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권법 50년, 그리고 LBJ

지난 주 LBJ 라이브러리(Lyndon B Johnson Library)에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해, 카터, 클린턴, 부시 등 전직 대통령 모두가 포럼에 참석했습니다. 포럼에 전 현직 대통령 모두 4명씩이나 참석해 연설을 한 것은 처음 있는 일입니다. 이 포럼은 존슨 대통령이 주도했던 민권법(Civil Rights Act) 제정 50주년 기념 세미나였습니다. 이 포럼은 어떤 의미에서 존슨 대통령을 재조명 재평가하는 상징성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은 대부분의 미국인들에게 잊혀진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살아생전에는 물론, 사후에도 인기있는 대통령으로 기억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기와 지지도가 곤두박질치면서 결국 대통령 재선 출마를 포기하는 굴욕을 삼켜야 했습니다.

존슨 대통령의 인기가 급강하한 것은 베트남 전쟁때문이었습니다. 월남이 공산화되면 아시아가 공산화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월남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존슨의 정치 철학이었고, 존슨 대통령은 한 때 50만명이 넘는 미군을 투입해 베트남 전쟁 승리를 위해 총력을 다했지만 결국 손을 들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존슨의 치욕이었고, 미국의 굴욕이었습니다.

대통령 암살이라는 긴급 상황으로 비행기에서 성경도 없이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던 존슨 대통령은 그의 시작이 격동의 소용돌이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스스로 역사의 소용돌이를 더욱 거대하게 만들고 그 속에 뛰어 들었습니다. 많은 역사가들은 존슨 대통령이 링컨 대통령 이후 최대의 사회 변화를 만든 대통령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1965년에 제정된 민권법은 링컨 대통령의 노예해방 선언 이후 인간의 평등을 위한 최대의 전환점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링컨의 노예 해방이 흑인 차별을 철폐시키는 선언이었다면 존슨의 민권법은 흑인 차별을 종결시키는 제도였습니다. 100년이 걸렸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제의했던 민권법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한 흑인들의 희생과 존슨을 비롯한 진취적인 지도자들의 추진력으로 가능했었습니다. 민권법은 흑인 차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아시안, 히스패닉 등 모든 유색 인종에 대한 차별을 철폐시키고, 여기서 파생된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은 모든 인종에게 투표권을 부여하는 법이었습니다. 특별히 민권법의 일환으로 다음 해인 1965년에 제정된 이민법(Immigration and Nationality Act)은 우리들 코리안 아메리칸의 운명을 바꾼 법이 되었습니다. 민권법을 위한 투쟁과 헌신의 유산이 없었다면 자신이 오늘 대통령 자리에 설 수 없다는 오바마의 말처럼, 민권법의 유산이 없었으면 우리들은 오늘 이 땅에서 미국 시민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1965년 이민법이 제정되기 전까지 한국인을 비롯한 유색인종, 히스패닉은 미국에 이민 올 수가 없었습니다. 1965년 이전에 미국 이민은 유럽인들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민권법 제정으로 이민 문호가 아시안에게도 개방되었고, 아시안도 미국 시민으로 투표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권법은 미국 역사를 바꾸었고, 미국의 인종 지도를 바꾸었습니다. 백인들은 미국의 인종 색깔이 변하는 것을 원치 않았고, 지금도 원치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민법 제정으로 백인들의 기대는 허물어졌고, 인종 지도의 색깔 변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멕시코 국경을 통해 쉴 새 없이 불법 입국한 불법체류자가 미국의 인종 장래를 변화시킬 줄을 상상하지 못했고, 이것이 지금도 많은 보수 백인들을 분노 당혹케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25년 쯤 지나면 흑인, 히스패닉, 아시안을 합친 인구가 미국 인구의 절반을 넘어서서 백인은 소수 인종이 될 것이라고 인구 학자들은 예측하고 있습니다.

민권법은 존슨 대통령이 주도한 ‘위대한 사회’(Great Society) 법안의 초석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사회라는 존슨의 정책 구상은 인간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동시에 인간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국가가 기본적인 제도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정책에서 나온 것이 메디케어(Medicare)와 메디케이드(Medicaid)입니다. 은퇴자들에게 의료 보험을 제공하는 메디케어는 연장자의 존엄성을 지켜주는 기초가 되었고, 저소득층에게 무료 의료 혜택을 주는 메디케이드는 사회 낙오자를 구제하는 안전판 역할을 했습니다. 존슨은 빈곤과의 전쟁을 대대적으로 실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교육에 투자하고 도시 빈민 구제에 역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존슨의 이러한 야심적인 정책 추진은 베트남 전쟁으로 빛과 힘을 상실했고, 존슨 대통령은 수렁으로 빠져들어 가는 베트남 전쟁과 수없이 더해 가는 미군 전사자 앞에 무력해지고, 격렬한 반전 물결 속에서 정치적으로 설 땅을 잃었습니다. 이 당시는 군대가 지원제가 아니라 의무 징집제였습니다. 징집을 거부하는 젊은이들과 나라의 부름을 받고 베트남 땅에서 젊은 목숨을 버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은 분열된 국론의 상징이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에 대한 국민 지지가 재선 출마를 포기할 정도로 급락한 것은 베트남 전쟁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저소득층과 빈곤층을 돕는 국가 예산이 급증하고, 교육 투자와 사회복지 투자에 필요한 재원 충당을 위해 증세를 실시하면서 미국인들은 등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가난한 사람과 낙오자를 구제하는 위대한 사회 정책은 역사의 눈으로는 위대했지만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국민들 눈에는 낭비가 더 많이 보였습니다.

민권법이 제정되었지만 인종차별에 익숙한 남부 백인들의 저항이 극렬했고, 여기에 대항하는 흑인 시위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는 가운데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암살되고, 미국 역사상 최악의 폭동이 전국을 휩쓸었습니다. 존슨 대통령의 정치적 수명은 역사의 격류 속에 단축되었고, 이로 인한 굴욕감과 자괴지심은 그의 건강과 생명을 단축시켰습니다. 존슨은 정계 은퇴 후 건강이 악화되고 백악관을 떠난 지 4년 만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치가 취미라는 평을 들을 만큼 잠자는 시간 외에는 정치를 즐겼다는 존슨은 천박한 흥정꾼, 무례한 능구렁이라는 평과 출중한 협상가, 집요한 설득가라는 명암의 평가가 교차되는 가운데 미국 근대사에서 가장 주목받는 정치인 가운데 한 사람으로 재조명 되고 있습니다.

월남전과 급격한 사회제도 변혁으로 인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는 대통령이 되었지만, 역사가들은 그에게 상당히 후한 점수를 주고 있습니다. 뛰어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하는 역사가도 있고, 그에 대한 역사의 자리매김을 다시 해야 한다고 말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민권법이 제정된 후 50년 간 미국은 혁명적 변화를 했습니다. 민권법 제정 50주년을 맞아 민권법의 의미가 무엇이고, 이 민권법 뒤에 어떤 사람들의 희생과 땀이 있었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은 역사의 회고가 아니라, 오늘 이민자들이 이 땅을 사는 가치관을 성찰하고 설계하는 것입니다. 민권법의 유산을 생각하면 우리들의 삶은 그만큼 겸손해지고, 그 삶이 의미 있는 삶으로 한 단계 승화해야 한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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