고 이민법을 개혁하라는 것입니다.

오바마의 행정 명령은 아주 도발적이고 전격적이고 파격적입니다. 공화당으로서는 정신이 멍해질 정도의 강한 펀치를 맞은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히스패닉이 담보로 걸려있기 때문에 정치적 반격을 하기도 힘든 실정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이러한 조치는 상당히 준비되고 계산된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에는 오바마의 응어리진 좌절과 분노가 엿보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된 후 백인 보수와 공화당으로 부터 인종차별에 가까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는 심리적 분노가 있습니다. 이런 논쟁은 폭발성이 거대하기 때문에 내놓고 말할 수 없고 내면화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노 심리가 이민 이슈라는 정치적 이해가 걸린 법안으로 표출된 것으로 느껴집니다.

정상적인 정치적 선택으로는 레임덕 임기를 2년 앞두고 중간 선거에서 상원 하원 모두를 야당에게 넘겨준 상태에서 초당적 협조를 해야 마땅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오바마는 정반대의 정면 결투를 선택했습니다. 자신의 최대 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오바마 케어를 공화당 의회에서 50번 가까이 폐기 시도를 했다는 것이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용서할 수 없는 차별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불법체류자 전투에서 압승을 거두었고, 그동안 사사건건 발목을 잡은 티 파티가 중심이 된 극우세력에게 심리적 보복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정치적으로 과연 현명했느냐 하는 질문을 하게 합니다. 전략적으로, 불체자 전투에서는 승리했지만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적 역량을 실종시켰고, 앞으로 남은 2년 임기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조치로 이민법의 실마리가 풀릴지도 아직 확실치 않습니다. 양원에서 모두 다수당이 된 공화당이 오바마의 행정 명령에 떠밀려 이민법을 제정한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양극화되어가는 미국 정치의 이상 기온이 더욱 극단화 될 것이라는 우려가 더해집니다.

오바마 대통령은 그동안 불체자에 대해 행정 명령을 내리겠느냐는 질문에 “나는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을 받지만 미국의 제도는 그렇게 움직이지 않고, 민주주의는 그렇게 기능하지 않고, 헌법은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해 왔습니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오바마 대통령이 헌법 위기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으면서까지 심경의 변화를 일으키고, 다소 편법의 모험을 감행한 바탕에는 오늘의 양극화된 미국의 정치 풍토가 있습니다.

미국 정치가 오늘처럼 양극화 상태로 오게된 가장 큰 책임은 티 파티를 중심으로 한 극우세력에게 있습니다. 양극화 현상을 풀지 못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치력에 아쉬움도 있고, 행정 명령으로 더욱 양극화되는 정치 풍토가 걱정스럽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오바마의 불체자 행정 명령을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타협 정치의 큰 틀을 위해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행정 명령의 유혹을 절제해야 했지만 타협이 거부되는 “티 파티(Tea Party)”의 극단 정치 풍토에서는 정면 결투가 오히려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상식이 실종된 정치에서는 이렇게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처방이 실마리를 풀수도 있습니다. 오바마의 행정 명령은 정치적으로 무모하면서도 절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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