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팔꽃이 피었습니다”

겨울 눈이 녹은 뒤 토요일 일요일은 모든 것을 마다하고 뒷 마당 잔디밭 귀퉁이를 텃밭으로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잔디를 파내고 텃밭을 만드는 동안 허리가 끊어지는 것 같은 통증을 달래기 위해 가끔씩 허리를 젖히고 하늘을 쳐다보는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땅을 파고 밭을 만드는 일이 힘은 들었지만 책상 앞과는 다른 기쁨이 있었습니다.

꽤 긴 모서리를 텃밭으로 만든 뒤 아내가 사온 오이, 호박, 가지, 토마토 모종을 심었으나, 어릴 때 어머니가 채마전을 가꾸던 것을 곁눈으로 본 것 외에는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기에 주로 아내의 어설픈 지식에 의존했습니다. 저는 무식을 보충하기 위해 부지런히 구글에서 작물에 대한 정보를 뒤졌습니다.

처음에는 채마전을 만들 생각을 한 것이 아니라 작은 꽃밭을 생각했습니다. 어린 시절, 중석광산에 근무했던 아버지를 따라 경상도 봉화군 옥방이라는 첩첩산골 산간 마을로 내려갔던 저는 거기서 초등학교를 마쳤고, 그 때 가꾸었던 꽃밭이 제 마음 속에 늘 그리움과 아름다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야생 국화와 접시꽃, 맨드라미, 백일홍, 채송화, 코스모스와 나팔꽃이 제 꽃밭의 주종이었고, 그 중에 제가 가장 좋아했던 꽃이 나팔꽃이었습니다. 한번 심으면 줄기차게 여러 장애물을 넘어서서 더듬이 같은 연초록 새순으로 덩굴을 만들며 위로 기어오르는 나팔꽃에 제 마음이 끌리기 시작했고, 무엇보다도 새벽 이슬이 마르기 전 찬란한 태양아래 눈부시게 꽃을 피우는 모습에 어린 동심이 빠져들었습니다.

나팔꽃이 좋아지면서 집 울타리는 나팔꽃으로 뒤 덮었고, 저는 매일 아침 수백 송이의 나팔꽃을 세기에 바빴고, 공책에다 오늘은 나팔꽃이 몇 송이 피었다고 적기 시작했고, 나팔꽃을 책갈피에 넣어 만든 나팔꽃 채집이 수백 종에 달했습니다. 함성을 울리듯 일제히 만개한 뒤 한나절 태양을 채 못 넘기던 나팔꽃에 왜 어린 마음이 그토록 매료되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수백송이 나팔꽃이 함께 피어 화려한 순간의 절정을 만든 뒤 함께 짧은 생애를 마치는 동시성과 요절성에 장렬함과 비극성이 있다는 생각까지 들지만, 어린 생각이 그것을 알리가 없었습니다.

나팔꽃 이야기를 꺼낸 뒤 아내는 텃밭 뒷 구석 오이와 토마토 모종 뒤로 나팔꽃 씨를 뿌렸습니다.
저는 채마전 노동을 하느라 나팔꽃을 잊었습니다. 몇 주 전 일요일 아침, 텃밭을 성가시게 하는 잡초를 뽑는데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물었습니다. “나팔꽃 핀 거 봤어요?”, “아니”, “왜 못 봤지. 벌써 며칠째 피었는데…” 나팔꽃이 피었다는 말에 제 가슴은 알 수 없는 설렘이 서서히 밀려왔습니다. 얼른 나팔꽃으로 달려가질 않고 뜸을 들인 뒤, 잡초 뽑는 일을 다 끝내고, 아내가 교회를 간 뒤 나팔꽃 앞으로 갔습니다.

거기에 나팔꽃 한 송이가 피어 있었습니다. 무성한 나팔꽃 넝쿨 잎 사이로 청자주 나팔꽃이 다소 외롭지만 은은한 모습으로 피어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기억 속에 있던 바로 그 나팔꽃이었습니다. 가장자리 짙은 청자주 빛 가운데 노란 꽃술이 눈부시도록 흰 휘장의 후광 속에서 빛나고 있었습니다. 산간 마을 어린 시절의 나팔꽃이 세월과 장소에 변하지 않고 미국 땅 한 구석에 같은 모습으로 마주하고 있었습니다.

순간, 세월이 뒷걸음질 쳐 달려가기 시작했습니다. 뒷걸음질 치는 세월 사이로 아련히 어머니가 달려왔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씨를 뿌린 뒤 처음으로 나팔꽃이 피던 날 어머니에게 달려가서 흥분을 억누르지 못하고 “어머니, 나팔꽃이 피었어요!”하고 다소 수선을 떨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사내 녀석이 뭐 그리 부산을 떠느냐고 생각하셨을 것 같은 표정이었지만, 어머니는 잠자코 웃으면서 나팔꽃을 보러 나왔습니다.

나팔꽃에 매료되었던 제 기쁨과 행복은 오래가질 못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암이 걸리고 다음해 세상을 떠나고, 뒤 이어 저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돌아 왔으니 나팔꽃의 환희는 3년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3년의 환희와 감격이 세월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가슴 바닥에 숨어서 어떤 그리움과 아릿함의 잔영으로 남아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나팔꽃을 만나서 감격하는 것은 제 세월이 이렇게 저물어 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옛 친구를 만나고 싶어하고, 어린 시절의 고향을 생각하고, 텃밭이나 꽃을 가꾸고 싶어하는 것은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옛 시절의 추억이 주는 회상의 그리움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가버린 세월에 대한 아쉬움과 늙어버린 꿈에 대한 허망함도 있을 것입니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은 아쉬움과 회한으로, 야망을 성취한 사람은 화려함 뒤의 허망함으로 괴로워할 수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텃밭에 매달리고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고, 손자 손녀의 재롱에 즐거워하는 것은 피가 끓었던 열망을 떠나보내고 순리의 자리로 돌아오는 체념의 과정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체념의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허전함으로 노년을 방황할 수도 있습니다.

나이가 들어 과거로 회귀하는 것은 미래를 포기하는 심리이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함정이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포기는 젊은 시절의 꿈과 야망을 현실적으로 정리하는 것이지 노년의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어 젊은 시절의 열망을 정리하지 않으면 추해질 수 있지만 새로운 노년을 꿈꾸고 설계하지 않으면 남은 인생은 무력해지고 절망적이 됩니다. 삶이 늙어버립니다. 새로운 노년을 설계하고 의미있는 삶의 종결을 준비할 때 과거는 더욱 그립고 아름다워집니다. 거기서 살아 온 삶의 열매가 유산으로 영글어집니다.

노년으로 들어가는 길목은 제2의 인생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를 가늠하는 기로가 됩니다. 어린 시절 택한 인생의 길이 삶의 일생을 지배한 것처럼 노년의 길목에서 가지는 마음 가짐이 남은 황혼의 삶을 지배하고, 그것은 결국 살아온 전 생애의 모습을 다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인생은 누구나 크고 작은 삶의 유산을 남깁니다. 미국 사회는 “당신의 레거시(legacy)가 무엇이 되길 바랍니까?”하는 질문을 많이 합니다. ‘레거시(legacy)’는 ‘유산’입니다. 유산은 유명한 사람이나 성공한 사람의 거창한 자랑이나 과시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소박한 삶의 흔적, 자취입니다.

“당신의 유산이 무엇입니까?”라고 묻지 않고, “당신의 유산이 무엇이 되길 바랍니까?"하는 질문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여기에는 인생을 반추하고 성찰하면서 “인생 정리를 준비하는” 뜻이 있습니다. “나의 유산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하는 스스로를 향한 준비가 인생의 저녁을 맞는 사람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질문입니다.

60년 만에 나팔꽃과 재회한 자리에서 어머니를 만나고, 어머니의 유산을 생각하고, 그리고 “나의 유산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 것일까?”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70의 나이가 되어 “어머니, 나팔꽃이 피었습니다”하고 말하고 싶어지는 것은 거기에 어머니의 체취가 유산으로 남아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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