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대선 종반전

미국 대통령 선거 2016

뉴욕 타임즈의 조나탄 말러 기자는 힐러리 클린턴과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선거 토론을 무성으로 시청한 뒤 기사를 썼습니다. 토론 내용을 알 수 없도록 텔레비전에 소리를 나지 않게 하고 영상 그림만 나오도록 하고 취재를 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토론회 내용보다 이미지를 더 중시한다는 이론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고 합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이 얼마나 주관적이고 습관적인 고정 관념에서 출발할 수 있는지를 다시 생각했습니다. 이 기사가 다소 황당하고 어이없게 느껴지는 것처럼 많은 경우 사람들의 선택과 판단이 어이없고 황당할 수가 있습니다. “제 눈이 안경”이라는 속담을 끌어들이면 품위가 떨어질 수 있지만, 선거는 유권자들의 시각, 국민의 안경에 의해 결정됩니다. 지도자는 그 시대 그 나라 국민 의식의 반영입니다. 그러나 이번 미국 선거는 아주 특이한 상황입니다. 제 눈에 맞는 안경, 제 눈에 맞는 후보자를 고르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힐러리 클린턴이나 도널드 트럼프가 많은 국민들 안경에 잘 맞지 않습니다. 억지로 안경 도수를 맞추어서 선택 하든가 아니면 안경을 벗어버리고 대통령 후보 선택을 포기하든가 해야 하는 실정입니다. 민주당이나 공화당 모두 자신이 선택한 후보가 만족스럽다고 하는 유권자가 35% 선에 머물고 있습니다.

힐러리는 수십 년간 정치의 노른자에 살면서 기득권의 부패와 허위에 젖었고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망과 탐욕이 체질화되었고, 트럼프는 돈을 지상 제일주의로 생각하면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치부를 했고 여자와 향락에 탐닉했습니다. 힐러리나 남편 빌 클린턴 주위는 늘 교활한 정치 권력의 오만이 넘실거렸고 트럼프는 부도덕한 금력으로 돈 썩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힐러리 클린턴에게서는 진정성이나 신뢰성이 느껴지지 않고 인격의 기반이 허물어진 도날드 트럼프는 과대망상에 사는 사람 같습니다. 두 후보 모두 왜 대통령이 되려고 하는지에 대한 설득력과 감동이 없습니다. 이들 두 후보에게 식상한 사람들이 제3당 후보에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리버테리안 파티의 개리 존슨이나 그린 파티의 질 스타인의 미달한 함량에 실망하게 됩니다. 아무에게도 표를 주고 싶지 않지만 그런데도 투표를 해야 하고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투표를 할까 말까, 해야 한다면 누구에게 해야 하나하는 번복과 망설임, 흔히 쓰는 말로 두 개의 정치 ‘악’ 가운데 ‘작은 악’을 선택할 수밖에 없지 않으냐 하는 체념과 냉소가 흐르는 것이 이번 선거입니다. 다수의 국민이 실망하는 것과는 달리 힐러리와 트럼프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물론 상당수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어가 과격해지고 감정이 거칠어지고 서로가 서로에 대해 증오가 묻어나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미국 선거에서 볼 수 없었던 현상입니다. 이들은 더욱 파당적이 되고 편을 가르고 있습니다. 두 개의 양극화된 미국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대통령 선거를 6주 남겨두고 가진 9월 26일의 첫 TV 토론은 8천6백만 명이라는 최대 관객을 동원할 만큼 관심을 끌었지만 토론회는 체념과 냉소의 물길을 바꾸질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 토론이 지지도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선거를 결정할 사람들은 아직 마음을 정하지 못한 독립 유권자들입니다. 두 후보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독립 유권자들의 부동층이 어느 때보다도 두껍습니다. 스스로를 독립 유권자라고 밝힌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의 35%에서 40%에 이릅니다. 이들 가운데 절반가량은 민주당이나 공화당으로 기우는 독립 유권자이고 나머지 반, 즉 전체 유권자의 17%에서 20% 정도가 제3당으로 갈 가능성이 있는 부동표로 보고 있습니다. 나이가 젊을수록 독립 유권자가 많아서 45세 미만이 독립 유권자의 55%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1차 토론이 있기 직전의 여론 조사는 힐러리가 트럼프를 1%에서 2% 정도 앞서는 예측불허의 상황이었습니다. 8월 말 “키즈르 칸” 사건으로 힐러리에게 10% 뒤졌던 트럼프가 그동안 조금씩 만회를 해서 한 달 사이에 선거전을 다시 박빙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연설한 모슬렘 금성 무공훈장 가족을 비판해 키즈르 칸 사건을 일으켰던 트럼프는 막말을 조금씩 절제하고 원고 없는 연설로 돌출 발언을 자제하고 써 준 원고를 읽는 “텔리 프롬터” 연설을 하면서 고삐 풀린 말처럼 길길이 뛰던 성질을 누그러뜨렸습니다. 그리고 멕시코를 전격 방문해서 멕시코 대통령을 만나 멕시코와의 국경선에 담을 쌓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점수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힐러리에게 악재가 발생했습니다. 수그러들듯 하던 이메일 문제와 클린턴 재단 문제가 다시 불거져 나왔습니다. FBI가 발표한 추가 이메일 조사 보고서에서 힐러리가 꼬투리를 잡힐 수 있는 발언을 한 내용이 밝혀지고 힐러리가 국무장관 재직 시 클린턴 재단 관계자가 국무부 보좌관에게 모금 협조를 의뢰한 이메일이 밝혀졌습니다. 그러나 가장 논란을 일으킨 것은 힐러리의 말 실수와 건강 문제였습니다.

LGBT(레즈비언·게이·양성애자·성전환자)가 마련한 모금 파티 연설에서 힐러리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발언을 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의 절반이 개탄스러운 사람들 바구니에 속해 있으며 이들은 인종주의자, 동성애 공포증세자, 성차별주의자, 외국인 혐오자, 이슬람 혐오자”라고 비판하고 이들의 상당한 사람들은 “구제 불능한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 문제 된 것이 트럼프 지지자들 ‘절반’을 “개탄스러운 사람들의 바구니 (basket of deplorables)” 속에 담고 “구제 불능자들 (irredeemable)”로 표현한 것이었습니다. 힐러리는 ‘절반’이라고 쓴 표현은 잘못된 것이었다고 유감을 표시했으나 “개탄스러운 바구니”는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힐러리가 말실수를 한 뒤 곧바로 건강 문제가 터져 나왔습니다. 힐러리가 9.11 추모 식장 더위에 계속 견딜 수가 없어 자리를 떠서 차를 타는 순간 거의 졸도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경호원들이 힐러리를 부축하고 차 앞에서 휘청거리는 장면을 막아섰지만, 힐러리가 맥없이 주저앉는 모습이 사람들 사이로 포착되었습니다. 곧이어 힐러리가 폐렴 진단을 받았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힐러리의 폐렴 문제는 폐렴 그 자체보다도 그것을 숨겼다는 데 있었습니다. 대통령 후보에게 폐렴이 발생했으면 즉시 발표해야 하는 것을 정치적 고려 때문에 숨긴 것입니다. 최측근 몇 사람만이 알고 48시간의 은폐는 힐러리 클린턴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정직성, 투명성, 신뢰성 문제를 다시 도마 위에 오르게 했습니다.

지난 1개월간이 그랬듯이 대통령 선거에서 한 달은 변수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긴 시간입니다. 특히 이번 선거처럼 어느 후보도 호감을 얻지 못하는 기이한 선거전에서는 앞으로 남은 40일에 예상치 않은 변화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1차 토론은 이러한 변수 중에 하나입니다. 뉴욕 타임즈 조나탄 말러 기자는 후보자들의 음성을 듣지 않고 표정과 몸 언어만으로 힐러리가 이겼다고 주장했으나 뉴욕 타임즈가 힐러리를 지지하기 때문에 그 신문사에 속한 기자의 기사가 어느 정도 객관적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드러지나 타임의 온라인 여론 조사에서는 트럼프가 토론에서 이겼다는 숫자가 압도적이지만 언론이나 정치권에서는 힐러리가 압승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습니다.

첫 TV 토론이 끝난 뒤 독립 유권자들의 표심이 어떻게 나타날지는 토론이 끝난 뒤 일주일 정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 견해입니다. 과거 경험으로는 TV 토론에서 이겼을 경우 여론조사 수치가 3%에서 4% 상승합니다. 이 지지도는 앞으로 있을 2차, 3차 TV 토론에 따라 다시 조정될 것입니다. 특별히 이번 선거는 선거 막바지에 이른바 “옥토버 서프라이즈 (October Surprise)” 라고 불리는 10월의 놀라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어 양쪽 진영을 긴장시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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