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주년에 거는 기대

신문의 역할과 기능은 신문이 숨 쉬고 있는 시대 상황, 지역 조건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시카고 지역 동포 신문은 오늘의 시카고 한인사회의 현실과 여건에 따라 역할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신문의 장래도 시카고 한인 커뮤니티의 미래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시카고 한인사회는 노령기에 있습니다. 1970년대에 형성된 시카고 한인사회는 새로운 이민자들이 유입되지 않는 상황에서 초창기 이민자들은 은퇴 연령이 가까워지거나 은퇴를 하고 있습니다. 일부 한인들이 가족 초청이나 취업, 사업 이민으로 오고 있으나 숫자가 많지 않고, 이들의 한인 커뮤니티 참여나 영향도 미미합니다. 그리고 유학생들이나 지상사 요원들이 있으나 이들은 코리안 아메리칸으로 분류할 수 없는 일시적 체류자들이고, 이민자와 의식도 다르고 관심사도 다릅니다.
1970년대 80년대 초창기 한인 커뮤니티는 아메리칸 드림을 가지고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로, 생존과 적응, 자녀 교육이 최대 관심사였고, 커뮤니티는 의욕과 열정이 넘쳤고, 미래에 대한 꿈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땅에 한인 사회를 어떻게 건설해야 하고, 미국 땅에 코리안의 문화와 뿌리를 어떻게 심어야 하고, 자녀들에게 어떻게 코리안의 유산을 전승시켜 주어야 할지가 동포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이제 세월이 지나서, 커뮤니티를 만든지 40년이 지난 오늘의 시카고 한인사회는 미래에 대한 비전을 상실하고, 활기와 의욕을 잃은 채 늙어가고 있습니다. 외형적으로 한 때 성공한 커뮤니티로 주류사회와 타인종 사회로 부터 주목과 찬사를 받았으나 한인 사회는 그러한 성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내실이나 실체가 없었고, 오늘의 커뮤니티는 연명하는 껍데기만 남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커뮤니티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체성을 심어주고, 코리안 아메리칸 문화와 의식이 자라는 상징적인 구심점을 말합니다. 출발점도 그랬고, 지향점도 그렇고, 코리안 커뮤니티는 눈에 보이는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커뮤니티가 아니라, 코리안 아메리칸 의식 문화의 초석을 깔아주는 상징적인 구심점을 뜻하는 것입니다. 의식 문화의 구심점이 있어야 코리안 아메리칸의 정신적 뿌리와 문화적 유산이 면면히 흘러갈 수 있습니다. 코리안 아메리칸의 개인적인 성공과 성취는 많지만 공동체로서의 코리안 커뮤니티는 실패작이었습니다.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 창업이라는 초기 이민자의 실험은 실패로 끝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동포 신문의 미래가 밝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인터넷 출현으로 종이 신문이 쇠퇴해가는 운명 속에서 동포 신문의 존재는 이미 무력해 졌고, 앞으로 더욱 무력해 질 것입니다. 한 때 동포 신문은 한인 커뮤니티에 비전과 길을 제시하는 중추적 역할을 감당했었고, 커뮤니티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커뮤니티와 함께 동포 신문도 노쇠해 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여건 하에서 시카고 타임스가 창간 1주년을 맞았습니다. 커뮤니티가 쇠락해가고 신문이 시들어가는 시대에 창간을 한 시카고 타임스는 힘든 시대의 역류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기에 그만큼 긴 안목과 남다른 의지가 요구되고 있습니다. 현실적으로 시카고 타임스가 직면한 가장 급선무는 재정적인 독립을 하는 것입니다. 이 분야는 사업적인 능력을 가진 사람들의 몫이기에 저는 편집과 제작에 관한 제언을 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삶이 그러하고, 국가와 사회가 그렇듯이 시카고 타임스는 비전과, 철학과, 사명을 가져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비전과 철학과 사명이 코리안 아메리칸 커뮤니티의 미래를 조망하고 통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문의 비전과 철학과 사명이 시대의 미래를 내다보고 냉정한 현실 감각을 가지지 못할 때 창간의 깃발은 일시적 용기와 열정으로 끝날 수 있습니다.

비전과 철학과 사명을 생각하기 전에 시카고 타임스는 독자층이 누구인지를 인식해야 할 것입니다. 시카고 한인사회의 특성상 지면 구성이 장년기나 노년기 독자층에게 필요한 정보와, 은퇴 후의 삶을 새롭게 설계하는 내용의 기사에 역점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미국 시민으로 주인의식을 가지고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미국의 제도나 문화 역사에 관한 기사를 많이 게재하고, 시민 의식을 고취시키고, 한국 정치 기사는 줄여가고 미국 정치 사회에 관해 지면을 많이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한인들에게 부족한 토론 문화를 육성시키기 위해 각종 잇슈를 가지고 건설적인 논쟁을 하는 포럼 지면을 할애하고, 열심히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발굴하기를 바랍니다. 이민 1세가 어떻게 노년기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이 땅에 어떤 유산을 남겨야 할지에 관심을 가지고, 특별히 세상을 떠나는 이민자의 삶을 조명하는 ‘오비츄어리, Obituary: 개인의 살아온 이야기)를 심도 있게 게재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2세 자녀들의 타인종과의 결혼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 것을 직시하고, 타인종 며느리와 사위를 어떻게 코리안 아메리칸 문화 속에 융합시키고, 손자 손녀들에게 어떻게 정신적 문화적 문화를 전승시켜야 할지에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코리안 아메리칸 이민 문화, 의식 문화를 정립 시키는 일에 신문이 열정을 쏟아야 합니다.

이러한 역할을 하기 위해 심층 기사를 많이 제공하기 바랍니다. 동포신문이 재정적 취약성에 허덕여야 하고, 우리 시대의 감각적이고 안이한 문화에 영합하면서 동포신문은 깊이 있는 기사를 다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문이 생각하는 기능을 잃어가고 동포들 의식도 생각하는 삶을 등한시하는 풍토가 되었습니다. 시카고 타임스는 동포 신문과 한인들의 이러한 타성과 척박한 풍토에 과감하게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시카고 타임스가 기존하는 이러한 신문의 하나가 되려고 한다면 창간의 의미는 빛이 바랠 수밖에 없습니다. 시카고 타임스는 다른 미디어가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기사를 발굴하고 제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신문은 자기성찰을 하면서 겸손해야 하지만 독자를 이끌어가는 사명감과 자신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한인 커뮤니티의 숙명적 한계를 극복하기 어렵고, 시카고 타임스가 뿌리 깊은 신문으로 정착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당장의 급선무는 재정적으로 생존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대 변신과 도약을 해야 합니다. 이 변신과 도약은 신문의 비전과 사명, 철학과 깊은 관계에 있습니다.
도약과 변신을 위해서 시카고 타임스는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뒤 ‘시카고’ 신문에서 미주한인을 겨냥하는 ‘코리안 아메리칸’ 신문으로 발돋움하기를 기대합니다. 지역성을 벗어나야 합니다. 이것은 시카고라는 정체된 한인 커뮤니티를 벗어나는 실질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동포 신문이 종국적으로 지향해야 할 코리안 아메리칸 문화 정립을 위한 사명 때문이기도 합니다. ‘시카고’ 타임스가 ‘미주한인’ 타임스로 도약해 코리안 아메리칸 의식 문화 창출에 일익을 감당할 수 있을 때 시카고 타임스는 이민 역사에서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시카고 타임스는 그 일을 위한 정지 작업의 출발이기를 바랍니다.

변신과 도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코리안 아메리칸 신문이 한국과 세계에 흩어진 동포들과 “글로벌 코리안 의식 문화”를 함께 모색하는 대화와 포럼의 광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지금까지 교포신문은 한국 신문과 한국 문화를 수입만 해 왔으나 이제는 미국에서 체득한 경험과 생각을 한국에 역수출하고 세계에 흩어진 한인들과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주 한인들이 중심이 되어 미주 한인들의 시각으로 미국과 한국, 세계를 조명하는 큰 신문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신문이 되기 위해서는 종국적으로 지역을 뛰어 넘는 인터넷 신문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이와 병행해서 영어로 된 인터넷 신문도 창간하는 큰 비전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한인 1세와 한국의 한국인, 세계의 한인과 유대를 갖기 위해서는 한국어 인터넷 신문이 필수적이지만 이와 함께 2세와 3세, 타인종 배우자, 한국문화에 관심이 있는 타인종을 코리안 문화라는 공통분모로 포용하고, 한국문화를 미국과 세계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코리안 문화를 함께 논의하고 전승하는 영어 광장이 있어야 합니다. 영어 인터넷 신문은 1세들의 꽃이 진자리에서 다시 새 꽃을 피우는 코리안 아메리칸의 찬연한 정신적 문화적 유산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직 걸음마도 하기 버거운 창립 1주년의 신문에게 환상같은 비전과 사명을 주문하는 것이 걸맞지 않은 느낌이 들수도 있지만 비전과 사명이 높고 철학이 깊어야 오늘을 헤쳐갈 수 있고 미래의 신문으로 웅비할 수 있습니다. 1년의 고비를 넘겼기에 시카고 타임스는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첫 걸음에 성공했습니다. 함께 축하하고 격려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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