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의 인연

저는 지난 6월 1일 시카고 언약장로교회 백용석 목사 위임식에 참석했습니다. 시카고 언약장로교회는 가나안장로교회의 진통이 낳은 새 이름의 교회입니다. ‘가나안’에서 ‘언약’으로 이름이 바뀌고 담임 목사가 정식으로 취임하는데 8년이 걸렸습니다.

위임식을 진행하는 중서부 한미노회장이 언약교회 신도들은 모두 일어서라고 했을 때 저는 그대로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일어서야지 왜 앉아있어요?”하는 아내의 목소리가 멀리 성가대 석에서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교인이 아닌데… 왜 일어서…” 일어서야 하나, 마나로 주저하다가 얼떨결에 일어서고 말았습니다. 금세 후회가 왔지만, 다시 앉을 수도 없었습니다.

저는 이 교회에 정식으로 등록한 적이 없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1년에 한두 번 송구영신이나 부활절 예배에 참석하는 명절 교인입니다. 명절 교인으로 ‘언약’의 전신인 ‘가나안’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내 때문이었고, 아내로 하여금 가나안과 인연을 맺게 한 것은 저였습니다. 그러기에 가나안 인연의 시작은 저였습니다.

1990년대 중반, 신문사를 떠나 일종의 시민운동가로 활동했던 저는 대 기근으로 수많은 북한 동포들이 아사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한국에서 결성된 우리민족 서로돕기운동이라는 기아돕기 단체의 미주 집행위원장 직책을 맡게 되었습니다. 제가 하는 일은 미주 각 지역의 지부 결성을 돕고 모금운동을 관할하는 것이었습니다. 모금을 효과적으로 하기위해 각 지역 큰 교회 목회자들을 그 지역 책임자에 의뢰키로 했습니다. LA, 뉴욕, 워싱턴 등 대 도시 모두 지회 책임자가 구성되었으나, 제가 사는 시카고만 결성이 쉽게 되질 않았습니다.

가나안교회를 맡고 있었던 이용삼 목사를 찾아가 시카고 지역 회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했을 때 “나는 교회 일 밖에는 하지 않습니다”가 이 목사의 단호한 첫 마디였습니다. “이념을 떠나 굶어 죽는 동포를 돕는 것입니다. 이 일도 교회 일이 아닙니까?” 제 말에 잠시 침묵하던 이 목사는 “기도할 시간을 달라”고 했고 며칠 뒤 시카고 회장직을 받아들였습니다.
이 일을 맡았던 이 목사는 미주 어느 지역보다도 깔끔하고 성공적인 모금을 했습니다. 저는 깊은 인상을 받았고, 그 후 교회를 못 찾아 고민하는 아내에게 가나안교회를 권했고, 제 손에 떠밀려 아내는 가나안교회 교인이 되었습니다. 저는 교회를 다니지 않았지만 아내 등을 떠 밀어 넣은 도리 때문에 그 때 부터 명절 교인이 되었습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서 2006년, 이 목사의 은퇴 후의 예우와 후임 목사 선정 문제로 갈등이 표출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목사가 추천한 후임 목사를 결정하는 날 저는 투표를 지켜보기 위해 참관인으로 교회를 갔습니다. 물론 저는 정식 교인이 아니어서 투표를 하지 않았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분란이 야기됐습니다. 세상의 법이 따로 있고, 종교의 법이 따로 있기에 세상의 언론은 교회 일에 간여하지 않지만 교회에 분란이 생기면 세상의 잣대가 개입하게 됩니다.

이 일을 보도하기 전 저는 주저했습니다. 과거에 교회 분규의 심한 내홍을 지켜보았기에 분란 속에 뛰어드는 것이 망설여졌습니다. 미국이나 한국 주류 사회와 달리 동포사회 분쟁은 동네 패싸움 같아 운신의 폭이 좁아 보도를 하기가 무척 힘들고, 후유증의 앙금이 오래 지속됩니다. 그렇지 않아도 불과 1년 전에 한인회장 선거 분쟁에 논평을 했다가 한미TV에서 해직됐었기에, 라디오를 막 시작한 저로서는 정말 피해 가고 싶은 잇슈였습니다.

이용삼 목사에 대한 미련도 있었습니다. 북한동포 기아돕기를 했을 때 맺은 의미있는 인연과, 라디오를 시작했을 당시 새벽 일찍 방송국에서 특별 기도를 해 주기도 했던 좋은 인연을 끊고 싶지가 않았습니다. 좁은 바닥에서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과 등지게 되는 것도 고통스러웠습니다. 보도와 논평을 한 뒤 저는 라디오 방송국과 함께 고소를 당하고 변호사비 부담으로 허덕거려야 했습니다.
8년이 지나, 옛 가나안의 회당에 언약이라는 새 이름의 교회, 새 목사가 들어 서는 자리에서 지난 일들이 물길처럼 머리속을 쓸어 갔습니다. 무엇이 가나안의 분란을 만들었을까 하는 생각은 왜, 미주 한인사회에는 각 지역의 크고 작은 교회에서 갖가지 싸움이 쉬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건너 뛰어갔습니다, 분규의 원류는 코리안 의식 문화, 신앙 문화와 무관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교회의 분쟁은 서로가 신앙의 이름으로 주장하기에 상식과 합리성이 들어설 자리가 좁고, 이민사회의 특수성은 이런 분란을 더 질기고 극단적으로 끌고 간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교회는 초기 이민사회의 가장 중추적 기둥이었습니다. 이민자의 생활 안내자이자 상처 난 아픔을 처매주고 지친 영혼을 위로해 주는 안식처였고, 외로운 동포들의 춥고 가난한 마음이 의지하는 정신적 위안처였습니다. 목사는 자동차가 없는 동포들의 운전기사였고, 동포들의 일자리 소개에서 부터 자녀들 학교 입학 안내에 이르기까지 생활 전반을 꾸려주는 안내자였고, 결혼 리셉션은 교회 지하실이었고, 자녀 출생에서 부터 부모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이민 햇수가 많아지고 한인들의 삶이 번창해 지면서 이민 교회들은 달라졌습니다. 가난했던 마음이 풍족해지고, 교인들도 목사들도 초심을 잃어가면서 교회는 변질되어 갔고, 그럴수록 분규가 잦아졌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상실해 갔습니다. 가난한 마음을 잃어가면서 교인들도 목회자들도 교만해지고, 초기 이민 교회의 절실하고 치열했던 갈증은 메말라 갔습니다.

목마름이 사라지면 영혼은 달아나 버립니다. 기름진 곳, 오만의 땅에는 영혼이 머물 자리가 없습니다. 포만감으로 비대해진 교회는 영혼을 잃어가고, 영혼이 흔들리는 교회는 가야할 푯대를 잃어버리고, 대립과 분란과 싸움을 심화시킵니다.
교회가 가난한 마음을 잃어가면서 주장은 넘치나 경청이 척박해지고, 주장이 극단으로 치달으며 미움을 낳았고, 신앙의 몸집은 육중하고 화려해졌으나 영혼은 왜소해지고 메말라갔습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후임 목사 문제만이 아니라, 교회 신축, 목사 대우, 선교, 설교, 장로 선출 문제로, 돈 문제, 여자 문제 등 크고 작은 계기만 있으면 갈등과 분파로 분란이 표출됩니다.

가나안 분쟁은 이민 교회의 분쟁이었고, 한인 사회의 싸움이었고, 코리안 아메리칸 의식 풍토의 단면이었습니다. 이민 세대는 물질적 번창과 외형적 성공을 성취했지만 다음 세대를 위한 정신적 초석을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한인 교회 신앙 세계는 영성과 형식과 관념이 지배하고, 신앙을 생활화 시키고 인격화 시키는 인간의 얼굴이 허약합니다. 가나안 분쟁은 마무리 되었지만 우리들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여전히 남은채 이민 교회는 늙어가고 있습니다.위임식 자리도 젊은 사람들 보다는 나이든 세대가 압도적으로 많았습니다.

깊은 상념이 가슴으로 내려 갔습니다. 상념의 가닥에 이용삼 목사가 파고 들었습니다. 이 자리에 이 목사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싶었던 것은 부질없는 상상이지만 우리들 의식 문화에 대한 채찍이자 반성이었습니다. 이혼한 부부가 격렬한 아픔을 묻고 자녀를 위해 화해로 만날 수 있듯이, 갈라진 교인들이 서로의 신앙을 위해 화해로 만날 수 있는 것이 한인 교회에서는 불가능한 것일까를 물었습니다. 기독교에는 용서와 화해의 힘이 있습니다. 어디선가 이 목사와 마주쳤을 때 어색하지만 씁쓸한 미소로 손잡을 수 있겠느냐고,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아직 상처가 깊지만 치유해야할 우리들의 숙제입니다.

가나안 분쟁의 본질은 무엇이었고, 그 비싼 대가를 통해 교회와 교인들은 무엇을 얻었을까, 싸움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혔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게 물었습니다. 왜, 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뛰어 들었는지를, 신앙과 교회가 자신에게 무엇인지를, 왜, 여기에 앉아있는지를 물었습니다. 다시, 이민 교회를 향해 물었습니다. 가나안 사건은 이민 교회, 이민 역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지는 것이고, 교회는 이민 역사에서 무엇인지를, 이민 교회의 지향점은 어디인지를 물어야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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