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듭니까!”


문재인 대통령이 커피를 들고 참모진과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고 세월호 가족과 포옹하는 장면이 소개되자 신선하다는 찬사가 쏟아지면서 국민 지지율이 치솟고, 이제 구중궁궐에 칩거해서 혼자 밥 먹으며 소통을 못 했던 제왕적 정치가 사라지고 개방 정치가 시작되었다는 보도에 쓴 웃음이 나왔습니다.

대통령이 참모들과 산책하는 것이 보기는 좋지만 그게 뭐 그리 대단한 것이라고 요란을 떠는지 모르겠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북한의 김정은을 흉내 낸 것은 아니겠지만 김정은 오래전에 군인이나 아주머니들과 손잡고 걷고 대화하고 포옹하는 ‘신선한’ 공연을 했습니다. 아주 더 오래전에 김정은의 할아버지 김일성은 인민의 집을 방문해서 먹고사는 것을 살피기 위해 부엌의 솥뚜껑을 열어보고 아낙의 입 가까이 귀를 갖다 대고 경청하는 ‘더더욱 신선한’ 연기를 했습니다.

박근혜 정치의 소통 불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하겠지만 이러한 반응은 박근혜 탄핵이 잘못된 정치 쇼였다는 것을 상징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이 함께 웃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함께 어울리지 않고 외톨이가 된 지도자라고 해서 선거로 뽑은 대통령을 임기 전에 쫓아내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싫으면 다음 선거를 통해 정권을 바꾸면 됩니다. 박근혜 탄핵의 잘못된 본질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호시탐탐 쫓아낼 기회를 엿보던 좌파 세력과 진보 언론의 증오심이 보수 정치인과 보수 언론의 이해관계와 맞아 떨어지면서 최태민- 최순실- 박근혜 드라마로 연출된 것이 박근혜 탄핵입니다.

국정 ‘농단’이라는 거창하고 현학적인 고급 어휘로 타이틀을 만들고, 유치한 잡설 패설로 국민을 자극 흥분시켜 촛불로 배설시킨 국회와 언론의 합작 드라마였습니다. 여기에 검찰이 칼잡이가 되어 ‘경제 공동체’란 어울리지 않는 글로벌 정치 단어를 억지 차용해 박근혜를 뇌물죄의 형틀에 채우고 판사가 꼭두각시가 되어 탄핵을 완결시켰습니다.

검찰이 주장하는 뇌물죄가 사실이라고 해도 탄핵 죄로는 미달인데 박근혜는 이러한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뇌물 수수는 대통령으로서 “할 수 없는 더러운 일”이라며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듭니까!”하고 항변했습니다.

박근혜가 밉고, 소통을 못 한 대통령이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다수라고 해도 사법부는 “박근혜 주장이 맞을 수도 있다”는 “리즈너블 다웃(reasonable doubt)”을 해야 합니다. 피고가 억울할 수 있다는 “리즈너불 다웃” 즉 “합리적 의심’의 소지가 있을 때는 무죄 판결을 내린다는 법정신입니다. 억울할 수도 있다는 “객관적 의심”을 불식시키고 벌을 주기 위해서 검찰은 명확한 증거를 제시해야 합니다. 무고한 사람이 억울함을 당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선진 법치주의입니다. 촛불 인민재판으로 태어난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한국 사법부 체질에 “합리적 의심”이 들어설 자리가 비좁겠지만, 그래도 재판을 지켜보는 것은 사법부 양심에 대한 기대를 거둘 수 없기 때문입니다.

커피 들고 산책하고 세월호 가족과 포옹한다고 해서 나라와 정치가 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정치의 본질은 스타일과 인기 영합이 아니라 사상과 철학, 인격과 정책입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사상과 인격을 주의 깊게 관찰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김정일 앞에서 무장해제를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북한에 대한 유엔의 인권 표결을 북에 물어보고 결정하자는 논란에 휘말린 사람입니다. 분단 대치국의 적장과 만나서 NLL(북방한계선)을 포기하고, 한미 동맹을 비판하고, 북한 핵을 옹호하면서 “퇴임 후 특별한 대접은 안 받아도 평양 좀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게 좀 해 주십시오” 하면서 대통령 보좌진이 작성한 서류를 김정일에게 주며 “제가 받은 보고서인데 위원장께서 심심할 때 보시도록 드리고 가면 안 되겠습니까?” 하는 기막힌 이적 행동을 한 노무현의 최측근이 바로 문재인이었습니다.

탄핵은 물론 감옥으로 가야 할 이적행위를 했던 노무현의 비서 실장을 한 문재인의 실체가 무엇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말하는 문재인의 사상성을 주목하고 그것에 대비해야지 커피 산책에 탄성을 지를 때가 아닙니다. 사람의 사상은 쉽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발전을 위해서는 진보와 보수 모두가 필요하고, 나라가 균형 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좌와 우의 양 날개로 날아야 합니다. 시대와 나라에 따라 진보 정책이 요구될 수도 있고 보수 정책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친북 좌파입니다. 분단 상황에서 좌파는 자칫하면 친북 좌파가 됩니다. 분단국이 아니라면 좌파가 지나치게 복지 평등주의를 지향해서 나라 살림이 바닥을 치더라도 다시 소생할 수 있지만, 분단국에서 좌파가 헛발질하면 국가의 안보가 허물어지고 결국은 체제 침몰로 갈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은 친북 좌경화를 우려해야 하는 동시에 파산한 보수를 재건해야 하는 절박한 문턱에 있습니다. 보수와 경쟁하는 진보도 보수를 걱정해야 합니다. 나라의 균형은 물론 남한 체제 유지를 위해서입니다. 보수가 재건되어 건전하게 뿌리내리지 않으면 한국의 좌경화는 급속화 할 것이고 김정일 앞에서 무장해제를 한 노무현 아류가 더욱 기승을 부릴 것입니다.

그러나 보수의 재건이 밝아 보이질 않습니다. 한국의 보수는 사상과 이념이 부족하고 자기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정신이 없습니다. 진보는 독재에 항거하면서 무서운 고문과 엄혹한 탄압에 저항하며 NL(민족해방 자주파)과 PD(민중민주 평등파)의 치열한 싸움을 통해 좌파 이념을 확립했습니다. 좌파의 과격성과 투쟁력은 좌파의 강점이자 약점입니다.

지금은 보수가 진보의 투쟁력과 과격성을 배워야 할 때입니다. 한국의 우파는 좌파처럼 야생의 들판에서 자생적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라 권력의 비호를 받으면서 권력에 기생하는 온실 속에서 자랐습니다. 투쟁력이나 치열성, 영악함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지지 기반도 좌파는 억세고 질긴 민중과, 현실 불만과 변화를 갈급하는 젊은이들을 가지고 있으나 우파는 노인들, 가진 사람, 안이하고 안정된 중산층을 중심으로 하고 있습니다. 좌파는 쟁취하려는 절실함이 있고 목적과 목표가 분명한데 가진 것을 지키려는 우파는 수동적이고 소극적입니다.

보수가 재건되고 우파가 살기 위해서는 비전과 사상과 철학, 사명감을 심어줘야 합니다. 이대로 좌파 정치가 계속되면 체제가 급진 좌경화, 그것도 종북 좌경화가 되어 결국 남한 체제가 붕괴되거나 침몰할 수 있다는 절박감을 느끼게 해야 합니다. 북한 핵이 민족의 재앙을 불러올 수 있고 한국의 좌경화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북한에 넘겨주는 길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일깨우고 그것을 조직화해야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한 후 보수 진영에서 대통령 선거 보이콧 운동도 나왔어야 했습니다. 새로운 보수의 집을 짓기 위해 투쟁의 불을 지르는 선봉이 있어야 했습니다. 박근혜 탄핵은 보수가 자기 발등을 찍은 것이고 보수의 배는 기울었고 대세는 좌파로 넘어갔는데도 보수는 함께 뭉치면 대통령을 당선시킬 수 있다고 착각했습니다. 냉혹한 현실을 피하고 싶어 했습니다.

포기하고 버릴 때는 과감하게 포기하고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치열한 싸움꾼이 되어야 합니다. 탄핵이 부결되면 혁명밖에 없다고 외친 문재인의 선동과 투쟁을 보수는 배워야 합니다. 정치할 때는 온건하고 타협하고 합리적이어야 하지만 투쟁할 때는 과감하고 치열하고 때로는 과격해야 합니다.

박근혜 재판의 키워드는 “사람을 어떻게 그렇게 더럽게 만듭니까!” 하는 박근혜의 절규입니다. 이 말에는 억울함과 결백의 호소력이 있습니다. 한 인간, 그것도 대통령을 치사하고 더럽게 만들어서 권력을 쟁취한 좌파의 광기와 잔인성에 보수는 결기 찬 투쟁의 깃발을 들어야 합니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그 부당성에, 무죄 판결을 받으면 그 음모성에 맞서서 치열한 싸움을 시작해야 합니다. 박근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위해서입니다.

보수는 사상을 정립하고, 젊어지고, 열정적이고, 투쟁적이고, 헌신적이어야 합니다. 권력의 단물을 먹던 해바라기 기회주의자들로는 보수는 재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는 나라가 위험하다는 국가관이 그 중심에 있어야 합니다. 나라가 좌경화되고 침몰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지킬 수 없다는 절박성을 인식해야 합니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한국 풍토에서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고 지탱시킬 힘은 잔인한 광기의 이념 집단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들을 넘어서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대통령의 커피 산책에 감동할 것이 아니라 나라의 방향이 어디로 가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보수가 잔인한 광기의 좌파 세력과 싸우려면 단단하고 결연해져야 합니다. 바닥으로 가서 신발 끈부터 다시 매야 합니다.

독재 시절에는 진보가 살아야 민주주의가 숨 쉴 수 있었으나 지금은 보수가 살아야 민주주의 체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지금은 보수가 살아야 한국이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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