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정치가 보인다


선거가 끝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내각 구성으로 정신없는 와중에 미디어 업계 사람들을 트럼프 타워로 불렀습니다. 정중하게 초청한 것이 아니라 미국의 내로라하는 거물들을 일방적으로 ‘호출’했습니다. 언론인이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면 기록하고 보도하는 것이 상식이지만, 트럼프는 미국의 대표적인 TV 스타들을 호출하면서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 조건을 달았습니다. 좋게 말해 언론과 대화하는 것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언론을 질책하고 트럼프 식으로 길들이려는 의도였습니다.

그리고 반(反)트럼프의 대부 역할을 한 뉴욕타임스는 따로 만나기로 했으나 뉴욕타임스가 오프 더 레코드 조건을 거절하자 트럼프는 트위터를 통해 약속을 취소했습니다. 그리고 8시간 뒤 트럼프는 뉴욕타임스 신문사로 가서 10명여 명의 뉴욕타임스 사람들과 점심을 들면서 화기애애한 인터뷰를 했습니다. 그 내용은 기사화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자리에서 힐러리를 기소할 생각이 없음을 밝혔습니다. 뉴욕타임스 기자들을 만나기 전 트위터를 통해 뉴욕타임스를 “부정확하고 실패해 가는 매체”라고 공격했던 트럼프는 점심 인터뷰 자리에서 뉴욕타임스는 “훌륭하고 훌륭한 미국의 보석”, “세계의 보석”이라고 극찬한 후 “뉴욕타임스를 안 읽으면 20년은 더 오래 살 텐데 그래도 뉴욕타임스를 읽는 정규 독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서 슐즈버거 발행인에게 “우리가 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트럼프의 이러한 태도는 트럼프와 미디어 관계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트럼프의 국정 스타일을 함축한 것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말을 그대로 믿어서는 안 되고 트럼프는 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사람임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선거에서 트럼프는 수억 달러에 상당하는 광고를 돈 한 푼 안 들이고 기사로 대신했습니다. 자극적이고 허황된 언어 미끼를 던지면 미디어의 생리상 물 수밖에 없고, 그러는 사이에 트럼프는 다시 새로운 낚싯밥을 던집니다. 뉴스라는 미끼가 사실이 아니고 극단적일수록 미디어의 아우성은 커지고, 그럴수록 트럼프는 미디어를 더욱 신랄하게 정면 공격하고 회심의 미소를 지으면서 이익을 챙깁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이러한 방법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최근 트럼프는 성조기를 불태우는 사람은 시민권을 박탈하거나 징역 1년에 처해야 한다는 내용의 트위터를 내보냈습니다. 그러자 미디어가 곧바로 수정 헌법 1호도 모르냐면서 논쟁의 도마에 올렸습니다. 트럼프가 이것을 모를 리 없습니다. 시민권을 박탈할 수도, 벌을 줄 수도 없지만 미국제일주의를 부르짖는 트럼프는 화두를 던지면서 여론을 자기 편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미국 여론은 57%가량이 성조기를 태우는 것을 금지하는 헌법 수정에 찬성하고 있습니다.

트럼프는 성조기 관련 트위터가 잠잠해지기도 전에 선거권이 없는 수백만 이민자들이 불법선거를 하지 않았으면 힐러리가 전체 득표에서 200만 표를 더 얻는 일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트위터를 띄웠습니다. 대통령 당선인이 어떻게 근거도 없는 말을 하느냐고 언론과 엘리트들이 공격하자 트럼프 선거운동본부장을 지낸 코리 루언다우스키는 “그 말을 문자 그대로 믿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역공했습니다. 또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지금은 선임 자문위원인 켈리안 콘웨이도 “재검표를 하는 것이 부정선거 근거가 있어서 하는 것이냐?”고 반문했습니다. 재검표에 대한 우회적 정치 공세인 동시에 불법투표자 문제를 이슈로 제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이 같은 정치 스타일은 외교부문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선거 기간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리더십을 오바마 미국 대통령보다 높이 평가하고, 이라크의 독재자였던 사담 후세인의 긍정적인 면을 칭찬해 논란을 일으켰던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된 후에도 필리핀의 기괴한 지도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대통령을 칭찬하면서 미국에 초청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카자흐스탄 독재자 누르술탄 나자르바예프를 극찬하고,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해 정치권과 미디어를 놀라게 하고 중국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엘리트들은 트럼프가 무모하고 무지해서 그렇다고 비판하지만, 이것 또한 트럼프의 계산적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종전 같으면 정치권이나 미디어가 공격을 하면 흔들리겠지만 미디어와 정치권은 신뢰를 잃었고 오히려 트럼프 행동은 국민에게 파격적 변화가 올 수 있다는 기대심리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선거 이전에 37%를 밑돌던 트럼프 호감도가 당선 후 47%까지 올라갔습니다.

트럼프 스타일은 백악관 진용과 내각 구성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신랄하게 공격했던 인도 이민자의 딸로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인 니키 헤일리를 유엔 대사로 임명하고, 트럼프 공격의 선봉에 섰던 밋 롬니 전 대통령 후보를 국무장관 선두주자로 애드벌룬을 띄워서 선거운동 당시 최고의 충성과 열성을 보인 루디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과 전쟁영웅으로 꼽히는 데이비드 페트리어스와 3파전의 경쟁을 붙였습니다.

‘성난 개(mad dog)’라는 별명을 가진 기이하면서도 출중한 군인이라는 평을 받는 전 해병대 전투사령관 제임스 매티스가 트럼프와 만난 자리에서 트럼프가 주장하는 물고문의 효과를 면전에서 일축해버렸는데도 그를 극찬하면서 국방장관에 임명하고, 자신의 물고문 주장을 철회하는 듯한 발언을 하는 것도 트럼프를 분석하는 데 중요한 단서입니다.

트럼프는 자기 주장이나 판단을 하루아침에 뒤집을 수가 있습니다. 외교정책에서 예측불가 원칙을 내세워 트럼프는 불안하고 준비 안 된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받았지만 이것은 상황 변화에 따라 작전을 변경하는 신축성과 융통성이 될 수 있습니다. 예측불가 외교정책은 미국 국내 정책에도 적용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부 정책에서는 민주당과 손잡을 가능성까지 보이고 있어 공화당을 불안케 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민주당 성향이었던 트럼프가 공화당으로 변신했지만 트럼프는 이념을 중요시하지 않는 실용주의자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이익과 승리를 최고로 여기는 사업가와 군인의 공통점이기도 합니다. 엘리트를 불신하는 트럼프는 자신은 군인을 좋아한다면서 백악관과 내각을 구성하는 데도 엘리트를 배제하고 군인과 사업가로 채우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최측근 가운데 가장 눈여겨봐야 할 인물이 스티브 배넌, 라인스 프리버스, 재러드 커시너, 켈리안 콘웨이입니다. 배넌은 극우 언론사업가로 기득권층과 엘리트를 경멸하는 베일에 가린 인물이고, 공화당 의장인 프리버스는 보수 기득권층을 대표하면서 실질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트럼프의 사위로 억만장자 부동산 사업가인 35세의 커시너는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브레인으로 현실 감각과 아이디어가 뛰어나다는 평을 받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치열한 언론 공세를 거의 혼자서 감당해온 콘웨이는 뛰어난 언변과 논리력을 가진 여론조사 전문가 출신의 여성입니다.

성향이 서로 다른 측근 브레인을 분석하고, 트럼프의 용병술을 관찰하고, 트럼프가 미디어 언론인들을 트럼프 타워로 호출하면서 뉴욕타임스로 찾아가 차별대우를 하고, 대만 총통과 전화한 것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예측불허 정치철학을 내세운 트럼프가 어떤 방향으로 갈지, 트럼프 국정 스타일이 어떤 것일지를 가늠해 보면, 어렴풋이 감을 잡을 수가 있습니다.

트럼프가 대만 총통과 전화를 한 것은 무역, 남중국해 등 중국 정책에 협상 카드를 준비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근거 없는 상상력을 동원한다면 이 지렛대에는 북한의 핵문제도 포함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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