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통령 선거 2016(16)

패자는 언론…가장 큰 패자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의 배가 패색으로 기울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미디어와 여론 조사는 힐러리 클린턴의 승리를 거의 기정 사실화하고 있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대통령 선거는 끝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늘어가고 힐러리는 공화당으로 부터 상원을 회복하는데 신경을 쓰는 여유를 보이고 있습니다.

선거를 열흘 남짓 앞둔 현재 힐러리에게 가장 유리한 전국 여론 조사는 11%, 가장 불리한 조사는 3%로 힐러리가 앞서가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열광도가 힐러리 지지자보다 더 크고, 침묵하면서 의중을 밝히지 않는 숨은 백인들의 표심을 알 수가 없기 때문에 여론조사와 달리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인 표로 계산한다면 그럴 가능성도 있지만, 대통령 당선을 결정하는 대의원 선거 지도를 들여다보면 그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전국 여론 조사는 상징적 의미에 불과합니다. 실질적으로 대통령 당선을 결정하는 대의원 수에서는 힐러리가 272표, 트럼프가 179표 정도의 지지표를 얻고 있습니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체 대의원 537명 가운데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당선자가 됩니다.

현재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스윙 스테이트(swing state: 경합 주)는 플로리다, 오하이오, 네바다, 아이오아, 노스 캐롤 라이나 등으로 이들 경합 주의 대의원 수가 현재 87표 정도에 달합니다. 이들 경합주에서 트럼프가 모두 이겨도 트럼프는 서너 표가 부족합니다. 힐러리 쪽으로 기운 주의 대의원을 탈환해야 트럼프가 당선될 수 있습니다. 숫자상으로 보면 선거는 끝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 기관은 힐러리의 당선 가능성을 85% 이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숫자에 대해 트럼프는 더 이상 여론 조사와 언론의 보도를 믿을 수 없다고 응수하고 있습니다. 언론이 기득권층과 야합을 해서 힐러리를 당선 시키기 위한 음모에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트럼프의 이러한 주장은 근거없는 허언이지만 트럼프 지지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믿게 하는 빌미를 언론이 제공한 것은 사실입니다.

미국의 대표적인 신문 뉴욕 타임즈와 워싱턴 포스트지, 대부분의 TV는 앞장서서 트럼프 저지에 앞장섰고 트럼프에게 결정적인 치명타를 가한 12년 전의 음담패설 녹음 보도, 특히 텔레비전 보도는 황색 저너리즘 수준이었습니다. 언론의 힐러리 편애를 증명하듯 퍼블릭 인테그리티 센터는 미국 언론인들 선거 기부금의 96%가 힐러리 쪽으로 갔다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라는 부도덕하고 괴물적인 대통령 후보를 저지하기 위해 언론의 인격을 타협했습니다.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과 트럼프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여성들의 주장을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위키릭스에서 발표한 클린턴 재단, 민주당 선거 본부의 이메일 내용은 무시하거나 축소보도를 하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폭력 선거 풍토를 조성한다고 크게 보도하면서도 힐러리 지지자들을 트럼프 지지자들로 위장해서 폭력 야기를 음모한 것은 거의 보도하지 않았습니다. 빌 클린턴의 성 추문이나 이에 대한 힐러리의 발언을 문제 삼지 않는 것도 미디어의 형평성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미디어나 미디어를 주도하는 엘리트들의 가장 큰 실수와 결함은 자만심과 교만입니다. 이들의 편견과 독선은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 왜 샌더스 현상과 트럼프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통찰하는 것에 게을리했습니다. 서로 정 반대의 지지자들을 통해 나타난 샌더스 현상과 트럼프 현상은 오늘의 미국을 지배하는 보통 사람들의 정서와 좌절을 표출 시킨 것입니다.

샌더스 현상은 젊은이들과 진보 좌파의 좌절을 웅변해준 것이었고 트럼프 현상은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고 낙오된 보통 사람들의 분노와 미국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의 불안을 대변해주는 것이었습니다. 엘리트들은 이러한 트럼프 지지자들을 “못 배운 사람들” “못 사는 사람들”, 종교적으로 편중된 사람들로 비하했고, 힐러리는 이들의 절반을 “개탄스러운 사람들” “구제 불능한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실언을 했습니다.

오늘의 미국은 빈부 격차가 심화되고, 일자리가 해외로 유출되고,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 위협이 증가하고, 테러가 증가하는데도 중동 난민이 늘어나고, 불법체류자들이 1천2백만명이 넘는데도 멕시코 국경을 넘는 불법 밀입국자가 계속 늘어가고 있습니다. 난민과 불체자의 교육비와 의료비에 충당하는 세금이 엄청나게 증가하고, 웰페어와 푸드 스탬프를 받는 흑인과 히스패닉이 늘어나고, 소셜 시큐어리티 재원은 바닥으로 가고 있고, 동성애 결혼이 합법화되고 이제는 LGBT(레즈비안, 게이, 양성애자, 성전환자) 권리까지 주창하면서 막대한 돈을 들여 화장실까지 고쳐야 하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재정 적자로 미국의 경제를 불안케하고, 도덕적 해이와 의식의 부패, 윤리의 타락을 부채질하고, 안보 위협을 증가시키고, 문화 풍토를 바꾸고, 법치주의를 흔들고 있습니다.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로 보면 도저히 트럼프를 지지할 수 없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것은 그나마 자신들의 가치를 지켜줄 사람이 트럼프라는 절박감 때문이기도 합니다. 트럼프의 성추문과 부도덕성이 봇물 터지듯 터지는데도 트럼프를 지지하는 35% 가량의 지지자들의 열성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농촌의 보통 사람들과 대도시 근로자들의 좌절과 분노가 그만큼 깊은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들의 눈으로 보면 힐러리는 믿을 수 없고, 탐욕스런 권력 지향자이고, 도덕적 잣대를 더욱 느슨하게 하고, 미국 건국 정신의 바탕인 청교도 문화의 뿌리를 뽑는 일을 가속화 시킬 정치인입니다. 이들의 시각으로 보면 힐러리는 없는 사람을 대변할 사람이 아니고 미국 정치를 쇄신할 수 있는 사람도, 경제를 일으킬 사람도 아닙니다.

트럼프가 이들을 사로잡았습니다. 트럼프는 이들의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는 자질이나 도덕성이 없고,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으나 이들의 절박한 가슴을 긁었습니다. 이들은 트럼프가 도덕적인 흠이 많고 지도자의 자질과 성정이 부족하지만, 잘못가고 있는 미국의 정치판을 뒤엎을 수 있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오늘처럼 기득권 정치가 미국을 지배하는 워싱턴의 정치판을 뒤엎기 위해서는 상식적이고 신사적인 사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이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이 트럼프에게 기댈 수 밖에 없는 절박감과 분노를 기성 정치권이나 엘리트나 미디어는 인식하지 못했습니다. 엘리트들이 이들을 조롱하고 비하할수록 이들의 응집력과 트럼프 지지도는 단단해졌습니다. 이들의 분노와 좌절은 선거가 끝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트럼프는 민주당 만이 아니라 공화당을 포함한 기득권 세력이 미디어와 공모를 해서 부정 선거 시스템을 만들고 있다고 공격하면서 선거 결과를 승복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시사했습니다. 미국 민주주의의 전통과 긍지를 흔드는 선거 불복을 할 경우 미국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 휘말리게 될 것입니다.

정치권과 미디어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거대한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지만, 엘리트와 기성 정치세력이 현실 정치의 질서와 풍토를 바꾸려 하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이번 대통령 선거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도 아니고 공화당과 민주당만의 대결도 아닙니다. 잘 사는 사람과 못 사는 사람, 엘리트와 비 엘리트, 미국 문화가 지나치게 허용주의로 추락하고 있다는 사람들과 더 많은 자유와 허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결입니다.

이번 선거가 난장판이 된 것은 트럼프라는 부도덕하고 과대망상적인 광대 정치인의 출현에 가장 큰 원인이 있지만, 그 상대가 오랫동안 정치의 핵심에서 탐욕과 부패와 스캔들을 만들어 온 클린턴 정치 기계라는데 있습니다. 위키릭스를 통해 나타나는 해킹당한 이메일 내용은 클린턴 정치 기계가 얼마나 음모적이고 썩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힐러리와 트럼프 둘 중에서 아무도 찍어줄 수 없는 현실에 고민하는 것도 미국 정치의 좌절입니다.

선거판이 초토화되고 있습니다. 선거전이 초토화되고 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면 미국의 양극화는 심각한 수위로 올라갈 것입니다. 이번 선거의 승자는 만신창이 당선자가 되어 분열된 미국을 치유해야 할 것입니다. 미디어에서는 트럼프가 질 경우 정치적 경제적으로 도태되는 패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이만큼 온 것 만으로도 잃을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패자는 엘리트와 미디어, 공화당이 될 것입니다. 가장 큰 패자는 미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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