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합의는 잘 한 것입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앞에 앉아 일본 식민지 시대의 잔혹상과 야만성을 들으면서 자랐던 저는 중학생이 되어서는 손가락을 잘라 혈서를 쓰는 반일 데모를 보며 가슴이 뛰었습니다. 일본에 대한 분노가 가슴을 흘렀고, 일본과의 스포츠 경기를 라디오 아나운서가 애국적으로 중계 방송을 하는 것을 들으면서 열광했습니다.

이러한 반일 감정이 처음으로 도전을 받은 것이 1965년 한일 협정이었습니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저는 굴욕 외교를 규탄하는 6.3 데모의 해일이 온 나라를 삼킬듯 휩쓸고 위수령이 선포되고 학교가 휴교 조치되었을 때 아주 소수 중의 소수가 되었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대학생들은 물론 교수와 지식인들이 굴욕 협상을 반대할 때 저는 찬성 편에 섰습니다.

50년 전, “나는 왜 한일협정을 찬성했을까”하는 자신에 대한 질문이 오랫동안, 지금도 제 뇌리를 스쳐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지 반세기가 되었으나 한국인들 가슴을 지배하고 있는 반일 감정은 퇴색되지 않고, 오히려 더 깊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합의를 한 뒤, 굴욕적으로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강하고, 협상 결과에 불만족스러운 국민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중앙일보 여론조사 불만족 54%, 만족 36%) 야당에서는 합의 무효를 선언했습니다. 특별히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 이전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번 위안부 합의는 잘 한 것이며, 오히려 늦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처음부터 한일 간에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이라는 상대가 있을 때, 거기에 일본의 사과와 보상의 문제가 있을 때 일본은 결코 화통하고 품위있는 선진국이 될 수 없습니다. 일본의 그릇은 독일을 흉내낼 수가 없습니다.

그릇이 그것 밖에 안 되는, 고루한 옛 의식, 편협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이 마음의 문을 열 수가 없듯이, 국격이 그것 밖에 안 되는 나라는 쉽게 의식의 빗장을 열 수가 없습니다. 개인보다 국가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런 나라에게 참회를 해라, 속죄 하라, 사과를 하라고 아무리 말해도 그것은 우이독경(牛耳讀經), 쇠귀에 책 읽기입니다.

이럴 경우, 속죄하고 사과하라고 말하는 사람, 그런 나라가 자칫하면 자기 감정의 덫에 걸릴 수 있습니다. 경제와 몸집은 선진국이 되었으나 품격이 미숙한 상대와 다투다보면 똑 같은 수준으로 스스로를 끌어내릴 수 있고, 자존이 상처를 받고, 이것이 심해지면 피해자가 이성과 절제를 잃을 수 있습니다.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인색한 사과를 했지만, 그것이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압니다. 사과를 받아 내는 일은 상대가 뉘우치고 반성하지 않으면 사과를 받아도 뒤 끝이 개운치가 않고 진정한 우호와 선린이 자라질 않습니다.

일본이 형식적인 사과를 한 이번 합의에서 한국이 얻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사과를 받아 냈다는 감정의 자위가 있을 뿐입니다. 일본의 어색한 사과로 생존한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가 아물려지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떠난 위안부들의 망혼이 위로받는 것도 아닙니다. 한일 양국 간에 장애가 되었던 걸림돌 하나를 치운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두 나라 사이의 속 마음은 한발짝 더 멀어지게 했습니다.

처음부터 얻을 것이 거의 없는 방법으로 위안부 매듭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사과를 하라고 소리 지르기 보다는 의연하게 대응하는 것이 성숙한 피해자의 모습니다. 국가 간의 외교는 감정이나 속 마음을 접어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는 국가 간의 문제는 냉혹한 실리와 국가 이익에 따라 판단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국은 너무 눈에 보이는 것, 감정적인 대응에 습관처럼 익숙합니다. 사과할 수 있는 문명국 수준이 아닌 일본을 향해 격렬하게 사과를 요구하기 보다는 사과는 일본의 몫으로 돌리고 한국은 위안부 문제를 심도있게 조사하고 연구하면서 위안부에 대한 추모 사업을 독자적으로 추진했으면 좋았다는 아쉬움이 듭니다. 일본과 공동으로 위안부 문제를 조사하고, 위안부 조사를 유엔에 의뢰하자는 주장도 있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공론입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있는 위안부 소녀상 문제도 처음부터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것이었습니다. 위안부 동상을 세우는 것이 위안부들의 아픔과 한을 기억하고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한 것이라면, 소녀상을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울 것이 아니라 한국인들이 추모할 수 있는 장소로 택해야 합니다. 소녀상을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것은 일본에 대한 감정과 미움을 노골적으로 상징화시킨 것입니다.

대사관은 주재국의 영토에 해당합니다. 그 치외법권의 땅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소녀상을 세운 것은 일본인들에게 모멸감과 치욕감을 주기위한 것으로 보여질 수 있습니다. 이것은 소녀상 본래의 목적에 어긋나고, 소녀상을 반일 감정에 이용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모습을 작게 만들고, 한국인을 속 좁은 사람들, 극단적인 사람들, 절제력이 부족하고, 예의가 없는 사람들로 만듭니다. 손님이 내 집에 오면 그 손님과 아무리 불편한 관계에 있어도 최소한의 예의가 있어야 합니다. 손님 면전에서 손님에게 모욕감을 주는 언행을 절제하고 삼가하는 것이 사람과 나라의 격입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소녀상을 세운 것은 내 집에 온 손님에게 예의를 잃은 것이고, 스스로의 품격을 실추시키는 것입니다.

스스로를 실추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고 상대를 자극하고 감정을 악화시키는 것입니다. 일본 대사관을 매일 같이 출입하는 일본인들이 이 소녀상을 보면서 반성하고 참회하기 보다는 한국인들의 미움과 증오를 피부로 느끼면서 그들 마음 속에 반한 감정을 키워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일본에서 좋은 감정으로 한국을 방문한 일본인들이 자기 나라 대사관 앞에 세운 소녀상을 보면서 감정의 기복을 겪을 수 있고, 이곳을 지나는 외국 방문객들이 이 동상을 보고 왜곡된 한국을 각인시킬 수 있습니다.

일본 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것은 앞을 내다보지 않는 과거지향적 발상이기도 합니다. 한일 간의 관계가 영원히 적대적으로 갈 수 밖에 없다는 의식이 숨어있습니다. 소녀상을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사람들은 지금의 한일 관계가 개선되어 우호적이 되는 미래를 생각지 못했거나 그런 미래를 거부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일 관계가 좋아질 때 이 소녀상은 옮겨야 할 숙명을 안고 있습니다. 대사관 앞 소녀상은 자리를 잘못 잡았습니다.

소녀상이 민족 감정으로 이용되는 것은 소녀상을 다시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소녀상이 다시 논란의 와중으로 휩쓸리는 것은 소녀상을 위해서나 한국인의 품격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사관 앞 소녀상을 일본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의지로 한국인의 장소로 옮겨야 합니다.

위안부 합의는 잘 한 것입니다. 격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한국이 계속 일본과 척을 지고 지낼 수가 없습니다. 한국인들 감정은 위안부 합의가 굴욕적이라고 느낄 수도 있겠지만 세계의 이성과 양식은 한국을 격려할 것입니다.

반세기전 한국은 가난을 극복하고 경제 건설을 위해 굴욕적인 한일 수교를 했으나, 오늘의 한국은 나라의 안보와 선진을 위해 불만족스럽지만 의연하게 위안부 합의를 했습니다. 위안부 합의는 한국이 굴욕 외교를 한 것이 아니라 일본의 비굴한 양심을 한국이 포용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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