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을 식물화시키면 안 됩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한국민 지지도가 5%까지 곤두박질치고 하야나 탄핵을 지지하는 사람이 70%에 이른다는 여론 조사가 나오고 수많은 시민이 사퇴를 외치면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정치적으로 무력화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지난 한국 대통령 선거 때 저는 투표권도 없으면서도 고민을 했습니다. 유신 정치를 규탄하고 아버지의 후광으로 정치인이 된 박근혜를 비판했던 사람으로 저의 판단과 선택에 묵은 감정이나 연좌제 의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숨어있는 분노와 미움을 씻어내고 시대의 아픔을 만든 사람들을 용서하고 불행했던 시대와 화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간적인 고뇌 끝에 저는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이런 이유만은 아니었습니다. 박근혜는 대다수 한국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과장성과 허위의식, 선동성이 없어 보였고 나라를 생각하는 방법이 저와는 달라도 진정성과 애국심이 있어 보였고 인격의 덕목이 있어 보였습니다.

대통령이 된 후 빈약한 비전과 부족한 리더십에 실망했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인격과 판단력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최순실 사건이 발생한 뒤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지고 있던 인격이나 판단력에 대한 평가가 흔들렸습니다.

많은 사람이 최순실 사태에 더 격앙하고 절망하는 것은 하필이면 최순실이냐 하는 것도 있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의 박근혜를 사로잡았던 최태민 망령에서 아직도 못 헤어났느냐 하는 노여움도 있을 것입니다.

사기성과 사이비 종교성이 있었다는 최태민 목사의 딸이 한국 정치 뒷무대에서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것이 국민 자존심을 더욱 상하게 했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사이비 종교 신자이고, 무당 정치를 한 것처럼 언론에 묘사된 것도 국민을 부끄럽게 했을 것입니다.

박근혜는 20대에 어머니와 아버지를 5년 간격으로 총탄에 잃었습니다. 그가 받은 인간적인 충격과 비극의 상처는 상상을 초월하는 아픔일 것입니다. 부모를 잃고 권력의 정상에서 떨어졌을 때 수없이 많은 권력의 추종자들이 외면했을 것이고, 거기서 오는 배신감과 인간에 대한 불신감과 외로움은 뼈에 사무쳤을 것입니다.

저는 박근혜가 이런 불행을 극복하고 대통령이 된 것을 평가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집념으로 불행을 극복하고 다시 청와대로 들어갔지만, 마음속에 있는 불행의 뿌리를 치유하지 못하고 상처의 그림자가 박근혜의 삶을 따라다닌 것을 느꼈습니다. 정치에 나타나는 박근혜 모습에 분노나 한은 없어 보였지만 사람을 믿지 못하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제대로 없고, 그래서 철저하게 외로움 속에 있어 보였습니다. 이런 외로움을 풀어 준 사람이 최순실 씨였던 것 같습니다. 대부분 사람이 계산으로 면종복배하는데 최순실 씨는 박근혜 대통령을 인간적으로 생각해 주는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릅니다.

대통령이 최순실을 가까운 사람으로 두었다는 것은 문제가 되질 않습니다. 최순실 씨에게 연설문을 보여주고 정책 자문을 구한 것도 바람직한 것은 아니지만 지탄받을 일은 아닙니다. 문제는 최순실이 그것을 이용해 사리사욕을 채우고 보이지 않는 세력을 만들고 국정에 간여한 것입니다. 최순실이 분수 모르는 아주머니 스타일의 삼류 갑질이 아니라 좀 더 그럴듯해 보이고 엘리트적인 일류 갑질이었다면 국민 분노는 덜 했을 것입니다.

최순실의 그릇과 됨됨이가 이 정도인 것을 대통령이 몰랐다면 사람 보는 안목이 너무 부족하고, 권력을 휘두르는 것을 알고도 방치했다면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대통령 탄핵이나 퇴진 사유는 될 수 없습니다. 한국 여론은 이성을 비약해서 결론부터 내리고 있습니다. 재판도 하기 전에 죄인으로 만들고 벌부터 주려고 합니다.

저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미워했습니다. 그러나 전두환 대통령이 권력에서 물러난 뒤 그의 동생 전경환 씨가 새마을 운동 부정혐의로 법원에 출두할 때 어느 시민이 뛰어들어 뺨을 때리고 거기에 시민들이 환호하는 뉴스를 접하면서 인간에 대한 비애를 느꼈습니다. 권력의 날개가 떨어지자 뺨을 때리고 침을 뱉는 인간의 성정은 너무 잔인하고 천박합니다.

오늘 한국인들이 대통령을 향해 던지는 돌이 너무 잔인합니다. 정치인들은 말할 것도 없고 특별히 언론 보도를 대하면 역겨움을 느끼게 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을 미워하고 발목을 잡던 진보 언론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박근혜 대통령을 옹호했던 보수 언론의 자질이 천박합니다. 이해는 합니다. 대통령 지지도가 5% 바닥인데 민심에 맞설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거슬러야 합니다.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지만 천심은 민심을 따라갑니다. 민심이 집단 좌절하고 집단 분노하면 이성과 분별력을 잃고 나라는 기웁니다. 불행한 역사를 만듭니다. 한국의 양심과 지성은 민심을 거슬러야 합니다.

오늘의 민중 시위를 6.29와 비교하는 것은 당치않는 말입니다. 6.29는 민주주의를 쟁취하기 위한 시민 양심의 용기였지만 지금의 광장 저항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집단주의 만용입니다. 격하게 돌을 던지는 일을 중지해야 합니다. 한국은 거리 정치와 선동 정치를 벗어날 때가 지났습니다. 대통령 사퇴를 외치는 시위나 탄핵 주장은 한국의 수준을 낡고 불행했던 옛 정치로 뒷걸음치게 합니다. 일에는 절차와 순서가 있습니다.

최순실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가 밝혀져야 대통령에게 상응하는 책임을 물을 수 있습니다. 사건 조사를 하고 있는데 언론의 보도만을 근거해서 대통령에게 퇴진을 요구하고 탄핵 협박을 하는 것은 이성도 법치도 아닙니다. 최순실이 어떤 부정 행위를 했고, 대통령이 법을 어긴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것이 우선입니다.

거국 중립 내각을 구성하는 쪽으로 가고 있지만 경솔한 반사심리입니다. 거국 내각은 나라를 어지럽게 만들 가능성이 큽니다.

애국심보다는 이기심, 협력보다는 모함이 많고, 분열과 싸움에 능한 정치인들은 다음 대통령 선거 계산을 하면서 나라는 진흙탕 싸움장이 될것이고 국민은 편이 갈라져서 싸움에 가세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ISIS가 평화를 파괴하고 러시아와 중국은 팽창 패권주의로 가고 영국은 브렉시트(Brexit)를 선택하고 미국까지도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국가 우선주의로 흐르고, 세계 경제는 무한 경쟁으로 숨 가빠하고 있습니다. 북한 핵을 머리에 이고 사는 한국인들은 핵보유국의 의미를 간과하고 무관심과 자만심에 빠져있고 정치에 과열하고 있습니다. 최순실 사건을 과대하게 확대 재생산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위기를 넘어서는 것은 잔인한 돌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참을성 있게 조사를 기다리고 냉정하게 사태를 직시하는 것입니다. 말과 행동을 절제하고 나라의 장래를 최우선에 두어야 합니다. 대통령을 더 이상 무력화시켜서는 안 됩니다. 식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불행입니다. 정치와 언론의 선동과 분노한 거리 시위는 오늘의 사태를 더욱 파국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국민이 이성을 잃고 나라의 운이 거기에서 머문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세월호 사건 때도 그랬지만 최순실 사건에서도 한국은 문제의 본질을 교정하는 일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있습니다. 세월호나 최순실 사건의 핵심에는 한국인 의식 문화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한국 의식은 모든 길을 권력과 물질로 향하게 하고 있습니다.

이준석 세월호 선장이 곳곳에 있는 것처럼 최순실 또한 한국 도처에 있고 표현하기도 천박한 무슨 “문고리” 사람들이 곳곳에 기회의 줄을 서고 있습니다. 언론과 많은 국민이 그들을 질타하지만, 그들 의식과 도덕성 또한 거기서 멀리 있지 않습니다.

오늘의 흥분과 분노와 촛불이 상황을 바꾸어 줄 수 없습니다. 대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할 의사가 없으니 국민이 나서야 합니다.

가슴 치는 자기 통회를 하면서 의식 문화와 제도를 개혁해야 합니다.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서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살을 도려내는 처절한 각성과 결단으로 수술에 참여해야 합니다.

지금의 사태를 다시 촛불 정치 광장 정치로 몰고 가는 것은 나라를 망가뜨리는 것입니다. 융성한 나라로 우뚝 서기 위해서는 피땀 어린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너뜨리는 것은 하루아침입니다.

지금은 대통령의 퇴진이나 탄핵을 말할 때가 아닙니다. 대통령이 스스로 사퇴해서도 안 됩니다. 조사해 봐야 알겠지만, 현재 보도된 것만으로는 탄핵이나 사퇴 사유가 되질 않습니다. 대통령이 범죄를 저지른 것이 아니라면 용서하고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대통령을 식물화시킬 것이 아니라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절제를 보여야 합니다. 대통령이 무사히 임기를 마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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