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의 뿌리

가장 풀기 어려운 지구촌의 난제 가운데 하나가 팔레스타인 문제입니다. 이 분쟁의 뿌리에는 종교와 인종, 이념과 정치와 문화 등 인간 사회의 갖가지 요소가 얽히고설켜 2천년 세월을 흘러오면서 뿌리 깊은 증오의 유전인자를 만들었습니다. 미움과 갈등이 깊어지고 전쟁과 전쟁, 살육과 살육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번에 다시 팔레스타인 화산이 폭발해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에 피로 얼룩지는 전쟁을 치렀습니다. 가자 지구에서 발발된 이번 전쟁은 28일 만에 잠시 휴전을 합의하고 이집트에서 협상을 하고 있으나 가자 땅은 이스라엘의 미사일 폭격으로 깊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인구 1백80만 명이 거주하는 가자 지구에서 숨진 1천9백 명의 팔레스타인 가운데 약 80%가 민간인으로 간주되고, 수만 명이 부상을 당했습니다. 이스라엘은 64명의 사망자가 발생했고, 민간인 피해는 2명입니다.

2012년에 이어 2년 만에 다시 폭발한 이번 전쟁의 촉발제는 3명의 이스라엘 틴에이저가 납치되어 피살된 것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이 일이 발생하자 이스라엘 측이 이에 대한 보복으로 팔레스타인 소년을 납치해서 불태워 죽였습니다. 이러한 비인간적 만행의 범인들은 모두 증오로 가득찬 극단주의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마스 지도자들을 대거 체포하고,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로켓포를 발사하고, 이스라엘은 미사일 폭격과 함께 탱크를 몰고 가자 지구를 침공해서 하마스의 비밀 지하 터널을 폭발시켰습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미사일이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유엔 학교를 폭격해서 많은 어린이들과 시민을 살상시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을 비롯해 유엔 관계자가 이스라엘을 격하게 비판했습니다. 일방적으로 이스라엘을 두둔하던 미국도 이스라엘의 과도한 시민 살상과 유엔 학교 폭격을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이것은 분쟁을 아주 단순하게 도식화 한 것이지만, 이 내면에는 서로가 한 치도 양보할 수 없는 생존의 논리가 얽혀져 있습니다. 현재 양측의 평화협상을 힘들게 하는 문제는 팔레스타인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교역을 막는 가자 지구 봉쇄와, 팔레스타인 땅 웨스트 뱅크에 유태인들의 이주 정착촌 확대와, 예루살렘 소유권 문제입니다.

팔레스타인 평화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오바마 정부의 기본 입장은 이스라엘이 1967년 시점으로 영토를 양보하고 팔레스타인 국가를 건설하는 것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제의한 “1967년 국경선”은 이른바 6일 전쟁이 발발했던 1967년 전쟁 이전의 경계선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동안 미국은 비공식적으로 팔레스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해 왔지만 대통령이 공식 입장을 천명한 것은 처음입니다. 오바마 정부의 입장은 이스라엘 측의 반발을 가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견 차이보다 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뿌리 깊은 불신과 미움을 어떻게 불식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양측의 불신과 미움은 천년 세월 속에 축적되고 응축되어 뿌리 깊은 증오의 DNA가 되었습니다. 이 증오의 뿌리에는 종교와 인종이 있지만 이러한 증오의 휴화산을 활화산으로 폭발시킨 것은 이스라엘 국가 건설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가혹한 말이 되겠지만 이스라엘이 건국되지 않았으면 오늘의 중동 분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로마 제국에게 멸망해서 오랜 세월 세계 곳곳에서 유민으로 살아 왔던 유태인들이 유대 땅으로 돌아가서 이스라엘 국가를 건설하는 이른바 자이어니즘(Zionism, 시온주의) 운동이 이스라엘 창건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자이어니즘의 근원은 유대교의 신앙과도 연관이 있지만, 초기의 시온주의는 국가 건설까지 생각지 않고 일종의 문화운동, 유대인 아이덴티티 운동이었습니다. 디아스포라로 흩어진 유대인들은 세계 각 지역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부와 영향력을 축적했지만 자신들이 사는 땅에 동화되지 못하고 배척당하는 불운을 겪었습니다. 유태인들이 국외자가 되고 배척당하면서 유태인에 대한 박해와 차별이 심화되었고, 나치의 유태인 학살이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나치의 유태인 학살은 국가 건설에 대한 유태인들의 열망을 현실화시키는 촉매제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라는 불가능한 환상이 현실화 될 수 있었던 것은 세계에 흩어진 유태인들의 막강한 힘과 특히 미국 영국의 힘이 결정적이었습니다. 1947년, 유엔은 이스라엘 건설을 승인했고, 다음 해인 1948년 이스라엘이 창건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창건은 아랍 국가들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고 곧바로 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2천년 세월을 팔레스타인 땅에 살던 사람들이 하루아침에 땅을 빼앗기고 자기 땅에서 축출되는 것은 삶의 근거지를 박탈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에게는 꿈을 이룬 환희였지만 땅을 빼앗긴 사람들, 아랍 사람들에게는 이스라엘 건설은 받아들일 수 없는 강탈이었습니다. 지금 같은 상황이었으면 이스라엘 창건은 가능치 않았을 것입니다. 최근, 러시아가 60년 전에 유크라인에게 양도했던 크라이미아를 다시 빼앗아서 미국을 비롯한 서구 진영이 분노한 것을 생각하면 팔레스타인들의 분노는 하늘을 찌를 것입니다. 지금 한국이 옛 고구려 땅, 만주 벌판을 다시 회복하려 한다면 중국이 가만 있을 리 없고, 멕시코가 미국에게 빼앗긴 옛 땅을 다시 주장한다면 설득력을 얻을 수 없고,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안들이 국토 회복을 주장하고 나선다면 미국이 그것을 수긍할리가 없습니다.

흘러간 물을 다시 역류시킬 수 없는 것처럼 흘러간 역사를 다시 주워 담을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흘러간 역사를 역류시켰지만, 그 역류의 역사를 오늘 다시 역류시킬 수는 없습니다. 이성과 합리성으로 보면 이것은 모순입니다.

역사의 섭리에는 역설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흘러간 역사의 물길을 다시 돌려 온 것은 역사의 기정 사실을 뒤엎은 것이었지만, 지금 이스라엘 국가 건설이 기정 사실로 된 세월을 아랍이나 팔레스타인이 다시 뒤 엎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의 국가 생존권을 거부하고 이스라엘을 바다에 쓸어 넣겠다는 아랍권 극단주의자들 주장은 설 땅이 없습니다. 그것은 감정의 환상이지 이성의 현실이 아닙니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은 이스라엘의 생존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입니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생명도 태어나면 생명으로서의 존엄성과 절대성을 가지게 됩니다. 태어지 말아야 할 생명의 출생은 비극의 씨앗이지만 그 생명이 인간의 삶과 사회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는 역설의 섭리가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은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국가일 것입니다. 세계 평화의 시각으로도 이스라엘의 출생은 분쟁과 전쟁의 씨앗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세계 평화와 역사에 귀한 공헌을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역설을 상기할 수 있을 때 중동 평화는 현실화 될 수 있고, 오늘의 피투성이 된 팔레스타인의 상처가 아물려 질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이 점을 깨닫고 인정할 때 이스라엘은 겸손해 질 수 있습니다. 건국 초기의 이스라엘은 거대한 중동의 골리앗 앞에서 절박한 생존 투쟁을 하는 다윗으로 세계의 동정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지만, 오늘의 이스라엘은 침략자의 골리앗이 되었고, 팔레스타인은 다윗으로 변했습니다. 미국의 절대적 지지를 등에 업은 이스라엘의 교만은 갈수록 선을 넘어 서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더 이상 나치 시대의 희생자나 건국 초기의 약자가 아닙니다. 수백 개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세계적인 첩보망과 군사력과 경제력을 가진 강자가 되었고, 이번 가자 전쟁에서는 무자비한 침략자의 이미지를 세계인들에게 심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교만은 친구를 잃게 하고 불행을 자초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왜 이스라엘의 건국을 가져 온 “자이어니즘(시온주의)”이 많은 세계인들 눈에 “인종주의(Racism)”, “식민주의(Colonialism)”, “아파테이트(Apartheid, 인종차별)”로 비쳐지는지를 성찰할 수 있는 겸손이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을 비판하면, 무조건 “반유태주의(Anti-Semitism)”로 몰아치는 과거의 공격 무기로는 인정받고 존경받는 미래의 이스라엘이 될 수 없습니다.

교만은 독선을 가져오고, 독선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력을 잃게 합니다.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의 요체는 강자가 된 이스라엘이 약자인 팔레스타인에게 대폭 양보하는 것입니다. 팔레스타인의 요구를 파격적으로 수용하고, 팔레스타인과 아랍권으로 부터 이스라엘을 인정받는 평화를 얻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를 회복시킨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축복이었는지를 감사하고 겸손해지면서, 이 축복의 그늘 뒤에 땅을 빼앗긴 사람들의 한과 증오가 있다는 역지사지의 신을 신을 때 이스라엘과 중동 땅에 평화의 종소리가 들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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