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자라는 독버섯

캘리포니아 주 샌 버나디노(San Bernardino)에서 12월 2일 일어난 테러가 미국을 뒤흔들고 있습니다. 9.11 테러 사건 이후 가장 큰 규모의 테러 사건은 미국인들을 불안케 하고 정치권을 소용돌이 속에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은 살상 규모로 보면 26명의 생명을 앗아간 커넥티커트 주 샌디훅 초등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이나, 32명을 살해한 버지니아텍 조승희 총격 사건보다 작고, 사건 빈도로 봐도 정신 질환자들에 의한 만성병 총기 난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14명을 숨지게 한 이번 사건에 미국이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 사건이 테러라는 데서, 더욱이 ISIS가 가장 큰 위협으로 대두된 상황에서 일어난 테러라는 점에서 과민성을 증폭시키고 있습니다.

사건이 처음 발생했을 때 테러라고 부르기를 유보했던 오바마 대통령은 일요일 밤 특별 성명을 통해 테러라고 규정했습니다. 테러가 일반적인 총기 폭력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중요하게 취급되는 것은 의도와 목적에 의한 범행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이념적, 종교적 동기에 의해 폭력을 행사하는 테러는 문명 국가의 최대의 적이 되고 있습니다.
범행 후 사망한 사이에드 파룩(Syed Farook)과 타쉬핀 말릭(Tashfeen Malik) 부부가 왜 테러 행위를 했는지, 어떤 외부 조직과 연계되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들이 극단화된 이슬람 교도로, 범행 직전에 ISIS에게 충성 맹세를 웹사이트를 통해 한 것이 수사당국에 의해 파악되었습니다. 테러 사건이 발생하면 대부분 배후 조직 세력이 자신들 주도했다는 성명을 승전보를 전하듯 발표하는데, 이번 사건은 아직까지 주도 세력이 나타나지 않고 있습니다. 얼마 전 발생한 파리 테러는 ISIS가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었습니다.
지금까지 조사된 것으로 보면, 이들은 ISIS 지시에 의한 것이 아니라, ISIS 이념에 일방적으로 동조한 자생적 테러범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ISIS 훈련을 받고 침투한 테러범이든, ISIS 지시를 받고 자행한 테러범이든 인륜을 거스르는 테러의 잔혹성이나 범죄성이 달라질 것은 없지만, 이들이 자생적 테러범일 경우 더 깊은 우려를 줍니다. 자생적 테러리스트는 집에서 자라나는 과격주의자(home grown radical)입니다. 외국에서 잠입하는 범인들이 아니라, 함께 살고 함께 공동의 가치관을 공유하는 공동체 안에서, 자기 나라 안에서 자라나는 독버섯이라는 데서 더 큰 위험성과 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번 범인 부부의 남편인 파룩이 미국에서 태어난 시민이라는 것이, 사건을 인종적 종교적으로 확대시킬 수 있고, 같은 인종, 같은 종교를 가진 선량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힐 수가 있습니다. 반대 입장에 있는 또 다른 과격세력에게 빌미와 구실을 제공하고 사건의 불길을 크게 할 수가 있습니다.

처음에 사건이 발생했을 때 파키스탄에서 태어나 교육받고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살았던 부인 말릭이 결혼한 뒤 남편을 세뇌시켰을 것이라는 판단이 지배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사건 조사가 진전되면서 부인이 남편을 세뇌시킨 것이 아니라, 부인을 만나기 전에 이미 남편이 세뇌된 젊은이었고, 인터넷에서 서로의 과격성이 통해서 결혼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서 대두되는 질문은 왜, 미국서 태어난 파룩이 극단주의자가 되었느냐 하는 것입니다. 파키스탄에서 온 부인이 극단화된 것은 파키스탄의 토양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에 동화되고 안정된 직장을 가진 조용한 성격의 파룩이 어떻게 이토록 악마적 범인이 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파리 테러의 범인들도 자생적 테러리스트들입니다. 그러나 프랑스와 미국의 무슬림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프랑스는 시리아, 알제리아 등 중동과 아프리카 식민지 당사국이었고, 이로 인해 많은 무슬림이 프랑스로 이주했으나 이들의 응어리진 상처가 문화적 경제적으로 대물림하면서 프랑스 주류 시민으로 동화되지 못하고 변두리 2등 시민으로 게토화되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은 이민으로 이루어진 사회이고 배척과 차별의 시행착오를 거쳐 다인종 다문화의 꽃을 피웠고, 모든 종교와 인종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아메리칸으로 동화되었습니다.
왜, 미국에서 태어나 미국화된 파룩이 극단주의자가 되어 6개월된 딸을 두고 부인과 함께 이토록 끔직한 테러를 저질렀을까, 어떻게, 갓난 아기의 어머니가 6개월 된 딸을 팽개치고 남편과 함께 테러범의 길을 걸을 수 있을까, 하는 놀라움이 클수록 국민들의 대답은 지극히 감정적이고 단세포적이 됩니다.
이들 범행 뒤에 극단적이고 광적인 이슬람교가 자리잡고 있다는데서 국민들은 분노의 화살을 이슬람으로 겨누게 됩니다. 이미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선두 주자인 도날드 트럼프 같은 극단주의자가 교활한 정치적 계산으로 시민들 감정에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 파리 테러 사건 직후, 이슬람 사원을 폐쇄시키고, 이슬람 교도 등록제를 만들겠다고 했다가 한 발 물러섰던 트럼프는 샌 버나디노 테러가 발생하자 세계의 모든 모슬렘이 미국에 입국하는 것을 금지하겠다는 정견을 발표했습니다. (처음에는 미국 시민인 무슬림이 외국에 나갔을 경우 미국에 재입국하는 것까지 금지시키겠다는 주장을 했다가, 그의 극단적인 생각에도 지나치다고 생각했는지 철회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여기에 열광하고, 트럼프 말대로 기립 박수를 보냈고, 미국의 인종차별 나치당은 트럼프에게 열렬한 찬사를 보냈습니다. 어쩌면 트럼프의 선거 지지도가 상승할지도 모릅니다. 지금 미국의 민심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성과 양식이 있는 시민들은 이러한 극단의 광기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극우 논객인 러시 림바우나 샨 헤네시,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트럼프의 아류라고 할 수 있는 테드 크루즈 같은 이념 중독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공화당 지도자들, 폴 라이언 국회의장은 물론 딕 체니 전 부통령까지 트럼프를 비판했습니다.

모슬렘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키겠다는 트럼프의 주장은 바로 ISIS가 바라는 것입니다. ISIS는 미국과 유럽이 시리아 전쟁터에 들어오기를 원하고, 미국이나 유럽에 더 많은 자생적 극단주의자들이 생겨서 ISIS가 지향하는 이슬람 순교전쟁에 참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동의 이슬람들이 자기네 주장에 동조해서 고기가 물을 필요로 하듯 ISIS의 지지세력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서 ISIS는 중동의 기독교인들은 물론, 같은 무슬림들도 ISIS의 광신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무자비하게 죽이고 있습니다. 이들은 서방과의 문명 전쟁만이 아니라, 자기네 이슬람과도 종교 전쟁을 원하고, 이것을 위해 죽는 것을 순교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ISIS 이념에 동조한 샌 버나디노 테러범들이 이런 광신이 없으면 6개월 된 딸을 두고 이토록 끔직한 행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트럼프나 그의 지지자들은 지금 ISIS가 원하는 것을 도와주고 있습니다. 모슬렘의 미국 입국을 금지시킬 경우, 세계 16억 모슬렘 가슴에 반미 감정에 불을 지르는 것이고, 미국에 대한 혐오를 증가시킬 것입니다. 세계 무슬림 가슴에 미국에 대한 혐오감이 커질수록 ISIS에 대한 심정적 지지가 커지고 ISIS가 자리잡을 영토가 그만큼 넓어집니다.

무슬림 극단주의자들과 온건하고 평화적인 대다수 무슬림을 구별하지 않고, 무슬림을 백안시하고 차별할 경우, 미국 내 3백만 무슬림 가슴에 고립과 분노를 증가시키고, 젊은 무슬림 가운데 샌 버나디노 부부를 암묵적으로 미화하고, ISIS 테러에 동조하는 숫자를 늘어나게 하고, ISIS를 위해 테러에 참가하는 숫자를 증가시킬 것입니다.
이러한 실리적인 전략을 떠나 미국 이민자에게 종교 시험이나 인종 테스트를 하는 것은 미국의 기본 정신을 훼손시키는 것입니다. 미국은 이미 1924년 동양인 배척법(Oriental Exclusion Act)을 통해 동양인 이민과 시민권 부여를 봉쇄했던 차별의 잘못을 저질렀고, 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미국에 있는 모든 일본인들을 수용소로 보냈던 얼룩의 역사가 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나서 미국은 잘못을 사과했고 생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했습니다. 트럼프가 무슬림 입국을 금지시키겠다는 발상은 이러한 과오를 반복하겠다는 것입니다. 현실적으로도 미국에 입국하는 여행객이나 관광객, 유학생들이 모슬렘 교도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는 것은 세계의 웃음거리입니다.

트럼프의 정책은 테러범 입국을 막기 위해 미국 정신을 죽이는, 소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矯角殺牛)입니다. 미국에 자생적 극단주의가 자라는 것을 막는 것은 이슬람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이슬람을 차별해서 이슬람 전체를 적대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슬람의 협조를 얻어서 극단 폭력주의자들이 설 땅을 좁혀가는 것입니다. ISIS는 이슬람 컬트(cult)입니다. 어느 종교나 사이비가 있습니다. 트럼프와 그의 지지자들은 ISIS를 도와주고, 자생적 독버섯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을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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