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들이여 제자리로 돌아가시라

한국의 정의구현사제단의 군산 성당에서 “박근혜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미사를 올리고, 박창신 신부가 강론에서 “NLL에서 한미 군사운동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해야 하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하는 말을 했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아, 신부가 병이 들어도 큰 병이 들었구나! 하는 탄식이 제 평정심을 흔들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사퇴를 주장하면서 연평도 포격이라는 전혀 다른 주제를 한 묶음으로 묶어서 가장 극단적인 표현을 했습니다. 사퇴 주장을 하면서 “북한에서 쏴야죠.” 하는 말이 자기도 모르는 순간에 박신부 입에서 나왔을 것입니다. 감춰진 속마음이 나온 것입니다. 박신부가 제정신으로 돌아 왔다면, 지금쯤 그 말을 내뱉은 것을 후회할지도 모릅니다.

광주 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이영선 신부는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발언에 대해 “발언의 본질은 사라지고 몇 마디만을 가지고 정부와 일부 언론이 종북몰이로 가져가는 것은 ‘적반하장’ 격인 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적반하장”이란 말은 여기에 적합치 않은 표현이고, 연평도 망언을 ‘발언의 몇마디’라고 가볍게 치부하는 것은 사제의 사고능력에 이상이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북한에서 쏴야죠”하는 말은 지엽적인 말꼬리가 아니라 생각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의식의 본질입니다. 종북 사고의 실체를 이 보다 더 극명하게 표현해 주는 말도 드뭅니다. 3.15 부정선거 후 이기붕 부통령 당선자가 “총은 쏘라고 준것”이라고 했던 유명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은 망언의 역사에 남아있는 것처럼 “북한에서 쏴야죠”하는 사제의 발언도 망언의 기록에 오래 남을 것입니다.

대통령 사퇴론을 주장하는 사람이 북한 연평도 도발의 정당성을 말하는 순간, 이 사람은 자신의 실체를 발가벗게 되고, 대통령 사퇴론의 허구를 스스로 노출시키게 됩니다. 대통령이 사퇴해야 한다는 주장의 심리적 바탕에 종북성이 있고, 종북의 증오심이 사퇴론을 가열시켰다는 것입니다. 종북의 증오심이 가열되면 이성과 이치가 실종되고 극단적 억지가 모든 논리를 압도합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김정은 대장 동지’와 만나자고 해서 “제일 큰 문제는 미국”이라고 미국 욕을 한 뒤, “NNL이 괴물처럼 되었다”며 북방한계선을 포기할듯 말듯한 알쏭달쏭한 말을 하면서, 미국의 “제국주의 역사가 인민에 반성하지 않고 지금도 패권 야망을 들어내고 있다”고 말하고, “제가 임기 끝내고 위원장님 뵙자는 소리는 못하겠습니다만, 대접은 안 받아도 좋으니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 할 수 있게 좀 해 해주십시오”라고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여쭙는 자세로 비위를 맞추었다면 박창신 ‘정의구현사제단’ 사람들은 쌍수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통일 의지를 가진 훌륭한 지도자라고 칭송에 칭송을 했을 것입니다. 물론 국정원 댓글을 가지고 사퇴론까지 들먹이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국정원 댓글은 그냥 넘어가면 안 됩니다. 철저히 조사를 해야 합니다. 국정원이란 막강한 권력 기관이 조직적으로 선거운동에 개입한 것에 대해 엄한 벌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일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지요. 박근혜 대통령이 댓글을 쓰라고 지시를 했는지 밝히고 그런 지시를 했거나, 그것을 은폐하고 거짓말을 했다면 그 때 사퇴하라고 요구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조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댓글 부정 행위를 하라고 지시를 했는지가 밝혀지지 않았는데 사퇴부터 하라고 하는 것은 충동적이고 사리 분별력이 부족한 억지입니다.

만약 박근혜 대통령이 댓글 부정을 지시하지 않았는데 ‘정의구현사제단’ 사람들의 어깃장에 식상해서 “대통령 못해 먹겠다”고 사퇴를 한다면, 그거야 말로 너무 충동적이고, 유약하고 국가와 국민을 우롱하고 배신하는 무책임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현상이야 말로 세상의 상식이 조롱하게 될 웃음극입니다. 그런데 박창신 사람들과 이들을 두둔하는 ‘정의구현사제단’은 그런 웃음거리 대통령과 조국이 되도록 국민들을 부추키고 있으니, 종북의 맹신과 증오의 광신이 정신력 붕괴의 한계점을 넘어섰습니다.

박창신 정의사제단 사람들은 대한민국 국민 수준이나 품격을 너무 얕보고 있습니다. 국민들이 문재인 후보를 욕하고 박근혜 후보를 칭찬하는 댓글 수십만개 수백만개를 띄웠다고 해서 그 댓글을 보고 표심을 바꿀만큼 어리석다고 생각하는지요? 국민들을 이렇게 어리석은 수준으로 끌고 가는 견강부회를 백번양보해서 일부 사람이 표심을 돌렸다고 가정을 할 경우, 그 숫자가 얼마가 될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댓글 십만개 백만개에 표심이 십만표 백만표가 변했을까요?

다시 천번만번 양보해서 댓글 수십만개 수백만개를 읽고 마음을 돌린 사람이 십만 백만이 됐다고 가정에 가정을 한다고 했을 경우, 그 숫자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까? 그 숫자가 대통령 당선을 무효화할 정도인 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면 사퇴론을 정당화 시킬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냉정한 현실 논리이고 공평한 법치주의입니다. 정의구현사제단 사람들의 주장은 이성의 논리가 아니라 막무가내 억지입니다. 유신시대는 저도 정의구현사제단을 앞장서서 성원했지만 지금은 녹슨 신칼을 힘겹게 휘두르는 노쇠한 무당들처럼 보입니다. 유신시대는 사제가 본연의 역할을 떠나 독재를 규탄했던 긴급한 비상 역할이 환호와 칭송을 받을 수 있었으나, 이제 시대가 달라졌습니다. 지금은 사제 본연의 임무를 망각하고 정치 탈선, 선동 행위를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심령 구원보다 현실문제에 그토록 애착이 가면 사제복을 벗고 정치를 하시지요. 물질과 탐욕으로 썩어가는 이 세상에서 맑은 영혼의 구도에 갈급해 하는 신도들의 진정을 그렇게도 모르십니까.

정의를 외치는 사제단과 추종자들이 지독히 싫어하는 미국 이야기 하나 해야겠습니다. 2000년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당락을 결정하는 주가 플로리다주였습니다. 최종 집계에서 부시 후보가 고어 후보를 2천표 차로 이겨서 부시의 승리가 결정되었습니다. 그러나 플로리다의 주법은 표차가 근소할 때는 재개표를 하도록 돼 있어서 재 개표를 한 결과 표차가 300표로 줄고, 나중에 군인들의 부재자 투표를 추가한 결과 표차가 900표로 됐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시비가 붙었습니다. 고어 후보 지지가 압도적인 흑인 투표지역에서 수만명 흑인들이 범죄자로 몰려서 투표를 할 수 없었고, 또 유권자들의 투표 용지 가운데 지지 표시를 한 펀치 구멍이 완전히 뚫리지 않은 것이 밝혀졌습니다. 펀치 구멍에서 떨어질듯 말듯 붙어서 나불거리는 종이가 나비 같다고 해서 “나비 투표용지(butterfly ballot)”라고 불리운 이 투표지를 기계가 제대로 읽지 못해 무효 처리된 것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어 후보는 기계 개표 대신에 사람이 확인하는 수동식 개표를 요청했습니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이 선거 결과를 특정 날짜까지 보고해야 하는 플로리다 주 헌법이었습니다.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고어 후보 주장을 받아 들여 플로리다주 전체 지역 모두가 수동식 재개표를 하도록 개표 마감 일자를 연장하는 판결했습니다. 그러나 연방 대법원이 개입해서 플로리다 주 대법원이 수동식 재개표를 하도록 개표 마감 날짜를 연장한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을 했습니다. 판사 9명이 5대 4로 부시 후보 손을 들어 준 것입니다. 고어 후보는 미국 전체 투표자 선거에서 부시 후보보다 54만표를 더 얻었고, 플로리다 주 대법원도 재개표를 하도록 했으나 연방 대법원의 판결로 낙선이 됐습니다.

이길 수 있는 선거에서 진 것입니다. 고어 후보는 미국 민주주의를 살리기 위해서 억울하지만 승복한다고 밝히고, 그 후로 고어는 물론 민주당 사람들 아무도 이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한국의 박창신 사람들, 정의구현사제단 사람들과 거기에 맞장구치는 사람들의 민주주의 수준과 미국 민주주의 수준의 차이입니다. 아마 한국 같았으면 폭동이 났을 것이고, 박창신 정의사제단 사람들은 수백번 폭동을 선동했을 것이고, 야당은 수백개의 천막을 치고 촛불의 광기가 한국을 마비시켰을 것입니다. 박근혜 사퇴론은 여기에 비하면 문턱 근처에도 못갑니다. 아무리 혐오증이 심해도 더 이상 스스로를 웃음거리로 만들지 말기 바랍니다.

박신부나 정의 사제단들, 여기에 추종하고 동조하는 사람들의 가장 공통적인 분모는 무모한 극단성과 지독한 증오심입니다. 사고에 균형을 잃고, 자신의 실존을 망각하고, 환청과 환영 속에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바른 말을 들어도 마음을 고칠 수가 없고, 아무리 신앙이 깊고 똑똑하고 많은 지식을 섭취해도 생각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과 지식과 두뇌를 자기 독선과 극단성에 아전인수로 사용하게 되어 증오의 병을 도지게 만듭니다.

증오 정신병은 극단 심리, 자폭 심리를 용광로처럼 끓어오르게 합니다. 이들은 물불을 가리지 않고 말하고 행동합니다. 미국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총을 구입해서 무고한 시민을 대량 살상합니다. 박창신류의 정의구현사제들은 이런 증오심을 자신들만의 병으로 가지고 있지 않고 신도들을 선동해서 분노와 증오를 배양시키고, 증오의 총으로 무차별 인격살인과 이성 궤멸을 자행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정신을 선도하고 심성을 순화시키고 영혼을 맑게 씻어주는 성직자들이 어쩌다 이념과 정치성에 중독이 되고, 그것도 분노와 증오의 이념에 중독이 되었는지 깊은 연민과 애련함을 느낍니다.

부디, 박창신 정의사제들은 습관적인 기도의 생활이나, 앵무새처럼 판에 박힌 증오의 강론을 탈피해서, 하늘에 무릎 꿇고 참회의 기도와 고해를 하기 바라는 마음입니다. 깊은 묵상과 성찰로 마음의 문을 열고 눈물과 땀을 흘리는 기도를 하기 바랍니다. 사제가 맑은 영혼의 성체를 나누어 주어도 시대의 어두운 부분을 씻기 어려울진대, 어찌 분노의 떡과 증오의 포도주로 성체를 욕되게 합니까?

“어떻게 해야겠어요? 북한에서 쏴야죠.” 이 말이 대한민국 사제의 말일 수가 없습니다. 당신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애통하는 순국과 애국의 영혼이 두렵지 않습니까? ‘정의’구현 사제들이여, 그대들이 외치는 ‘정의’는 무엇입니까? 기독교 가르침을 왜곡시키는 탈선을 뉘우치고 제 자리로 돌아 가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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