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 2016(9)

“사실상 공화당 후보” 트럼프

인디아나 전선의 위력은 참으로 놀라웠습니다. 선거 전날까지만 해도 승리를 예측하면서 도널드 트럼프는 공화당 대통령 후보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단언했던 테드 크루즈는 개표가 완료되기도 전에 후보 경선에서 사퇴하고, 다음 날은 존 케이식이 사퇴함으로써 트럼프는 “프리점티브 노미니 (presumptive nominee) –사실상의 공화당 후보가 되었습니다.

인디아나 예선이 있기 일주일 전, 동부 지역 예선을 휩쓴 뒤 트럼프가 스스로 “프리점티브 노미니”라고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사람은 트럼프의 허풍과 허세로 간주했습니다. 2016년도 대통령 예선전에서 가장 큰 패자 가운데 하나가 언론입니다. 예측한 것 중에 제대로 적중한 것이 거의 없고, 아무리 트럼프를 비판해도 지지도는 꿈쩍하질 않았습니다. 작년 이 맘때쯤 트럼프가 대통령 출마를 선언했을 때, 그가 대통령 후보가 될 것으로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트럼프 파괴력은 놀라웠습니다.

인디아나 예선이 있기 전에 네이트 실버는 크루즈가 트럼프를 이길 확률이 90%가 넘는다고 예측했습니다. 네이트 실버는 지난 번 대통령 선거에서 다른 여론조사 기관의 예측과 달리 자신의 독특한 진단 방법으로 오바마 당선을 예측했던 족집게 전문가로 꼽히고 있습니다. 네이트 실버의 예측은 감정을 빼고 철저한 자료 중심으로 상황을 분석 종합하기 때문에 많은 신뢰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네이트 실버의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도 효력을 상실케 만든 것이 트럼프의 위력입니다.

인디아나 주는 보수성이 강하고 복음주의자 기독교인들 영향력이 큰 지역으로 크루즈의 텃밭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리고 인디아나에서 인기가 높은 현직 주지사까지 크루즈를 공개 지지했으나, 트럼프가 크루즈를 그냥 이긴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겼습니다. 인디아나 결과가 독립적으로 발생한 것인지 아니면 유권자들의 마음이 달라진 것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표심이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는 생각이 듭니다. 과거의 예선에서 트럼프 지지는 35%를 오르내렸으나 인디아나 예선에서 트럼프는 53%의 지지를 얻어 37%를 받은 크루즈를 무색게 했습니다.

인디아나에 이어 실행된 네브라스카와 웨스트 버지니아 예선에서도 트럼프는 각각 61%와 77%를 얻었습니다. 크루즈와 케이식이 사퇴한 뒤였기 때문에 그렇기도 하지만 트럼프에 대한 거부감이 약해지고, 반 트럼프 전선이 무너진 것을 말해 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트럼프가 대통령 후보가 되는데 필요한 대의원 1,237명을 확보하기 어렵고 결국은 후보자를 전당대회에서 뽑는 “브로커드 컨벤션 (brokered convention)”으로 갈 것이라고 언론이 예측하고, 크루즈와 케이식이 계속 선거 운동을 해 왔던 논거는 트럼프 지지도가 35%를 못 넘는다는 전제였습니다. 이러한 예측의 둑이 무너진 것은 뉴욕을 기점으로 트럼프 지지도가 50%를 훨씬 넘어섰기 때문입니다.

현재 트럼프는 1,086의 대의원을 확보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공화당 예선은 5월 17일 오레곤 주, 5월 24일 워싱턴 주에 이어 마지막 예선이 될 6월 7일에 캘리포니아, 뉴저지, 몬타나, 뉴멕시코, 사우스 다코다 주가 기다리고 있으나 트럼프가 과반에 필요한 1,237명을 얻을 것을 의심할 사람은 없습니다. 트럼프는 절대 안 된다는 “네버 트럼프 (Never Trump)” 운동이 사실상 궤멸된 상황에서 과연 트럼프가 분열된 공화당을 단합시킬 수가 있느냐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몇 주 전만 해도 트럼프를 반대하는 공화당 지지자의 숫자가 35%를 넘는 것으로 보도되었으나 이 수치가 20%로 줄어들고 시간이 갈수록 트럼프 비토 현상은 약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제도권 공화당의 트럼프 거부감도 이미 동력을 상실해 가고 있습니다. 제프 부시 후보의 아버지와 형 부시 전 대통령이 트럼프 지지를 거부하고 전당대회에 참석치 않겠다고 밝혔으나, 이것은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딕 체니가 트럼프를 지지한 것이 뉴스가 되고 있습니다. 부시 정부의 부통령으로 이락 전쟁을 주도하고 극우 정책으로 비판을 받은 체니가 그와는 반대적인 정책 노선을 취하고 있는 트럼프를 지지한 것은 뜻밖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였던 존 맥케인이 트럼프 지지 의사를 밝혔습니다. 맥케인이 지지 의사를 밝히자 맥케인이 베트남 전쟁에서 포로가 되었기 때문에 영웅이 아니라고 막말을 해서 풍파를 일으켰던 트럼프는 자신의 발언을 뒤집고 맥케인은 영웅이라고 말하고 자기는 맥케인을 좋아한다고 말했습니다.

예선에서 트럼프를 “사기꾼”이라고 격렬하게 비판했던 마코 루비오도 침묵을 깨고 트럼프를 지지하겠다는 발언을 했습니다. 트럼프 정책과 자질에 문제가 많지만, 힐러리를 지지할 수는 없고 자신은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른 경쟁자였던 벤 카슨과 크리스 크리스티는 일찌감치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고 트럼프의 최측근 조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트럼프 지지 여부에 관심을 받는 정치인과 그룹은 폴 라이언 국회의장과 극우 성향의 티 파티 (Tea Party) 정치인들과 보수적인 엘리트 지식인들입니다. 이 가운데 가장 조명을 받는 사람은 폴 라이언 국회의장입니다. 미트 롬니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의 런닝 메이트였던 라이언 국회의장은 현재 공화당 내에서 가장 큰 영향력과 발언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티 파티 성향의 보수성을 가졌으나 합리적이고 지적인 정치인으로 평가되는 라이언은 트럼프가 사실상의 후보로 결정된 뒤 “트럼프를 지지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라이언의 발언에 트럼프가 발끈했으나 막말을 퍼붓지 않는 것은 라이언의 위치가 중요하고, 라이언이 필요하고, 라이언이 나중에는 지지할 수도 있다는 기대 때문일 것입니다. 트럼프와 라이언은 비공개 회담을 하고 의견을 교환했으나 “대화가 고무적이었다”고 말할 뿐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라이언 국회의장은 트럼프를 지지하기 위해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극우 이념 세력에 지지 기반을 두면서도 중도파와 원만한 관계를 맺고 포용력을 행사하는 라이언으로서 당장에 트럼프를 지지한다고 밝히면 오히려 큰 바람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시간을 두고 뜸을 들이면서 설득하는 모양새와 신중한 처신을 하는 것이 공화당 단합을 유도할 수 있다는 계산을 할지 모릅니다. 결국에는 트럼프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크루즈와 케이식도 트럼프를 지지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트럼프는 절대로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격렬하게 비판해 왔으나 경선을 시작할 때 누가 후보가 되든지 지지하겠다는 선서를 했고, 장래를 생각하는 정치인일 경우 후보자가 누구든 승복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승복 문화는 미국 정치 풍토의 핵심입니다. 공화당 후보 경쟁자 가운데 트럼프 지지를 거부한 제프 부시, 린지 그라함, 조지 파타키는 더 이상의 정치적 야심을 포기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공화당 정치인은 종국적으로 트럼프를 지지할 것입니다. 다만 끝까지 트럼프를 거부할 사람들은 정치인이 아닌 엘리트 보수 이념주의자들일 것입니다. 대표적인 보수 논객 중에 한 사람으로 워싱턴 포스트지 칼럼니스트인 조지 윌은 이미 트럼프 낙선 운동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트럼프보다는 힐러리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극우 보수 이념주의자들은 조지 윌과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지지해서 보수 이념의 순수가 훼손되고 타협되는 것보다는 힐러리가 당선되어 보수 이념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트럼프를 비토하는 두 줄기는 이념과 품격입니다. 대통령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품성과 자질에 대한 거부감이 일반적인 비토라면, 이념이 공화당 후보로 되기에는 충분히 보수적이 아니라는 거부감이 보수 엘리트의 비토입니다. 트럼프에 대한 보수 이념주의자들의 거부는 지속될 것이고 품격과 자질에 대한 거부감은 약화되거나 면역성이 커질 것입니다. 이제 힐러리 클린턴과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여론 조사로는 힐러리가 트럼프를 10%에서 15%를 앞서 갔으나 격차가 줄고 있습니다. 2% 차로 좁혀진 여론조사까지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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